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4)>
* * *
-김민준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김민준 의원은 권력형 성폭행을 저지르며, 여섯 명의…….
언론은 김민준 의원에 대한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지금껏 내세운 이미지가 수수하고 청렴한 시골 총각이었기에 던져진 충격은 더욱 컸다.
-국회는 방탄 국회라는 오명을 받을 정도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표결을 거쳐야 하지만 실제 체포가 이뤄진 경우는…….
이곳저곳이, 김민준 의원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대선을 앞둔 지금, 여당에서 김민준 의원의 체포 동의안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관건입니다. 만약 동의를 받지 못해 기소가 늦춰질 경우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
여당의 당사, 회의실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렸다. 얼굴이 붉어진 한 국회의원이 씩씩대며 의자에 앉아 버럭 소리쳤다.
“어떻게 할 겁니까!”
그 말이 시작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고성이 오간다.
“김서진, 그 새끼 우리 편 아니었어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나?”
회의실에 앉은 고위 당직자들의 표정은 모두 좋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서진이 그들의 밥그릇에 엿을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이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은 쓰레기래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할 거예요? 김민준을 검찰에 보낼 겁니까? 아니면 데리고 있을 겁니까?”
고위 당직자들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끔!’ 하고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김민준 의원을 검찰에 보내면, 일반 국민은 통쾌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민준 의원의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거다.
“그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 없어요. 그 숫자가 만만치 않아요!”
광적인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의원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당이 그 의원을 내치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의리 없는 새끼들.”이라 말하며 철천지원수처럼 행동한다.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품고 있기도 어려워요! 김민준 의원이 그동안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세요! 여성 표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이들에게 김민준이 저지른 죄는 관심 밖이었다. 오직, ‘표’만 생각하고 있다. 대선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느냐, 마느냐.
그들이 고심에 빠져 있을 때, 여론은 무서울 정도로 여당을 물어뜯고 있었다.
-똥 묻은 개와 똥 묻은 개의 싸움.
└똥밭 맞네 ㅋㅋㅋ
└개랑 비교하지 마라. 적어도 개는 저런 짓은 안 한다.
-그런데 김서진보고 정치 검사라 한 게 누구냐?
└김서진은 법만 보고 가네요.
└만약에 김서진이 유배 가면, 대검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한다.
└저도 갑니다.
└저도요.
└김서진이 다 잡아넣었으면 좋겠다.
*
그 시각, 서진은 옥상에 있었다. 원래의 서진이 떨어진 그곳이다.
무심한 눈으로 아찔한 아스팔트를 바라보던 서진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원래의 서진이 떨어지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담배 하나만 피우자. 영화에서도 담배 피우는 시간은 기다려 주던데…….
하지만 원래의 서진은 그 담배를 끝까지 피우지 못했다. 메시지를 보내다가 발각됐고 결국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만 했다.
서진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마지막에 이걸 왜 피우고 싶어 하는 거야?”
서진이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꾹 눌러 밟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피워 줬다.”
이 몸에 들어온 후, 원래의 서진이 바라던 것을 이뤄 줬다. 재정건설을 지켰고 김영준 총장을 교도소로 보냈다.
“이제 내 인생을 살 거야.”
서진이 하늘을 바라봤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며 원래의 서진이 묻는 것 같다. ‘그 인생, 어떻게 살 겁니까?’ 서진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검사로 살아야지.”
세상에는 아직 치워야 할 대상이 많다. 김영준 총장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노리는 악마들은 언제든 꿈틀대는 법이다.
서진이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리고 텅 빈 옥상을 뒤로한 채 비상계단을 향했다.
<에필로그>
"이번 주에 동생이 결혼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네."
김영준 총장에 대한 사형선고가 떨어진 지 일주일 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준경이었던 시절부터 자주 가던 삽결살집이다.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축의금 안 받는다고 하니까, 편히 오세요."
"축의금 안 받는 결혼은 또 처음 가 보네요."
이동영 수사관이 끌끌 웃었다. 그리고 술잔을 입에 대며 목소리를 이었다.
"그런데 계속 검사 생활하실 거에요?"
이동영 수사관도 궁금했다. 서진의 아버지는 재정건설의 대표다. 누군가는 그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할 거다. 그런데 동생 진영은 요리의 꿈을 갖는다 하고 서진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물었는데, 서진의 대답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해야죠. 천직인데."
"회사는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전문 경영인을 둔다고 하시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재정건설의 대표가 되어 사용하는 돈을 생각하면, 검사가 받는 우러급은 말 그대로 쥐꼬리다. 그런데 서진은 최선을 다해 검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영 수사관의 눈에는 그런 서진의 모습이 참 멋있게 보였다.
"정치권에서도 연락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쪽도 관심 밖인가요?"
"검사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하잖아요?"
누군가는 정치 한번 해 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 하지만 서진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정치권에는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처럼 여겨졌다.
"대단하세요."
"성아는 어때요? 공부 잘하고 있나요?"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과 나누고 싶은 대화는 그런 외적인 게 아니었다. 이동영 수사관의 삶이 궁금했다. 그리고 딸 성아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이동영 수사관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았다는 등,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등.....
