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37장 (37/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37장 검천(劍天)의 오형제(五兄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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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십리파(十里坡).

  부운산 동쪽 오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언덕 아래에서 한 대

  의 마차와 기마대가 십리파의  비탈진 길을 치달려 올라가고 있었

  다.

  <군마천위 만웅앙복!>

  바로 혁련소천을 태운 마차와 군마천의 고수들이었다.

  맨앞엔 오른손에 검은 가죽장갑을  낀 강팍한 인상의 중년인이 달

  려가고 있었다.

  천괴혈조(天魁血爪) 대숙담황(大叔譚皇)!

  군마천 팔당(八黨)  중 수뇌당인 번당(蒜堂)의  당주가 바로 그였

  다.

  부시혈조공(腐屍血爪功)이라는  극사조공(極邪爪功)을  익힌 탓에

  손이 너무 징그럽고 지독한 악취를  풍겨 늘 검은 장갑을 끼고 있

  었다.

  "......!"

  대숙담황은 연신 냉전같은 눈빛으로 사위를 쓸어보며 선두를 달려

  가고 있었다.

  바람에 스치는 풀 한 포기의 움직임조차 예사롭게 보지 않는 그였

  다.

  ― 최대한의 기밀을 기했지만  철신도까지 가는 데에 분명 누군가

  의 제지가 있을 것이다.  소천주의 안위는 곧 군마천의 미래와 직

  결됨을 명심하고 죽음으로 호위하도록 하라!

  이것은 군마천을 출발하기 전 대숙담황에게 하달된 감천곡의 추상

  같은 명령이었다.

  일평생을 충성으로  일관해 온 대숙담황, 그는  군마천을 떠날 때

  그의 부인에게 이런 말 한 마디를 남겼다.

  ― 나  대숙담황은 오직 천주(天主)를 위해  존재하는 몸, 미래의

  천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두 번 다시 나를  볼 수 없을 것이

  오!

  마차의 기마대는  천리파의 정상 가까이에  이르자 달리던 속도를

  현저히 늦추어야만 했다.

  길의 폭이 좁아지고 경사가 급격해진 탓이었다.

  주위의 험악해진 지형 때문인지  대숙담황의 두 눈이 더욱 예리하

  게 좌우로 번뜩였다.

  "대숙당주, 의외로 가는 길이 순조로운 듯하오."

  이때 등 뒤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대숙담황은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열린 앞문 안으로 늠연히 앉아 있는 혁련소천의 모습이 보였

  다.

  순간 대숙담황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놈들이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음...."

  "이렇게 나가면 정주현을 지나 구강포(口江逋)의 선착장까지 내일

  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습니다."

  혁련소천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두 눈에 이채를 담고

  물었다.

  "대숙당주, 나는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소."

  "무슨......?"

  "구천십지만마전의 열아홉 단체는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다시피 하

  고 세력다툼을 하는데 만마전  전주께서는 어찌 묵인만 하고 있는

  지 모르겠소."

  대숙담황은 무겁게 탄식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구천과 십지 아홉 단체는 너무나 크게 비대해

  졌기 때문에 만마전 자체  내에서도 강력한 규제가 불가능할 것입

  니다."

  "흠......."

  "또한...... 만마전 율법 중 제일신마의 후계자가 끊어질 경우 구

  천과 십지는 그 자리를 놓고 숙명적으로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단...... 서천목산 일천 리 이내에서의 충돌은 서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만마전에 대한 예의상 묵계라고나 할까요?"

  "......."

  "그렇기 때문에......."

  순간 말을 하다 말고 대숙담황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전면, 매끈하게 잘라진 십여 그루의 거대한 고목들이 앞길을 차단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숙담황은 매서운 눈빛을 쏟아내며 천천히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뒤따르던 마차와 기마대는 모두 멈춰섰다.

  혁련소천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대숙담황을 쳐다보았다.

  "걱정하던 일이라면......?"

  대숙담황은 음침하게 말했다.

  "생사천의 금마교인(金魔絞刃) 척신명(戚信明),  그 놈은 항상 공

  격전 열  개의 나무를 잘라 상대에게  자신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일종의 무력 과시이지요."

  혁련소천은 흠칫했다.

  "고금신기백병 중 하나인  금마교인을 쓰며 죽음의 가위로 불리운

  다는 척신명 말이오?"

