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권 제7장 (7/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7장 대야망(大野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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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三月) 십오야(十五夜).

  이곳은 천계선사가 쓰던 불영암 내의 선방이었다.

  방 중앙에는 한 피투성이의 노인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안색은 완전히 잿빛으로 죽어 있고 숨은 쉬는지 안 쉬는지조차 분

  간하기 어려워 생사지경(生死之境)을 헤매고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헌데 이 노인이 누군가?

  가슴은 속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이 파헤쳐져 있고 두 다리와

  왼쪽 팔은 무엇엔가 걸려 찢겨 나가고 없었지만 그는 분명히 감천

  곡이 아닌가!

  감천곡의 옆에는 푸른 낚싯대 하나가 놓여 있고 낚싯대 옆에는 혁

  련소천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결론은 하나다.

  혁련소천이 낚싯줄로 잡아당겼던  시신은 바로 감천곡이었던 것이다.

  혁련소천은 감천곡을 쳐다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놀랍군, 놀라워...... 이런 상태에서도 인간의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있다니....'

  그 말은 아직도 감천곡이 완전한 시신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았다.

  '노인장, 당신은 살아야 하오.'

  천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살아나야만 하오!'

  나는 당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도, 회생(回生)시킬 수도 있소. 그

  러나 그것은 아니되오.

  그렇게 되면 훗날 귀찮은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오.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백면서생이라야만

  하오. 그러니까 당신은 반드시 스스로 살아나야만 하는 거요.

  혁련소천은 감천곡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살아나시오.

  당신은 구천십지만마전 구천마제 중 군마천(君魔天)의 천주(天主)

  인 철장마제(鐵掌魔帝) 감천곡!

  구천십지제일신마를 제외하고 그 누구보다도 강함을 자부하던 당신이 아니오?

  그런 당신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지나가던 개

  가 들어도 배꼽을 쥐고 웃을 거요.

  일어나시오, 제발!

  혁련소천은 거의 간절한 마음으로 내심 부르짖었다.

  그 정성(?)이 워낙 지극했기 때문일까?

  "으으음......."

  미약한 신음 소리와  함께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감천곡의 몸이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다.

  '됐어!'

  혁련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은 한 치의 오차라도  없애려는 내 계획을 하늘이 돕는 것이다!'

  기적(奇蹟)!

  감천곡의 회생은 확실히 기적이었다.

  회생의 확률이 백분지 일도 안  되는 그 처절한 생사의 도박을 감

  천곡은 승리로써 끝낸 것이었다.

  하늘이 도왔는가?

  아니면 감천곡의 뇌리 깊숙한  곳에 응어리진 처절한 복수심이 꺼

  져 가던 생(生)의 불꽃에 기름이 되었는가?

  아무튼 감천곡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나서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평생 처음 보는 미소년, 혁련소천이었다.

  그후 감천곡은 자신을 영호풍이라  소개한 이 미소년의 극진한 간

  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에 힘입어 감천곡은 차츰 건강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웅후한 본신 내공  탓에 내상치료는 가능했으나 없어진 두

  다리와 한 손만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어느덧 감천곡이 불영암에 머무른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러는 사이에 감천곡은  영호풍이라는 미소년 혁련소천에게 급격

  한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백이십 평생은 홀홀 단신 제자도  없이 고독한 생을 누려 온 감천

  곡이다.

  일단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자 둑터진 봇물이었다.

  그 동안  혁련소천은 감천곡에게 의족(義足)을  만들어 달아 주었다.

  유월(六月) 초닷새.

  그 날은 감천곡이 혁련소천을 만난  지 꼭 팔십 일째 되는 날이었다.

  초하(初夏).

  이른 아침 산중의 공기는 맑고 신선했다.

  혁련소천은 낚싯대를 둘러맨 채 유유히 산길을 걷고 있었다.

  잔뜩 우거진  신록(新綠)에 흥이 돋워졌는지  그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대며 걷고 있었다.

  이때 등 뒤에서 컬컬한 음성이 들려왔다.

  "허허......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군. 영호공자!"

  "어?"

  혁련소천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에서 감천곡이 웃는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활짝 웃으며 돌아섰다.

  "어르신...!"

  감천곡은 언뜻 보기엔 보통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어오는 것 같

  았지만 자세히 보면 상체가 좌우로  약간 뒤뚱거리는 걸 알 수 있

  었다.

  원래 감천곡의 의족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장삼에 덮여 있어 누가 보면 다

  리가 약간 불편한 사람이 걷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단지 왼쪽 소맷자락만은 걸음을  떼어 놓을 적마다 공허롭게 펄럭

  거렸다.

