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35장 (35/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35장 철신도(鐵神島)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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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혁련소천과 마주앉아 있는 장손중박의 표정은 침중하게 굳어 있었다.

  "소천주께서 내일 철신도로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이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소천주님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장손중박은 심각하게 말했다.

  "사흘 전 생사천(生死天)의 고수들이 화약 오만 근을 가져 갔습니다."

  "화약 오만 근을......?"

  "부운산(浮雲山)의  금광(金鑛)을 캐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금광을......?"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허나... 어쩐지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면?"

  혁련소천의 반문에 장손중박은 침중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부운산은  동해 근처의  정주현(鄭州懸)과 불과 오십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흠......."

  "철신도에 가려면 반드시 정주현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혁련소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대답과 함께 그는 품 속에서  판관필 하나와 붉고 매우 얇은 천으

  로 된 옷 한 벌을 꺼냈다.

  "이 판관필  속에는 뇌정화신탄 다섯  개와 마화신무액, 천화사가

  약간 들어 있습니다."

  이른바 죽음의 화기(火器)들!

  "그리고...... 이 옷은 적룡화의(赤龍火衣)란 것으로 불(火)과 화

  약폭발 때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가져  가시면 도움이 되어줄

  것입니다."

  "고맙소, 장손가주!"

  혁련소천은 환하게 웃으며 판관필과 적룡화의를 받아들었다.

  장손중박은 희미하게 웃어보이더니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유상!"

  "네."

  온유상, 그녀가 사륜거 뒤에 다소곳이 서 있었던 것이다.

  장손중박은 말했다.

  "가서 선유조(仙游鳥) 한 마리를 가져 오너라."

  "알겠습니다."

  부리와 눈, 몸통, 날개 등이 온통 시뻘건 핏빛의 작은 새 한 마리

  가 새장 속에 들어 있었다.

  장손중박은 새장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 새는 제가 키우던 것으로 화약냄새에 특히 민감합니다."

  "흠!"

  "만약...... 이 새가 심하게 울면 새장을 열어 주십시오."

  혁련소천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는 새장을 받아 선유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것보다 나는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장손중박의 얼굴에 의혹이 솟았다.

  "중요한 것이라면......?"

  혁련소천은 빙긋 웃으며 불쑥 물었다.

  "장손가주와 온소저는 언제쯤이나 혼인할 생각이오?"

  "......!"

  "이제 내게도 국수 한 그릇을 먹일 때가 되지 않았소?"

  그 말에 온유상의 얼굴에는 저녁노을같은 홍조가 사르르 피어올랐

  다.

  허나 장손중박은 씁쓸하게 고소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번 길에 소천주님께서 무사하시기만 빌겠습니다. 그리고......

  모쪼록 커다란 수확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혁련소천은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얼렁뚱땅 말돌리지 마시오.  반드시 국수는 얻어먹고 말겠소. 내

  가 직접 만들어서라도......!"

                                ②

  삼월(三月) 초아흐레,

  <군마천위(君魔天威) 만웅앙복(萬雄仰伏).>

  그렇게 쓰인 금빛  깃발을 꽂고 한 대의  마차가 군마천을 힘차게

  떠났다.

  마차의 주위에는 금의무사들을 태운 사십 기(騎)의 기마대가 위풍

  당당하게 호위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 안의 혁련소천은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

  다.

  여느 때와 달리 약간 굳어 있는 표정이었다.

  (대종사님, 수라마영입니다.)

  어디선가 불쑥 한 줄기 전음이 들려왔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입술을 움직였다.

  "어찌 되었소?"

  "염려마십시오. 제갈  일곱 째의 계략으로  조금도 허점이 없습니

  다. 그 누구도 대종사님의 마차를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흠...... 헌데 몇 군데나 움직였소?"

  "자소천과 생사천, 그리고......."

  "그리고?"

  "십지 중 하나인 신마루(神魔樓)가 가세되었습니다."

  "신마루......!"

  혁련소천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떼었다.

  "수라마영!"

  "말씀하십시오."

  "내가 검천(劍天)  오 형제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앞으로 사흘

  남았소."

  "하오시면?"

  "황산(黃山)으로 가서 검천의 오 형제를 움직이도록 하시오. 어떻

  게 움직일지는 제갈천뇌가 알고 있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마차는 어느 한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계곡의 한 절벽  위엔 언제부터인지 한 인영이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나이는 대략 삼십 세 정도였고 한 손엔 백우선(白羽扇)을 든 문사

  풍의 중년인이었다.

  허나 끔찍하게도 그의 얼굴  왼쪽 이마에서 오른쪽 턱까지는 길고

  시뻘건 흉터 한 줄기가 그어져 있었다.

  문득 그는 발 아래 계곡  사이를 치달려 가는 마차를 응시하며 안

  면을 괴이하게 씰룩거렸다.

  "적용사문...... 결국 네 놈이 나와의 약속을 파기하다니......."

  그의 입가에 문득 비릿한 괴소가 어렸다.

  "흐흐흐...... 좋아. 나 위군(韋君)도  이젠 모든 것을 돌보지 않겠다."

  위군!

  만박천옹 노자량의 제자이자, 적용사문의 동문(同門)이라는 그가 아닌가?

  "군마천의 소천주...... 네놈을 죽이리라......!"

  위군은 멀어져 가는 마차를 응시하며 잔혹한 눈빛을 쏟아냈다.

  "허나 서두르지는 않겠다.  철신도...... 그곳에서 무서운 음모의

  제물이 되게끔 만드리라......!"

  다음 순간 위군은 바람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위군이 서 있던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거대한

  나무 뒤에서 또 한 명이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온통 묵빛 일색(一色)에 칠흑같은 흑발을 허리까지 치렁치

  렁 늘어뜨린, 극히 차갑고 무정한 기운이 전신에서 눈발처럼 풀풀

  쏟아져 나오는 저 모습!

  귀검사랑, 바로 그가 아닌가!

  귀검사랑은 위군이 서 있던  곳을 힐끗 쳐다보더니 예의 무심냉막

  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물고...... 또  물어라. 서로 죽이고  또 죽여라.  다음 일은 모

  두...... 나 귀검사랑이 알아서 한다."

  문득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시리도록 새하얀 이빨을 히죽 드러냈

  다.

  "천하를 통틀어 나의 적수는 오직 한 명 뿐...... 흐흐흣......."

  바람결처럼 흘러 나온 괴소,  그리고 그 괴소가 끝났을 때에는 이

  미 그는 자리에 없었다.

  무엇인가가 아주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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