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2권 제24장 색관(色關)의 의미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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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여인(女人)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언제인가?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아름답기 이를데 없는 한 미녀가 깨끗이 목욕을 한 뒤 정성스레
화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보았다면 단언컨대 이렇게 말하리라.
― 그때가 가장 아름답더군!
②
뽀얗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욕실 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욕실의 중앙에는 커다란 대리석 욕조(浴槽)가 놓여져 있었고, 그
옆에는 무척 고급스럽게 보이는 긴 나무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금 탁자 위에는 한 여인이 엎드려 있었다.
헌데 지금 그녀의 몸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방금 목욕을 끝낸 듯 길고 흰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흑발(黑髮)
은 촉촉히 젖어 있었고, 백옥같은 살결에는 투명한 물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 있었다.
쥐면 으스러질 듯한 잘록한 허리와 그 아래로 놀랍도록 퍼져내려
간 둔부, 군살 한점 없이 늘씬하게 뻗어내린 하체의 화려한 곡
선.......
실로 사내로 하여금 거역할 수 없는 충동과 자극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팔등신 육체의 여인이었다.
지금 그 탁자의 주위에는 또다른 다섯 명의 여인들이 둘러서 누워
있는 여인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물기를 닦고 온몸 구석구석 질좋은 향유(香油)를 발라주는 모습이었다.
문득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앞으로 돌아 누우세요."
탁자 위의 여인은 천천히 돌아 누웠다.
그러자 그녀의 숨막힐 듯한 앞모습이 지체없이 모조리 드러났다.
누워 있음에도 조금도 처지지 않은 채 한껏 팽창되어 솟아 오른
터질 듯한 가슴, 그 위를 도도히 점하고 있는 분홍빛 두 유실(乳
實)...... 알맞게 살이 오른 아랫배에 기름처럼 흘러내리는 물
기...... 그리고 그 아래 촉촉히 젖어 있는 신비의 수림.......
대리석같은 두 다리에서 한점 부끄러움 없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그 은밀한...... 아아...... 그 아찔함이여, 아름다움이여.......
다섯 여인들의 눈빛이 마치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 몽롱해졌다.
여인이 여인에게 반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그 중 한 여인이 얼굴을 사르르 붉히며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흘려냈다.
"종정(宗政) 아가씨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아가씨에게 비한다면 저희들은......!"
말을 하다 말고 주제를 파악했는가?
그녀는 얼굴을 더욱 새빨갛게 물들이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누워 있는 여인은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여전히 한 마디도 없었다.
헌데 문득 여인의 긴 속눈썹 끝에서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뺨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우는가? 아니면 얼굴의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녀의 이름은 종정향(宗政香)이었다.
금년 나이 십팔 세로서 군마천 삼십육세가(三十六世家) 중 종정세
가(宗政世家)의 여인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미모도 그렇거니와, 금기서화(琴碁書畵) 등에
달통한 재녀(才女)로서 종정세가의 소중한 보배가 아닐 수 없었다.
원래 그녀는 반년 후 삼십육세가 중의 하나인 공야세가(公冶世家)
의 소각주 공야진붕(公冶眞崩)과 혼인할 예정이었다.
헌데 반 달 전의 어느 날, 군마천주 감천곡에 의해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지 않으면 안 되었다.
― 공야진붕과의 혼담(婚談)은 없었던 것으로 하라. 그리고 군마
천의 차기천주(次期天主)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토록 하라!
날벼락같은 파혼명령(破婚命令)! 게다가 엉뚱한 사람에게 몸까지 바치라니.......
종정향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산산이 깨어진 보라빛 연정(戀情)...... 거역은 생각조차 허용되
지 않는 군마천의 규율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녀는 군마천의 차기천주로 내정된 사람을 보았다.
오늘 이 시간은 그 사람과의 결합을 위해 몸 단장을 하는 시간인것이다.
그녀는 다섯 여인에게 몸을 맡긴 채 죽은 듯이 미동도 안했다.
"방으로 가시지요."
