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41장 미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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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소로(小路)의 끝을 지나 죽림을 벗어나자 풍경은 금세 일변했다.
사면(四面)은 높고 매끄러운 벼랑으로 둘러싸여져 있었고 혁력소
천이 서 있는 주위에는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가 흐드러지게 만
발해 있었다.
'흠......!'
혁련소천은 생각치 않았던 기경(奇景)에 저으기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신선하고 그윽한 꽃내음이 그의 후각을 향긋하게 진동시켰다.
'정말 좋은 곳이다!'
혁련소천은 상쾌한 공기와 꽃내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음......."
순간 그는 전신을 저며오는 고통에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그는 곧 안색을 펴고 천천히 사위를 둘러보았다.
이어 그의 발길은 일정한 방향도 없이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이나 걸어갔을까?
돌연 '엑'하는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성이 어디선가 터져 나왔다.
'후후...... 꽤나 아팠을 것이다!'
혁련소천의 입가에 얼핏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빠르게 스쳐갔
다.
허나, 그는 짐짓 깜짝 놀란 척하며 다급히 사위를 둘러 보았다.
"아니, 어디서......?"
그때 예의 돼지 멱따는 듯한 괴성이 혁련소천의 고막을 진동시켰
다.
"이, 이 놈아! 누, 누구를 죽이려고 이 따위 수작이냐?"
'후후...... 죽이긴 누굴 죽여? 두더쥐처럼 땅밑에 숨어 있는 당
신이 잘못했지.......'
내심과 달리 혁련소천의 얼굴에는 더욱 당혹한 기색이 드리워졌
다.
"누, 누구십니까? 도,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이 놈의 새끼! 아직까지도 나를 밟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다
니...... 어서 그 냄새나는 발을 치우지 못하겠느냐?"
순간 쥐어짜는 듯한 숨막히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혁련소천에게
들려왔다.
"헉!"
혁련소천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어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내려다 보았
다.
순간 천하의 혁련소천도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이건 또 무슨 괴사란 말인가!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살아 있는 사람이 땅 속에 파묻혀 있다
니......
얼굴만 지면과 똑같은 높이로 드러나 있을 뿐 그야말로 영락없는
생매장이었다.
누런 황토빛 얼굴에 흰수염을 짧게 기른 부드러운 인상의 노인,
허나 지금 그 노인의 얼굴에는 혁련소천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
혀 있었다.
'소절풍마(笑絶風魔)!'
혁련소천은 대뜸 그 노인이 누군지 짐작했지만 이내 마치 귀신이
라도 보는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괴노인 소절풍마는 그를 향해 눈알만 데구르르 움직였다.
"보면 모르느냐? 이 어른은 지금 땅의 정기(精氣)를 모조리 흡수
하기 위해 이러고 계시는 것이다."
"땅의 정기......?"
"돌대가리같은 놈! 땅의 정기도 몰라서 묻는 게냐?"
"돌......!"
천하의 혁련소천이 졸지에 돌대가리가 되고 말았다.
소절풍마는 문득 만면 가득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클클클...... 그 미친 땡초중은 천일연공으로 이 어른을 꺾으려
하지만 말짱 개수작이다. 이 현명하신 어른께서 그 따위 형편없는
땡초에게 당할 리가 만무하지. 클클클......."
순간 혁련소천의 뇌리에 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러니까...... 노인어른께서도 지금 어떤 무공을......?"
"클클클...... 그렇다. 이 땅 속에서 오백 일 동안 지상의 모든
정기를 흡수하고 다시 오백 일 동안 하늘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
면...... 이 어른의 내공은 수만 갑자로 증진된다."
'수...... 수만 갑자!'
"클클클...... 그것만 성공하면 이 어른은 지상최강(地上最强),
아니 무림사상 공전절후의 최강자(最强者)가 될 것이다."
'미쳤다!'
혁련소천은 어이가 없어 입까지 딱 벌렸다.
'불영치마보다 더 미친 것 같다!'
생각해 보라!
그 토록 황당하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뉘라서 의심치 않겠는가?
허나 소절풍마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듯 연신 빙글빙글 웃고 있었
다.
그러다 문득 그는 다시 혁련소천을 향해 눈알을 굴리며 부드럽게
물었다.
"꼬마야, 너는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느냐?"
