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권 제23장 (23/112)

■ 구천십지제일신마제1권제23장편법(便法)그두번째와천금병마(天禁病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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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보라는 어둠을 가득 실은 채 더욱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유유히 천무봉을 내려가고 있었다.

  '적용희산...... 미령심광에 걸린 이상 적용사문 그대는 백 일 이내에 나를 찾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용희산은 죽는다!'

  어둠이 짙어지기 때문인가?

  혁련소천의 걸음이 문득 빨라졌다.

  그가 천무봉을 거의 벗어날 즈음 돌연 탁한 기침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혁련소천은 흠칫하며 기침이 터져 나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눈이 한  자나 쌓인 거대한 바위 옆에 한 노인이 초

  라하게 쭈그리고 앉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혁련소천의 눈썹이 약간 찌푸러졌다.

  기침조차 하지 않고 있으면  영락없이 송장이라 여길 만큼 처참한 몰골의 노인이었다.

  뼈에 껍질을 발라  놓은 듯한 얼굴은 이미  완연한 해골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끝없이 움푹 꺼져들어간 휑한 두 눈, 안

  색은 마치 죽을 날짜라도 잡아 놓은 듯 핏기 한점 찾아볼 수 없었다.

  헌데 노인의  옆구리에는 검(劍)도 아니고  도(刀)도 아닌 괴상한

  무기 하나가 비스듬히 매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길이는 넉 자 가

  량, 굵기래야 기껏 손가락 하나만큼의 가느다란 것이었다.

  혁련소천은 지난 한 달 동안 이런 모습의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걸음을 떼놓았다.

  "이봐 젊은 친구, 쿨룩...... 쿨룩......."

  순간 가래가 끓는 탁한 음성이 혁련소천을 불러 세웠다.

  혁련소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이리 좀...... 쿨룩......."

  노인은 뼈마디가 앙상한 손을 힘겹게 치켜들며 연신 쿨럭거렸다.

  혁련소천은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노인은 흐릿한 눈으로 바위를 가리켰다.

  "나를 좀 부축해서...... 쿨룩...... 앉혀 주지 않겠나?"

  혁련소천은 그렇게 했다.

  "고맙네. 쿨룩......."

  "별 말씀을...... 헌데 병이 심하신 모양이군요."

  노인은 고개를 내두르며 탄식조로 말했다.

  "천형(天形)이야, 지난  백 년 동안  하루도...... 쿨룩...... 이

  놈의 기침이 멈춘 적이 없으니까, 쿨룩...... 쿨룩......."

  한꺼번에 많은 말을 했기 때문인지 그는 여러 차례 고통스런 기침을 토해냈다.

  다음 순간 노인은 문득  괴이한 표정으로 혁련소천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네가...... 영호풍인가?"

  혁련소천은 일순 가슴이 뜨끔했다.

  "저를 어떻게......?"

  "조금 전에 감천주를 만나고 오는 길이네. 그에게서...... 쿨

  룩...... 자네 이야기를 들었지. 쿨룩......."

  혁련소천은 가볍게 검미를 찌푸렸다.

  '예사 노인이 아니었군......!'

  이때 노인의 흐릿한  두 눈에 문득 일점의  기이한 광채가 떠올랐다.

  "영호공자!"

  "......?"

  "자네는 장군부에서 잘못 나왔어. 쿨룩...... 쿨룩......."

  노인은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 심한 기침을 하면서 안색이 더욱

  핼쑥해졌다.

  그는 손등으로 입언저리를 쑥 훔치면서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자네는...... 부귀와 명예를 목숨과 바꾼 거야."

  혁련소천은 신중하게 말했다.

  "노인장께서 어떤 분인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그 말씀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되었다고?"

  "야망 없는 인간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야...... 망......!"

  노인의 눈에 언뜻 괴광이 스쳤다.

  "허허허...... 야망이라...... 쿨룩...... 쿨룩......."

  노인은 웃다 말고 다시 몇 차례 기침을 해댔다.

