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19장 천추무상별부(千秋武相別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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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紫禁城).
천하주인(天下主人)인 대명천자(大明天子)가 기거하는 황궁(皇
宮), 그 규모의 방대함과 화려함 등은 극(極)을 넘어 단연 천하의
으뜸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유난히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었다.
이곳은 자금성에서 약간 떨어진 한 객점(客店)으로 칠흑같은 어둠
이 객점 전체를 무섭게 짓누르고 있었다.
헌데 유독 이 층의 방만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탁자 위의 굵은 촉불이 촛농을 뚝뚝 떨어뜨리며 신나게 타오르고
있었다.
탁자 옆엔 백옥 덩이를 깎아 빚은 듯한 절세미소년이 뒷짐을 진
채 타오르는 황촉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파랗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 천곡의 말에 의하면...... 홍포구마성 반태서(盤太瑞)는 황궁에
서의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내가 황궁무고로 들어가는 데 일말의
허점도 없게 한다고 했다!'
문득 그의 두 눈이 불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 포구마성...... 과거 혁련소야가 손꼽은 지자(智者) 중의 한 명
이며 홍의교(紅衣敎)의 교주! 추악한 모습에 꼽추이나 삼국 시대
(三國時代)의 봉추선생을 무색케 할 만큼 대단한 두뇌(頭腦)의 소
유자라고 들었다!'
그의 입가에 문득 괴이한 미소가 감돌았다.
' 후후...... 궁금하군. 무공의 무(武)자도 모르는 줄 아는 나를
어떤 방법으로 황궁무고에 잠입시킬지.......'
혁련소천은 손 하나 까딱 않고 누워서 떡먹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때 날카롭고 짤막한 한 소리 파공성이 일어났다.
동시에 한 장의 종이가 탁자 위에 깊숙이 쑤셔 박혔다.
'드디어......!'
혁련소천은 눈을 빛내며 선뜻 종이를 집어 가다 돌연 동작을 멈췄다.
'아니지! 나는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책버러지이니까.......'
그는 빠르게 염두를 굴린 후 자못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 단단한 나무에 종이가 꽂히다니......."
그러면서 그는 힘들게 종이를 뽑아 들었다.
종이에는 급하게 쓴 듯한 필치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간은 자시(子時)를 알리는 북소리가 난 후부터 축시(丑時)까지!
방향은 열두 개의 후문 중 자경문을 택하시오.
그곳에서 태화루를 돌아 십삼중문(十三中門)을 거쳐 곧장 가면 황
궁무고에 당도하게 될 것이오.
황궁무고 내의 모든 기관 장치는 정지되어 있고 십팔중천문(十八
中天門) 또한 모두 열려 있으니 안심하시오.
무고(武庫)에 당도하면 아홉 개의 석문(石門)이 있으니 그 중 건
문을 택해 봉황금시를 사용하시오.
천겁현오밀경이 그 안에 있을 것이오만 정확한 위치는 알아내지
못했소.
그곳을 나오는 시기는 반드시 사흘 후 자시(子時)를 택하시오.
그럼 행운이 함께 하길......!
홍포구마성 반태서.>
혁련소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이 서찰대로 아무런 저지 없이 황궁무고에 잠입할 수 있다면......!'
그의 눈썹이 일순 묘하게 꿈틀거렸다.
'홍포구마성...... 이 자의 능력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혁련소천은 두 눈을 야릇하게 빛내며 서찰을 황촉불에 가져갔다.
서찰이 재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건 확실히 괴변 중의 괴변이었다.
천라지망(天羅之網)의 철통같은 경계망을 자랑하는 황궁(皇宮)이
요, 쥐벼룩 한 마리의 통과조차 허용치 않는 황궁호위무사(皇宮護
衛武士)들이 아니었던가?
헌데 오늘은 허허벌판도 이런 벌판이 없었다.
도무지 거칠 것이 없었다.
술시(戌時)가 되면 물샐틈 없이 봉쇄되는 자경문이 자시가 넘어도
활짝 열려 있는가 하면, 태화루를 거쳐 십이중문을 모조리 통과할
때까지 단 한 명의 호위 무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실로 괴변 중의 괴변이 아니겠는가?
황궁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밀전(密殿)의 밤은 유난히 적막하다.
혁련소천은 한 채의 웅장 거대한 전각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는 담담한 눈길로 전각 입구에 걸린 편액을 쳐다보았다.
