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39장 (39/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39장 폭풍(暴風) 속의 음모(陰謀) - 그리고 반전(反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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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동해(東海)라 불리우는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진 망망대해(茫茫大

  海).......

  끼룩... 끼루룩... 끼룩......!

  백구(白鳩)들이 무리지어 바닷물을 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푸른 파도는 시원한 해풍(海風)에 실려 끝없이 밀려 나간다.

  그 넘실대는 물결 속에 한 척의 범선(帆船)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

  었다.

  순풍의 돛이라 했던가?

  때마침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을 타고 범선은 제법 빠른 속도로 물

  살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 범선의 뱃머리엔  비할데 없이 준수한 백의미서생(白衣美書生)

  이 백삼자락을 표표히 휘날리며 조용히 서 있었다.

  혁련소천, 바로 그였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雨)를 준비하는지 파랗게 개어 있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꾸역꾸

  역 몰려들고 있었다.

  '오늘이 삼월(三月) 스무여드레.......'

  그의 눈가에 문득 엷은 웃음기가 감돌았다.

  '정확한 계산하에 만마전에서 이곳까지 오는 시간을 십구 일(十九

  日)간으로 맞추었다!'

  '자소천과 생사천, 신마루의 저지를 교묘히 이용하여 정확하게 십

  구 일 만에 바다에 배를 띄운 것이다!'

  눈가에서 시작된 웃음기가 입언저리로 번져 내렸다.

  '아무도 모르리라. 내가 왜  구태여 스무여드레인 오늘을 택해 배

  를 띄웠는지.......'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짚어본 천기에  의하면...... 내일  저녁 죽령도(竹靈島)를 지날

  때쯤...... 무서운 폭풍이 배를 덮친다!'

  미소는 입가에서 확연히 짙어졌다.

  '후후후...... 나의 목적은 결코 철신도가 아니다. 나는.......'

  문득 그의 뇌리에 제갈천뇌의 모습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 천뇌, 동해를  오백여 리쯤 가다 보면  죽령도라는 섬이 있소.

  그 섬에는 육십  년 전부터 다섯 명의  괴인(怪人)이 기거하고 있

  소.

  ― 광천오제(狂天五帝)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바로  그들이오. 일신에 가공할 무학을  지녔으면서 미친 듯이

  행동하는  풍진괴인들이오. 천기개천  사사무  노야의  말에 따르

  면...... 그들 각 개인의 무공은 구천과 십지의 주인들에 비해 결

  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소.

  ― 그들 광천오제를 끌어내실 생각입니까?

  ― 그렇소.

  ―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광인(狂人)처럼 행동하지만 심

  기나 의지는 무섭도록 깊다고 들었습니다.

  ― 나, 혁련소천이 하는  일이오. 천뇌는 정확히 스무여드렛날 구

  강포를 떠나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 주의하시오

  ― 알겠습니다.

  ― 배를 띄운 뒤 다음 날 저녁의 폭풍을 기다리는 것이오. 자신있

  소?

  ― 후후...... 염려 마십시오. 제갈천뇌가 하는 일입니다.

                                ②

  바람이 거세지면서 잔잔했던 물결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를 띄운 지 하루 반나절 만의 기상변화였다.

  화려하면서 아늑하게 꾸며져 있는 선실(船室)의 한쪽엔 탁자 하나

  와 침상 하나가 놓여져 있있다.

  혁련소천은 침상에 편안히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나으리."

  이때 다소곳한 음성과 함께  가볍게 선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렸다.

  혁련소천은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누구냐?"

  "한상지(韓上地) 어른의...... 명을 받고 왔사옵니다."

  "한상지가?"

  혁련소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동해교룡(東海蛟龍)  한상지, 감천곡의  심복으로 구강포에서부터

  대숙담황에 이어 혁련소천의 호송을 담당한 책임자이다.

  그는 바다에 노련할 뿐  아니라 수공(水攻)에 깊은 조예를 가졌다

  는 인물이었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며 동시에 뛰어난 미색과 몸매를 가진 여인이 들어왔다.

  큰 눈이 약간 겁먹은 듯하며  무척 순진해 보이는 이십 세 미만의

  소녀였다.

  그녀를 본 순간 혁련소천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속살이  은은히 들여다보이는 엷은  나삼을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풍만한 가슴, 농염하고 육감적으로 흘러내린 몸매의 굴곡 등이 모

  조리 혁련소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흠......'

  혁련소천은 그녀의 차림새를 보는  순간 대뜸 한상지의 의중을 간

  파했다.

  허나 짐짓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한상지가 무슨 일로 너를 보냈느냐?"

  순간 겁먹은 듯한 그녀의 얼굴에 사르르 홍조가 피어 올랐다.