혁련소천은 흠칫 정신을 되찾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파도에 휩쓸려 왔습니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었다.
소절풍마는 문득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쯧쯧...... 내가 지상의 기운을 흡수하다 보니 해저가 고통끝에
요동을 쳐 파도를 일으킨 모양이구나!"
"......!"
"꼬마야, 보아하니 본의아니게 내가 상처까지 입힌 모양인데 미안
해서 어떡하지?"
혁련소천은 갑자기 머리 속이 혼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미친 자들 같다!'
기행(奇行)이라 여기기엔 너무 정도가 지나쳤던 것이다.
이때 소절풍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꼬마야, 나는 정말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해서 내가 치료
할 방법을 일러줄 테니 명심해서 들어라."
'또 무슨 미친 수작을 하려고......?'
혁련소천은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것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들으나마나 황당한 방법을 늘어놓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소절풍마는 진지하게 말했다.
"꼬마야,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우측에 있는 거대한 바위가 보이느
냐?"
"보...... 보입니다."
혁련소천은 일단 대답부터 하고 우측을 쳐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집채만한 거대한 괴암(怪岩)이 멀찌감치에 우뚝
서 있었다.
"그곳을 돌아가면 한 채의 모옥이 나타날 것이다. 그 모옥에는 의
술이 대단한 의원 한 명이 살고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면 감쪽같이
네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다."
"......!"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그는 자부심이 대단한 위인으로서 그
냥 치료를 부탁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
다."
소절풍마는 문득 기이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클클클...... 가거든 무조건 그가 듣기에 좋은 말만 해라. 그 위
인은 자신에게 아부하고 굽신거리는 사람이라면 설령 시체를 가져
가도 기어코 살리기 위해 발버둥친다. 또 그 만한 의술이 있는 것
도 사실이고......."
'독심광의(毒心狂醫)!'
혁련소천은 내심 직감하며 소절풍마를 똑바고 응시했다.
소절풍마는 문득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이상 말 시키지 말고 어서 꺼져라. 이 어른은 또 지상의
정기를 흡수해야 하니까......."
혁련소천은 또 한 번 얼떨떨해졌으나 이내 내심 실소했다.
'어쩐지 잘 나가는가 했더니 또 시작이군!'
허나 그는 소절풍마를 향해 사뭇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노인어른!"
"클클클...... 마지막으로 충고하건대 앞으로 그 땡초중놈과는 두
번 다시 상종하지 마라. 그 놈과 오랫동안 이야기하면 너까지 미
쳐버릴지 모르니까."
그 말에 혁련소천은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당신과 이야기해도 마찬가지 같소!'
그러다 돌연 혁련소천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광천오제......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미친자들같으
니.......'
그는 천천히 걸음을 떼놓았다.
'도대체 저들을 어떤 방법으로 끌어낸단 말인가.......'
― 어려울 것입니다!
제갈천뇌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 것도 바로 그때였다.
허나 혁련소천의 두 눈이 굳은 결의의 빛으로 채워진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허나...... 끝내 해낸다...... 천하에 마음먹어 하지 못할 일이
없는 나 혁련소천이 아닌가!'
②
거암(巨岩) 뒤는 소절풍마가 기거(?)하는 곳보다 더 많은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풍치 또한 수려했다.
그 가운데 한 채의 모옥이 꽃밭에 둘러싸여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
었으니......
혁련소천은 모옥을 향해 나직하나 힘있게 소리쳤다.
"실례합니다."
허나 모옥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는 그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으나 짐짓 모르는 척 모옥
을 향해 거듭 외쳤다.
"실례합니다."
"실례하지 마라!"
지체없이 음침하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등 뒤에서 불쑥 터져 나왔
다.
"엇!"
혁련소천은 움찔 놀라는 표정으로 빙글 돌아섰다.
그의 등 뒤에 어느새 두 눈이 움푹 패이고 콧날이 매부리의 그것
처럼 휘어진 냉막한 인상의 흑의노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있었다.
독심광의(毒心狂醫)! 바로 그의 모습이었다.
독심광의는 두 눈을 아래 위로 치켜뜨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린 놈! 네놈은 대체 누구이길래 노부의 거처를 찾아 와 네멋대
로 실례하겠다는 것이냐?"
대뜸 시비조였다.
허나, 혁련소천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최대한 정중하고 공손하
게 말했다.
