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권 제14장 (14/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14장 무형천궁(無形天弓)

━━━━━━━━━━━━━━━━━━━━━━━━━━━━━━━━━━━

  지난 삼 일 간은 줄곧 폭우가 쏟아졌다.

  찌는 듯한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 주는 비......  이 비가 그치면

  가을(秋)이 시작되려나?

  천우헌의 정원 내에 있는 꽤  넓은 인공 연못, 그 옆의 우아한 정

  취를 풍겨 내는 팔각 정자에 한 소년이 걸터앉아 푸른빛 낚싯대를

  연못에 드리우고 있었다.

  집안의 연못에서 낚시질이라니......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이 아닌가?

  허나 그 우스운 일을 하고  있는 혁련소천의 표정은 이 순간 그야

  말로 진지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낚싯대 끝을 쏘아보며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마

  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낚으려는 듯 몹시 신중했다.

  그러나 그가 쏘아보는 낚싯대의  끝은 언제까지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타는 듯한  노을을 받아서인지 혁련소천의  눈빛은 더욱 진지하게

  불타올랐다.

  낚싯대를 드리운 채 그는 꼬박 세 시진을 그러고 있었다.

  "영호공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때 혁련소천의 등 뒤에서 컬컬한 음성이 울렸다.

  바로 그 순간, 혁련소천은  낚싯대의 끝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걸렸다!"

  혁련소천은 탄성을 내지르며 낚싯대를 힘껏 잡아챘다.

  그러자 팔뚝만한 비단잉어 한 마리가 낚싯줄에 걸려 따라왔다.

  "하하...... 요놈! 드디어 걸렸구나!"

  혁련소천은 퍼덕거리는 비단잉어를 옆의 바구니에 집어 넣으며 유

  쾌한 웃음을 발했다.

  이때 한 황의노인이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너털웃음을 쳤다.

  "허헛...... 정원의 연못에서 낚시질이라...... 이 늙은이가 이해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군."

  "아, 노인장께서 오셨군요."

  혁련소천은 그때서야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황의를 걸친 그 노인은 다름 아닌 감천곡이었다.

  감천곡이 장군부에 온 지도 어언 닷새, 그간 감천곡은 영호대인의

  배려로 혁련소천과 매일 같이 있다시피 하고 있었다.

  감천곡은 웃음띤 얼굴로 혁련소천을 바라보았다.

  "영호공자, 낚시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가?"

  혁련소천은 눈에 이채를 담고 되물었다.

  "노인장께서도 어제 한 시진 동안 이곳에서 낚시를 해보셨지요?"

  이 무림에 군마천주 감천곡을 노인장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언컨데 혁련소천 한 명뿐이리라!

  허나 감천곡은 왠지 그런 칭호가 그다지 싫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감천곡은 껄껄 웃었다.

  "헛헛...... 공자의 권유대로 하긴 했었지만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더군."

  혁련소천은 씩 웃었다.

  "맨 처음...... 저는 한 시진에 열 마리를 잡았었죠."

  그는 바구니 속의 비단잉어를  다시 연못으로 내던지며 말을 이었다.

  "허나 지금은 세 시진에 한 마리도 낚기 어렵습니다."

  감천곡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런가?"

  "저는 잡은 고기를 모두 다시  놔줬는데 한 번 혼이 난 놈들은 다

  시는 미끼를 물지 않는가 보더군요."

  "흠......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어쩌면 그놈들은 다른 놈들에게 주의를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주의를......?"

  "밖에서 낚시하는  인간의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말라고 말입니

  다."

  감천곡은 그 말에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재미있는 말이군."

  허나 혁련소천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낚시질할 때보다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미있지요. 어쩌면 인간의 삶도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인지

  도 모르고요."

  감천곡의 얼굴에서 일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연못...... 물고기...... 세상...... 인생.......'

  그는 갑자기 머리 속이 혼란해짐을 느꼈다.

  '뭔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듯한데......?'

  그는 혁련소천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마치 그에 대한 해답을  혁련소천의 표정에서 찾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이때 혁련소천은 천천히 낚싯대를 거두어 들였다.

  감천곡은 흠칫 물었다.

  "왜...... 그만두려나?"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떤  낚시꾼이 와도 이곳의 물고기만은  낚지 못할 것입니다."

  "그...... 그럴 테지."

  감천곡은 얼떨결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알 만하군. 어째서 감형이 공자에게 그토록 반했는지......."

  이때 허공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혁련소천과 감천곡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동시에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한잎 낙엽이 떨어져 내리면서 두 개로 나뉘어지는 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 맺혀졌다.

  헌데 이 무슨 조화인가!

  둘로 떨어지던 낙엽이 다시  네 개로...... 또다시 여덟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그것들은 이미 가루로 화해 있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가루가  떨어져내린 바로 그곳에 한 인영이 환

  영처럼 신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특징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마의(麻衣)의 촌로(村老)였다.

  허나 그가 나타날 때 보여준  신법은 이미 그가 평범한 촌로가 아

  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평범한 것은 가장 뛰어난 것과도 통하는 법!'

  혁련소천은 마의노인을 보는 순간 대번에 그렇게 느꼈다.

  마의노인는 왼손에 손바닥만한 활(弓) 하나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장난감처럼 예쁜 은빛 활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감천곡은 반색하며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어떤가, 공손형(公孫兄)?  노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할 테지?"

  마의노인은 혁련소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노부가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그런지 모르지만 영호공자는

  너무 미남이야. 그게 마음에 들어."

  감천곡은 그 말에 기대 어린 눈빛을 번쩍였다.

  "그렇다면 공손형은......?"

