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26장 아침에 핀 혈화(血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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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 서찰에 쓰인 글씨는 종정향의 눈에 너무도 익어 있는 것이었
다.
<종정향을 설득, 소천주 영호풍에게 넘기는데 성공.
군마천 장악을 위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 중.>
서찰의 끝에는 하나의 뇌문(雷紋)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종정향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크게 비틀거렸다.
그 순간 그녀는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한꺼번에 꺼져내리는 소리를.
그것은 소중히 쌓아 올린 사랑의 탑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소리이
기도 했다.
하나의 손이 비틀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귓전에 스며드는 한 줄기 부드러운 음성이 있었다.
"그대는 선하다. 간계를 모르는 그 선함 때문에 감천주는 팔과 다
리를 잃어야 했고 또한 마천의 고수 수십 명이 죽어야만 했다."
"......."
"만약...... 그대의 머리에 약간의 간교함이라도 있었다면 한 번
쯤은 공야진붕이란 인물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것이 없었기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종정향은 혁련소천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주르륵 눈물을 쏟아
냈다.
그것은 배신(背信)이 만들어낸 상심(喪心)의 눈물이었다.
문득 종정향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혁련소천을 올려다
보았다.
"저 보고...... 저 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눈물겹도록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혁련소천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군."
"......."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한다. 공야진붕에게......."
종정향은 힘없이 물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죠?"
"영호풍......."
"당신은...... 정말 엄청난 사람이에요. 아마...... 감천주도 당
신에 대해 완전히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혁련소천은 나직이 웃었다.
"후후...... 역시 종정세가의 재녀답게 비상한 머리를 가졌군."
"풋...... 저를 놀리시는군요. 바보같은 계집이라고......."
울음보다 서글픈 웃음이었다.
"헌데...... 당신은 제가 오늘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
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혁련소천은 빙그레 미소했다.
"장담이 아니라 확신한다."
"확신...... 한다고요?"
혁련소천은 그녀의 뺨 위의 눈물자국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너는...... 곧 나의 여인이 된다. 그리고 너는 나를 영원히 사랑
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말을......?"
"역시 확신이다. 너는 공야진붕을 사랑했던 것보다 최소한 백 배
는 더 나를 사랑하게 된다."
종정향은 그 순간 혁련소천의 눈에 뜨거운 불길이 이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과 영혼까지 온통 그 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이 사람은.......'
종정향은 황망히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려 했다.
허나 그것은 극히 일시적인 충동감이었을 뿐, 그녀는 문득 혁련소
천의 이글거리는 눈빛 속에서 어떤 숙명(宿命)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혁련소천의 그물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숙명을.
이윽고 종정향은 눈을 사르르 내리깔며 조그맣게 말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혁련소천은 담담한 눈빛을 되찾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알게 된다. 허나 지금은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
"지금 시간은 축시(丑時), 이 밤이 가기 전에 내가 이곳에서 그대
를 만난 이유부터 해결해야 한다."
종정향은 문득 홍조를 띠며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소천은 담담히 말했다.
"강요하지는 않겠다.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오늘밤은 그냥 보내도록 하자."
"안돼요!"
종정향은 떨구었던 고개를 번쩍 치켜 들었다.
"만약 오늘밤을 그냥 보낸다면 감천주가 의심을......."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혁련소천은 싱긋이 웃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대가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종정향은 그제야 안심이라는 듯 한숨과 더불어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물론 당신까지 의심을 받게 될 거예요."
"그럼......."
"저는...... 저의 의지대로 하겠어요."
종정향은 두 눈에 굳은 결의의 빛을 담고 말을 이었다.
"오늘밤...... 당신을 위해 제가 배운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혁련소천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종정향은 얼굴을 도화빛으로 물들이며 기어들어 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천해 보이나요?"
"아름답다."
"그 말씀...... 진정이신가요?"
"그대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인이다."
종정향은 그 말에 달콤한 기분을 느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제가 모든 것을 드리겠다는 것도...... 진심이에요."
혁련소천은 묘한 감동과 함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의 몸을...... 보고 싶구나."
순간 종정향의 눈에 미묘한 빛이 도발적으로 넘쳐 흘렀다.
"기꺼이 보여 드리겠어요."
"수줍다면 불을 꺼주마."
종정향은 머리를 저었다.
"싫어요.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런 마음은...... 난생 처음이에요."
종정향은 슬그머니 주안상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이어 그녀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촛불의 흔들림과 함께 몸을 감싸고 있던 껍질들이 차례차례 그녀
의 발 밑으로 쌓여갔다.
이윽고 팔등신의 눈부신 여체(女體)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이런 아름다움을 어떤 말로 설명할 것인가?
완벽했다.
어느 구석에도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육체였다.
종정향은 살그머니 혁련소천을 돌아보았다.
혁련소천의 눈가에 발그레한 혈기가 피어 있었다.
욕정(欲情)이었다.
종정향은 달콤한 미소를 머금었다.
혁련소천이 자신에게 욕정을 느낀 것이 무척 기쁜 듯이......
