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8장 천문-천하최강(天下最强)의 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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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두......
산동성(山東省)의 어느 관도 위를 일진의 기마대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비록 십여 기(騎)에 불과했으나 그 위용은 아마 천군만마(千軍萬
馬)가 질주하듯 위풍당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또한 그들 십 기의 중앙에는 정교하고도 화려한 순금색 팔두마차
(純金色八頭馬車)가 미끄러지듯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에는 금빛 깃발이 양쪽으로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장군부(將軍府)를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천간산을 떠나 온 장군부의 무사들이었다.
사도진악은 붉은 적토마에 몸을 싣고 마차 옆에 바짝 붙어 달리고
있었다.
때는 석양 무렵이라 붉게 타오르는 황혼 속에 천지간은 온통 핏빛
으로 채색되고 있었다.
사도진악은 문득 눈을 들어 전방을 응시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거대한 산악
이 시야에 쏘아져 들어왔다.
사도진악의 두 눈 깊은 곳에 한 줄기 기이한 광채가 솟아올랐다.
'태산(泰山) 천극봉(天極峯)...!'
이 무렵 마차 안의 혁련소천은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잠
겨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의 미간에는 어쩐지 착잡한 기운이 어려 있
었다.
이때 그의 귀로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 왔다.
(대종사님, 태산의 천극봉입니다.)
(알고 있소.)
(어떡하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갔다 올 생각이오.)
혁련소천은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나의 목적이 모두 이루어질 때까지는 천문(天門)을 철저히 봉쇄
시켜야 하니까.......)
그는 좌측으로 난 창(窓)으로 힐끗 시선을 던졌다.
(지금은 유시(酉時), 한 시진 후 무진현(武進縣) 대성루(大成樓)에서 봅시다.)
한 쌍의 부리부리한 눈이 창 밖에서 크게 끔벅거렸다.
(알겠습니다.)
(한 시진 내에 무진현에 당도하려면 말의 속도를 한 푼 정도 더해
야 될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눈은 창 밖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우렁찬 외침이 천둥처럼 터져 나왔다.
"모두 말의 속도를 한푼 정도 더하도록 하라!"
놀랍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사도진악이었다.
혁련소천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기이체현현도(以氣離體玄玄道).......'
내심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순간 그의 감은 두 눈을 통해 한 노
인의 모습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양 손, 양 다리와 두 눈마저 없는 마치 뭉퉁한 고깃덩어리
와 같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사후(邪侯) 금자생(琴子生)......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단숨에
혈해(血海) 속에 처넣을 수 있는 어른.......'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 분 금노야(琴老爺)의 모든 것이 내 몸 속에
깃들어 있다!
부르르......
혁련소천의 전신이 순간 폭풍을 만난 듯 거센 경련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 토록 준미하던 얼굴이 졸지에 시체처럼 잿빛을 띠었다.
호흡의 수를 줄인다.......
전신을 공(空)으로 만들어 이체(離體)의 공(攻)을 돕는다.......
스스스스......
혁련소천의 백회혈(百會穴)에서 한 가닥 희뿌연 기체가 스며 나왔
다.
그 희뿌연 기체는 스며 나오기 무섭게 하나의 사람의 형상으로 뭉
쳐지기 시작했다.
차츰 완연한 형상을 드러내는 그것은 바로 혁련소천의 모습이었
다.
이 무슨 통천경악할 괴사(怪事)인가?
믿을 수 없게도 인간의 몸 속에서 또 하나의 인간이 탄생된 것이
었다.
분리되어 나온 혁련소천은 앉아 있는 또 하나의 혁련소천을 쳐다
보며 빙긋 웃었다.
'이기이체현현도...... 이것을 익힌 나는 두 개의 목숨을 갖고 있다.'
내가 죽는다 해도 또 하나의 신체가 있는 이상 나는 재생한다.
단지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이기이체현현도를 사용할 수 없을 뿐이다.
혁련소천은 문득 창가를 쳐다보았다.
창가의 미세한 틈을 통해 그의 신형은 이내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태산 천극봉.
막 드리워지는 어둠이 그 운자를 조금씩 뒤덮어 가고 있었다.
그 어둠을 뚫고 비조처럼 천극봉을 향해 날아오르는 한 인영이 있었다.
유성(流星)이 흐르듯 놀라운 속도로 공간을 압축해 온 인영은 순
식간에 천극봉 정상을 밟고 우뚝 몸을 세웠다.
그는 다름 아닌 혁련소천이었다.
"사 년 만에 돌아왔군."
혁련소천은 감회 서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극봉 정상에 있는 기이한 분위기의 커다란 호수는 푸르다 못해
검게까지 보이는 벽수(碧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순간 호수의 수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파문이 수없이
일고 있었다.