  혁련소천은 다가온  감천곡의 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살펴 보았

  다.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감천곡은 기분 좋게 웃었다.

  "허허...... 영호공자 덕분에 무척 좋아졌네."

  "하지만 이렇게 무리를 하시면......."

  "걱정 말게. 이젠 거의 완쾌된 것 같으니까......."

  혁련소천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천운입니다. 처음만 해도  전혀 회생이 불가능한 줄 알았더니만......."

  감천곡의 동공 깊숙한 곳에 순간 시퍼런 불길이 피어 올랐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독백처럼 뇌까렸다.

  "노부는 절대 죽을  수 없다네. 최소한 이번  일을 규명하기 전에는......."

  혁련소천은 밝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만  하시기에 천만다행입니다. 소생은  그 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혁련소천을 바라보는 감천곡의 눈이 따스하고 부드럽게 빛났다.

  "영호공자는 언제쯤 장군부로 돌아갈 생각인가?"

  혁련소천은 잠시 머뭇거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내일쯤 떠나고  싶은 생각입니다만 노인 어른의 건강이......."

  감천곡은 하나뿐인 손을 황망히 내저었다.

  "노부에 대해선 걱정 말게. 그렇지 않아도 노부가 자네의 갈 길을

  막고 있는 듯하여 늘 미안한 생각뿐이었네."

  "별 말씀을......."

  감천곡은 인자한 눈길로 혁련소천을 응시하더니 문득 은근한 음성을 발했다.

  "영호공자, 한 가지 물어 볼 말이 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영호공자의 가문은  장군부이니 만큼  무(武)를 지극히 숭상하겠지?"

  혁련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호공자는 문(文)을 원하는가 무(武)를 원하는가?"

  혁련소천은 싱그럽게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장차  문(文)으로 성공해  볼 생각입니다."

  감천곡의 눈가에 아쉬운 기색이 스쳤다.

  "그럼 무(武)에는 전혀 뜻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쯧쯧...... 안타깝군."

  감천곡은 나직이 혀를 차며 머리를 내둘렀다.

  "영호공자의 체질은 무예를 익히기에 더할 수 없이 특출한 것이라

  네. 장담하건대 만약 자네가 무예를 익힌다면 몇 년 이내에 뛰어

  난 절정 고수가 될 것이네."

  혁련소천은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선천적인 약골에 영락없는 서생......."

  감천곡은 그 말을 다급히 가로챘다.

  "아닐세. 노부는 노부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네."

  혁련소천은 씁쓸하게 웃어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부는 자네에게 한 가지 선물을 하겠네."

  "......?"

  "잘 들어보게."

  감천곡은 혁련소천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음지양(天陰地陽)... 건곤일체(乾坤一體)...... 극원흡기(極元吸氣)......."

  그것은 일종의 내공심법(內攻心法)의 구결(口訣)이었다.

  혁련소천은 자못 신중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구결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거의 한 식경에  걸쳐 구결을 끝낸 감천곡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혁련소천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글쎄요...... 뜻을 새겨  보건대 도가(道家)의 토납법(吐納法)인 듯 한데......."

  그 말에 감천곡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역시 문(文)에  통달하니 무(武)의 이치도 금방 깨닫는구나."

  혁련소천의 얼굴이 가볍게 붉어졌다.

  "과찬이십니다."

  "흠......."

  감천곡은 대견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시 한  번 들려줄 테니 잘  새겨들었다가 기억하지 못하면

  물어 보도록 하게."

  이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혁련소천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감천곡은 흠칫했다.

  "무슨 말인가?"

  "조금 전에 들려주신 말......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감천곡의 눈이 커졌다.

  '그럴 리가......? 아무리 기초  토납진결이라도 그 긴 구절을 한

  번 듣고 모두 기억한다는 건가?'

  혁련소천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한 번 읊어볼 테니 틀렸으면 교정해 주십시오."

  이어 그는 조금 전 감천곡이 들려준 구결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청산유수(靑山流水)!

  도무지 막힘이나 거리낌도 없이 그 긴 구절들이 거침없이 흘러 나왔다.

  감천곡은 입이 딱 벌어졌다.

  백이십 평생을 살면서 지금처럼 놀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아예 넋을 잃고 말았다.

  '이 녀석은 신(神)이 내린 귀재다!'

  불현듯 감천곡은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한 욕망이 불끈 치솟는 것을 느꼈다.

  '절대로 이 녀석을 놓칠 수 없다!'

