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31장 (31/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31장 하늘(天)의 의미를 아는가?

━━━━━━━━━━━━━━━━━━━━━━━━━━━━━━━━━━━

                                ①

  단우비는 혁련소천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부드러운 음성으

  로 물었다.

  "본좌가 왜 그대를 존궁으로 불렀는지 아느냐?"

  혁련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순간 단우비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감천주가 자네를 군마천 차기천주로 임명한다는 군마천서는 만마

  전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대는 군마천의 후계자임을 자

  처하느냐?"

  혁련소천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 거대한 만마전 속에서  그런 군마천서 한장 정도 사라지게 하

  는 것은 무척 쉬운 일로 알고 있습니다."

  단우비는 그 말에 의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 자네  뜻은 누군가 군마천서를  의도적으로 없앴을 것이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단우비는 문득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흠... 구천과 십지의  천서(天書)는 모두 장로원 관할인데... 장

  로원의 장로들이 그대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하군."

  혁련소천은 담담히 말했다.

  "장로원이 군마천의 위에 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순간 단우비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헛헛헛... 재미있는 말이다.  지고한 장로원의 권위가 그대의 삼

  촌설(三寸舌)에 깨끗이 무시되는구나."

  이어 그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는 영리하단 말이야. 후후... 영호풍, 그대를 한눈에 거물로 알아봤으니...."

  "......!"

  혁련소천은 내심 적이 놀랐다.

  '그... 그가 누구인가?'

  의혹과 동시에 한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군마천서를 사라지게 한 자는 바로 그가 분명하다!'

  '또한 단우비로 하여금 나를 이곳으로 오도록 유도한 자도 어쩌면

  그일 것이다...!'

  혁련소천은 추측에 대한 자신과  동시에 커다란 의혹이 피어 올랐다.

  '그는 단우비를 통해 나의 무게를 재어보려 한 것이 분명하다. 대

  체... 그는 누구란 말인가?'

  빠르게 염두를 굴리고 있던 그 순간, 단우비가 불쑥 물었다.

  "감이 잡히는 것이라도 있나?"

  혁련소천은 내심 뜨끔했다.

  단우비는 야릇한 미소를 담고 입을 열었다.

  "자네는 본좌를 처음 본 순간 크게 의아했을 것이다."

  "......!"

  "왜... 본좌의 얼굴에 상처가  그리 많은가 하고... 어때, 본좌가 잘못 보았는가?"

  혁련소천은 어쩐지 한 수 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순순히 시인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저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솔직하군. 좋다. 노부도 솔직히  말해 주지. 노부의 얼굴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단우비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스스로의 존칭을 격하시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얼굴을 포함시켜 노부의  전신에는 도합 일흔두 개의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

  "......!"

  "그 상처로 인해 노부는 열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지."

  혁련소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아한 모양이군. 천하의 그 누가 나 단우비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는가 하고."

  "그렇습니다."

  단우비는 문득 어두운 어조로 말했다.

  "노부는 네 살 때부터 나를 노리는 암중흉수들로부터 목숨의 위협

  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 모든  상처는 구십 년 전 노부가 제 팔대

  구천십지제일신마가 되기 전까지 당한 상처들인 것이다."

  "......!"

  "흉수들의 목적은  명확했다. 노부를  죽이면 구천십지제일신마의

  직계 후손이 끊어지고 그렇게 되면 천하의 그 어떤 강자라도 제일

  신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지."

  단우비의 얼굴에 문득 한 줄기의 스산한 미소가 번져갔다.

  "노부는 구십 년 전  제일신마가 된 이후 노부에게 대항하던 자들

  을 모조리 죽였다. 단 한 명도 용서없이...."

  "......!"

  "이제... 전 중원을 통틀어 노부의  적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허나...."

  단우비는 은설같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노부에게는 후계자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구천십지만마

  전 아니, 전 중원의 마도고수들은 모두 이 자리를 노리고 있다."

  "......."

  "허나 그들은 모른다. 이  자리가 얼마나 가공할 죽음의 자리인가를......."

  혁련소천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이때 문득 단우비의 동공 깊숙한 곳에서 유현한 광채가 흘러 나왔다.

  "영호풍, 그대의 자질은 과연 대단하다. 또한 무공 역시 듣던 소문과는 크게 다르다."

  "......!"

  "아주 놀라운 내공이 전신에 잘 갈무리되어 있어. 훌륭하다!"

  혁련소천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그는 전신의 피가 급격히  싸늘하게 식어감을 느끼며 짐짓 당혹성을 발했다.

  "무슨... 말씀을?"

  단우비는 입꼬리에 묘한 웃음을 담았다.

  혁련소천은 전신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짐을 느꼈다.

  "긴장할 것 없다. 노부가 중시하는 것은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니니까."

  "......!"

  "허나, 한 마디만 하겠다."

  단우비는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현 무림에서 만약 누군가 후대 제일신마로 내정된다면...... 그 자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

고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 후계자를 위해서...!"

  혁련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섬뜩해졌다.

  단우비는 문득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혁련소천을 응시했다.

  "노부가 자네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모릅니다."

  "말해주지. 이유는 두 가지이다."

  "......?"

  "첫째, 노부가 중시하는 그 누군가가 자네를 중시했다. 둘째는,

  구천의 아홉 명 중 몇몇이 자네를 주시하는 것 같기에 노부 역시

  호기심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자네를 불렀다."

  혁련소천은 안색이 절로 굳어졌다.