"녀석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혁련소천은 호수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문득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두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비행하
고 있었다.
"잘됐어."
번― 쩍!
순간 혁련소천의 소맷자락에서 가느다란 혈선(血線)이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끄아악!
기세 좋게 날아가던 두 마리의 독수리는 혈선에 몸이 관통되면서
처절한 괴성과 함께 선후로 호수 속으로 빠졌다.
다음 순간 독수리가 떨어진 곳에서 시뻘건 핏물이 쫙 번지는가 싶
더니 이어 허연 뼈만 드러낸 독수리가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설명은 길지만 이 모든 일은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것이
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혁련소천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려웠
다.
"사망혈리(死亡血鯉)...... 저 놈들에게 걸리면 무쇠 덩어리도 남
아나지 못한다."
그의 눈에 문득 차디찬 한광(寒光)이 솟구쳤다.
"두고봐라! 그 일만 규명되면 하토궁(蝦土宮)의 놈들은 모조리 사
망혈리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혁련소천은 대뜸 호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 녀석들...... 나 혁련소천의 몸은 너희가 먹기에 너무 질기니
단념하도록 해라......."
동시에 그의 신형은 물방울 하나 퉁겨 내지 않고 빨려들 듯 호수
속으로 사라져 갔다.
석실(石室).
사방 넓이가 족히 백여 장은 됨직한 그곳은 차라리 하나의 광장이
었다.
석실의 한 쪽에는 일곱 개의 관(棺)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관 앞에는 각기 하나의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그 제단 위에는 위
패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혁련소천은 그 중 맨 우측의 위패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첫번째 위패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혈뢰사야(血腦邪爺) 혁련후(赫輦候) 신위(神位).>
위패에는 그런 글이 쓰여 있었다.
"사 년 만에 뵙습니다, 혁련노야......."
혁련소천은 위패를 바라보며 감회 서린 음성을 말했다.
"지난 사 년 동안 소천은 무척 바빴습니다. 그 결과 끝내 귀곡천
류하에서 멋진 고기 한 마리를 건졌습니다."
그의 두 눈에 문득 영활한 빛이 솟아났다.
"소천...... 아직도 혁련노야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순간 혈뢰사야 혁련후가 입버릇처럼 떠들어 대던 말들이 주마등처
럼 혁련소천의 뇌리를 스쳐 갔다.
― 교활하라.
― 잔인할 정도로 영리하라. 허나 남에게 드러내지는 마라.
― 네가 적으로 간주하거나 너를 배신할 자는 두 번 다시 네 앞에
세우지 마라.
"그리고...... 노야께서 주신 십팔천혈뢰마서(十八天血腦魔書)
에...... 거기에 수록된 신계(神計), 귀계(鬼計), 마계(魔計), 악
계(惡計), 혈계(血計), 살계(殺計) 등의 마도십팔계(魔道十八計)
도 모두 이 소천의 몸에 스며 있습니다."
"노야...... 당신과 내가 비록 피는 다를지언정...... 노야는 성
도 없는 내게 혁련의 성을 주신 분......."
혁련소천은 잠시 무거운 시선으로 혈뢰사야 혁련후의 위패를 바라
보았다.
"노야, 걱정 마십시오. 구천십지제일신마 단우비...... 무림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그에게 저는 도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이 일순 태양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나 혁련소천의 이름과 전부를 걸
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실로 하늘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위대한 야망(野望)이 아
닐 수 없었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발길은 곧 두 번째의 위패 앞으로 향해졌다.
<앙천묵제(仰天墨帝) 희여송(希如松) 신위.>
"희노야...... 당신은 말했습니다."
― 소천, 너는 나의 무공을 이어 받았으나 나의 제자는 아니다.
― 네가 단우비를 꺾기 위해 마음 먹은 이상 무공이나 배분으로
네 위에 존재할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마라. 아니, 고개조차 숙이지 마
라.
"당신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소천이 당신 앞에 무릎 꿇는 것을
용납치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소천은 무릎 꿇지 않겠습
니다."
앙천묵제 희여송의 위패를 바라보는 소천의 얼굴에 은은한 흠모의
기색이 떠올랐다.
"희노야, 당신의 기도(氣度)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것, 허나...솔
직히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문득 고소를 지었다.
"후후...... 만약 제가 단우비를 꺾지 못하면 죽어서 어찌 당신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저를 위해 전신 내공과
심지어 생명까지 버렸거늘...... 그런데도 실패한다면 당신이 제
게 물려준 천하제일강기(天下第一 氣) 살인마벽 천하제일강기 살
인마벽."