<천추무상별부(千秋武相別府).>
금세라도 살아 꿈틀거릴 듯한 용비봉무(龍飛鳳無)의 웅휘한 필치!
아아! 바로 황궁무고의 또 다른 별칭임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황궁무고...... 이곳에는 늘 금위부의 고수 이십 인(二十人)이 지키고 있다고 들었거늘.......'
혁련소천은 천천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대내 일급 고수 일백 명으로 구성된 황실 친위대(皇室親衛隊)로
서, 황족(皇族)이나 왕가(王家)의 친족들을 죽음으로써 호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그러한 그들이 무려 이십 명이나 호위를 한다면 대내에서 천추무
상별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헌데 어찌된 판인지 오늘은 혁련소천이라는 외인(外人)이 천추무
상별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 명의 금위부 무사도 보이지 않았다.
괴변의 연속이었다.
십팔중천문(十八中天門).
황궁무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죽음의 관문!
그 관문 하나 하나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는 무림인
은 아무도 없었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오직 하나, 지난 이백 년 동안 도합
구십칠 명(九十七名)의 초강고수가 황궁무고에 잠입했으나 살아
나온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헌데 혁련소천 그는 그 죽음의 관문이라는 십팔중천문마저도 그저
일사천리로 통과해 버렸다.
마치 제집 안방을 거닐 듯 그렇게 유유히......!
'홍포구마성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도무지 이럴 수는 없다!'
십팔중천문을 모두 통과한 후 혁련소천이 떠올린 첫번째 생각이었다.
'내가 알기로...... 황궁의 경계를 풀기 위해선 반드시 금위부 대
영반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혁련소천은 문득 가슴이 섬뜩해졌다.
'그렇다면...... 설마 금위부 대영반이 홍포구마성과 어떤 관계를......?'
그런 생각과 함께 또 다른 추측이 뇌리를 스쳐 갔다.
'혹시 감천곡이 오늘같은 날을 위해 금위부 대영반을 미리 포섭해
놓았던 것은 아닐까?'
모두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혁련소천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원형을 이룬 하나의 거대한 석실 안이었다.
둥근 석벽에는 도합 아홉 개의 석문이 있었다.
혁련소천은 맨 오른쪽 석문에 시선을 멎으며 두 눈을 이채롭게 빛냈다.
<건문(乾門).>
석문에는 지력으로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또한 석문의 중앙에는 열쇠 모양의 문형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로 저곳이군!'
혁련소천은 건문 앞에 다가섰다.
이어 은형사철로 만든 또 하나의 봉황금시를 석문 중앙에 맞춰 보았다.
순간 육중한 굉음이 일며 석문이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그곳은 그야말로 엄청난 크기의 서고였다.
사방의 벽면에는 작게 잡아도 백 개는 됨짓한 서가(書架)가 들어
서 있었고, 각 서가마다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엄청난 분량
의 책자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마치 온 천하의 책이란 책은 모두 수집해 놓은 것 같구나......!'
혁련소천은 경악과 함께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숫자만 세는 데도 하루종일 걸리겠다. 여기서 무슨 재주로 천겁
현오밀경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의 입에서 절로 묵직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최소한 내가 만마전에서 활동
하기 위해선 일곱 노야의 무공 외의 다른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다. 우직하게 이것을 모두 뒤진다면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삼 일(三日)뿐이니
까.......'
그는 문득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두 눈을 감으며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철겁현오밀경...... 천이백 년 전 서하국의 국왕에게 전해 내려
온 비전무학...... 서하국 멸망 이후 떠돌아다니다가 황궁무고로
흘러 들어온 것은 불과 이백 년 전.......'
그는 눈썹을 모았다.
'천겁현오밀경...... 분명히 범어(梵語)로 돼있을 것이다. 그리
고...... 천이백 년 전이면 종이가 없었을 테니 양피지나 죽편(竹
片) 따위에 쓰여져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그의 뇌리에 문득 천기개천 사사무의
말이 떠올랐다.
― 그 서하국의 돌대가리 국왕들은 천겁현오밀경을 고작 선심 단
련 하는 데만 사용했지. 그러면서 주제에 그것의 분실이나 남이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남이 모르는 방법으로 천겁현오밀경을 보존
했단다. 때문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설사 그것을 다른 사람이 얻
어도 절대 해독할 수 없다고 한다!
― 아마 천겁현오밀경은 황궁무고로 들어간 모양이다만 아무도 그
것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설사 얻었다 해도 비밀을 풀 수
없을 테니 얻지 못한 것과 진배없지. 클클...... 허나 이 사사무
어른이라면 코딱지 한쪽 뽑아 내기 전에 간단히 해독할 자신이 있다!