"저는 풍랑에 상처를 입고 표류하다가 우연히 이 섬에 당도하게
된 영호풍이라 하온데 당도하자마자 노선배님의 신화(神話)적인
의명(醫名)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말재주와 능청떠는 일에 관해서라면 남에게 뒤질 이유가 하나도
없는 혁련소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싸늘하게 굳어 있던 독심광의의 표정이 순식간에 봄날 눈 녹듯 풀
어지며 입이 귓뿌리까지 헤벌쭉 찢어지는 것이었다.
"그 놈...... 말 한 번 잘한다."
'가히 아부가 쥐약이로다!'
혁련소천은 내심 실소하며 안색을 더욱 공손히 가다듬었다.
"듣기로는 노선배님의 의술이 신(神)과 같다고 했으나 지금 뵈
니......."
거기까지 말하고 말꼬리를 흐리자 독심광의의 안색이 금세 싸늘해
졌다.
"직접 만나보니 그렇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히려 노선배님에 대한 소문들이 현실
과는 엄청나게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독심광의의 입언저리가 다시 쭉 찢어지며 헤픈 웃음이 흘러 나왔
다.
"으허허허...... 소형제는 보기보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매우 고
명한 것 같구먼......."
"원래 제가 사람을 잘 보기는 하지만 노선배님은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으허허허...... 그럴까?"
독심광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러나 돌연 독심광의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어린 음성을 토해냈
다.
"헌데...... 이 섬의 미친 놈들은 나를 잘 알아주지 않는단 말이
야......."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땅이 꺼질 듯한 탄식까지 뿜어냈다.
"정말...... 까마귀떼 속에 한 마리 봉황이 노니는 셈이
지......!"
"노선배님,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언젠가는 노선배님의 지고
한 의술과 고매한 인품에 굴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독심광의는 만면에 희색을 지을 겨를이 없었다.
"정말...... 자네를 만나니 육십 년 이래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찾은 기분일세."
"보고 느낀 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으허허허...... 자네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안목
이 뛰어난 사람일세."
"과찬이십니다."
맙소사! 장단도 이렇게 잘 맞는 장단이 없었다.
척하면 무조건 착이었다.
독심광의는 혁련소천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거리며 호기롭게 말
했다.
"소형제, 안으로 들어가세. 자네의 몸이 어떻게 아픈지는 모르겠
으나 내 당장 고쳐 주겠네!"
끝없는 아부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혁련소천은 내심 실소하면서도 정중히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
다.
"이 은혜...... 살아 숨쉬는 한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내 받아 들어간 방 안은 그야말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의서(醫書)와 약병들이 수도 없이 흩어져 제멋대로 뒹구는가 하
면, 천장에는 거미줄 투성이고 바닥에는 먼지가 한 자나 쌓여 있
었다.
그런 것이 다소 부끄러웠음인지 독심광의는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
조로 말했다.
"허헛...... 이해하게. 오랫동안 뭘 좀 하느라 청소를 안 했더니
이 모양일세......!"
혁련소천은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소탈하신 것이 노선배님의 인격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빈틈이 없으면 오히려 접근을
꺼려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이니까요."
독심광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칭찬하는 영호풍이 눈물겹도
록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정말...... 자네는 처음 만났지만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지기(知
己)이네......!"
그의 음성은 감격에 겨워 떨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디 상처 좀 보세!"
이어 독심광의는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이쯤되면 부탁하고 어쩌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혁련소천은 독심광의의 엄숙한 시선 속에서 느긋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건 화약에 다친 화상이고...... 이건 급류에 휩쓸리다 암초 따
위에 긁힌 찰과상......."
놀랍게도 독심광의는 상처 하나하나를 짚어보며 정확하게 간파해
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상처를 살펴본 후 독심광의는 혁련소천의 몸에서 손을
떼며 여유있게 웃었다.
"이젠 됐네. 옷을 입게......."
"하오면?"
"내상은 다소 약해 보이나 외상은 꽤 엄중한 편이네. 허나 이 정
도라면 눈깜짝할 사이에 고칠 수 있네."
독심광의는 호언장담하며 품 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그 속에서
단약 한 알을 꺼냈다.
"이것만 먹으면 이 자리에서 깨끗이 완쾌될 것을 자신하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혁련소천은 감격한 표정으로 단약을 공손하게 받아 들었다.
