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권 제1장 (1/112)

■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1장 대폭풍(大暴風) - 그 시작은 소림사(少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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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산(嵩山) 소실봉(小室峯).

  중원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少林寺)가  존재함으로 인해 이 무

  림 최고의 성역(聖域)이자  영원한 정의(正義)의 가람으로 손꼽히는 곳.

  어두컴컴한 실내를 흐릿하게나마 밝혀 주는 것은 한쪽 벽에 걸린 작은 유등(油燈)이었다.

  기름이 다했음인지 가물가물  타오르는 유등(油登)의 불꽃은 금세

  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 백 년 이래  그 누구의 발길도 막아 왔던 소림제일의

  금역(禁域) 조사동(祖師洞)에 있는 한 밀실이었다.

  일과(日課)의 시작을 조사동 참배로  일관해 온 소림사는 무엇 때

  문에 조사동을 절대금역(絶對禁域)으로 선포했을까?

  그 이유를 알리는 말은 백  년 이래 단 한 마디도 강호에 흘러 나오지 않았다.

  다만 소림이 조사동(祖師洞)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림의 생명(生命)!

  그것은 곧 소림사의 모든 힘을 의미한다.

  정신이 나갔거나 미친 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 힘에 맞서려는 자는

  이 무림에 아무도 없었다.

  유등의 불꽃이 갑자기 환하게 피어오르면서 실내가 아까보다 훨씬 밝아졌다.

  밝아진 불빛을 빌어 한쪽 구석의  돌 침상 위에 뼈에 껍질을 발라

  놓은 듯한 앙상한 체구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한 노승의 모습이 보였다.

  일신에는 낡아빠진  마의승포(麻衣僧袍)를 걸쳤고  특이하게 자색

  (紫色)을 띤 눈썹은 관자놀이까지 늘어져 있어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장님인 듯 자미노승(紫眉老僧)의 두 눈은 기이하게도 허연

  흰자위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돌 침상 아래 한  장발(長髮)의 중년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물처럼 고요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다.

  대략 서른두세 살 남짓  보이는 청수하고도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

  는 인상이었다.

  그의 전신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인자하고 장엄한 기운이 서

  기(瑞氣)처럼 배어 있었다.

  어쩐지 음울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치지직...... 치직......

  조용한 침묵 속으로 심지가  타 들어가는 소리가 스며들면서 실내

  가 한층 환하게 밝아졌다.

  저 빛이 사그라지면 유등은 곧 꺼질 것이 분명했다.

  갑작스레 밝아진 불빛 탓인지 밀납처럼 창백한 자미노승의 얼굴에

  도 한 줄기 불그레한 홍조가 피어 올랐다.

  자미노승의 그런 변화를 살펴보던  중년인의 두 눈에는 짙은 슬픔

  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저 홍조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무껍질처럼 말라비틀어진 자미노승의 입술이 힘겹게 떼어졌다.

  "혜인(慧人)...... 네 손을 다오......."

  이미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인 황량한 음성이었다.

  유등의 불꽃이 흔들렸고 덩달아  중년인의 어깨도 짧은 순간 경미

  한 흔들림을 보였다.

  중년인은 그러나 이내 흔들림을  가라앉히고 두 손을 천천히 자미

  노승의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자미노승은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앙상한 손으로 그의 두 손을 감

  싸쥐며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따뜻하구나... 너의 손... 너무 따뜻해......."

  "......!"

  자미노승은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감회 서린 음성을 흘려냈다.

  "혜인...... 네가 소림에 입문(入門)할 때 세 살이었으니 지금 너

  의 나이가 꼭 서른셋이겠구나!"

  중년인 혜인의 눈꼬리에 가는 경련이 파문처럼 일어났다.

  이어 무슨 말인가를 하기 위해 입술을 떼려는 순간.

  "혜인...... 듣기만 해라."

  "......!"

  자미노승은 혜인의 말문을 막으며 엄숙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꼭  백 년  전(百年前)...... 구천십지만마전의 대마종

  (大魔宗)인 구천십지제일신마(九天十地第一神魔)는 정도무림의 태

  산(泰山) 소림에게 일천 년을 두고도 씻을 수 없는 최대의 모욕을 안겨 주었다. 아느냐?"