  이어 노인은 혁련소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두 눈을 야릇하게 빛냈다.

  "어쩌면 감천주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군."

  "......!"

  "잘해보게.  허나......  모든  것이 성숙되기  전에는......  쿨

  룩...... 스스로 몸을 숨기는 게 좋아."

  "......!"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하북(河北)의 천금부(天禁府)에도 한 번 들러 주게."

  노인은 그 말을 하면서 어깨를 약간 흔들었다.

  순간 노인의 몸은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미끄러져 갔다.

  물이 흐르듯 유연하고도 기쾌절륜한 극상승의 신법(身法)!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천...... 금...... 부!"

  혁련소천의 안색이 굳어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천금부라면...... 십지(十地)의 단체 중 천금마지(天禁魔地)......!"

  문득 혁련소천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렇구나! 그 노인은 바로 천금부의 주인이자 십지마황(十地魔皇)이구나.'

  지상(地上)의 십지(十地)를 관장하는 사도(邪道)의 제황(帝皇)들.

  원래 구천(九天)이 서천목산 만마전에  모여 있는 것과 달리 십지

  (十地)는 중원 십팔만 리 도처에 흩어져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그 중  천금마지(天禁魔地) ― 천금부는  하북땅 형산을 중심으로

  주위 수천 리를 관장하고 있는 세력이었다.

  혁련소천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천기개천 사사무에게서 들었던 말이 맴돌

  고 있었다.

  ― 천금병마 담대우리, 그가 병자(病者)라고 무시하지 마라. 그가

  왜 병에 걸렸는지 그 이유를 안다면 천하에서 제아무리 대담한 자

  라도 그 자리에서 까무라치고 말 것이다--

  "그를 만났다고?"

  "그렇습니다."

  감천곡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침중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

  혁련소천은 천금병마 담대우리와 있었던 일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감천곡의 표정은 수시로 변화를 일으켰다.

  이윽고 감천곡은 어두운 표정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담대우리...... 도무지 그 늙은이의 속셈을 짐작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이때 잠자코 있던 홍포구마성  반태서가 특유의 냉막한 음성을 발했다.

  "상대가 누구든지 이쪽의  심중(心中)을 드러내지 않는 한 상대의

  심정 또한 알 수 없는 법."

  이어 그는 혁련소천의 얼굴에 시선을 꽂으며 말을 이었다.

  "당면문제는 담대우리가 아니라 영호공자요."

  감천곡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 두 번째 편법을 쓸 차례인가?"

  반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혁련소천을 최단시일  내에 최강자(最强者)로 만들기  위한 그 두

  번째 계획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감천곡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영호공자, 두 번째 편법이란......."

  문득 그는 말꼬리를 흘리며 주위를 예리한 눈빛으로 쓸어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본 반태서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묻어 나왔다.

  "염려 마시오. 이곳 주위는  이백 명의 고수가 물샐틈없이 에워싸

  고 있소. 또한  공손형이 무형의 강막( 幕)으로 내외부를 차단하

  고 있으니 한 마디 말도 새어 나가지 않을 것이오."

  감천곡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스쳐갔다.

  허나 그는 곧 침중한 안색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영호공자, 자네는  단우비 전주에게 다섯  명의 증손녀가 있음을 알고 있을 테지?"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헌데......."

  "두 번째 편법, 그것은 바로  다섯 손녀 중 막내인 단옥교를 이용하는 것이네."

  혁련소천은 흠칫했다.

  '단옥교.......'

  그는 감천곡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다섯 명의 손녀 중 가장 총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단옥교임을.

  혁련소천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어떻게 이용한단 말입니까?"

  감천곡은 야릇한 눈빛을 번쩍였다.

  "단옥교의 나이가 올해로 열여섯,  허나 그녀는 태어난 이래 지금

  까지 단 한 톨의 음식도 먹은 적이 없다네."

  혁련소천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는 황망히 물었다.

  "그녀는 인간일진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감천곡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자네 폐혈천맥(閉血天脈)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폐혈...... 천맥?"

