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권 제29장 (29/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29장 배신(背信)은 곧 죽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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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밀실(密室) 안엔 자정(子正)이 훨씬 넘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켜

  진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화려하진 않지만 세련되게 정돈된  실내엔 탁자를 중심으로 네 인

  물이 둘러앉아 깊은 숙의(熟議)에 빠져 있었다.

  감천곡을 위시해서 혁련소천, 공손무외, 반태서 등 네 명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혁련소천이 당혹한 기색을 떠올리며 나직한 침음성을 말했다.

  "으음...... 자소천주가 단옥교를 주시하고 있다면 우리의 행동도 적잖게 제약을 받겠군요."

  감천곡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빙허잠은 대단히 의심이 많은 자라네. 우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 즉시 눈치를 챌 것이네."

  "그럼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할 수 없네. 세 번째 편법을 앞당겨 시행할 수밖에...... 그것만

  이 빙허잠의 의심을 혼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네."

  혁련소천의 눈에 문득 한 줄기 이채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감천곡은 무겁게 말했다.

  "철신도(鐵神島)를 먼저 갔다와야 되겠네."

  혁련소천의 표정이 언뜻 변했다.

  이때 반태서의 차갑고 무둑뚝한 음성이 낮게 흘러 나왔다.

  "몇 년 전부터 구대(九代) 제일신마의 보좌를 노리는 음모가 점차

  본격화 되어 가고 있소."

  그는 혁련소천에게 눈길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이 음모의 파급은 머지않아 전 무림을 가공할 혈풍 속으로 몰아 넣을 것이오."

  "......!"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엄청난 혈겁(血劫)이 발생한 것이오. 얼마

  나 많은 인명(人命)이 그 혈겁에 희생될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소."

  반태서는 스산한 눈빛을 번쩍이며 혁련소천을 똑바로 주시했다.

  "영호공자, 군마천의 차기천주로  공자가 내정된 이상...... 공자

  의 목숨 역시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오."

  "......!"

  "아직 늦지는 않았소. 그  혈겁이 일어나기 전까지 공자는 완벽한

  군마천주가 되어야만 하오."

  이때 공손무외가 껄껄 웃으며 한 마디 끼어 들었다.

  "헛헛...... 그 점은 노부가 장담하네. 영호공자는 절대 아무에게

  도 밀리지 않을 것이네."

  검천곡도 입을 떼었다.

  "영호공자, 자네는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 줄 알고 있나?"

  혁련소천은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다.

  "글쎄요......."

  "자네의 단점은 너무나 기도(氣度)가 특출하다는 것이네. 그 기도

  를 숨기면 타인의 의심을 사고  드러내면 타인의 표적이 될 수 있지."

  혁련소천은 난색을 띄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감천곡의 고개가 문쪽으로 홱 돌아갔다.

  "누구냐?"

  묻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불벼락같은 광망이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순간 문 밖에서 공손한 음성이 들렸다.

  "칠호(七號)입니다."

  감천곡은 그 말에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으며 묵직한 일성을 발했다.

  "들어 오너라."

  곧장 문이 열리며 전신을 흑의로 감싼 복면인 한 명이 들어섰다.

  그가 막 들어서는 순간 세 줄기 인영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며

  문을 막아섰다.

  <비(匕)>,

  <엽(葉)>,

  <추(鎚)>,

  가슴에 각기 그런 글씨가 수놓인 삼십대 가량의 중년인들, 그들은

  언젠가 장군부의 승룡무후전에 나타났던 인물들이었다.

  스스로 칠호라  일컬은 복면인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

  깊숙이 부복했다.

  "천주, 만마전으로부터 급보(急報)가 하달되었습니다."

  감천곡의 눈이 약간 커졌다.

  "급보라고?"

  "그렇습니다."

  "내용은?"

  "제일신마께서 소천주  영호공자님을 친히  접견하겠다 하시며 곧

  첩지를 보내 만마전으로 영호공자님을 입전(入展)시키겠다고 하십

  니다."

  "뭣이!"

  안색이 크게 변한 것은 감천곡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 토록 침착하던 반태서는  몸까지 부르르 떠는가 하면 공손무외

  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까지 했다.

  허나 혁련소천 그는, 태산이  무너져도 꿈쩍 않을 이 초인적인 정

  력(定力)의 사내는 그저 의외롭다는 기색만 약간 떠올렸을 뿐이었

  다.

  한순간 감천곡의 낯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만마전 제일신마께서 영호공자를 만나려는 이유가 없지 않느냐?"

  칠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일신마께서는 영호공자님이 아직 만마전에 참배하지 않은 것을

  알고......."

  "참배?" 그런  바보같은 소리를......! 마도의  전 고수들은 모두

  만마전에 참배하여야 하나 구천과 십지의 주인이나 후계자는 참배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인가?"

  "허나...... 만마전에서는 아직 영호공자님이 군마전 후계자로 내

  정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감천곡은 탁자를 꽝 치며 버럭 분성을 내질렀다.