  그녀는 눈을 살포시 내리깔며 다소곳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으리께서  적적하실  것이라며......  소녀더러......  나으리

  를...... 잘 모시라는......."

  끝말을 흐지부지 흐려 버린 것은 몹시 수줍은 탓이리라!

  허나 안 들어도 뻔한 말이 아니겠는가?

  혁련소천은 피식 실소했다.

  "한상지는 쓸데없는 데까지 신경을 쓰는군."

  혁련소천은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더니 문득 기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군. 이름은?"

  그녀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해사(海斯)라고 하옵니다."

  "해사...... 기이한 이름이군."

  혁련소천은 눈빛을 야릇하게 빛내며 거듭 물었다.

  "헌데...... 너는 숫처녀이냐?"

  "어머......!"

  해사는 깜짝 놀라며 얼굴이 금세 홍시처럼 붉어졌다.

  "처녀면 나가라. 나는 여인의  정조를 유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

  지 않으니까."

  "소...... 소녀......."

  해사는 당황하며 어쩔줄 몰라하더니 기어 들어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실...... 몇 번...... 관계는...... 있었습니다."

  혁련소천의 눈에 언뜻 의아한 빛이 스쳤다.

  "뜻밖이군."

  이어 그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이리 오너라!"

  해사는 미미하게 몸을 떨더니 멈칫멈칫 침상으로 다가왔다.

  혁련소천은 나직이 말했다.

  "옷을 벗어봐라."

  해사는 움찔했다.

  허나 그녀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지 천천히 상의를 벗기 시작

  했다.

  먼저 뽀얗고 동그란 어깨가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혁련소천의 눈에 기이한 광채가 섬전같이 스쳐갔다.

  그는 해사의 겨드랑이를 타고 흐르는 한 방울의 땀을 놓치지 않고

  본 것이다.

  '덥지도 않은 날씨에...... 땀을?'

  같은 시각, 선실 밖엔  온통 피투성이의 한 인영이 갑판을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마치 벌레가 꿈틀거리듯 기어가는  그의 뒤로는 시뻘건 핏물이 혈

  선을 그리며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동해교룡 한상지였다.

  한상지는 금세  고꾸라질 듯하면서도 사력을  다해 기어가고 있었

  다.

  문득 피범벅이 된  그의 입술 사이로 쥐어짜는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음모......  무서운...... 음모다......  소천주님께...... 알려

  야......."

  "흐흐흐...... 내가 대신 알려주지."

  그때 음침한 괴소와 함께 한상지의  눈 앞에 한 인영이 불쑥 내려

  섰다.

  순간 한상지의 눈이 튀어 나올 듯 확 불거졌다.

  "너...... 너는......!"

  뜻밖에도 나타난 사람은 또 한 명의 동해교룡 한상지였다.

  "흐흐흐......."

  새롭게 나타난 한상지는 피투성이  한상지의 멱살을 쥐고 번쩍 치

  켜들었다.

  이어 그는 한상지의 아혈을  찍어 버리더니 사정없이 허공으로 내

  던졌다.

  "잘가라."

  조용한 음성과 함께 또 하나의 한상지의 우장에서 휘황한 금광(金

  光)이 햇무리처럼 폭사되었다.

  금광은 막 바닷물로 내리꽂히려던 한상지의 몸을 정통으로 후려쳤

  다.

  이내 폭음이  터지며 한상지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고 말았

  다.

  그리고 그의 박살난 육신마저 기다렸다는 듯 파도가 삼켜 버렸다.

  배 위의 한상지는 천천히 몸을 돌리며 음산한 웃음을 발했다.

  "흐흐흐...... 이 배 위에는 이제 영호풍 너만 남았을 뿐이다."

  해사의 농염하고 풍만한 육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혁

  련소천에 의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혁련소천의 손은 그녀의 알몸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애무하고 있었

  다.

  허나 여전히 그는 옷을 벗지 않은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으음...... 음......."

  해사의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허나 혁련소천이 손을 놀리면 놀릴수록 눈빛이 더 기묘해져 갔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갑자기 그녀의 팽팽한 가슴

  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해사는 몸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 가슴 떨리는 신음

  성을 흘려냈다.

  "어...... 어서...... 저를 좀...... 어떻게......."

  바로 그 순간 혁련소천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어렸다.

  "해사,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데......."

  해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무슨......?"

  "무림에는 혈해(血海)와 마정(魔井)이란 이대살수집단이 있다. 혈

  해는 남자로 구성된 반면 마정은 모두 여자로 구성되어 있지."

  해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허나 그녀는 곧 전신의 힘을 풀며 여전히 들뜬 음성을 흘려냈다.

