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38장 (38/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38장 죽음의 벽옥마간(碧玉魔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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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천우신기 제갈천뇌는 점잖고  위엄 있게 생긴 한 황의노인(黃衣老

  人)과 대좌해 있었다.

  그들이 앉은 곳은 야산(野山)  중턱의 한 넓은 암반(岩盤) 위였으

  며, 암반에는 수많은 선이  바둑판처럼 종횡으로 그어져 있고, 역

  시 수많은 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제갈천뇌는 턱을 쓰다듬으며 암반 위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흐흠...... 군마천을 비롯한  육십사 로(六十四路)의 고수 중 육

  십로가 막혔소.  사 로(四路)는 남겨 두었으나  별문제는 없을 것 같구려."

  그 말에 황의노인은 껄껄 웃었다.

  "헛헛헛...... 이 늙은이의 짐작이 맞는다면...... 사 로 중 하나

  인 생사천의 금마교인 척신명이  십리파에서 군마천을 막을 것 같

  소이다."

  그러면서 암반 위의 돌 하나를 다른 곳에 옮겼다.

  제갈천뇌는 다른 돌 하나의 위치를 바꾸며 빙긋 미소했다.

  "금마교인 척신명은 천괴혈조  대숙담황의 적수가 아니오.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황의노인은 제갈천뇌가 놓은 돌 앞에 한꺼번에 세 개의 돌을 내려놓았다.

  "헛헛...... 허나 생사천의 삼패(三覇)가 나타나면 문제는 달라지

  지 않겠소?"

  제갈천뇌는 시선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혈비(血碑)...... 천월(天越)...... 귀부(鬼斧)?"

  "그렇소."

  제갈천뇌는 빙그레 웃었다.

  "검천의 오 형제라면 이들은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오."

  순간 황의노인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들이 나타났소."

  "그렇소이다."

  "허! 그거야말로  생각치도 못했던  크나큰 변수(變數)이구료. 허

  나...... 문제는 또 있소."

  "문제라면......?"

  황의노인은 신중하게 말했다.

  "만약...... 생사천이  뚫린다 해도  자소천의 흑사신  가경이 있소."

  그 말에 제갈천뇌는 호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그 멍청이는  걱정 마시오.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

  之計) 정도만 해도 그  멍청이는 대머리를 치며 한숨만 푹푹 내쉬

  게 될 것이오."

  황의노인의 눈빛이 문득 야릇하게 빛났다.

  "만약...... 정주현 구강포에서  달(月)과 그림자(影)가 기다리고

  있다면......?"

  제갈천뇌의 미간이 가볍게 좁아졌다.

  "월마(月魔)와 신영(神影)......!"

  황의노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신마루(神魔樓)에서도  굳건한  위치의 고수들이오.  아

  마...... 대숙담황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오."

  제갈천뇌는 문득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혈목사경(血目邪鏡)은 왜 이야기하지 않소?"

  황의노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어 그는 의외롭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고 있었소?"

  제갈천뇌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번 일의 최대 변수는 두 가지요."

  "......?"

  "그 첫째는 대종사의 움직임이오.  만약 그 분께서 직접 움직인다

  면 모든 자들의 계획은 고스란히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오."

  제갈천뇌는 황의노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둘째는 바로...... 황노인 당신이오."

  황의노인의 눈 속에 의혹의 빛이 솟아났다.

  "내가 왜?"

  "새북사사천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황의노인의 안색이 일순 미미한 변화를 일으켰다.

  허나 그는 이내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내가 새북사사천을 움직일 수 있다니......."

  순간 제갈천뇌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만사공(萬事公) 황곡(黃曲), 당신은 천하의 모든 일을 손바닥 들

  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분, 그 동안 제왕성은 그대의 많은 도움

  을 받았소."

  "그...... 그런데?"

  "허나...... 당신이 새북사사천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

  실을 안 이상 당신의 입을 나는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소."

  황의노인 만사공 황곡은 안색을 싹 바꾸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황곡은 미간이 화끈해짐을 느끼며 다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어느새 그의 미간에는 새하얀 깃털 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지 않는가!

  "천우(天羽)...... 마전(魔箭)......!"