  ― 노부가 중시하는 그 누군가.......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이때 단우비의 입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감천주가 노부에게 건네주라고 한 것이 있을 텐데?"

  혁련소천은 또 한 번 흠칫했다.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군마천서인가?"

  "그렇습니다."

  단우비는 껄껄 웃었다.

  "헛헛헛...... 좀 늦은 편이나 그 늦은 이유는 타당성을 참작해서 접수토록 하겠다."

  이어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 시각부터 자네를 군마천의 후계자로 인정하겠다."

  "감사합니다."

  혁련소천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단우비의 눈빛이 문득 깊숙이 침잠되었다.

  "영호풍!"

  "......?"

  "자네는 계류(溪流)의 의미를 아는가?"

  "계류......?"

  느닷없는 질문에 혁련소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우비는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노부의 나이 네 살 때 서천목산 기슭을 흐르는 계류를 보며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

  "고요한 적막을  뚫고 흐르는 계류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스스로

  계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水)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싶다

  는 동심에서였지."

  "......!"

  "허나... 바로 그날 나는 누군가에  의해 암습을 받아 육 개월 동

  안이나 병상에서 신음해야 했다."

  혁련소천은 단우비가 어째서 그런 말을 들려주는지에 관해 빠르게 생각을 해보았다.

  허나 미처 생각을 풀어나가기도  전에 단우비의 음성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일곱 살 때였을 것이다."

  "......?"

  "나는 눈보라 속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 노송(老松)을 보았다.

  그리고... 독야청청한 그 노송을 보고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받

  았다. 순간적으로 느낀 생각은 노송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지."

  단우비의 눈빛이 서서히 회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언젠가... 그때도 어린 시절이었지. 계류를 따라 노송을 지나

  쭉 내려가던 나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발견했었다."

  "......."

  "내 몸보다 몇천 배 큰  그 거암(巨岩) 위에서 나는 그 바위의 생

  명을 읽을 수 있었다. 억겁의 세월을 비바람과 싸워오면서 깎일지

  언정 끝내 침묵으로 일관해 온 바위... 나는 그 바위의 생명을 품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착각이었는가?

  혁련소천은 문득 단우비의 모습이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열세 살 때 였던가? 나는  계류와 노송, 바위 등도 결국 모두 하

  나에 속해 있음을 알았다."

  "......?"

  "산(山)이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서천목산을 쳐다보며

  나는 산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산의 의지는 나의

  소년시절을 뜨겁게 불태웠다."

  혁련소천은 보았다.

  웅장하고 거대한 산영(山影)이 단우비의 전신에서 후광인 양 번져

  오는 것을....

  "언젠가... 선친은  나를 안고 서천목산의  최고봉에 오르신 적이

  있다. 그때... 선친의 품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

  "서천목산을 굽어보고 있는 하늘이었다."

  '하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보며...... 나는 내 눈 속에 그 하늘

  을 모조리 담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조금씩...... 질식할 듯한 위압감이 단우비의 전신에서 풍겨 나오

  는 것을 혁련소천은 느꼈다.

  "허나... 구십 년 전 선친이 세상을 뜨시고 내가 제일신마의 보좌

  에 오르던 날....... 서천목산 최고봉에 세워진 선친의 비석을 어

  루만지며 나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 네가 아무리 넓다한들 내 가슴보다 넓지는 못하리라!

  ― 네가 아무리 높다한들  나의 타오르는 의지보다 높지는 못하리라!

  단우비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혁련소천은 단우비의 얼굴에서 하늘을 읽었다.

  무한히 넓고 높은 광대무변의 하늘!

  '과연... 거인(巨人)이다!'

  거인, 그는 하늘을 닮은 거인이었다.

  다물어졌던 단우비의 입술이 또다시 떼어졌다.

  "영호풍."

  "......?"

  "하늘의 의미를 느끼겠나?"

  짧은 순간 혁련소천의 눈빛이 미세한 흔들림을 보였다.

  허나 그는 곧 냉정을 되찾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느껴라. 그것을 느끼는  날 제일신마의 보좌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인가?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영호풍."

  "마... 말씀하십시요."

  혁련소천은 난생 처음 말을 더듬었다.

  조금전 말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그만큼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었다.

  단우비는 물 흐르듯 고요한 음성으로 말했다.

  "중원은 최강자(最强者)를 원한다. 그렇게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중원을 떠나라!"

  단우비는 혁련소천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궁금한가? 노부가 어째서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혁련소천은 솔직히 시인했다.

  "그렇습니다."

  단우비는 낮게 웃었다.

  "후후...... 노부는 자네를  포함해서 다른 여덟 명에게도 지금처

  럼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

  "그들 여덟 명은 지금까지 노부가 보아온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허나......."

  단우비는 경악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혁련소천의 눈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알아야 한다. 어쩌면  그들 여덟 명 중  어느 누구도 제일신마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

  "느껴야 한다. 그들 여덟 명 중 이미 네 명이 노부조차 생각치 못

  했던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혁련소천의 눈언저리에 보일 듯 말 듯한 경련이 일었다.

  단우비는 그것을 보며 문득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영호풍, 죽은 그 네 명  중에는 그대보다 영리하고 강한 자도 있었다."

  단우비는 스르르 눈을 감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훗날......  제일신마의  보좌에  오를  자가  노부보다  약하다

  면...... 노부가 친히 그를 죽이리라...!"

  ― 훗날 제일신마의 보좌에  오를 자, 노부보다 약하다면 친히 그를 죽이리라!

  두 하늘의 첫번째 만남,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서서히 막이 내려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