  "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제발...... 저를 좀......."

  그러면서 그녀는 몸을 혁련소천에게 더욱 밀착시켰다.

  허나 혁련소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정의 여살수(女殺手)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지. 모두 석녀(石女)라는 점."

  "아이......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저를......."

  "너는 지금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까지 그럴 듯하게 흘리고

  있다. 허나...... 너의 피는 말할 수 없이 차갑다."

  "......!"

  "네 연기력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허나 여체와 색(色)에 달관한

  사람까지 속일 정도는 못 되는 편이다."

  해사는 더 이상 몸을  뒤틀지도, 야릇한 신음 소리를 발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전신을 축 늘어뜨리며 고혹적인 웃음을 배시시 떠올렸다.

  "알고 있었군요?"

  혁련소천은 부드럽게 미소했다.

  "음...... 처음부터."

  그의 몸은 여전히 해사의 나신에 포개진 상태였다.

  일순 해사의 눈빛이 무섭도록 차갑게 빛났다.

  "놀랍군요. 당신같은 분은 처음이에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과찬이다."

  "아쉽군요."

  "뭐가?"

  "당신같은 분을 죽여야 한다니......."

  "후후...... 괜찮다."

  정인(情人)들의 대화처럼 부드럽게 주고받는 웃음도 있었다.

  허나, 그러는 동안에도  생사(生死)를 다투는 살벌한 움직임이 있

  었음을 뉘라서 짐작하랴?

  혁련소천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따위 복상사(復上死)로 죽고 싶지는 않아."

  순간 해사는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미안해요."

  해사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독침(毒針) 하나가 빛살처럼 튀어 나왔다.

  얼굴과 얼굴의 간격은 불과 한 자 남짓!

  도무지 피할 공간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혁련소천 역시 피할 생각도 안하고 히죽 웃기만 했다.

  헌데 히죽 웃으면서 드러난 이빨과 이빨 사이!

  독침은 그 이빨 사이에 맞물려 있지 않는가?

  "과자를 주는가?"

  혁련소천은 그렇게  묻더니 독침을 으드득으드득  씹어 꿀꺽 삼켜버렸다.

  이어 그는 입맛까지 쩝쩝 다시고 싱긋 웃었다.

  "이런 시시한 청살혈독(靑殺血毒)은 닭 잡는 데 쓰는 것이 제격이야."

  해사는 완전히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다...... 당신......."

  "해사, 미안하다. 허나...... 고통없이 죽여주마."

  순간, 해사는 새파란 비수 하나가 자신의 심장을 찔러오는 것을 보았다.

  상황은 마찬가지!

  피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했다.

  해사의 눈꼬리에 파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비수는 자루만 남긴 채 그녀의 왼쪽 가슴 깊숙이 쑤셔박힌 것이었다.

  "이건...... 나의...... 비수......."

  "맞았다."

  "그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요?"

  "그랬지."

  문득 파리한 해사의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정말...... 당신...... 멋...... 진...... 분......."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기울어졌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소...... 소천주님! 큰일났습니다!"

  그때 문이 확 열리며 한 인영이 뛰어들었다.

  한상지였다.

  "무슨 일인가?"

  "글쎄......."

  한상지는 황망히 입을 열려다 말고 눈이 아연 휘둥그래졌다.

  침상 위에 죽어 있는 해사를 본 것이었다.

  "아......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한상지는 경악한 눈으로 해사와 혁련소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혁련소천은 담담히 말했다.

  "나를 죽이려 했다."

  순간 한상지의 눈에서 무서운 살광이 폭사되었다.

  "이런...... 이제 보니 저 계집이...... 적의 첩자였군요."

  "그런 모양이다."

  한상지는 해사의 시신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소천주님! 어서 저를 따라오십시오!"

  "아니다."

  "예?"

  한상지의 눈이 커졌다.

  혁련소천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아는 한상지는...... 사십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왔고, 여인

  이라면 자다가도 치를 떨 만큼 증오하는 인물이었다."

  "......!"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무리 윗사람이라 해도 절대 여인을 바치는

  법이 없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하물며 그런 위인이 나에게 마정의 여살수 따위를 보냈을 리는 만무한 것이다."

  한상지는 처음의 의아한 표정 그대로 입을 떼었다.

  "소천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네가 들어 온 바닥을 봐라."

  한상지는 흠칫 뒤를 쳐다보았다.

  그의 뒤로는 피 묻은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한상지와 군마천 수하들의 피일 테지?"

  한상지는 급히 고개를 바로 했다.

  더 이상 발뺌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인가?

  한상지는 문득 음침한 안광을 쏟아내며 비릿한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알아차렸군. 군마천의 애송이 놈!"