  "그렇습니다."

  순간 혁련소의 검미가 쭈뼛 곤두섰다.

  "감히 생사천이 군마천에게 시비를 걸어오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은 사천목산의 일천 리 밖이니까요."

  대숙담황은 칼끝같은 안광을 쏟아내며 침중히 말했다.

  "허나 안심하십시오. 이 정도도 뚫지 못할 대숙담황은 아닙니다."

  그 순간, 마치 갈가마귀가 울부짖는 듯한 괴소성이 허공을 뒤흔들

  었다.

  "켈켈켈...... 대숙담황! 개소리치지 마라! 오늘은 혼(魂) 하나도

  십리파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한 인영이 쓰러져 넘어진 거목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깡마른  체구에 해골같은 인상, 왼손에는  금빛 찬란한 십자

  (十字)형의 기형병기를 비스듬히 거머쥐고 있었다.

  금마교인 척신명, 바로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좌우 양쪽에는  일백여 명의 흑의인물들이 흉흉한 기세

  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숙담황은 그들을 쫙 훑어본 후 척신명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다.

  "척신명! 지금까지 군마천과  생사천은 가급적 충돌을 피해 왔다.

  헌데 이 무슨 짓들인가?"

  척신명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흐흐...... 생사천은 결코 상대를  먼저 치지 않는다. 만약 네놈

  들이 우리 생사천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꼭 이럴 생각도 아니었

  지."

  "무슨 헛소리인가?"

  "흐흐...... 역시 오리발이군.  내 그럴 줄 알고  이런 것을 주워

  왔지."

  척신명은 품 속에서 사각영패 하나를 꺼내 치켜들었다.

  <군마천위(君魔天威).>

  영패에는 힘찬 필치로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순간, 대숙담황의 얼굴에 경악지색이 떠올랐다.

  "아니? 그...... 그것은......."

  척신명은 영패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음험하게 괴소했다.

  "흐흐......  군마영부(君魔令符)를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을 테

  지."

  "그걸...... 네놈들이 어디서......?"

  "부운산에서 생사천의 고수 여덟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저 군

  마영부는 그들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었고......."

  대숙담황의 눈에서 일순 시퍼런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척신명! 그 따위 황당한 음모로 군마천을 농락할 셈인가?"

  순간 척신명의 얼굴에도 무서운 살기가 치솟았다.

  "대숙담황! 얄팍한 음모를 꾸민 건 바로 네놈들! 한 놈도 살려 보

  내지 않으리라!"

  이어 그는 양 손을 번쩍 치켜들어 냉혹한 일갈을 터뜨렸다.

  "쳐라!"

  때를 같이 해서 대숙담황의 입에서도 한 소리 폭갈이 우렁차게 터

  져 나왔다.

  "뭣들 하느냐? 놈들의 씨를 말려라!"

  순간 갖가지 외침과 함께  양쪽 고수들의 신형이 벌떼처럼 허공을

  뒤덮었다.

  "죽여랏!"

  "와하하하...... 이 놈들!"

  "차― 앗!"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혁련소천은 목전의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 유유히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마차 안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한 가닥 여유로운

  웃음마저 머금은 채.......

  '제갈천뇌...... 과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소!'

  음울한 잿빛 하늘에선  언제부터인지 봄비(春雨)가 부슬거리며 내

  리고 있었다.

  부운산(浮雲山)에도 실낱같은 봄비는 내리고 있었다.

  산 기슭에 통나무를 길게 묶어 마치 하나의 담처럼 좌우로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 있다.

  근 오 장 높이의 통나무 담장 안에는 역시 통나무로 만든 십여 채

  의 모옥이 여기저기 자리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생사천이 관장하는 부운산의 흑옥금광(黑獄金鑛)이었다.

  다섯 필의  오추마(烏追馬)가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마상(馬上)의 오  인(五人)은 마치 내리는  봄비가 뭉쳐서 형상을

  이룬 듯 조용히 흑옥금광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산뜻한 백의차림에 호피로 된 피풍(皮風)을 걸쳤

  고, 등에는 역시 같은 색의 백검(白劍)을 비스듬히 메고 있었다.

  그러나 죽립을 턱만  보일 만큼 눌러 썼기에  용모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그들의 전신에 일렁이는  기운이 소름끼치도록 차갑고 음산하다는

  것이다.

