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권 제46장 (46/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3권 제46장 두 개의 죽음, 그 의미(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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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령도의 동쪽 끝단.

  그곳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가 군(群)을 이루며 수없이 돌기해 있었다.

  그중 한 바위  위에 늘씬하고 섬세한 인영  하나가 가볍게 내려섰

  다.

  화교홍이었다.

  그녀의 몸은 폭우에 흠뻑 젖어 있어 풍만하고 도발적인 몸매의 굴

  곡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화교홍은 잠시 주위를 예리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옆의 한 바위를 향해 사정없이 일 장을 내갈겼다.

  꽈꽝!

  바위는 산산조각 박살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헌데 깨어진 바위 속에는 놀랍게도 옥(玉)을 통째로 만든 듯한 새

  하얀 가마솥 하나가 들어 있지 않은가?

  '사라옥정(沙羅玉鼎)!'

  화교홍의 눈에 희열의 빛이 흘러 넘쳤다.

  오오, 사라옥정!

  문제의 그것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었다.

  화교홍은 풍만한 가슴을 흔들며 요란한 홍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드디어  사라옥정과 천섬검환결의  정수가 모두 내

  손에 들어왔다!"

  쏴쏴......!

  굵은 빗줄기가 그녀의 얼굴과 몸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이것들만 있으면......  십년 이내에 나 화교홍은  천하 그 어떤

  세력에 못지 않은 단체를 만들 수 있다!"

  실로 야무진 말이 붉은 입술 사이로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호호호호...... 이제는  나 화교홍도  무림의 일대종주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호호호......."

  폭우 속에서 한 여인의 야망이 무섭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이때였다.

  스슷......!

  돌연 경미한 파공성이 화교홍의 등 뒤에서 일었다.

  흠칫 웃음을 멈춘 화교홍은 재빨리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등뒤엔  일견키에도 대단히 준수하게  생긴 중년의 청의인

  (靑衣人)이 우뚝 서 있었다.

  청의인의 모습을 확인한 화교홍의  얼굴에 금세 반색의 기색이 떠

  올랐다.

  "오! 연청, 배는 준비되었느냐?"

  "......."

  청의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교홍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연청, 왜......."

  말을 하다 말고 그녀의 안색이 홱 변했다.

  연청의 이마를 타고 한 줄기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연...... 청......?"

  화교홍은 몸을 떨더니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동시에 연청의 몸이 마치 통나무처럼 앞으로 뻣뻣하게 넘어갔다.

  쿵―!

  "악!"

  놀람과 공포로 인해 화교홍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휩뜨여졌다.

  연청의 뒤통수는 통째로 어디론가 날아갔고 희멀건 뇌수가 고스란

  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가?

  화교홍의 안색은 충격으로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누...... 누가......."

  "나다."

  한 소리 냉막한 음성이 그녀의 등 뒤에서 불쑥 들렸다.

  화교홍은 까무라칠 듯 놀라며 몸을 홱 틀었다.

  마치 철을 부어 만든  듯한 흑의중년인이 극도의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유령처럼 나타나 있었다.

  하얗게 질려 있던 화교홍의  안색은 이제 완전히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 당신은......."

  "흑마립."

  무표정하고 짤막한 한 마디가 흑의중년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흑마립이라면 천붕군도 철면사군자  중의 넷째를 일컬음이 아니겠

  는가!

  화교홍은 이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다...... 당신이...... 연청을......?"

  "배신자의 말로이지."

  흑마립은 억양 없는 음성을  내뱉으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떼놓았다.

  "아아......."

  화교홍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그녀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생각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어리석은  계집,  감히  너같은  것이 천붕군도를  우습게  보다

  니......."

  흑마립은 무감동하게 중얼거리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아... 아... 다 틀렸어.......'

  화교홍은 아득한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 순간 돌연 한  가지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빛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어 화교홍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며 우뚝 몸을 세웠다.

  그리곤 두 눈을 야릇하게  빛내며 돌연 간드러진 교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호호호...... 흑마립, 당신은 확실히 놀라운 분이에요."