이어, 그는 서슴없이 단약을 입에 집어넣었다.
'만독의 제왕으로 불리우는 나다. 독이라 해도 좋고 다행히 상처
가 치료되면 더욱 좋은 것이다!'
밑져야 본전!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주르르......
단약은 혀끝에 닿자마자 녹아 순식간에 목구멍 속으로 흘러 들어
갔다.
다음 순간,
'음......!'
혁련소천은 갑자기 뱃속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허나, 그것은 잠시뿐. 혁련소천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전신 사지백
해로 골고루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전신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며 날아갈 듯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놀랍게도 전신의 모든 내외상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치유된 것이었
다.
"대단하십니다! 정말 노선배님의 의술은 하늘보다 높은 신술(神
術)입니다."
혁련소천은 절로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그는 진정으로 감탄하는 것이었다.
독심광의는 자못 득의한 표정을 지으며 껄껄 대소를 터뜨렸다.
"으허허헛......! 사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그는 만면 가득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소형제, 어서 옷을 입고 노부를 따라오게. 더욱 놀라운 것을 보
여줄 테니까......."
혁련소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독심광의는 모옥 뒤쪽으로 연결된 문을 나서며 득의한 어조로 말
했다.
"노부는 오십 년 전 한 뿌리의 만년성형하수오(萬年成形何 烏)를
우연히 발견했다네."
혁련소천은 흠칫 놀랐다.
"만년성형하수오라면...... 의술인이 꿈에서도 얻기 원함은 물론
무림인이 복용하면 엄청난 공력을 단숨에 얻을 수 있을 뿐 아니
라......."
"일반인이 복용하면 기사회생(起死回生)은 물론이고 불노장생(不
老長生)을 누릴 수 있는 묘약(妙藥) 중의 묘약이지."
"하온데......?"
"그래서 노부는 결심했었지. 그 한 뿌리를 이용해서 만년성형하수
오를 대량생산하겠노라고......."
'대, 대량생산! 만년성형하수오를......?'
"그리고...... 드디어 성공하고 말았다네."
'서, 성공까지......?'
혁련소천은 기가 꽉 막혔다.
만년(萬年)― 공연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억겁의 세월을 두고도 한 뿌리 생성될까 말까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겠는가?
헌데, 그러한 만년성형하수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니......
혁련소천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 어떻게 하셨길래......?"
독심광의는 히죽 웃었다.
"무척 쉽고 간단했다네. 먼저 그 한 뿌리의 씨를 받아 뿌린다음
이 죽령도의 지하를 흐르는 천곡영천(天曲靈泉)을 끌어올려 속성
으로 재배해 버렸으니까......."
"......!"
혁련소천은 뒤통수를 둔기로 호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만년성형하수오를 속성으로 대량 재배했다
니......
'믿어야 하는가......?'
혁련소천은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독심광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소형제, 노부가 재배한 만년성형하수오가 모두 몇 뿌리쯤 될 것
같은가?"
"모...... 모르겠습니다."
독심광의는 대뜸 오른손 식지를 곧추세워 내밀었다.
"이거......."
"여...... 열 뿌리......?"
"일만(一萬)!"
혁련소천은 까무러칠 듯 놀라고 말았다.
"보게나. 저것들이 모두 만년성형하수오일세."
독심광의는 전면을 향해 두 팔을 자랑스럽게 활짝 펼쳤다.
어느새 그들은 모옥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
혁련소천은 황급히 전방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곳은 일종의 밭이었다.
그곳에는 지금 색깔도 선명한 한 자 가량의 푸른 잎사귀들이 수북
하게 돋아 있었다.
그 푸른 잎사귀들이 바로 독심광의가 속성재배했노라고 자랑하는
만년성형하수오인 것이다.
'이것들이 과연 만년성형하수오란 말인가?'
혁련소천은 도무지 믿기가 어려웠다.
문득 그는 기이한 눈빛으로 독심광의를 쳐다보았다.
'혹시...... 이 자야말로 정말 미치지 않았을까?'
혁련소천은 일순 머리가 혼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나...... 진맥을 할 때도 그랬지만 단약 또한 매우 훌륭한 것
이 아니었던가?'
그는 마치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때 독심광의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내 이 만년성형하수오 중 몇 뿌리를 특별히 소형제에게 선물하겠
네."