  "처음부터."

  "이곳에 네놈 혼자뿐이라는 것도 아느냐?"

  "물론이지."

  "군마천의 도움은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혁련소천의 태도는 지나칠 만큼 조용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모습은 상대를 은연중 압도하는 가운데 일말의 불안감을 부

  채질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상지도 문득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너...... 지나치게 태연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혁련소천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이유가 있지."

  "......?"

  "지금 시각이 정확하게 신시(申時),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말이 끝나는 순간 돌연 굉음이 일며 배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억......!"

  갑작스런 변고에 한상지의 신형이 크게 비틀거렸다.

  허나 혁련소천은 태산처럼 우뚝 버티고 선 채 조용히 말했다.

  "곧 있으면 엄청난 해일이 폭풍과 함께 이곳으로 밀려온다."

  한상지는 자신도 모르게 창 밖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었다.

  끝없는 바다 저쪽, 웬만한  산(山) 하나 크기의 엄청난 해일이 무

  서운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그 엄청난 광경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한상지는 급히 창에서 눈을 떼며 불신에 찬 음성을 터뜨렸다.

  "어...... 어찌...... 이런 일이......."

  혁련소천은 나직이 웃었다.

  "후후...... 모두 죽는 게다."

  한상지의 얼굴에 문득 의혹이 솟았다.

  "네놈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태연하단 말이냐?"

  "나는 살 수 있으니까!"

  한상지의 눈빛이 일순 복잡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그는 안면을 씰룩이며 음침한 눈빛을 쏟아냈다.

  "흐흐흐...... 좋다, 좋아.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그 전에 네놈의 숨통부터 끊어주마"

  순간 한상지의 양 손이 춤을 추듯 번뜩이며 눈부신 금광을 뿜어냈다.

  "대력금황기(大力金皇氣)! 감천주를 암습한 자의 동류(同流)의 인

  물이구나!"

  혁련소천의 낯빛이 굳어졌다.

  때를 같이해서 갑자기 혁련소천의 전신에서 새파란 자색불꽃이 무

  서운 기세로 솟구쳐 나왔다.

  순간 금광과  자색불꽃이 맞닥뜨리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으― 악!"

  거대한 폭음 사이로  한 줄기 비명이 터져  나온다고 생각한 순간

  한상지는 시뻘건 핏줄기를 내뿜으며 거세게 퉁겨져 나갔다.

  실 끊어진 연처럼 퉁겨진 한상지의 몸은 그대로 선실 벽을 들이받

  고 이어 그 자리에 무참하게 내동댕이쳐졌다.

  다음 순간 한상지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눈은 그 순간 해일을 보았을 때보다 최소한 세 배는 크게 휩

  떠져 있었다.

  "그...... 그것은...... 악마의...... 살(殺)...... 인(人)......마(魔)...... 벽(壁)!"

  살인마벽(殺人魔壁)!

  그것은 앙천묵제 희여송이 말하던 천하제일강(天下第一 )이 아니

  겠는가!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었다.

  "후후후...... 아주 초보적인 단계만 사용했을 뿐이라네."

  한상지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미...... 믿을 수 없다. 네가...... 감천곡보다...... 강한...... 무공을......."

  "그걸 몰랐기 때문에 너는 죽는 것이다."

  "허...... 허나...... 너도......  죽는다...... 일만 근의...... 화...... 약......."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만 근의 화약?"

  혁련소천은 안색이 그 순간 크게 변화했다.

  "혹시 생사천이  철신도로 가져갔다는 일만 근의  화약이 바로 이 배에......?"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들은 생사천의 인물이  아니다. 그럼... 제 삼(第三)의 인물이 있었단......?'

  미처 생각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꽈꽝!

  꽈르르르― 꽈아아앙!

  천번지복할 대폭음이 터지며 배밑에서 엄청난 불기둥이 치솟았다.

  혁련소천의 안색이 그만 창백해졌다.

  "당했다! 아주 멋지게 당했다. 생사천과 자소천, 신마루를 이용하

  려던 내 계획을 역이용한 것이다......!"

  콰콰콰쾅― !

  "누... 누구인가? 나를 이런 곤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자가......!"

  음모(陰謀)!

  거대한 음모의 연속이 아닌가!

  꽈르르르르― 꽈꽈꽝!

  꽝! 꽝!

  마지막 폭발!

  그것에 혁련소천이 타고 있던 배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 산더미같은 해일이  배가 있던 자리를 사정없이 내리덮쳤다.

  휘우우― 우― 우― 웅!

  동시에 습기 축축한 광풍(狂風)까지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삼월 스무아흐렛날 밤의 동해(東海)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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