  "압니다."

  "그 모욕을 견디다 못해 장문사형은 조사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

  었고 일천 제자 중 절반이 통분을 못 이겨 스스로의 혀를 깨물었다. 아느냐?"

  "압니다."

  자미노승의 자색눈썹이 바람도 없는데 파르르 떨렸다.

  "붉은 피(血)가 소림을 적시던 그 날...... 노납은 결심했다. 구

  천십지제일신마...... 그에게 도전하겠노라고......!"

  "......!"

  "그로부터 칠십 년......  노납은 천 년 전의 달마조사(達魔祖師)

  이래로 그  누구도 연성할 엄두조차  못 내었다는 달마역근세수경

  (達魔易筋洗髓經)의 가장 심오한 무공인 수미타여래신공(須彌陀如

  來神功)을 익히기 위해 모든  피와 땀을 쏟았지만 결국 실패로 끝

  나고 말았다......."

  자미노승은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수미타여래신공을 익히기 위한  연성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는 것

  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세 살을 넘어서 시작하면 안  되고...... 세 살 이전에 백 년 수

  위의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후로는 최소한  백 년 이상의

  공력을 지닌  십팔 인(十八人)의 도움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수미타여래신공이지......."

  달마조사 이래 아무도 연성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수미타여래

  신공이다.

  그 이유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  노납은 그래서  혜인 너를  택했고  네가 세  살이 되던

  해...... 너에게 노납의 사 갑자 내공을 모두 물려주었다. 그리고

  지난 삼십 년 동안  백년 공력을 지닌 십팔나한(十八羅漢)이 모두

  희생됨으로써 수미타여래신공을 극성(極盛)까지 연마하는 데 성공했다."

  "......."

  "혜인,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미노승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은 무섭도록 텅 비어 있었다.

  자미노승은 혜인을 향해 텅 빈 눈에 초점을 모았다.

  "소림의 복수...... 부질 없는 것이다."

  "......!"

  "천하 억조창생을 위해...... 너 혜인은 노력해야 한다......."

  치지직......

  심지가 타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미노승은 문득 두 눈에서  하얀 광채를 뿜어내며 엄숙하게 말했다.

  "네가 갈 곳은 구천십지만마전!  너는 소림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

  천하의 대마황(大魔皇)으로 변신해야 한다......!"

  "......!"

  "잔인 무도한...... 그리하여 구천십지제일신마조차도 치를 떨 만

  큼 흉악한 대마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구천십지만마전에 들 수 있

  고...... 그 목적의 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지난 삼십 년간...... 너를 위해 소림제자 일 백인(一百人)은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혜인의 손을 움켜 쥔 자미노승의 두 손이 부르르 경련했다.

  혜인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정시했다.

  자미노승은 다시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이어 그는 말할 수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혜인...... 너는...... 누구냐......?"

  실내가 어두워졌다.

  춤추던 유등의 불꽃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먹물처럼 번져 오는 어둠 속에서  혜인의 두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백조님...... 소실봉을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소림제자

  혜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미노승은 웃었다.

  "헛허...... 나 자미성불(紫眉聖佛)...... 이백 년 이상을 살았으

  나...... 오늘...... 가장 보람되도다......."

  혜인은 자미성불의 손에 힘이 풀려 나가는 것을 느끼자 가슴이 철렁했다.

  "사백조님......!"

  "석존(釋尊)께서  말씀하셨느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

  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리......."

  갑자기 노승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혜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사백조님!"

  "......."

  아무 대답이 없다.

  침묵은 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므로.

  순간 한 소리 격렬한 울부짖음이 혜인의 입술을 꿰뚫고 터져 나왔다.

  "사백조님―!"

  그 날 이후 자미성불과 혜인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소림의 조사동에 있었던 이 한 토막의 이야기가 장차 무림천

  하에 얼마나 무서운 피의 폭풍을 가져올지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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