  황곡은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며 전신을 거세게 떨었다.

  "무......   무서운     놈......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나를......  끝까지......  이

용......."

  허나 그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푹 떨구었다.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제갈천뇌는 씨익 웃었다.

  "과거...... 혁련노사부는 가끔 이런 말을 하셨지."

  ― 한 번 배신한 자, 두 번 다시 네 앞에 세우지 말라.

  "후후후...... 천하의 모든 움직임 중 나 제갈천뇌의 이목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기소를 흘리며 제갈천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의 두 눈에 야릇한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쯤 백변귀천  여섯째 형과  대종사님과의 위치도 바꾸어졌겠군."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제갈천뇌의 신형이 번뜩 허공으로 솟구쳤다.

  솟구치면서 그는 혼잣말로 한 마디 내뱉았다.

  "후후후...... 오늘 밤...... 자미성(紫微星)이 지기 전에 승부는 난다."

                                ②

  혈전(血戰)!

  군마천과 생사천의 생사대혈투(生死大血鬪)!

  황혼이 어둠으로 변색되고 천공 한귀퉁이에 자미성이 떠오를 때까

  지 그 피 튀기는 격전은 계속되었다.

  양 측 모두의 피해는 극심한 것이었다.

  헌데, 돌연 척신명은 생사천의 고수들을 이끌고 어느 한순간에 일

  제히 사라져 버렸다.

  대숙담황은 영문을 몰랐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

  다.

  치열한 격전 중  어디선가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과 그

  소리에 척신명이 무척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는 사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대숙담황은 전열을 대충  가다듬고 다시 마차와 더불어 부

  운산을 향해 출발했다.

  허나 아무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귀신도 까무러칠 한 가지 변화가 있었음을......!

  군마천의 고수들은 어둠으로 뒤덮인 야산(野山)의 숲 속을 질풍처

  럼 달려가고 있었다.

  한 차례 호된 진통을 겪은 탓인지 사위를 쓸어보는 대숙담황의 눈

  빛은 더욱 무섭고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헌데 문득 대숙담황의 시선이 어느 한 곳을 지나치다 말고 그대로

  얼어붙어 갔다.

  그의 시선이 멎은 곳은 한 그루의 거목이었으며, 뜻밖에도 그곳엔

  폭이 좁고 얇은 핏빛의 손도끼 하나가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혈비(血碑) 곽승(郭乘)......!"

  대숙담황은 흉광을 쏟아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생사천의 놈들...... 아예 작정을 하고 나선 모양이구나......!"

  허나, 대숙담황은 달리던 기세를 조금도 멈추지 않고 숲을 통과해

  버렸다.

  대숙담황 등이 사라져 간 바로 그때였다.

  신비스럽게도 피도끼가 꽂혀 있는  거목 아래 한 인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 인영은 시뻘건 핏빛 얼굴에 입술이 얇고 콧날이 예리한 잔인음

  독한 인상의 적의(赤衣)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적의인은 피도끼를 뽑아냈다.

  "혈비(血碑)는 한 번 겨냥한  목표물의 심장과 머리를 두 쪽 내기

  전에 절대 그냥 거두어들이는 법이 없지."

  그는 도끼날을 슬슬 어루만지며 쿡쿡 괴소를 터뜨렸다.

  "ㅋㅋ......!  대숙담황  너는   절대  부운산을  벗어나지  못한

  다......!"

  "후후후...... 하지만 너는 그 자리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적의인이 막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 느닷없이 허공 어디선가 울려

  퍼진 낭랑한 음성이 있었다.

  적의인 혈비 곽승은 흠칫 돌아섰다.

  "누구냐?"

  "누구 같소?"

  곽승의 눈꼬리가 쭉 찢어졌다.

  "어떤 찢어 죽일 놈이 나와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냐?"

  곽승은 자신의 청각을 최대한 집중시켰다.

  "후훗...... 외로운 산중에서  외로운 사람끼리 말장난 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소?"

  일순 곽승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끈 튀어 나왔다.

  최대한 청각을 집중시켰으나 도무지 음성이 들려온 위치를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곽승은 내심 긴장하며 버럭 분성을 내질렀다.