'만약 내가 서하국의 국왕이었다면......?'
혁련소천은 눈을 떴다.
'특수한 약물을 쓴다......?'
그는 고개를 이내 내둘렀다.
'안 된다. 볼 때마다 다시 약물을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을 테니까.......'
그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빌어먹을...... 아무 것도 아닌 무공비급 하나가 이 혁련소천의
머리를 이토록 어지럽히다니.......'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어 천천히 거닐며 서가를 두루 살펴보기 시작했다.
각 서가는 대단히 희귀한 무공비급들이 유(儒), 불(佛), 선(仙),
도(道), 속(俗) 및 유파(流派)별로 분리되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한 각 서가에는 서가명(書架名)을 적은 팻말이 각각 하나씩 붙어 있었다.
'쯧쯧! 정말 아깝군. 이 출중한 무공들을 이렇게 썩히다니.......'
혁련소천은 각 서가를 둘러보며 내심 탄식을 금치 못했다.
'만약...... 이것들 중 삼분지 일만 풀어놔도 천하의 무학수준이
크게 달라질.......'
내심 중얼거리다가 말고 돌연 그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우측의 여덟 번째 서가, 거기에 붙어 있는 팻말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천축오지무전서가(天竺奧地武典書架).>
'이곳의 서가가 천축 무공......?'
그는 서가 전체를 쭉 훑어보았다.
어림 잡아 일만 권은 됨짓했다.
'여기서 종이로 된 책자를 뺀다면......?'
혁련소천의 시선이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남는 것은 천여 권 정도! 이렇게 되면 의외로 쉬워진다!'
문득 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어렸다.
'사흘...... 천여 권의 책자를 모두 읽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이어 혁련소천은 맨 상단에서 양피지와 죽편으로 된 책자만 뽑아
살피기 시작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무섭게 빨랐다.
그는 마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장의 수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뉘라서 상상이나 하겠는가?
지금 눈으로 스치는 책자의 내용이 모조리 혁련소천의 뇌리에 새
겨지고 있음을.
심천독경광상술(心天讀經廣想術)!
책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는다는 천기개천 사사무만의 독문비공
(獨門秘功), 바로 그것이 혁련소천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이틀이 지났다.
혁련소천은 점차 초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권만 남기고 모두 읽었어도 천겁현오밀경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헛다리만 짚다가 끝나는 게 아닐까?'
혁련소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맨 하단 구석에 꽂힌 마지막 한 권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두께가 거의 한 자에 가까운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속 썩이는군. 겉모양을 보니 천겁현오밀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멀겠다!'
허나 혁련소천은 드디어 그 책을 뽑았다.
<천방옥요비전결람(天房玉要秘傳訣覽).>
겉장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거...... 혹시?'
혁련소천은 언뜻 이상한 예감을 느끼며 서둘러 첫 장을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책장엔 전라(全裸)의 남녀가 묘한 자세로 뒤엉켜 있는 춘화도(春
花圖)가 그려져 있지 않은가?
'비...... 빌어먹을......!'
혁련소천은 절망감을 느끼면 빠르게 다음 장을 넘겨 보았다.
장이 넘어갈수록 점점 더 진한 내용의 그림이 혁련소천의 눈을 아
프게 자극시켰다.
천방옥요비전결람, 그것은 한 마디로 천축에 전해 내려오는 모든
방중비술(房中秘術)이 기록된 희대의 음서(淫書)였던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혁련소천은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천겁현오밀경...... 과연 황궁무고에 있긴 있는 것일까?'
불현듯 그런 의구심마저 치솟았다.
허나 그는 이내 탄식했다.
'틀렸어......! 설령 있다고 해도 이젠 찾을 시간이 없다. 남은
시간은 겨우 하루뿐이거늘.......'
혁련소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방옥요비전결람을 원래의 자리에 가져갔다.
이어 막 꽂으려는 순간 돌연 혁련소천은 멈칫하며 코 끝을 괴이하게 씰룩였다.
천방옥요비전결람에서 문득 기이한 향기가 풍겨 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 냄새...... 분명히 사라용뇌향(沙羅龍腦香)!'
문득 그의 눈에서 한 줄기 기광이 흘러 나왔다.
'가뢰산...... 분명히 서하국의 영토 내에 있던 산이다! 또한 서
하국에서는 사라용뇌향으로 책이나 왕족의 시체가 부패되는 것을
방지했다고 들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천기개천 사사무였다.
