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3장 대폭풍(大暴風) - 대막(大漠)의 영광(榮光)이여! 다시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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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砂漠).
태고 이래 철저히 생체(生體)를 거부해 온 천형(天形)의 땅.
앞 뒤 어디를 봐도 수목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은 영겁(永劫)의 형상을 보여주듯 사구(砂丘)의 구릉 또한 끝
이 없었다.
헌데 그 중 한 커다란 모래언덕 위에 언제부터인지 한 사나이가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다.
가마솥처럼 끓어오르는 열사(熱砂)의 땅을 밟고 뼛속까지 태워 버
릴 듯한 폭양(暴陽)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으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이 사나이.
어깨는 하늘을 받치고 철탑같은 두 다리는 온 땅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그 당당한 웅풍(雄風)이며 낡은 파의(破衣) 사이로 드러난
딱 벌어진 구리빛 체구는 말 그대로 철인(鐵人)을 연상케 했다.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
는다면 서슴없이 이 사나이를 지적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평생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처럼 꽉 다문 입술에 불길처럼 이글
거리는 부리부리한 호목(虎目), 거기다 우측 뺨에 비스듬히 새겨
진 한 줄기 검흔(劍痕)은 이 사나이의 강렬한 인상에 또 하나의
매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사나이는 오른손에 한 자루의 부러진 도(刀)를 움켜쥔 채 타는 듯
한 시선으로 사막 저쪽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휘이이잉.......
날이 어두워지면서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밤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바람이다.
사막의 밤은 춥다.
얼마나 추운지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휘우우우웅!
후우웅!
바람이 드세어지면서 싯누런 황사(黃砂)가 살갗을 파고들 듯 휘날렸다.
그러나 사나이는 눈 한 번 끔벅거리지도 않고 태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어찌 보자니 마치 그 상태 그대로 숨이 끊어진 게 아닌가 의심이
갈 만큼 사나이는 도대체 미동도 할 줄 몰랐다.
그 부리부리한 한 쌍의 호목에 불현듯 한 줄기 횃불같은 광채가
번쩍 피어오른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콰우우우우.......
사나이의 시선이 끝닿은 저쪽에서 말할 수 없이 거대한 돌개바람
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콰우우우우웅!
가슴 떨리게 하는 굉음과 더불어 천지를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그
사납고 엄청난 기세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평생 웃는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사나이의 얼굴에
는 언뜻 흐릿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용권풍(龍卷風)...... 드디어 나타났구나......."
용권풍.
그것은 사막의 대상(大商)들이 가장 만나기 두려워하는 것으로 인
간의 육신을 흔적도 없이 분해해 버리는 건 물론이고 사막의 지형
까지 뒤바꿔 버린다는 죽음의 돌개바람을 일컬음이다.
또한 천지(天地)를 온통 박살낼 듯한 기세로 무섭게 휘몰아쳐 오
는 이 거대한 바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
용권풍이 가까워지면서 사나이의 옷자락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찢
어질 듯 펄럭였다.
사나이는 부러진 도를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구천십지제일신마...... 네가 설마하니 용권풍보다 강하겠는가?"
사나이는 돌연 부러진 도를 번쩍 치켜들면서 한 소리 천둥같은 외
침을 토해냈다.
"벽력일섬단혼도(霹靂一閃斷魂刀)―!"
그것이 마지막 음성이었다.
콰콰콰콰콰콰―!
용권풍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사나이의 전신을 휘감아 버린 것이었
다.
순식간에 사나이를 집어 삼킨 용권풍은 그 기세를 몰아 하늘까지
집어 삼키려는 듯 수십 장 높이로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오, 보라!
놀랍게도 그 거대한 용권풍이 마치 선(線)을 그어 놓는 듯이 두
개로 쫙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가?
헌데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개로 나뉘어진 용권풍 사이에
그 사나이가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콰콰콰콰콰콰!
물살처럼 갈라지는 두 쪽의 용권풍과 그 사이에 부러진 도를 비스
듬히 치켜든 채 천신(天神)처럼 우뚝 서 있는 사나이!
그 모습은 억겁의 세월을 풍우와 싸워 이겨온 태산(泰山)의 그것
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옷은 걸레처럼 갈가리 찢겨져 나갔고 전신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나이의 얼굴에는 용권풍을 처음 보았을 때보
다 더욱 짙은 미소가 가득 번져 있었다.
승자(勝者)만이 가질 수 있는 환희의 미소였다.
웃으면서 사나이는 중얼거렸다.
"대막(大漠)의 영광이여! 다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