  그의 그런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련소천은 맑은 하늘을 유유

  히 감상하고 있었다.

  그날 밤 감천곡은 정확하게 열여덟 번을 까무러칠 듯 놀라야만 했다.

  이유인 즉,

  감천곡은 그날 아홉 가지의 무공 초식을 혁련소천에게 전수했다.

  그런데 이건  어찌된 판인지 혁련소천은  가르치기 무섭게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 번 본 것을 모조리  기억하는 건 고사하고 직접 시전함에 있어

  서는 감천곡은 티끌만큼의 틈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혁련소천이 초식을 전개함에  있어 내공이 없는 것이 흠이었

  으나 감천곡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맙소사! 천하에 이런 신골(神骨)이 있었다니...!'

  이놈은 용(龍)이다!

  그것도 수백 년 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감천곡은 완전히 혼(魂)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구천십지제일신마 단우비...... 저  아이는 절대 그의 아래가 아

  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자질마저 능가할지도 모른다!'

  감천곡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혈관 속을  미친 듯이 뛰노는걸 느꼈다.

  '그렇다! 저 아이의 자질이라면  능히 제일신마의 보좌에 오를 가

  능성도 있다!'

  그날 감천곡은 자신에게 수십수백 번을 다짐하고 맹세했다.

  그 다짐과 맹세가 무엇인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별은 슬픈 법이다.

  특히 감천곡에게 있어선 백이십  평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기

  에 더욱 큰 슬픔으로 와 닿았다.

  혁련소천을 태운 가마는 장군부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감천곡은 가마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선 자리에서 꼼

  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허공으로 눈길을 옮긴  것은 가마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 였다.

  "맹세하리라......!"

  그의 호목에선 횃불같은 신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호풍...... 자네를 제구대(第九代) 군마천의 천주로 삼은 이후

  기필코 제일신마의 보좌에 앉히고 말리라! 그리하여 내가 못다 이

  룬 야망(野望)을 자네를 통해 완성하고야 말리라!"

  뜻을 세우면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 감천

  곡이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 칠십 년 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들을 찾아가리라! 그들의 능

  력이라면 내게, 아니 영호풍에게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을 것......!"

  혁련소천은 흔들리는 가마 속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지금 한 권의 책자가 쥐어져 있었다.

  혁련소천은 눈을 뜨고 수중의 책자를 응시했다.

  그는 천천히 책자의 겉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한 장의 서찰이 끼워져 있었다.

  <이 책자에는 장군부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습니다.

  다 읽으신 후 태우도록 하십시오.>

  발신인도 적혀 있지 않은 서찰이다.

  혁련소천의 입가에 씩 미소가 번졌다.

  '이 책자의 내용은 이미 내 머리 속에 완벽하게 기억되어 있다!'

  푸스스스......

  책자는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극상승(極上乘)의 양수공(揚手功)으로 책자를 없애 버린 것이다.

  혁련소천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내 예감이 맞는다면 감천곡은  늦어도 석 달 이내에 장군부로 나를 찾아 온다!'

  한 줄기 거대한 불꽃이 가슴  속 저 깊은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혁련소천은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구천십지만마전! 영원한 마도의  불멸혼을 기원한다는 지상 최강의 단체...!'

  거기에 도전해 보리라!

  구천십지만마전을 상대로 나의 능력을 시험해 보리라!

  거대한 야망이 십육 세  소년의 가슴에서 맹렬히 소용돌이치고 있

  었다.

  이때 소용돌이치는  상념의 와중으로 한  줄기 전음이 혁련소천의

  귓전에 스며들었다.

  (백변귀천입니다.)

  혁련소천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어찌 되었소?)

  (대종사님의 예상대로 감천곡은 동쪽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

  (그의 친구인  천궁문(天弓文)의 무형천궁(無形天弓) 공손무외(公

  孫武畏)와 홍의교(紅衣敎)의  홍포구마성(紅佈九魔聖)을 찾아가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혁련소천은 조용히 눈을 떴다.

  별빛같은 신광이 동공 깊숙한 곳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행적을 절대로 놓치지 않도록 하시오.)

  (흐흐흐...... 염려 마십시오.  당금천하에 넷째형 수라마영의 이

  목을 벗어날 자는 오직 대종사님뿐이니까요.)

  혁련소천은 빙긋이 웃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럼 속하는 이만.......)

  백변귀천의 전음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혁련소천은 의자 깊숙이 상체를 파묻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장군부에 가면 한 가지가 문제로군.

  옥산랑...... 영호풍의 약혼녀라 했던가?'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 문제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부딪쳐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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