욕실에서의 일이 끝났음을 알리는 한 여인의 음성이 들렸을 때 종
정향은 그제야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규방 안엔 그윽한 방향(芳香)이 은은히 감돌고 있었다.
동경에 비친 막 화장을 끝낸 여인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종정향이 바라보고 있는 또 한 명의 종정향이었다.
이때 등 뒤에서 조용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일었다.
허나 종정향은 여전히 동경 속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옷자락을 끄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동경 속에 또다른 얼굴이비집고 들어왔다.
일견해서 대단한 미모에 현숙하고 고귀한 인상을 풍겨내는 중년미
부의 얼굴이었다.
중년미부는 종정향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으며 입을 떼었다.
"향아야!"
"......!"
"아름답구나. 이 고모가 봐도 눈이 부실 만큼......."
그녀가 바로 종정세가의 가주인 백의수수랑(白衣水秀郞) 종정혜운(宗正惠雲)이었다.
"모든 마음의 준비는 끝났을 테지?"
종정혜운은 종정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때 종정향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종정혜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짙은 우수가 깔려 있었다.
"고모."
"......!"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야망의 그물에 갇힌 작은 새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가여운
새는...... 그저 이렇게...... 죽어야만 하나요?"
촉촉한 물기를 담은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종정혜운의 표정이 문득 엄숙하게 굳어졌다.
"향아야, 설마하니...... 천주의 명을 거역하려는 것이냐?"
"고모, 염려마세요. 저는 고모의 고충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허나......."
문득 종정향의 두 눈이 불그레하게 충혈되어 갔다.
"허나...... 알면서도 향아는...... 무서워요. 또...... 분노를금치 못하겠어요."
"너 또......."
"염려 마세요. 토끼는...... 사자에게 반항할 수 없어요. 오직 처분만 기다릴 뿐이지......."
실로 듣는 이의 콧등을 시큰거리게 할 만큼 애절한 독백이었다.
종정향은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처연하게 중얼거렸다.
"저의 인생은...... 이제 끝난 거예요."
"......!"
"지난 반 달 동안...... 향아는 강제적으로 그 수치스럽고...... 더러운 행위를...... 습득했어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한 남자의 제물이 되기 위해......!"
"향아야!"
종정혜운의 싸늘한 꾸짖음이 종정향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네가 나의 조카라 해도 함부로 말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말을 하면서 그녀는 보았다.
구슬같은 눈물이 종정향의 뺨 위로 주르룩 흘러내리는 것을!
종정혜운은 너무 심한 말을 했다고 느꼈음인지 문득 부드러운 음
성으로 말했다.
"이번 일만 마치고 네가 소천주의 마음에 들어 첩이라도 될 수 있
다면 종정세가는 지금의 위치에서 급격히 부상될 수 있다. 최소한
삼십육세가의 최우위는 점하게 될 것이다."
종정향은 흐르는 눈물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흐느끼듯 말했다.
"왜...... 왜 꼭 제가 그런 일에 희생되어야 하는 건가요?"
종정혜운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나직이 말했다.
"향아야, 실상 너의 신체는 바로......."
(종정가주, 모든 화는 세 치 혓바닥에서 비롯됨을 명심하시오!)
그때 한 소리의 전음이 종정혜운의 고막을 천둥처럼 진동시켰다.
종정혜운은 창백해지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홍포구마성......!'
그녀는 전음의 주인을 대번에 느낄 수가 있었다.
전음은 다시 들려왔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물러가시오. 뒷일은 노부가 처리할 테니.......)
종정혜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종정향의 어깨를 다독거
렸다.
"향아야, 고모는 바쁜 일이 있어 그만......."
그러면서 그녀는 총총히 밖으로 사라져 갔다.
종정향은 그녀가 사라져 간 문을 멍하니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이때 한 줄기 홍영(紅影)이 종정향의 면전에 불쑥 내려섰다.
홍포구마성 반태서였다.
"흠......."
반태서는 내려서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고 종정향의 얼굴을 뚫어지
게 응시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종정향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
다.
마치 폐부까지 꿰뚫을 듯한 칼날같은 눈빛!
종정향은 태어나서 그렇게 무섭고 끔찍한 눈빛은 한 번도 대한 적
이 없었다.
