■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47장 새북사사천(塞北四四天) - 금마혈번(金魔血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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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휘이― 이― 이― 잉!
사월(四月)이라고 하나 옥문관(玉門關)의 바람은 여전히 차고 매
섭다. 그 바람을 등에 업고 삼 인(三人)의 고수가 옥문관을 넘어
중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중원에 들어선 이후 그 어느 누구도 그
들을 주의해서 보지 않았다.
허나, 한 가지 사실만은 기억하자.
그들이 떠난 곳, 그곳은 바로 새북사사천(塞北四四天)임을......!
― 새북사사천
②
곡강현(曲江縣).
사천성(四川省) 최북단에 위치한 소현(小縣)으로 기껏해야 삼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만 촌락이었다.
휘우우우웅......!
그 날은 눈도 뜨지 못할 만큼의 지독한 바람이 드세게 불던 날이
었다.
바로 그 날의 석양 무렵, 자욱한 먼지바람을 뚫고 세 필의 오추마
가 곡강현에 나타났다.
마상(馬上)에는 각기 독특한 차림의 삼 인(三人)이 타고 있었다.
그들 중 중앙의 인물은 탈속한 듯한 용모에, 전신에서 신비스런
기도(氣度)를 풍겨내는 스물대여섯 살 가량의 청년이었다.
일신에 걸친 옷은 금의(金衣)였으며, 머리에는 금빛 영웅건, 등
뒤에는 한 쌍의 핏빛 장창(長蒼)을 교차시켜 메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쪽 어깨 위로 비스듬히 삐져 나온 장창의 끝에는
각기 핏빛의 삼각깃발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그의 오른쪽 인물은 약간 마른 체구에 눈이 하나뿐인 독목(獨目)
의 중년인이었다.
하나뿐인 눈은 살모사의 그것처럼 예리하게 찢어져 있었고, 핏기
가 없는 얇은 입술의 안색은 완전히 잿빛이었다.
그는 앞가슴에 흰빛 털로 싸인 월형도(月形刀)를 비스듬히 메고
있었다.
끝으로 왼쪽의 인물은 평범한 얼굴에 전신을 호피(虎皮)로 휘감은
모습이었다.
별로 큰 체구라고 할 수는 없으나 옷 밖으로 드러난 살결은 연한
고동색으로 근육 하나하나가 섬세히 발달된 훌륭한 몸을 소유하고
있었다.
따가닥...... 따가닥......!
삼 인을 태운 오추마는 한 허름한 객점 앞에서 멈추어 섰다.
<곡강객잔(曲江客棧).>
곡강현 내의 유일무이한 객잔인 이곳은 지독한 먼지바람 탓인지
지금은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금의청년은 느릿하게 오른쪽 인물에게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곳인가?"
독목인은 객잔의 입구를 뚫어지게 쏘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음."
금의청년은 다시 왼쪽의 호피인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던지더
니 훌쩍 말에서 내려섰다.
독목인과 호피인도 즉시 뒤따라 내려섰다. 금의청년은 뒷짐을 진
채 유유히 걸음을 떼놓더니 객잔의 문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러자 독목인이 선뜻 앞으로 나서며 객잔 문을 활짝 열었다.
휘이이잉― 잉―!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세찬 먼지바람이 객점 안으로 강하게 휘몰아쳐 들어갔다.
객점 안에는 대략 삼십여 명이 이십여 개의 탁자를 거의 메우고
앉아 있었다.
금의청년은 약간 거만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맨 구석 탁자에 멎으며 번쩍 이채를 뿌
렸다.
금의청년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한 죽립인이 등을 보인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금의청년은 느긋하게 독목인을 돌아보더니 가볍게 턱끝을 쳐들었다.
그러자 독목인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어느새 죽립인의 옆으로 내려섰다.
"아니?"
"저, 저런......."
독목인의 놀랄 만한 빠른 움직임에 객잔 안은 곧 작은 소요로 들
끓었다.
허나 그들은 금의청년 등 삼 인의 위세에 질려 이내 꿀먹은 벙어
리가 되고 말았다.
주위의 감탄한 시선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독목인은 입가에 비릿
한 웃음을 띠며 죽립인에게 말을 건넸다.
"친구?"
"......."
그러나 죽립인은 아무런 대꾸없이 술병을 잔에 기울였다.
독목인의 하나뿐인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흐흐...... 술병이 떨리고 있구나."
술병을 쥔 죽립인의 손이 움찔했다.
독목인은 음침하게 말했다.
"삿갓을 벗어라, 중후!"
번쩍!
죽립인은 삿갓을 벗어 그대로 독목인의 정수리를 쪼갰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죽립인의 상상에 불과할 뿐, 삿갓은 이미
벗겨진 채 애꿎은 탁자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또한 어느새 독목인의 월형도는 중후라 불리운 죽립인의 미간에
닿아 있었으니.......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쾌속함이 아닌가!
중후라 불린 백발이 성성한 칠순 노인의 이마에는 긴장감 어린 땀
방울이 송글거리고 있었다.