  오 인의 죽립인은 봄비를 맞으며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맨 좌측의 죽립인이  느릿하게 중앙의 죽립인에게 고개를 돌

  렸다.

  그러자 중앙의 죽립인은 가볍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것이 신호인 듯 맨 좌측의  죽립인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눈 앞

  의 입구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순간 입구 안쪽에  우뚝 솟은 망루에서 불쑥  한 얼굴이 내밀어졌다.

  "누, 누구냐?"

  예의 죽립인은  주먹을 거두어들이며 억양  없는 음성을 흘려내었다.

  "문을 열어라."

  망루의 얼굴이 약간 찌푸러졌다.

  "누구냐고 물었다!"

  "문을 열라고 말했었다."

  순간 망루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들! 이곳 흑옥금광이 네놈들 놀이터인 줄 아느냐?"

  죽립인은 아무 말없이 중앙의 죽립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중앙 죽립인의  턱 아래로 극히 무정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만사가 여의치 않을 때  가장 확실한 해결 방법은...... 살인(殺人)뿐이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렸던 죽립인의 신형이 앉은

  자세 그대로 치솟았다.

  순간 망루의 험악한 얼굴에 짙은 살기가 뒤덮였다.

  "이런 찢어 죽......."

  말을 하다말고 그는 보았다.

  아니 뭔가 눈 앞에서 번쩍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

  다.

  그 순간, 이번에는 확실히 보았다.

  두 개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그리고 그 두 머리통은 조금전까지도 자신과 음담패설을 주고받던

  두 동료의 것임을!

  "이게......."

  말은 또 나오다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의 머리통 또한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

  댕이쳐진 것이었다.

  그 시간 다섯 죽립인은 이미  망루를 지나 백여 장 밖을 쏘아가고

  있었다.

  목 없는 시신 세 구가 썩은 집단처럼 나동그라진 것은 그 다음 순

  간이었으니.......

  실로 엄청난 쾌검(快劍)이 아닐 수 없었다.

  단언컨대 천하에 알려진 검법  중 이런 류(類)의 쾌검(快劍)은 없

  었다.

  그렇다면......?

  다섯 죽립인, 그들은 흑옥금광 내부를 마치 바람처럼 누비며 다니

  고 있었다.

  몇 명의 무사들이 그들 앞을 막아서기는 했다.

  허나 그들은 상대를 쳐다보기도 전에 모조리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땅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때 문득 귀영(鬼影)처럼 떠다니던 중앙의 죽립객이 우뚝 신형을

  멈추었다.

  이어 죽립을 약간 들어올리며 천천히 주위를 쓸어보았다.

  대략 서른대여섯이나 되었을까?

  극히 무심한 표정에 왼쪽뺨에  그어진 검흔(劍痕) 한 줄기가 그의

  인상을 강인한 것으로 특징짓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가 바로  언젠가 귀곡천류하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혁

  련소천의 목에 검을 들이댔던 그 얼굴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냉유성(冷流星)!

  혁련소천으로부터 고금제일쾌검수로 극찬(極讚)된 바 있는 검천오

  형제 중의 첫째!

  바로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검천오형제가 모조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돌연 냉유성의 신형이 어느 한 방향으로 일순 퉁

  기듯 폭사되었다.

  나머지 사 인(四人)도 지체없이 그 뒤를 따라붙었다.

  헌데, 돌연 어느 한  귀퉁이에서 여섯 줄기 신형이 번개같이 나타

  나 앞을 막아섰다.

  "웬 놈......."

  "누구......."

  검천오형제는 그들 사이를 그냥 지나쳤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에는 정확하게 여섯 개의 머리통이 나동그

  라지고 있었다.

  문득 앞서 가던 냉유성의 어깨  너머로 한 줄기 음산한 음성이 흘

  러 나왔다.

  "스물네 명을  죽였으니 남은 놈은 모두  서른다섯......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②

  한 쪽에 수십  개의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거대한 석실이었

  다.

  중앙의 커다란 침상 위에는 구 척이 넘는 거한 한 명이 상체를 드

  러낸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우람하게 불거진 무시무시한 철팔찌를 차고 있었고, 침상 옆

  에는 근 일 장 길이에  굵기가 장성 팔뚝만한 삼지창 모양의 거대

  한 삼극진천걸 하나를 놓아두고 있었다.