  스르르......!

  요염한 교소와 함께 빗물을 타고 화교홍의 옷이 힘없이 흘러 내렸다.

  쏴쏴쏴......!

  잠시 후, 폭우 속에 한 여인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때요? 내 몸이 탐나지 않으신가요?"

  화교홍이 한 손으로는 가슴을 쓰다듬고 다른 한 손은 하체의 은밀

  한 부분을 가리며 기이한 콧소리를 흘려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사내를  몸으로 유혹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툭 비집고 나온 가슴,  손으로 가렸다고는 하지만

  은연중 내비치는 그 은밀한 곳.......

  그러한 모습은 실로 관능적이고 폭발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공포로 인해 떨고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 떨림마저 사내를 부르는

  유혹이었다.

  허나, 그녀는 눈 앞의 사내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뜻밖에도 흑마립은 티끌만큼의 흔들림도 없이 계속해서 그녀를 향

  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교홍 또한 끈질긴 여자였다.

  그녀는 흑마립이  가까이 올수록 전신을  더욱 뇌쇄적으로 뒤틀었

  다.

  "흑마립...... 어서 이리로 오세요. 그리고...... 저를 좀......."

  그녀는 두 다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이상한 행위까지 거침없이 해대기 시작했다.

  "으음...... 아......."

  마치 정사(情事)를  치르듯 그녀는 야릇한  신음을 토하며 전신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이 순간 흑마립이 그녀 앞에 우뚝 멈춰섰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화교홍은 알몸 그대로 흑마립의 품 속에 안겨갔다.

  "아이...... 어서 저를 좀...... 어떻게......."

  그러나 흑마립에게  안겨가던 그녀는 그대로  몸을 굳히고야 말았다.

  몸서리쳐지도록 새파랗게 빛나는 흑마립의 두 눈을 본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기대하던 욕정(慾情)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눈빛이었다.

  '틀렸다!'

  생각과 동시에 그녀의 눈에 악독한 빛이 스쳤다.

  "병신새끼!"

  슉!

  짤막한 냉갈과 함께 화교홍의 우수가 번쩍 허공을 갈랐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조그만  비수는 무서운 속도로 흑마립의 왼쪽

  가슴을 정확하게 찔렀다.

  쨍!

  순간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탁한 쇳소리가 이는 것과 동시에 화교홍의 비수는 돌연 뚝 부러지

  는 게 아닌가?

  "아...... 아니?"

  화교홍은 혼(魂)이 쑥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리석은 계집, 그 따위 쇠붙이로 뭘 어쩌겠다고......."

  흑마립은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머리를 양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화교홍의 안색은 완전히 흙빛으로 변했다.

  "제, 제발...... 모...... 목숨만......."

  "한 번 배신한 자는  구천까지 쫓아가 죽이는 사람이 나 흑마립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두 손은 화교홍의 머리를 사정없이 돌려

  버렸다.

  우두둑...... 뚝! 뚝!

  "캬― 아― 악!"

  화교홍의 목은 뻣뻣이 선 자세 그대로 한 바퀴 돌았다.

  혀는 쑤욱 빠져 나오고, 두 눈은 허옇게 까뒤집힌 그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처절한 죽음이었다.

  그런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흑마립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 줄기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대군황께 조금이라도  불순한 마음을 품는 자는 누

  구든 이렇게 된다."

  뒤이어 그의 수도(手刀)가 화교홍의 정수리에 작렬했다.

  시뻘건 핏물이 희멀건 뇌수와 뒤엉켜 어지럽게 피어오르더니 곧이

  어 화교홍의 싱싱하던 육체는  한 뭉치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질퍽

  한 바닥에 내버려지고 말았다.

  "......."

  흑마립은 천천히 사라옥정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사라옥정을 응시하던 그의 두 눈에 돌연 기이한 광채가 떠올랐다.

  "혹시......?"

  그는 눈썹을 치뜨며 사라옥정을 발로 지그시 눌러보았다.