독목인은 월형도를 들이댄 채 씨익 웃었다.
"구주칠기(九州七奇) 중 네가 마지막이다. 자, 말해라."
중후의 눈에 의혹이 솟았다.
"무...... 무엇을......?"
"모른 척하긴가?"
"노...... 노부는......."
독목인의 입가에 문득 조소가 배어 나왔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건천삼존(乾天三尊)의 행방이다."
"......!"
중후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허나 그는 곧 평정을 회복하며 황망히 대꾸했다.
"모...... 모른다."
"흐흣...... 스스로 무척 오랫동안 살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저...... 정말이다! 노...... 노부는 진정코 모른다!"
순간 원형도를 쥔 독목인의 손에 약간 힘이 가해졌다.
"흐흐흣...... 중원의 잡배놈들, 감히 새북사사천의 혈왕소(血王
簫)를 훔쳐가고도 시치미를 떼다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객잔 여기저기서 놀람에 찬 부르짖음
이 분분히 터져 나왔다.
"뭣이?"
"새북사사천!"
그 순간 호피인의 무뚝뚝한 음성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모두 조용히 해라!"
그러자 좌중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때였다.
휙!
돌연 주객 중 한 명이 창 밖으로 번쩍 신형을 날렸다.
신법으로 보아 예사 고수는 절대 아니었다.
"으...... 윽!"
그러나 그는 미처 창문을 뚫고 나가기도 전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
르며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의 미간에는 동전만한 구멍이 뻥하니 뚫려 있었다.
즉사였다.
그러한 광경에 좌중의 모든 사람은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호피인의 음성은 이 순간에도 재차 흘러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 알아서들 해라."
단 한 번의 무력시위!
그것이면 충분했다.
독목인은 잠시 좌중을 매섭게 쓸어보더니 다시 중후에게로 시선을
꽂았다.
"이곳의 사람은 모두 서른다섯 명, 이들의 생명을 걸고 묻는다.
건천삼존은 어디 있느냐?"
"......!"
중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서른다섯 명의 생사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걸린 것이다.
중후는 진땀을 흘리며 간절한 눈빛으로 독목인을 쳐다보았다.
"저...... 정말이다. 노...... 노부는 그들의 행방을 모른......."
중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의청년이 웃음 띤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죽여라."
순간,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독목인의 신형이 퉁기듯 좌중에게로
폭사되었다.
츠츠츠츠츳!
독목인의 신형이 한 바퀴 휘돌자 곧장 수십 갈래의 도광(刀光)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으악!"
"크― 악!"
"켁!"
수십 마디의 비명이 한 소리처럼 터지며 허공 가득 피보라가 흩뿌
려졌다.
그 순간 독목인의 신형은 이미 원래의 자리에 내려서고 있었다.
허나 그의 주위로 벌어진 가공무쌍한 광경을 도대체 무슨 말로 표
현해야 할까!
몰살(沒殺)!
그랬다. 좌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일 초에 서른다섯 명의 생명이 깨끗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후는 경악과 불신의 눈빛으로 핏물에 잠긴 객잔 안을 바라보았
다.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치떨리는 음성을 내뱉았다.
"이...... 잔인......."
그러나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야 했다.
툭......!
돌연 그의 머리가 몸체를 떠나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독목인은 조용히 월형도를 거두고 금의청년을 힐끗 쳐다보았다.
금의청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자! 어차피 저 놈은 건천삼존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어."
그는 천천히 돌아서며 혼잣말로 뇌까렸다.
"허나...... 건천삼존, 놈들은 절대 나 금마혈번(金魔血幡) 소사
(蘇邪)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금마혈번 소사!
그 말을 끝으로 금의청년 등 삼 인은 이내 객점 밖으로 사라졌다.
삽시간에 혈해의 지옥으로 화한 객잔 안에는 죽음보다 더 짙은 정
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꿈틀......!
핏구덩이 속에서 한 구의 시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은 바로 삐쩍 마른 체구에 병색이 완연
한 허약한 몰골의 노인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금의청년들이 사라진 문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으음...... 정말 굉장한 쾌도(快刀)였다. 검천의 오 형제에 못지
않을 만큼......."
누구인가?
검천의 오 형제를 입 밖에 꺼내다니.......
문득 그의 눈에 괴광이 어렸다.
"헌데... 저들이 중원에 나타난 이유는 단순히 잃어버렸다는 혈왕
소를 찾기 위해서일까?"
그는 우뚝 몸을 세웠다.
"아무튼 대종사께 말씀 드려야겠다."
그러다 문득 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피식 실소했다.
"그건 그렇고...... 이 환사유풍이 오늘처럼 재수없는 날은 처음
이군. 제갈 일곱째 덕분에 반갑지도 않은 일도(一刀)를 맞았으니......."
환상인가?
환사유풍의 모습은 순식간에 벽 속으로 꺼지듯 사라져갔다.
휘우우웅......!
밖에서 부는 바람은 여전히 지독한 먼지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