혁련소천은 천방옥요비전결람을 두 손으로 힘껏 쥐었다.
'바로 이거다! 분명히 이 책에 문제가 있다!'
그는 문득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어 그는 천방옥요비전결람의 겉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책 자체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그렇다면......?'
그는 눈을 감았다.
이어 책자에 적혀 있는 글자를 모조리 되뇌기 시작했다.
혁련소천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뜬 것은 그로부터 꼭 두 시진이 지나서였다.
'몰랐다!'
문득 그의 입언저리에 신비스런 미소가 배어 나왔다.
"후후후...... 설마하니 서하국의 국왕들은 이렇게 기묘한 방법을 사용했을 줄이야......!"
혁련소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괴이한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천방옥요비전결람...... 그 첫 머리 글자는 곧 천(天)!"
천(天)!
"현록위박(玄鹿爲膊) 식지수오백세정력충천(食之壽五百歲精力沖天)의...... 현(玄)!"
현(玄)!
"네 번째줄...... 오묘천기잉(奧妙天氣孕) 환락일체(歡樂一切)의 오(奧)!"
오(奧)!
"밀운불우(密雲不雨) 백아불능(百我不能)의...... 밀(密)!"
밀(密)!
"경락혈기(經絡血氣) 유십이경(有十二徑) 영십오격(永十五格)의 경(經)......!"
경(經)!
"첫 머리 글자를 모두 조합하면 천...... 겁...... 현...... 오...... 밀...... 경!"
천겁현오밀경―!
"이 책...... 완벽한 천겁현오밀경의 진본(眞本)이다......!"
혁련소천의 눈에서 신비스런 광채가 흘러 나왔다.
"지금 이백 년 이래...... 이 책에는 누구의 손길도 묻지 않았다.
즉, 천하에 천겁현오밀경을 익힌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결
론......!"
그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어렸다.
"전에도 없었지만 후에도 이 천겁현오밀경을 익힌 사람은 나타나
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미 내가 얻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의 허락 없
이는 그 누구도 천겁현오밀경을 익히지 못할 테니까......."
혁련소천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책자를 품 속에 넣었다.
바로 그때 밖으로부터 아련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시를 알리는 북소리......!'
그때가 바로 혁련소천이 황궁무고에 들어온 지 꼭 삼 일째 되는 때였다.
그는 조금도 서두름 없이 밖으로 걸음을 떼 놓았다.
<자경문.>
한 인영이 달빛을 받으며 유유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혁련소천이었다.
황궁무고를 벗어나 자경문 밖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은 들어갈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혁련소천은 너무도 한가롭게 자금성을 빠져나온 것이다.
혁련소천은 잠시 하늘을 쳐다본 뒤 서서히 걸음을 떼 놓았다.
헌데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그의 귓전에 불쑥 스며들었다.
(수라마영입니다.)
혁련소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수라마영의 전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조사해 본즉...... 금위부 대영반 금철성(金鐵成)은 홍포구마성
반태서의 동문사제(同門師弟)임을 알아냈습니다. 허나 황궁에서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혁련소천의 눈에 짧은 섬광이 스쳐 갔다.
'역시 짐작이 맞았군!'
수라마영의 전음이 은근한 어조를 띠고 들려 왔다.
(대종사님. 천겁현오밀경은......?)
혁련소천은 씨익 웃기만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라마영은 괴소를 흘렸다.
(후후후...... 역시 대종사님이십니다. 하기야...... 대종사님의
능력으로 얻지 못할 것이 지상에 존재할 리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참...... 대종사님께서는 이제부터 행동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
(구천 중의 자소천(紫 天)에서 감천곡이 대종사님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고 대종사님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혁련소천의 눈썹 끝이 가벼운 움직임을 보였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저희 형제들이 있는 이상 그 누구도 대종사
님의 곁에 접근할 수 없을 테니까요.)
혁련소천은 그제야 처음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게 아니오.)
(......?)
(황궁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예?)
(그 귀한 곳을 드나들면서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쉽구려.)
"......!"
수라마영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 자소천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자겠다.
혁련소천의 말에 바로 그러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수라마영의 괴소를 흘렸다.
"후후후......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원하신다면 황제의 침소라도 비워 놓겠습니다."
"황...... 제?"
혁련소천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 순간 그는 하늘을 우러르며 상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그것은 쏟아져 내리는 달빛만큼이나 밝고 환한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