  "찬성이네. 노부는  전날 자네가 제안했던  의견에 무조건 찬성이네......!"

  감천곡의 얼굴에 일순 만족스런 미소가 흘렀다.

  "후후...... 내 그럴 줄 알았네."

  이어 그는 혁련소천을 쳐다보며 말했다.

  "영호공자, 이 친구는 노부와 각별한 사이이며, 섬서성 천궁문(天

  弓文)의 문주 무형천궁(無形天弓) 공손무외라는 위인일세."

  혁력소천은 낚싯대를 내려놓고 정중히 포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공손무외는 수중의 활을 만지작거리며 설레설레 고개를 내둘렀다.

  "별로 가르칠 것도  없소. 노부의 특기래 봐야  고작 활줄을 퉁겨

  계집의 치마끈이나 끊어 그곳이나 구경하는 재주밖에 없으니까."

  혁련소천은 빙긋 웃었다.

  "언제 시간이 나면 그것도 배워 보고 싶습니다."

  "헛헛...... 공자의 외모면 그런 재주를 안 부려도 계집들이 스스로 치마를  내려 보여줄 게

요. 그렇게 따져 보면 공자가 오히려 나보다 한수 위라고 말할 수 있지."

  공손무외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여 댔다.

  '무형천궁 공손무외...... 생각보다 재미있는 위인이군!'

  혁련소천은 내심 생각하며 담담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때 감천곡이 혁련소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영호공자, 잠시 자리에 앉게. 내 할 이야기가 있네."

  순간 공손무외가 혀를 차며 급히 손을 내둘렀다.

  "쯧쯧...... 이곳은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이야기할 장소가 못 되네."

  감천곡은 빙긋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떨어지는 낙엽을 모두 가루로 만들면 되지 않나?"

  공손무외는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휴...... 그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야. 차라리 낙엽을 한꺼번에

  떨어뜨려 아예 소리를 없애 버리는 게 낫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활줄을 벼락같이 퉁겼다.

  순간 요란한 진동음이 사위를 떨어 울렸다.

  "...... 억......!"

  뭔가 부러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다급한 신음성이 근처의 한 나무 위에서 동시에 터졌다.

  공손무외는 눈을 이상하게 뜨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비명 지르는 낙엽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인 걸?"

  혁련소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낙엽이 오래 묵어 영통한 모양입니다."

  "허허...... 그런 것 같소. 아마 한 만 년은 묵은 낙엽인가 보오."

  공손무외는 자못 감탄을 짓더니 재차 활줄을 퉁겼다.

  허나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공손무외의 눈에 언뜻 기광이 스쳤다.

  "흠, 질긴 낙엽이군. 이런 낙엽은 좀 골치 아픈 것이지......!"

  이어 또다시 활줄을 퉁기려는 순간 돌연 감천곡이 빠르게 제지했다.

  "그만두게. 우리가 천우헌으로 들어가면 그 뿐이니까."

  공손무외는 활에서 손을 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일세! 아주 동감이야. 이곳에 더 있다가는 낙엽 귀신이 노부

  에게 철천지 원한을 품을 것 같네."

  이어 그는 지체없이 천우헌을 향해 신형을 쏘아 갔다.

  감천곡은 혁련소천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며 말했다.

  "우리도 들어가세."

  "좋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감천곡은 혁련소천과 더불어 꺼지듯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바로 그 시각, 정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나

  무 위에 한 인영이 나뭇가지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영호검제였다.

  그는 감천곡이 들어간 천우헌을 응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과연 만마전의 고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이어 그는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으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이구...... 엉덩이야! 빌어먹을 셋째놈...... 어디서 저런 괴

  물들을 끌고와서 이 형님의 귀하신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하다니......!"

  영호검제는 문득 어느 한쪽을 불만스런 눈으로 째려봤다.

  "빌어먹을...... 이 귀여운 동생이 당하는 걸 첫째 형이란 위인은 구경만 하고 있다니...... 쯧

쯧! 형제간의 의리가 이렇게 없어서야 이거 정말 못해 먹겠군!"

  그는 엉거주춤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 더 앉아 있다간 엉덩이가 남아나질 못하겠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은 비스듬히 미끄러지듯 허공을 갈랐다.

  영호검제의 신형이 막 사라진 순간 동시에 그가 누워 있던 나뭇가

  지가 다섯 토막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그는 잘라진 나뭇가지 위에 누워 있었단 말이 아닌가?

  이때 정자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꽃밭에서 한 인영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영호환도였다.

  그는 영호검제가 있던 나무를 쳐다보며 담담한 미소를 머금었다.

  "둘째 녀석, 의외인 걸......? 자칫 잘못했다간 이 큰형님의 체면이 말씀이 아닐 뻔했어......!"

  그는 다시 천우헌으로 시선을 옮겼다.

  "헌데...... 셋째  녀석은 진정  구천십지만마전에 뛰어들 생각인

  가......?"

  그의 입가에 문득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잘해 봐라, 셋째! 기왕 뜻을 세웠으면 초지일관(初志一貫)! 끝까

  지 밀고 나가는 것도...... 엇!"

  중얼거리다 말고 그의 눈이 아연 커졌다.

  갑자기 온몸이 근질근질해졌던 것이다.

  "이...... 이제 보니 둘째 그놈이...... 내 몸에 이를......!"

  그는 느닷없이 머리와 온몸을 마구 긁기 시작했다.

  "내 당장 둘째 놈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목욕탕에 처넣어 버리겠다!"

  영호환도는 신경질적으로 지면을 박찼다.

  그가 쏘아 가는 방향은 영호검제가 사라져 간 바로 그 방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