세 번째 위패!
<사후(邪侯) 금자생(金子生) 신위.>
털썩!
혁련소천은 그 위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금노야...... 희노야께서는 제가 천하의 누구 앞에서도 무릎 꿇
지 말라 했으나 오직 두 분 혁련노야와 금노야 앞에서만은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위패를 쳐다보는 그의 눈썹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혁련노야는 제게 성을 주셨고 금노야는 바로 생명
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그의 두 눈에 뽀얀 물안개가 어렸다.
"오늘...... 이기이체현현도를 전개하며 금노야를 생각했었습니
다."
소천의 망울진 눈물 속에 잠시 사지가 없고 두 눈이 없는 참혹한
모습의 괴인이 투영되었다.
순간 그의 입가가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다.
"금노야께서 저술하신 사환천(邪幻天)의 일백팔기비공록(一百八技
秘功錄)이 비록 이 세상에서 소멸되긴 했지만...... 그 내용은 이
소천의 머리 속에서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금노야, 욕하실 지 모르겠으나...... 이제 일백팔기비공록에 관
한 한 금노야보다 한 수 위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감히 자부합니
다."
혁련소천은 천천히 일어섰다.
이어 그는 세 번째 위패를 향해 마지막 눈길을 던졌다.
"손녀를 찾아내라 하신 금노야의 마지막 부탁...... 전 중원을 모
조리 뒤져서라도 반드시 완수해 드리겠습니다."
<무풍마간(無風魔竿) 쌍비람(雙飛藍) 신위.>
혁련소천은 네 번째 위패를 보며 한 인물을 회상했다.
쌍비람...... 항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노인...... 두 눈이 언
제나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던 그는 항상 술병과 낚싯대를 쥐고 다
녔었다. 그것도 정해진 듯 언제나 왼손에는 술병, 오른손엔 낚싯
대를......
그는 혁련소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혀꼬부라진 음성으로 늘 이렇
게 말했었다.
― 이놈아, 나 쌍비람이 주정꾼이라고 얕보지 마라.
― 내 무쌍마영(無雙魔影)의 경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구천십지제
일신마 단가놈에게 두어 수 접어주고도 이길 수 있고.......
― 이 낚싯대 하나면 구주팔황(九州八荒)을 통째로 낚을 수 있다,
이놈아.......
"한 가지 사무치는 한(恨) 때문에 평생을 술과 살아야 했고 무림
에 조금의 이름도 남기지 못한 분......."
혁련소천의 눈빛이 음울하게 변해 갔다.
"쌍노야...... 염려 마십시오. 하토궁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하나
소천은 반드시 그 일을 규명해 내고야 말겠습니다."
<만독천세(萬毒天歲) 신위.>
다섯번째 위패 앞이었다.
혁련소천의 입가에 문득 야릇한 미소가 서렸다.
"독형제신궁(毒形帝神宮)의 노태상(老太上)어른...... 아직 동정
호는 독호(毒湖)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노태상의 염원은 이
루어지지 않을 것 갔습니다!"
만독천세 위지태로!
그는 혁련소천에게 자신의 모든 독공(毒功)을 전수했고, 독형제신
궁의 태상(太上) 자리를 물려주어 만독의 제왕이 되게 만들었다.
― 동정호가 모두 독(毒)이라면 인생의 진미를 깨닫겠거늘.......
늘 그렇게 말하며 한숨 쉬던 인물이 바로 위지태로였다.
그러나 혁련소천이 위지태로에게서 배운 것 중엔 독공보다 더 중
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초인적(超人的)인 정력(定
力)이었다.
혁련소천은 여섯번째 위패 앞에 섰다.
<태양검제(太陽劍帝) 용천승(龍天乘) 신위.>
태양검제 용천승...... 그는 한 마디로 검(劍)에 미친 사람이었
다.
― 갈대잎 하나면 천 명의 고수를 베고, 썩은 검이라도 한 자루
쥐어 준다면 내일 아침 태양이 둘로 쪼개져 뜨는 것을 볼 수 있으
리라!
그렇게 외치고는 호호탕탕하게 웃던 인물.
그는 혁련소천에게 천하의 모든 검법을 전수해 줬을 뿐만 아니라,
검주령(劍主令)을 주어 검천(劍天)의 대영주 자리를 계승하게 하
였다. 또한 그는 혁련소천의 성격 형성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
이기도 했다.
― 소천, 너는 천하인이 존경하는 약자(弱者)가 되고 싶으냐, 천
하인이 질시하는 강자(强者)가 되고 싶으냐?
― 소천, 천하의 그 누구도 네 위에 있는 것을 용납하지 마라. 만
약 그런 자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여라!