그는 주저없이 세 개를 쏙쏙 뽑아 혁련소천에게 내밀었다.
"자, 받게! 이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오십 년 만에 처음이라네."
호기롭게 말하는 그였지만 얼굴에는 일말의 아깝다는 기색도 깔려
있었다.
혁련소천은 흠칫 정신을 차리며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꼭 무우처럼 생겼는데.......'
받는 순간 그는 대뜸 그렇게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생김새들이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무우
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그런 생김과는 달리 그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정말 만년성형하수오가 틀림없군요! 헌데 이 귀한 것을 제가 어
찌......."
독심광의를 쳐다보는 그의 표정은 그저 감격에 차 있었다.
독심광의는 껄껄 대소를 터뜨렸다.
"으허허허...... 지기에게 주는 것인데 만년성형하수오가 아무리
귀한들 어찌 아까와 하겠는가?"
"이 은혜는 정말......."
"좋아, 좋아! 나 독심광의가 이렇게 기쁜 날은 평생 처음이니 아
무런 부담도 갖지 말게."
독심광의. 그는 스스로 기억하기에도 지금처럼 기쁜 날은 단 하루
도 없었다.
독심광의는 뿌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 아니?"
갑자기 그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 거기에는 군데군데가 파헤쳐진 자국이 역력
했다.
독심광의의 안색은 순식간에 썩은 돼지의 간빛처럼 되고 말았다.
"어...... 어떤 시러배 잡종새끼가 내 목숨보다 소중한 만년성형
하수오를 도둑질해 갔구나!"
그는 극도의 분노로 인해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이 놈......! 어떤 놈인지 잡기만하면 대갈통을 부수고 사지를
천만 갈래로 찢어 죽이고 말리라......!"
"호호호호......!"
이때 어디선가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독심광의와 혁련소천은 일제히 웃음이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소녀(少女)!
이제 십육칠 세나 되었을까?
일신에는 타는 듯한 홍의(紅衣)를 걸쳤고, 흰 살결이 유난히 돋보
이는 절륜한 미모의 소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전신에 흐르는 미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도발적이며 요염했다.
순간 독심광의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길이 쏘아져 나왔다.
"화교홍......! 이제 보니 저 계집이......!"
홍의소녀 화교홍은 까르르 홍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만숙부님, 미안해요. 오늘 헌원숙부께서 준비하시
는 요리에 무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숙부님의 무우를 꼭 백 뿌리
만 뽑아갔어요."
"무...... 우? 만년성형하수오를 무우라고......? 게다가 한두 뿌
리도 아니고 백 뿌리씩이나......? 이런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
미는 계집같으니......!"
독심광의의 전신이 보기 딱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호호호...... 그것들은 지금쯤 이미 가마솥에서 푹푹 삶아지고
있을 걸요!"
간들어진 교소와 함께 화교홍은 훌쩍 신형을 솟구쳤다.
"가...... 가마솥에...... 만년성형하수오가 푹푹 삶아져......?"
독심광의는 두 눈을 찢어지게 부릅뜨며 치를 떨었다.
"헌원패......! 내 그 고릴라같은 놈의 이빨을 몽땅 뽑아 버리리
라! 요 계집! 게 섯거라! 네년도 헌원패와 똑같은 년! 껍데기를
홀랑 까뒤집고 말리라!"
휙!
독심광의는 화교홍이 사라진 방향으로 벼락같이 신형을 쏘아갔다.
번개처럼 쏘아가는 독심광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혁련소천의 눈
에 야릇한 이채가 스쳐갔다.
'뜻밖이다. 광천오제 외의 인물이 죽령도에 있었다니...... 그것
도 소녀가...... 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혁련소천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것들이 진짜 만년성형하수오일까?'
단순히 무우라고 생각하기엔 독심광의의 언행이 너무 진지하고 가
식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와직......
혁련소천은 그 중 하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싹 변했다.
'무우다! 그것도 설익은 무우가 틀림없다!'
그는 입 속에 든 것을 황급히 내뱉았다.
그리곤 수중에 든 것들을 바닥에 냅다 팽개쳤다.
"이...... 이제 보니...... 독심광의야말로 완전히 미친 사람이다."
오오! 진정 미치고 환장할 일이 아닌가?
일은 점점 이상하게 전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