  "단옥교가 바로 그 폐혈천맥이란  체질이라네. 몸 속의 피가 조금

  이라도 혼탁해지면 즉시 기혈이 막혀 죽게 되지."

  "......!"

  "그렇기 때문에 단옥교는  어려서부터 천년생(千年生) 금란(金蘭)

  의 이슬만 먹으며 커 왔다네."

  "......!"

  "천년금란의 이슬은 천하에서  가장 깨끗한 액체로써 그녀의 피가

  혼탁해짐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네."

  "아......!"

  혁련소천은 탄성을 발했다.

  감천곡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몸에선 늘 그윽한 난향(蘭香)이 풍겨 나온다네."

  "바로 천년금란의 향기인 모양이군요."

  "그렇다네."

  혁련소천은 문득 의혹 어린 표정을 지었다.

  "헌데 두 번째 편법과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감천곡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감돌았다.

  "원래 천년금란은 엄청난 희귀종(稀貴種)으로서 생애 한 번 보기도 힘든 것이지.  허나 놀

랍게도 단우비 전주는 그 귀한 것을 무려 수백 개나 끌어모았다네. 허나......."

  그는 마른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천년금란 자체가 아니라 금란의 꽃에 맺히는 이슬이라

  네. 천하의 그 어떤 영양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지."

  "......!"

  "단옥교는 그 이슬을 장장 십육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복용했

  네. 만약 그녀가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체질이라면 가공할 내력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

  "그렇군요."

  "허나 그녀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폐혈천맥의 체질인지라 금란의

  정화(精華)는 그녀의 단전에 고스란히 뭉쳐져 있을 뿐이라네."

  "......!"

  "만약......."

  감천곡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특수한 비법을 익힌 그 누군가 그녀와 열 번만 관계를 맺는

  다면...... 그녀의 단전에 뭉쳐져 있는 천년금란의 정화를 모조리 흡수할 수 있을 것이네."

  혁련소천은 비로소 확연히 깨달았다.

  편법! 그 두 번째......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혁련소천은 야릇한  흥분이 전신으로 전율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허나 그는 짐짓 당혹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특수한 비법을 익힌 그 누군가라면......?"

  감천곡은 씨익 웃었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혁련소천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감천곡은 애매모호한 미소를 머금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라네."

  "설마...... 그녀를 강제로......?"

  감천곡은 단호하게 머리를 내저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네."

  혁련소천은 알쏭달쏭한 대답에 더욱 짙은 의혹을 떠올렸다.

  감천곡은 희미하게 미소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네. 문제는 간단하니까."

  "그럼......?"

  "자네가 그녀를 처로 맞이하면 되는 것이네."

  "......!"

  "그리고...... 우리는 그 계획을 달성시키기 위해 이미 열두 가지

  의 방법을 모색해 놓았네."

  감천곡은 말을 마치고 반태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반태서는 기다렸다는 듯 냉혹하게 잘라 말했다.

  "실패하면 나의 두 눈을 뽑아 바치겠소."

  "음......!"

  감천곡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감천곡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순간 문이 열리며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십팔구 세나 되었을까?

  화용월태(花容月態)!

  그런 표현이 잘 어울리는 절색의 미녀였다.

  특히 팔등신(八等身)의 미끈하고 풍만한 몸매를 타고 흐르는 미태

  는 사내의 피를 끓게 하고도 남을 만큼 뇌쇄적이었다.

  '아름답구나!'

  혁련소천이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이때 감천곡의 전음이 혁련소천의 귓전에 스며들었다.

  (일천 명의 미녀 중에서 고르고 고른 미녀라네.)

  "......!"

  (자네는 저 여인을  통해서 열흘 동안 채음보양(採陰 陽)의 비법을 익혀야 하네.)

  혁련소천은 경이의 눈빛으로 감천곡을 쳐다보았다.

  감천곡은 담담히 미소하며 힘주어 말했다.

  (두 번째 편법의 완벽한 목적달성을 위해서.......)

  편법 ― 그 두 번째!

  그것은 이상한 방향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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