  "어떤 놈이냐? 썩 나타나라!"

  "후후후...... 미쳤소?  나타나면 그 피도끼로  당장 골통을 부술

  텐데 내가 왜 나타나?"

  '저곳이다!'

  순간 곽승의 눈알이  오른쪽으로 홱 돌아감과 동시에 전광석화(電

  光石火)같이 그의 오른손이 번뜩였다.

  혈비가 섬전을 일으키며 폭사된 순간 한 그루 거목이 썩은 두부처

  럼 베어지고 혈비는 다시 곽승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헛짚었어......!'

  곽승의 안면이 일순 참담히 일그러졌다.

  "허! 아주  훌륭하군. 훗날 나무꾼이라도 하면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하겠어."

  이 순간 다시금 조소 어린 음성이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이번엔 왼쪽!'

  혈비가 또 한 차례 붉은 섬광(閃光)을 그리자 한꺼번에 세 그루의

  거목이 싹뚝 베어졌다.

  결과는 역시 허사!

  또다시 음성은 기다렸다는 듯 재차 들려왔다.

  "달빛의  춤이라...... 정말  괜찮군.  헌데 조금  살벌한  것 같

  아......  그 재수없게  생긴  피도끼만 아니면  매우  훌륭할 텐

  데......."

  곽승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서운 놈이다! 나 곽승을 이렇듯 여유있게 희롱하다니.......'

  허나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냉갈을 터뜨렸다.

  "비겁한 놈!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것을 보니  필시 네놈의 간도

  모기 간보다 크지는 못할 것이다."

  "후후...... 역시  훌륭해. 힘써서 격장지계까지  쓰는 데 성의를

  봐서라도 나타나 주지."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곽승이 서 있는 바로  옆 거목의 뒤에서

  한 백의인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억! 이렇게 가까운 곳에......!'

  질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는 곽승의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백의인은 후리후리한  키에 무척 준수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

  다.

  지금 청년의  어깨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낚싯대 하나가 비스듬히

  올려져 있었다.

  그 낚싯대는 언젠가 혁련소천이  사용하던 그것과 똑같은 것이 아

  닌가!

  그렇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는 바로 혁련소천의 변신한 모습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곽승은 후들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싸늘하게 외쳤다.

  백의청년은 씨익 웃었다.

  "혁련소천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곽승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혁련...... 소천?"

  들어보았을 리가 만무했다

  혁련소천은 비릿한 괴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서 염라대왕께 또박 또박 전해라. 혁련소천이라는 사람이 보내

  서 왔다고......."

  곽승의 안면 근육이 일순 파도치듯 씰룩거렸다.

  "애송이...... 나 곽승을 감히 어떻게 보고......."

  말이 채 끝나기 전, 피도끼가 무서운 빠르기로 혁련소천의 면상을

  쪼개갔다.

  "후후...... 물고기치곤 꽤 씩씩하게 날아오는 놈이군."

  느긋한 음성과 함께 혁련소천의 낚싯대가 가볍게 휘둘러졌다.

  "고기라면 낚아야지......!"

  순간 치떨리는 한 소리 금속성이 온 숲을 뒤흔들었다.

  "아니? 저, 저런......."

  곽승은 그 순간 심장이 떨어져 나갈 만큼 크게 경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그 토록 믿어왔던 피도끼가 정말 고

  기처럼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혁련소천은 피도끼를 쓰윽 쳐다보다니 피식 실소했다.

  "무슨 놈의 고기가 이리 딱딱해. 이빨도 안 들어가겠군."

  그러면서 낚싯대 끝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피도끼는 곽승을 향해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곽승은 반색하며 급히 피도끼를 받아 쥐었다.

  허나 피도끼를 받는 순간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대여섯 걸음을 비

  틀거리며 물러서야만 했다.

  피도끼에 실려 전해 온 무형의 막강한 잠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저   애송이  놈의  경력이  어찌  이렇

  듯.......'

  곽승의 안색은 완전히 흙빛이 되고 말았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크흐흐흐...... 애송아! 네놈은  나 천월 마공효(馬公梟)가 상대

  해 주마."