  "무슨 소리! 그 내용을 적은 군마천서(君魔天書)를 이미 한 달 전

  에 만마전으로 보냈거늘......!"

  "하지만...... 만마전에서 그것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

  았습니다......!"

  감천곡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전신이 화석처럼 굳어졌다.

  "그......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감천곡은 안면을 부르르 떨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장로원(長老院)의 늙은 놈들이  구천십지의 누군가와...... 수작

  을 부린 게 분명하다...."

  장로원(長老院)!

  제 칠대  제일신마를 보좌하던 가신(家臣)  열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의결(議決) 기관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오십 세를  넘은 고령으로 일신의 무공은 거의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가 보아라, 칠호!"

  "그럼......!"

  칠호는 공손히 대답하고 곧 밖으로 사라져 갔다.

  감천곡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문득 비(匕)

  자의 인물에서 시선을 던졌다.

  "천비(天匕)."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구천과 십지의 단체  속에 밀파한 첩자는 모두 이십팔 명이다."

  감천곡은 나직하나 힘이 실린 어조로 말했다.

  "혈해(血海)에 가서 전하라!"

  "......?"

  "오늘 밤 안으로 그들 이십팔 명을 모두 제거하라고......."

  천비의 얼굴에 커다란 경악이 솟구쳤다.

  혈해(血海)!

  여기서 밝힐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뿐이다.

  ― 천하에 마음먹어 못 죽일 사람이 없다는 신비(神秘)의 살수(殺手)조직!

  감천곡은 천비의 경악한 얼굴을 쳐다보며 무겁게 말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 이미......

  그들 이십팔 명 중에는 상당수의 적의 끄나풀이 섞여 있다."

  "......!"

  "그 끄나풀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지금...... 차라리 모두 제거함

  이 유리하다."

  감천곡의 시선이 엽(葉)자가 수놓인 인물에게 느릿하게 옮겨졌다.

  "비엽(飛葉)."

  "......?"

  "첩자를 다시 구성하여 내일까지 재투입 토록 하라."

  "알겠습니다!"

  감천곡은 마지막의 인물을 쳐다보았다.

  "혈추(血鎚)."

  "말씀하십시오."

  "조금 전에 나간 칠호를 쫓아라. 그리고......."

  "......!"

  "죽여라."

  "알겠습니다."

  대답이 끝나면서 그들 삼 인(三人)은 바람처럼 그 자리를 떠났다.

  "나...... 감천곡...... 절대 두 번씩 당하지는 않는다!"

  감천곡은 괴광을 번뜩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후의 방법......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동원하리라!"

  나직하게 흘러 나오는 그의 독백에는 피를 말릴 듯한 살기가 진득

  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깊은 계곡 사이, 어둠을  가르며 무섭게 질주하는 한 인영이 있었다.

  먹물같은 흑의에 깊숙이 덮어쓴  복면, 그는 조금 전 군마천의 밀

  실에 나타났던 칠호였다.

  한참을 질주해가던 칠호는 돌연 한 벼랑 위로 빠르게 올라가 우뚝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사방을 날카롭게 쓸어보는 것이었다.

  번갯불처럼 번뜩이는 신광(神光)!

  강석(剛石)까지도 그대로 꿰뚫을 듯한 눈빛이었다.

  허나 그 눈빛에는 이내 당혹스런 그늘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 말인가?"

  초조감이 역력한 음성이었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 순간 말 그대로 얼음장같은 음성이 칠호의 고막 속에 칼끝처럼

  쑤시고 들어왔다.

  칠호는 대경하여 빙글 돌아섰다.

  혈추(血鎚)!

  그가 마치 어둠의 한 분신인 양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다...... 당신이......?"

  칠호의 눈빛은 졸지에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혈추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흐흐흐...... 이중첩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번쩍하는  빛과 함께 수십 줄기, 아니 정확하

  게 서른여섯 줄기의 혈광(血光)이 혈추의 전신에서 빗살처럼 뻗쳐

  나갔다.

  '무엇인가?'

  칠호가 의혹을 느낀 때는  이미 온몸을 바늘끝으로 찔리우는 듯한

  고통을 느낀 후였다.

  퍼퍼퍼퍼퍼퍽!

  "크― 악!"

  서른여섯 줄기의 혈광은 칠호의 머리와 목, 가슴, 복부 등을 사정

  없이 꿰뚫어 버렸다.

  "크...... 크...... 큭......!"

  칠호는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비틀거리더니 맥없이 털썩

  고꾸라졌다.

  채 녹지 않은 눈발 위로 진홍빛 핏물이 먹물처럼 번져 나왔다.

  "배신은  곧 죽음으로  통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혈추는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한  봉지의 황색분말을 시신 위에 흩뿌렸다.

  순간 시퍼런 연기가 푸스스  피어오르더니 이내 혈추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눈밭 위의 핏물에는 또 한 줌의 황수(黃水)가 생겨났을 뿐이었다.

  달 없는 밤에 있었던 조그만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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