  그 삼극진천걸 옆에는 수십  개의 술단지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거한의 옆에는 두 명의 전라여인(全裸女人)

  이 자신들의 허리굵기만한 거한의  양 팔을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음탕한 색기(色氣)와  탕기(蕩氣)를 느낄 수  있는 풍만한 몸매의

  두 여인이었다.

  "드르렁...... 쿨...... 드르렁......."

  거한은 완전히 술에 곯아떨어진 듯 석실이 떠나가라 코를 골며 자

  고 있었다.

  진천환극(震天環極) 호파(胡巴).

  그는 생사천  소속으로 흑옥금광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포악무도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천부적으로 타고난 신력(神力)은

  태산조차 뽑을 듯 가공한 것이라 전해진다.

  과거 무산(巫山) 일대를 주름잡던 무산오괴(巫山五怪)를 삼극진천

  걸로 한꺼번에 산적 꿰듯  꿰뚫은 사건은 아직도 무산일대를 떠도

  는 하나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석문이 산산조각 박살나고 검천오형제가 들어선 것이 어느 순간이었던가?

  두 나체여인은 대경하며 발딱 일어섰다.

  "다...... 당신들은......."

  "누...... 누구......?"

  찰나, 검천오형제 중 다섯째의  백검은 이미 두 여인의 목을 가르

  고 그대로 호파의 목을 향해 내리쳐졌다.

  섬전(閃電)을 방불케 하는 쾌검 중의 쾌검!

  허나 그 순간, 호파의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그의 거구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옆으로 퉁겨 나갔다.

  허나, 이미 검광은 그의 목덜미에 사정없이 내리꽂힌 후였다.

  피가 분수처럼 허공에 쫙 뿌려졌다.

  순간 검천오형제 중 다섯째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호파의 목을 자르지 못했다는  사실과 일검을 맞은 호파가 끄덕없

  이 몸을 바로 세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호파는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쓱쓱 어루만지며 살기 짙은 괴소를

  발했다.

  "흐흐흐...... 어떤 새끼들이  이 호파어른의 목에 상처를 입혔느

  냐?"

  순간 냉유성의 무감동한 음성이 억양없이 흘러 나왔다.

  "금종조(金鍾吊)와 나한외문기공(羅漢外門奇功)을 익혔군. 그렇다

  면 급소는 양쪽 겨드랑이뿐이지."

  말이 끝나는 순간, 검천오형제  중 둘 째의 백검이 유성처럼 허공

  을 갈랐다.

  노리는 곳은 호파의 목덜미였다.

  "흐흐흐...... 어림없다."

  호파는 도무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신법을 구사하며 번개같이

  삼극진천걸을 집어갔다.

  찰나, 검천오형제 중 삼  인(三人)의 신형이 헤아릴 수 없는 속도

  로 호파를 덮쳐갔다.

  순간 몇 개의 빛줄기가 허공을 가르더니 이내 무거운 신음이 허공

  에 메아리쳤다.

  "욱......!"

  호파의 가슴과 복부, 등에서 자욱한 피보라가 피어 올랐다.

  허나, 호파는 끝내 삼극진천걸을 쥐고 우뚝 몸을 세웠다.

  "흐흐흐...... 이 호파어른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예사 검

  (劍)들이 아니구나...... 허나 이제부터 모조리 박살 내주마!"

  "삼극진천걸이 쥐어진 이상 천신(天神)도 나를 당하지 못한다."

  다음 순간 대성폭갈과 동시에 고막을 찢는 듯한 파공성과 함께 삼

  극진천걸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냉유성의 정수리를 쪼개갔다.

  동시에 냉유성의 어깨 위에서도  한 줄기 백사같은 빛줄기가 폭사

  되어졌다.

  이내 빛줄기는 삼극진천걸을  두부 자르듯 두 동강으로 만들었고,

  그 기세로 호파의 정수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순식간에 선명한 핏물이 분수처럼 쫘악 솟구쳐 올랐다.

  "으...... 윽!"

  호파는 머리를 움켜쥐며 급격히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는 곧 몸을 바로세우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고금신기백병 중의 삼극진천걸이...... 끊

  어지다니......."

  정녕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수리가 두 치나 파여  손가락 사이로 핏물을 철철 쏟아내면서도

  죽기는커녕 끊어진 병기를 애석해하다니.......