혁련소천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름답구나. 생각보다 훨씬......."
종정향은 가슴 깊은 곳에서 감당키 어려운 기쁨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녀는 혁련소천의 발 아래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발에
살그머니 입술을 갖다 대었다.
"당신을 위해...... 옥천삼십육법을 시전...... 제음섭양천기대법
을 완성시켜 드리겠어요."
이어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옷을 벗겨 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고마워요."
종정향은 환한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혁련소천의 요대를 끄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아니 무서운 변신이었다.
변해도 어찌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이 또다른 사랑을 시작하면서 묘한 상승작
용을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즉, 배신에 대한 상처가 컸던 만큼 보다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는
묘한 심리현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더구나 새로운 상대는 천하의 혁련소천이 아닌가!
겉보기와 달리 혁련소천의 벌거벗은 나신(裸身)은 하나의 완벽한
조각품이었다.
떡하니 벌어진 어깨, 무쇠처럼 단단해 보이면서 우람하게 불거진
가슴, 온몸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발달된 구리빛 근육......
그것은 남성이 보여줄 수 있는 또 하나 아름다움의 극치(極致)였다.
종정향은 황홀한 표정으로 그의 나신을 쳐다보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종정향은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살그머니 그의 품으로 파고 들
었다.
코를 찔러오는 황홀한 육향(肉香)!
뭉클하고 뜨거운 감촉이 혁련소천의 온몸에 밀착되어 감겨 들었
다.
"으음......!"
혁련소천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
종정향의 입에서 달콤한 내음이 일고, 코에서는 금세 희열에 찬
비음이 흘러 나왔다.
혁련소천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뜨거운 입술을 덮어갔다.
그때 종정향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나를 그의 입에 갖
다 대었다.
"아직...... 안돼요."
종정향은 살그머니 몸을 빼며 비단금침을 가리켰다.
"여기에 반듯하게 누우세요."
혁련소천의 뇌리에 언뜻 한 생각이 떠올랐다.
허나 그는 아무 말 없이 금침 위에 반듯하게 드러 누웠다.
"됐어요. 그리고 가만히 계세요."
종정향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모습이 그렇게 선정적이고 뇌쇄적일 수가 없었다.
혁련소천은 타는 듯한 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종정향은 도화빛 홍조를 떠올리며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옥천삼십육법 중 십팔법(十八法)까지는 남성의 양기(陽氣)를 최
대한 자극시키는 과정이에요."
그녀는 금침 밑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허나 그 양기 중 일점도 팔만사천모공(八萬四千毛孔) 밖으로 새
어 나와선 안 되요.
그녀는 마개를 뽑아 혁련소천의 몸 위에 옥병을 기울였다.
호박색 액체가 황홀한 향기를 뿌리며 그의 몸 위에 뿌려졌다.
"이것은 서천축(西天竺)의 금서각을 이용해 만든 향유예요. 양기
가 모공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해 주지요."
종정향은 하얗고 투명해 보이는 손으로 몸 위에 뿌려진 액체를 골
고루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으음......?"
혁련소천은 갑자기 괴이한 열류가 전신으로 퍼져옴을 느끼며 묵직
한 침음성을 발했다.
열류는 일종의 쾌감이었다.
그는 옥천삼십육법이 색술(色術)의 고도단계임을 알고 있었으나
경험은 처음이었다.
종정향의 섬섬옥수는 그의 전신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쓰다듬고 지나갔다.
"음......."
혁련소천은 그녀의 손길이 스쳐갈 때마다 극도의 쾌감이 솟아오르
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종정향이 그의 몸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여기까지가 옥천일법, 이법(二法)에서 십팔법까지는 손과 혀를
이용해서...... 체내의 양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거예요."
혁련소천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으나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종정향의 두 손이 마치 그림을 그리듯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뿐인가?
그녀의 붉디 붉은 입김은 혁련소천의 몸 위를 미친 듯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으음......."
혁련소천의 몸이 일순 크게 꿈틀거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쾌감이 전신 구석구석에서 불길처럼 피어 올랐다.
종정향의 애무 아닌 애무는 능숙하고 자극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던 한순간 종정향의 뜨거운 입김은 혁련소천의 단전 아래로
거침없이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혁련소천의 몸에서 물결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옥천삼십육법, 처음 그것을 배울 때 종정향은 죽고 싶도록 심한
수치감을 느꼈었다.
허나 이 순간 그 수치스러웠던 일을 행하는 그녀의 가슴은 기쁨으
로 충만해 있었으니......
콩알같은 땀방울이 그녀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졌다.
"음......."
혁련소천은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
올랐다.
문득 그의 눈에 종정향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을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모습
이.......
'이 여인...... 확실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여인이다!'
느낌과 동시에 혁련소천은 그녀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올렸
다.
빨갛게 상기된 종정향의 얼굴 거기에 일순 당혹한 기색이 떠올랐
다.
"아...... 안돼요. 아직 옥천사법도 끝나지...... 음......!"
말이 끝나기 전에 혁련소천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던 것이
다.