  음산한 괴소와 함께 좌측 숲에서 한 거구의 중년인이 솟구쳐 나왔

  다.

  동시에 혁련소천의 등 뒤에서 또 다른 탁성이 어둠을 가르며 흘러

  나왔다.

  "크크ㅋ...... 여기  귀부(鬼斧) 좌세경(左世驚)  어른도 와 계시

  다......!"

  순간 혁련소천은 자라목을 하며 어깨를 괴이하게 움츠렸다.

  "어크! 생사천의 삼패(三覇)가 모조리 나타났으니 난리났구나!"

  그랬다.

  혈비 곽승,

  천월 마공효,

  귀부 좌세경.

  이른바 생사천의 삼패가 모조리 등장한 것이었다.

  그들 삼 인은 미끄러지듯  신형을 움직여 순식간에 혁련소천을 품

  자형으로 에워쌌다.

  "이거...... 정말 난리났구나."

  혁련소천은 짐짓 주눅든 표정으로 그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천월 마공효.

  장대한 체구의 그는 어깨에 거대한 도끼(巨斧) 한 자루를 메고 있

  었다.

  귀부 좌세경.

  두 눈이 취한  듯 몽롱하고 전신엔 안개처럼  음유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는 한 손에 검은 도끼를  들고 있는데 그 도끼자루 끝에는 짧고

  붉은 창(槍)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 천월 마공효는 거부(巨斧)를 오른손에 옮겨쥐며 음험한 목소

  리로 말했다.

  "애송이...... 네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혁련소천은 그때에야 움츠렸던 어깨를 쭉 펴며 담담히 말했다.

  "혁련소천이라고 말했다."

  귀부 좌세경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혁련소천의 전신을 훑어보며 입

  을 열었다.

  "흐흐...... 네놈은 결코 우리 앞에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닌 것 같

  구나."

  "물론이지."

  "의도는?"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 혁련소천은 장차 만마전을 비롯해서 구천과 십지, 모든 단체

  에 도전할 생각이다. 그  첫번째 제물로 생사천 소속인 너희 삼패

  를 택한 것이다."

  삼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혁련소천은 나직이 웃었다.

  "후후후......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이군."

  귀부 좌세경은 피식 실소를 흘려냈다.

  "이제 보니 미친 놈이었군."

  "나를 모르는 사람은 가끔 그런 말들을 하는 편이지."

  혁련소천은 낚싯대를 가볍게 흔들며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

  다.

  "자네들...... 혹시 무풍마간 쌍비람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뭣이?"

  "무풍마간 쌍비람!"

  삼패의 안색이 일제히 급변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이라도 허물어뜨릴 듯한 장대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 쌍노야(雙老爺)는 보시오! 팔십 년 동안 사장(死

  藏)되었던 당신의 절기가 재현되는 순간을......!"

  혁련소천의 신형이 번쩍 허공에 떠올랐다.

  이어 그는 허공에서 기쾌하게  허리를 꺾으며 재차 광소를 터뜨렸

  다.

  "와하하하...... 지하에서나마 술병  내려놓고 똑똑히 보시오! 구

  주팔황을 통째로 낚는 당신의 벽옥마간이 춤을 추기 시작했소!"

  동시에 슈르르르 하는 기괴한  파공성과 함께 낚싯대가 삼패의 머

  리 위에서 번갯불의 호선을 그렸다.

  순간 삼패는 심장이 터지도록 놀라 외쳤다.

  "마...... 마간칠식(魔竿七式)이다!"

  "피해라!"

  파파팟!

  일시에 삼패의 신형이 꽃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후후...... 어림없는 짓들이지......."

  허나 그 순간 기소와 더불어 곽승의 앞을 혁련소천이 막아섰다.

  "헉......!"

  곽승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물러서려 했다.

  찰나 먼저 낚시 바늘이 곽승의 손에 든 피도끼를 낚아채 갔다.

  뿐이랴?

  낚시 바늘에 걸린 피도끼의  일부는 마치 두부처럼 뜯겨 나가기까

  지 했다.

  곽승은 더 이상 잃을 넋이 없었다.