  와지직......!

  순식간에 사라옥정은 맥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가짜다!"

  흑마립은 흠칫 놀라더니 화교홍의 옷이 버려진 곳을 돌아보았다.

  옷 사이로 세 장의 종이가 삐죽 빠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흑마립은 지체없이 종이를 뽑아 펼쳤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져 갔다.

  "이것도 가짜다!"

  그는 무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나동그라진 화교홍의 시신을 노려보았다.

  "병신같은 계집! 광천오제 따위에게 속다니......!"

  그러면서 그는 화교홍의 배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그러자 끔찍한 소리와 함께  복부가 터지며 오장육부가 모조리 쏟

  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흑마립은 으스스한 눈빛을 폭사하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어 막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 이 무슨 괴변인가?

  돌연 연청과 화교홍의 시신이  벌떡 일어서더니 흑마립의 좌우 옆

  구리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아니?"

  흑마립도 이 순간만큼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너무도 뜻밖의 사태였는지라  미처 피할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퍽! 퍽!

  "으윽......!"

  흑마립의 몸에 일순 격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철면(鐵面)같던 얼굴에 지렁이같은 힘줄도 툭툭 튀어 나왔다.

  "하......  하필이면...... 최후의  급소인...... 장문혈(章門穴)을......!"

  "꺼져라!"

  흑마립은 양 손을 신경질적으로 내뻗으며 노성폭갈을 터뜨렸다.

  꽈꽝!

  연청과 화교홍의  시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멀찌감치 날아가 버렸다.

  "이 쥐새끼!"

  일갈과 함께 흑마립은 느닷없이 땅 속으로 왼손을 깊숙이 쑤셔 박

  았다.

  "크아아악!"

  땅 속에서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 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흑마립은 이를 뿌드득 갈며 바닥에 박힌 손을 뽑아갔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의 동작과  함께 땅가죽이 뒤집히며 한 인영이

  불쑥 딸려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인영의 머리에는 흑마립의 오지(五指)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흑마립은 이미 시신이 되어  흐느적거리는 그 인영을 냅다 팽개치

  며 두 눈을 무섭게 부릅떴다.

  "대체 어떤......."

  쐐― 액!

  그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등 뒤에서 누군가가 무

  서운 속도로 그를 공격해 왔다.

  퍽!

  "우욱......."

  흑마립은 크게 비틀거렸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다음 순간, 그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빠르기로 신형을 틀며 우장

  을 벼락치듯 내갈겼다.

  꽝!

  "크악!"

  막 몸을 빼내려던 등 뒤의 누군가는 머리통이 산산조각 박살나 공

  중에 흩어졌다.

  "윽......!"

  흑마립은 울컥 한 모금의 피를 토하더니 크게 비틀거렸다.

  허나, 그는 애써 신형을 가다듬고는 흐릿한 눈길로 사방을 쓸어보았다.

  "천하에서......  나의 급소를  아는  사람은  대군황과 나의  형

  제...... 그리고 궁독밖에 없다."

  그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헌데...... 시체를 움직여...... 나의 급소를 공격한 놈은...... 대체 누구란......."

  "바로 나다."

  불쑥 사악한 음성이 흘러 나와 흑마립의 말을 끊었다.

  스스슷!

  흑마립이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선 순간  한 흑영(黑影)이 빠르게

  땅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 흑영은 두 눈만 빠꼼히  드러낸 채 얼굴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

  었다.

  헌데, 뜻밖에도 그의 드러난  두 눈은 온통 흰자위뿐인 희멀건 백

  안(白眼)이 아닌가!

  흑영의 두 눈을 본 순간  흑마립의 얼굴에 짙은 불신의 빛이 떠올

  랐다.

  "시마(屍魔)!"

  찰나, 시마로 불리운 백안의 복면인은 아무런 말없이 흑마립을 향

  해 쌍장을 내뻗었다.

  슈슉!

  그의 공세는 지독하게 빨랐고  경황 중인데다 무방비 상태에 있던

  흑마립은 고스란히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꽈꽝!