다음 순간 입술을 맞춘 상태에서 혁련소천의 음성이 그녀의 귓전
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향아...... 그 따위는 이제 필요없다. 옥천삼십육법이니 제음섭
양천기대법이니 말짱 헛수작들이다.)
심기어전(心氣語傳), 뜻만으로 의사전달이 가능한 전음술 최고단
계가 구사되는 것이었다.
(향아, 우리는 오늘밤 마음껏 운우(雲雨)만 즐기면 될 뿐이다.)
전음이 끝나면서 혁련소천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입 속으로 헤
엄치듯 비집고 들어갔다.
혁련소천의 전음에 태산같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인가?
"으음......."
종정향의 백사같은 두 팔이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이성(理性)의 벽을 허물어뜨린 여인.
그녀의 몸은 금세 불덩이로 변했고, 그 불덩이는 혁련소천의 몸
위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문득 혁련소천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내리고 그 위에 자신의 몸
을 실었다.
곧이어 그는 부드럽고 능숙한 손길로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에 불
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음......."
종정향은 희열에 찬 신음을 토하며 전신을 관능적으로 뒤틀었다.
혁련소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열정적으로 그녀의 몸 속에 욕정(欲情)을 심어 넣었다.
"아아...... 으음......."
종정향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신을 벼락맞은 듯 파르르 떠는가 하면, 때론 뱀처럼 온몸을 미
친 듯이 뒤틀고...... 어느 순간에는 손놀림 몇 번에 까무라질 듯
한 절정의 쾌감을 느끼곤 했으니.......
혁련소천은 색술(色術)에 관한한 무림사상 제일인자(第一人者)임
을 서슴없이 자부하고 있지 않았던가.
종정향은 육체를 도발적으로 꿈틀거리며 혁련소천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의 마지막 유혹이기도 했다.
순간 혁련소천은 천천히, 그러나 완강한 힘(力)으로 그녀의 몸 속
에 진입해 들어갔다.
일순 종정향의 몸이 경직되고 두 눈이 놀람으로 크게 커졌다.
다음 순간 거역할 수 없는 힘(力)의 실체가 사정없이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으나 종정향은 더욱
힘차게 혁련소천의 몸을 끌어당겼다.
신음소리도 없이!
그녀는 애써 웃으며 얼굴 가득 헌신의 기쁨을 담았다.
"기특하구나."
"당신이 기쁠 수 있다면......."
그리고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뒤엉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결코 추하지도 음란하지도 않는 그것은 바로 사랑의 나무(裸舞)였
다.
눈발이 휘몰아치는 밖과는 달리 안에는 때아닌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이 밤(夜), 불길처럼 타오르는 사랑이 있었기에 좋을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종정향은 나른한 피로감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떴다.
"어머......!"
순간 종정향의 눈이 약간 커졌다.
혁련소천이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옷을 입은 채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종정향은 얼굴을 사르르 붉히며 곱게 말했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혁련소천은 빙그레 미소했다.
"조금 전에......."
"깨우시지 않고......."
"그대의 얼굴을 보고 싶었소."
"어머! 짓궂게...... 헌데 제 잠자는 모습이 추해 보이진 않았나요?
"아니오.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었소."
종정향은 그 말에 달콤한 기분을 느끼며 곱게 눈을 흘겼다.
"피...... 그 거짓말......."
혁련소천은 기분좋게 웃었다.
"하하하...... 이젠 일어나야지."
"일어날께요."
종정향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큰일났군요."
"무슨......?"
"제 체내에 있는 현음소정을 어떻게 하죠? 그대로 두면 천요비자
가 수상하게 생각할 텐데......."
혁련소천은 빙긋 웃었다.
"염려 마시오. 현음소정은 이미 이 안에 담겨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품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냈다.
"어머! 그걸! 언제......."
"그대가 자는 동안 빼냈소."
"자...... 자는 동안?"
종정향의 얼굴은 순식간에 홍시처럼 붉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혁련소천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후후...... 천하에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소."
종정향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
이때 혁련소천의 표정이 문득 진지해졌다.
"향아......."
"예?"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할 생각이오?"
"향아는 무조건 당신의 의사를 따르겠어요."
종정향은 애정이 담긴 눈으로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종정향은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당신은 괴팍하고...... 엉뚱해 보이지만 실제 그 누구보다도 진
실하신 분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요."
혁련소천은 빙긋 웃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군."
"진심이에요."
혁련소천은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향아!"
"말씀하세요."
"만약 지금이 밤이고 밖에 아무도 없다면......."
"없다면......?"
"이대로 당신을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가 한바탕 웃고 싶소."
그러면서 그녀의 몸을 덮은 이불을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어멋! 이 무슨......."
종정향은 기절할 듯 놀라 황급히 이불을 끌어 당겼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알몸 그대로였던 것이다.
"하핫핫핫......."
혁련소천은 웃었다.
웃기 전에 보았다.
한 송이 붉은 혈화(血花)가 종정향의 자리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을!
'이제 남은 것은...... 단옥교!'
꽃을 보았기에 좋을 수밖에 없는 그 날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