  '금강연철을 오천  번이나 단련해서 만든 혈부가  한낱 낚시 바늘

  에......?'

  "와하하핫...... 마간칠식 중 제일식 비간풍사(飛竿風絲)!"

  그 순간 우렁찬 광소가 터지면서 낚싯줄이 미친 듯이 회오리쳤다.

  츄츄츄츄츄츄츄― !

  이제 낚싯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고막을 찢는 듯한 음

  향과 함께 빛의 회오리가 곽승의 전신을 휘감아 갔을 뿐이었다.

  "저, 저......."

  단지 그것뿐,

  "크아아― 악!"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터지며  곽승의 몸뚱이가 세 동강으로 갈라

  져 허공에 솟구쳤다.

  더 봐야 하는가?

  그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혁련소천의 신형은 이미 수십 장 밖

  을 쏘아가는 천월 마공효의 면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세에 과연 이토록 빠른 경공신법도 있었는가?

  무쌍마영(無雙魔影)!

  단우비에게 두어 수 접어주고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무풍

  마간 쌍비람의 독문경공이 바로 그것이었다.

  천월 마공효.

  그는 혁련소천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다.

  벽옥마간!

  혁련소천의 손에 쥐어진 그  낚싯대만 공포에 찌든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아...... 악마의...... 낚싯대...... 그건......."

  이어져 나오던  그의 말은 혁련소천의  벽력같은 호통이 고스란히

  삼켜져 버렸다.

  "마간이식 사간조리(死竿釣鯉)!"

  슉!

  "으악!"

  피해볼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한 마리의 잉어를 낚듯!

  혁련소천은 낚시 바늘로 마공효의 턱을 걸어 번쩍 들어올렸다.

  휘리릿―!

  낚싯대가 허공에서 휘둘러지자 마공효의 몸은 화살같이 쏘아져 나

  갔다.

  십여 장 정도 쏘아갔을까?

  돌연 마공효는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그 자리에 털

  썩 고꾸라졌다.

  한 거목에 사정없이 몸이 부딪친 것이었다.

  "우우욱......."

  마공효는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퍽 하는 한  소리 둔탁음이 터지며 마공효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혔다.

  허공에서 놓쳤던 거대한 도끼가  하필이면 그의 정수리에 내리 꽂

  혔던 것이다.

  '비...... 빌어먹을.......'

  마공효는 머리에 도끼를 꽂은 채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혁련소천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귀부 좌세경, 이미 그는 자신이 뽑아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신

  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도망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혁련소천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너무 놀라  잊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군.  내 이름은 혁련소천이라

  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여 장 밖을  쏘아가던 좌세경이 돌연

  양 귀를 감싸쥐며 크게 비틀거렸다.

  혁련소천의 음성이 그의 고막을 송곳처럼 후벼판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좌세경의 왼쪽  가슴에서 갑자기 낯선 물체가 쑥 튀

  어 나왔다.

  동시에 시뻘건 핏물이 가슴 앞으로 힘차게 뿜어 나갔다.

  "이...... 이건...... 악마의......."

  낚싯대, 벽옥마간!

  그것이 좌세경의 가슴을 앞뒤로 꿰뚫은 것이었다.

  좌세경의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리는가 했더니 앞으로 통나무처

  럼 뻣뻣하게 넘어갔다.

  이것이 삼패의 죽음이었다.

  "대숙담황이 구강포까지 가려면 열두 시진이 소요된다."

  벽옥마간, 그것은 이미  혁련소천의 수중에서 작은 단봉으로 변해

  있었다.

  "그 동안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백변귀천과 다시 바꿔치기

  도 해야 하고......."

  혁련소천은 천천히 단봉을 품 속에 집어 넣었다.

  "흑사신 가경...... 그 멍청이는 지금 자기 꾀에 빠져 헐떡거리고

  있을 것이고......."

  문득 그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후...... 생사천이  철신도로 가져갔다는  일만 근의 화약과

  신마루의 최후 음모만은 받아주지. 허나...... 후후후......."

  웃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혁련소천의 신형은 부옇게 흐려

  지면서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세 구의 시체(屍體)...  그것만이 허무한 종말을 한탄하며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는 부운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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