  "윽!"

  흑마립은 한 줄기 핏물을 뿜어내며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 나

  갔다.

  "시...... 시마! 네놈이...... 나를......."

  "흐흐흐...... 주군을 위해 너는 반드시 죽어줘야만 한다."

  시마는 허연 눈을 뒤룩거리며 오른손을 쫙 펼쳤다.

  순간 그의 손에 끼워져  있던 손바닥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핏빛의 투명한 장갑이 파리하게 빛을 발했다.

  흑마립의 두 눈이 또 한 번 크게 부릅떠졌다.

  "혈마갑(血魔鉀)!"

  바로 그 순간  번쩍 하는 섬광이 흑마립을  향해 지체없이 쏘아져

  왔다.

  "헉......!"

  기겁한 흑마립은 황급히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날렵히 움직여지지 않는 부상당한  자신의 몸을 탓할 즈음 흑마립

  은 이미 모든 게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푹―!

  시마의 오른손이 갈고리처럼 그의 가슴에 쑤셔박힌 것이었다.

  허나 역시 흑마립이었다.

  "찢어...... 죽일 놈!"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왼손을  창끝처럼 세워 시마를 향해 내리쳤

  다.

  슉......

  동시에 시마의 왼팔이 피분수와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허나 시마의 입에서는 단 한  마디의 신음 소리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흐흐흐...... 네 목숨을 내  한 팔과 바꾸었으니 밑진 장사는 아니군."

  "이 육시......."

  흑마립의 입이 떼어지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가슴에 박혀 있던  혈마갑의 오지(五指)가 돌연 쭉쭉 늘어나

  더니 등 뒤까지 튀어 나온 것이었다.

  "어흐흐흑......!"

  흑마립은 전신을 미친 듯이 뒤흔들며 괴상한 비명을 터뜨렸다.

  "흐흐흐...... 흑마립, 너희 형제들도  곧 네 뒤를 따라갈 것이니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시마는 음산한 괴소를 흘리며 오른손을 쑤욱 뽑았다.

  그러자 혈마갑의 오지는 다시  빠르게 원래의 길이로 줄어드는 것

  이었다.

  "이...... 이제야...... 알겠다......."

  흑마립은 가슴을 움켜쥐며 취한 듯 비틀거렸다.

  "으...... 음모...... 궁독...... 그의......."

  흑마립은 미약하게 중얼거리다 말고 뒤로 벌렁 넘어갔다.

  시마는 나동그라진  흑마립을 쳐다보며 흰  눈을 사악하게 번뜩였다.

  "이제 남은 것은 광천오제......!"

  헌데, 바로 그때였다.

  쿠르르― 르― 릉―!

  콰르르르......!

  돌연 굉음과 함께 그가 딛고  선 땅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게 아닌가?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령도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시마의 눈가에 금세 당혹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쿠콰콰콰콰쾅!

  천지를 허물어뜨릴 듯한 대폭음이 터진 건 그때였다.

  곧이어 죽령도의 정상에서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하늘을 집어삼킬

  듯 치솟아 올랐다.

  뿐인가?

  쩌쩌쩍...... 쩌쩍...... 쩌쩍......!

  땅바닥이 돌연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져 가는 게 아닌가?

  오오! 그것은 대폭발!

  죽령도의 말일(末日)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우렁찬 신호성!

  "이...... 이런...... 괴변이......!"

  시마는 느닷없는 변화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콰르르르르르릉!

  쿠콰콰콰콰......!

  죽령도의 흔들림과 함께 주위의 바닷물이 집채만한 해일을 일으키

  며 무섭게 덮쳐오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쩍쩍 갈라지던 지면도  속절없이 허물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 죽령도―!

  드디어 그 전체가 육중한 침강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니.......

  이것을 어찌 단순히 하늘의 뜻이오, 대자연의 조화라 여길 텐가?

  음모와 음모가  실타래처럼 엉켜가던 죽령도, 그  외딴 섬 하나는

  이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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