문득 반태서의 입가에 한 줄기 비릿한 미소가 스쳐 갔다.
"좋아, 훌륭하다. 천요비자(天妖妃子)는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어......!"
이어 그는 음침하게 물었다.
"종정소저, 천요비자가 가르쳐 준 옥천삼십육법(玉天三十六法)은
모두 기억하고 있겠지......?"
종정향은 황망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반태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종정소저는 노부가 어떤 위인인지 잘 알 것이다."
"......!"
"노부를 원망하느냐?"
"......!"
종정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반태서는 약간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모른다. 실상 너의 신체는 무척 특이한 것이지. 만약 공야
진붕이 너와 결혼했다면 한 달도 못 가 죽었을 것이다."
"......!"
"사실...... 네 몸 속에 잠재해 있는 음기(陰氣)는 가히 극(極)에
이르렀다. 그러한 음기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만 명(萬名)에서
한 명도 골라내기 힘들지."
"......!"
"그 중 한 명이 바로 소천주(少天主) 영호공자이다."
"......!"
종정향은 가타부타 한 마디도 없이 듣기만 했다.
반태서는 문득 힘주어 말했다.
"옥천삼십육법 중 한 가지도 빠뜨려선 안 된다. 절대 노부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
"종정세가의 생사(生死)는 오직 너 하기에 달렸다. 그리고 나의 두 눈까지도......!"
그 말에 종정향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반태서는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오늘 밤 자시(子時)에 영호공자가 이곳으로 온다."
"......!"
"기억해라. 거역이나 실수는 절대 용납치 않는다......!"
그 말을 끝으로 반태서는 홀연히 사라졌다.
종정향, 그녀는 두 눈을 스르르 내리깔았다.
'절대...... 벗어날 수 없어.......'
두 방울 눈물이 그녀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체념과 절망이 어우러진 복잡한 빛깔의 눈물이었다.
③
가는 눈발이 희끗희끗 떨어져 내리는 이 밤(夜), 혁련소천은 반태
서의 안내를 받으며 한 채의 전각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반태서는 들어서면서 심각하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영호공자, 모쪼록 노부의 주의를 잊어서는 아니되오."
"......!"
"결코 음란한 방중기교를 배우라는 것이 아니오. 종정향을 도구삼아 채음보양술의 정화라
할 수 있는 제음섭양천기대법(制陰攝陽天氣大法)을 완벽히 터득하라는 것이오."
"음......."
"종정향이 익힌 옥천삼십육법은 영호공자가 펼칠 제음섭양천기대
법의 극성이랄 수 있는 방중비술이오. 그것을 물리치고 천요비자
가 종정향의 몸 속에 심어 놓은 현음소정(玄陰素精)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반태서는 단언하듯 말을 끝맺었다.
"그렇게 되면 단옥교의 단전에 모인 천년금란의 정화도 충분히 흡
수가 가능할 것이오."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소."
반태서는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담았다.
"자, 그럼 노부는 가보겠소."
이어 그는 빠른 걸음으로 전각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혁련소천은 갑자기 참기 어려운 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ㅋㅋ! 제음섭양천기가 어쩌고 어째? ㅋㅋ...... 반태서, 색(色)
의 대조종(大祖宗)이라 할 수 있는 나에게 색술(色術)을 가르치다니.......'
웃음을 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혁련소천의 이마에 힘줄까지 곤두설 정도이니.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으로 색관을 정복한 나이고, 열두 살 때부
터 용노야를 따라 수백 개의 기루(妓樓)를 휩쓸고 다닌 나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그는 어느 방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흐흥! 무림 수천 년사를 통틀어 나를 능가하는 색(色)의 대가가
있다면 내 성(姓)을 갈아치우겠다!'
엄청난 자부심이 아닌가?
헌데 어쩌자고 하필이면 그 방면에 그토록 자신하고 있단 말인가?
혁련소천은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순간 심신을 황홀케 하는 그윽한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콧전으로 스며들었다.
동경(銅鏡)과 미녀(美女)가 있는 바로 그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