  이때 냉유성의 무심한 음성이 호파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무정마검(無情魔劍)을 아느냐?"

  "무정...... 마검!"

  "천하에 끊고 자르지 못할  것이 없다는 서열 구 위(九位)의 신병

  (神兵)이지."

  "그...... 그래서 내 삼극진천걸이......."

  호파는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뿌드득 갈더니 무섭게 일갈했다.

  "죽인다!"

  그는 신형을 허공으로 번쩍  솟구침과 동시에 팔목에 채워져 있던

  두 개의 철팔찌를 무서운 기세로 쏘아냈다.

  순간 냉유성의 짤막한 일갈이 터졌다.

  "틈이다, 다섯째!"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좌우로 번개같이 번뜩였다.

  파팍 하는 부닥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두 개의 철팔찌는 네 조

  각이 되어 퉁겨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악― !"

  바로 그 순간,  섬뜩한 파육지음(破肉之音)과 폐부를 짓잡아 뜯는

  듯한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어느새 검천오형제 중 다섯째가  호파의 왼쪽 겨드랑이 깊숙이 검

  을 쑤셔박고 있었다.

  "이...... 이런......."

  호파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왼손을 무심결에 치켜들었다.

  그러자 호파의 몸 가까이 바짝 붙어 있던 다섯째의 죽립이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자연스레 드러난 그 얼굴은 뜻밖에도 여인이 아닌가.

  전형적인 미인형의 얼굴에  빙옥(氷玉)같은 피부, 한겹 서리가 깔

  린 듯 차갑고 냉막한 표정만  아니라면 흠 잡을 곳이 없는 절세미

  모의 여인이었다.

  그 순간, 호파의 눈은 찢어질 듯 휩떠졌다.

  "이......   이런   일이......   냄새나는......  계집년   따위가......."

  그는 오른손을 갈고리처럼 오므려 그녀의 목덜미를 힘겹게 잡아갔다.

  순간 여인은 차갑게 조소하며  겨드랑이에 박힌 검을 비스듬히 내려그었다.

  "캬아...... 아...... 아......!"

  호파는 온통 칠공으로 선혈을 내뿜으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반 이상 갈라진 복부 사이로 오장육부가 모조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허나, 호파는 그래도 죽지 않고 사지를 바둥거렸다.

  "내...... 냄새...... 나는...... 계......."

  말을 하다 말고 그의 두 눈이 확 불거졌다.

  여인의 발이 그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나...... 냉사란을 냄새나는 계집이라고......?"

  그렇게 뇌까리면서 그녀는 지그시 발을 눌렀다.

  더 이상 두고 볼 것도 없었다.

  "셋째, 화약을 점검해라."

  이때 냉유성의 말에 셋째의  신형이 민활하게 상자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인가?"

  "정확하게 사만 근입니다."

  "역시  일만  근이  사라졌군.  분명히  철신도로 가져  갔을  테지......."

  냉유성은 무감동하게 중얼거리더니 문득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어 그는 불  붙은 화섭자를 상자 위에  내던지며 짤막하게 말했다.

  "모두 가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삼  인(三人)은 재빨리 석실 밖으로 쏘아

  져 나갔다.

  냉유성은 신형을 날리려다 말고 흠칫했다.

  냉사란의 발이 그때까지도 호파의 으스러진 머리통을 짓으깨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 냉사란을 냄새나는 계집이라고......."

  건조하고 메마른 음성 속에 진득하게 일렁이는 살기(殺氣)!

  아직까지 직성이 풀리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냉유성이 그녀의 옆에 다가섰다.

  "사란!"

  냉사란은 그의 부름조차 듣지 못한 듯 발만 계속해서 바닥에 문질러댔다.

  순간, 냉유성의 손이 세차게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정신 차려라!"

  냉사란은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드는 듯했다.

  "오...... 오라버니......."

  "바보같은 년!  잊었느냐? 검천(劍天)은  감정의 흔들림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을......!"

  "......!"

  "가자!"

  냉유성은 그녀의 손목을 쥐고 번뜩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거대한 대폭발과 함께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을 집어 삼킬

  듯 무섭게 치솟았다.

  그것은 흑옥금광,  생사천 세력의 한 귀퉁이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봄비는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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