― 소천, 네가 얻을 수 없는 것은 천하의 그 누구도 얻지 못하게
하라!
― 만약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취하
라! 그것으로 인해 천하인이 너를 욕한다면 너 역시 천하인을 욕
하라!
소천에게 수시로 한 이 말들처럼 태양검제 용천승은 평생을 그렇
게 살다 간 인물이었다.
혁련소천은 또렷이 위패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용노야...... 나는 천하인이 존경하는 약자도, 천하인이 멸시하
는 강자도 싫습니다. 나는 그저 위대한 강자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위대한 강자 -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용노야, 당신의 다섯 제자 검천의 오 형제는 모두 초일급검수
들...... 능히 검천을 빛낼 것입니다."
혁련소천은 그 말을 끝으로 여섯번째 위패 앞에서 떠났다.
마지막 위패, 거기에 적힌 인물은 천하에 못하는 것이 없는 천하
잡기(天下雜技)의 달인(達人)이었으며,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천하만사무불통지자(天下萬事無不通知者)이기도 했다.
<천기개천(千技蓋天) 사사무(史査武) 신위.>
그는 하루에도 똑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버릇이 있었다.
― 만약 천하가 잡기(雜技)로 통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일만 명의
황제를 종으로 부릴 수 있다!
― 내가 못하는 것은 하늘도 못하고 내가 모르는 것은 하늘도 모
른다.
사 년 전, 사사무는 운명 직전 혁련소천에게 물었다.
― 소천, 너는 나를 얼마만큼이나 알았느냐?
혁련소천의 대답은 너무도 엉뚱했다.
― 사노야, 만약 당신이 살아난다면 나의 다섯번째 수하로 삼을
것입니다.
그 말에 사사무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 와하하핫...... 결국 내가 소천의 다섯 단계 아래라는 말! 네
놈의 수하가 되기 싫어서라도 죽고 말 것이다!
그렇게 가장 통쾌하게 웃다가 죽어간 노인...... 천기개천 사사무
는 그런 사람이었다.
"허나 사노야...... 솔직히 나는 아직도 당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노야는 일곱 노야 중 가장 신비한 분이셨으니까요."
돌연 혁련소천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나는 당신의 이름이 사사무라는 것도 의심하고 있
습니다!"
한참 동안 사사무의 위패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소천은 무거운 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혁련소천은 일곱 개의 위패를 한꺼번에 쓸어 보며 강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들 일곱 분의 노야는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는 한 인간을 상상도 못할 괴물로 만들었다! 저 혁련소천
이란 이름의 괴물을!
"이 괴물은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렀습니다. 이곳의 입구인 천문
(天門)을 봉쇄하기 위해서......."
두 번째 나온 말 - 천문!
"이곳의 위치와 이 안의 기관 장치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훗
날...... 저는 이 노야의 시신을 이용해서 천하를 상대로 한 번
멋지게 써먹을 것입니다."
혁련소천은 씩 웃었다.
"하지만 욕하지 마십시오. 무덤까지 써먹는 나쁜 놈이라
고......."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 끝을 가리키며 짓궂게 미소지었다.
"후후...... 그러니까 제가 괴물이 아닙니까?"
짓궂은 표정과는 달리 위패들을 쓸어 보는 소천의 두 눈에 애잔한
그리움이 감돌았다.
그는 슬슬 뒷걸음질치며 두 손을 장난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일곱 노야, 이제 괴물은 물러갑니다. 그럼......."
인사말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소천의 신형이 섬광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후후...... 두고 보십시오. 이 괴물이 천하를 어떻게 요리하는
지......."
섬뜩할 정도의 자신감이 서린 웃음이 일곱 개의 말없는 위패 위로
메아리쳤다 사라지는 괴물...... 그의 이름은 혁련소천이었다.
대성루(大成樓).
무진현 내에서 유일한 것이며 객점과 주루를 겸한 곳이었다.
사도진악이 호위하는 순금색 팔두마차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그
대성루 앞에 멈춰 섰다.
사도진악은 천천히 하늘을 응시했다.
'꼭 한 시진이 걸렸다!'
다음 순간 사도진악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말에서 내려섰다.
이어 그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마차를
응시하며 말했다.
"하룻밤 쉬어갈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삼공자님."
사도진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금색 팔두마차의 문이 활짝
열려졌다.
이어 말할 수 없이 준미한 절세미소년이 천천히 마차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혁련소천...... 바로 그였다.
그는 천천히 마차 밖으로 내려서며 공손히 시립해 있는 사도진악
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소, 사도총관!"
순간 허리를 숙인 사도진악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스
쳐 지나갔다.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