"검사가 꿈이라면서 로스쿨에 들어간대요. 나중에 검사님 후배로 오면 잘 가르쳐 주세요. 하하하."
서진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서준경 때부터 이어 온 인연으로, 이동영 수사관의 삶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동영 수사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 성아야."
".....!"
통화를 이어 가던 이동영 수사관이 시선을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성아가 잠시 온다고 하는데, 괜찮을가요?"
"아, 글머요. 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성아가 들어왔다. 몇 년 사이에 어린 티를 싹 벗고 숙녀가 되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가 끝난 후, 삼겹살을 보며 좋아하더니 빠르게 젓가락질을 한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서진은 조용히 성아를 바라봤다.
"배고팠나 보네."
그 말에 성아가 서진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그녀가 물끄러미 서진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 나 좀 이상해요. 우리, 준경 아저씨랑 이렇게 같이 있었잖아요? 꼭 그때 같아요."
서진은 기뻤다. 지금도 서준경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
이동영 수사관과 술자리를 마친 후, 서진은 집으로 향했다. 현관물을 열고 들어서자 진영이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찍 들어왔네? 가족회의 있어. 어? 술 마셨어?"
"조금."
"삽겹살?"
"냄새나?"
진영이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살짝 쥐더니 서진의 옷깃을 잡고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인 잔을 들고 있었다.
서진이 그 앞에 마주 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회의요?"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진의 앞에 와인 잔을 내려 두며 입을 였었다.
"유미..... 오늘 낮에 만났는데, 힘들어하더라고."
김영준 총장의 사건으로 최대 피해자를 뽑으라면, 아버지 김준만과 그 딸 김유미다.
특히 김유미는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사건이 터지며,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그래서 유학을 보내 주려고 해. 다녀오면, 병원도 하나 내줄 생각이고."
아버지 혼자 결정해서 추진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가족회의를 연 이유는 하나, 모든 식구가 김영준 총장과 그 집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준 총장이 저지른 모든 행태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도 동생 진영도 그리고 서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아요."
"저도요."
아버지가 쓰게 웃으며 와인 잔을 입에 댔다.
"고맙다... 유미는 잘못이 없잖아......"
잠시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진영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저 아빠 될 거예요."
어머니가 치즈를 집으며 입을 열었다.
"결혼하면 바로 가지려고? 조금 천천히 생각하지, 왜?"
"아, 3개월이래요."
"....."
잠시 적막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고? 하하하하하!"
*
진영의 결혼식 날이었다. 이런저런 손님이 들어오면, 서진도 바삐 움직였다.
"난 와야지. 이제 빚쟁이가 아니거든."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식장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장지혁 검사도 이곳을 찾았다.
"김영준이 판결 불복한 거 알지? 와 씨..... 특검이 더 바빠졌어. 결혼식에 간다니까 겨우 보내 주네."
그리고 도광현이 식장으로 들어왔다. 서진의 앞에 선 도광현이 '축의금은 받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씨를 보더니 낄낄 웃었다.
"저는요. 결혼할 때, 축의금 안 받는 것은 당연하고요. 참석하는 사람들한테 돈 줄 거예요. 미친 듯이 돈이 많은데,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껴 써."
"소박하게 람보르기니 질렀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도광현은 서진의 뜻에 따라 자금을 운용하는 중이다. 재정건설은 물론이고 국대 굴지의 기업 주식은 싹 끌어모으고 있다.
돈이 권력이 되고 권력이 돈을 모은다. 그 자금은 언젠가 서진을 정상으로 올려 줄 게 분명하다.
결혼식이 시작됐다. 진영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식순을 이어 갔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찍는 순서가 되었다.
진영과 신부의 옆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섰다. 진영이 서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형, 빨리 와."
진영과 부모님이 서진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의 손짓에 서진이 활짝 미소를 그렸다.
지금껏 가족의 안에서 겉도는 느낌이 조금은 있었다. 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
"형! 빨리 오라니까?"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옷매무새를 만졌다.
"알았어, 갈게."
서진이 그 옆에 섰다. 사진 기사가 카메를 만지며 입을 연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소리와 함께, 서진은 살아왔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게 되었다.
* * *
좁은 골목길에 탁탁탁,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거친 숨을 토해 내지만 남자는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거기 서!"
"멈춰, 새끼야!"
남자는 마약 유통 조직의 핵심 일원이었고 뒤를 쫒는 사내들은 형사였다.
"멈추라고!"
그런 말에 얌전히 잡혀 줄 범죄자는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놈은 코너만 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들어가면 여러 갈래로 갈라진 골목이 나온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곳을 단 두명의 형사들이 모두 뒤져 볼 수 없다.
남자가 입술을 꽉 씹으며 가까워진 코너를 바라봤다.
'됐어.'
드디어 놈의 몸이 코너를 틀었다. 모든 게 성공이라 생각하며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이겼다고 생각할 때가 최악의 순인 거다.
퍽!
놈의 다리가 무엇인가에 걸렸다. 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놈이 땅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뭐야!"
놈이 강하게 외치며 자신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상대를 시뻘건 눈으로 쏘아봤다. 그 앞에 잘생긴 청년이 서 있었다.
"누, 누구야? 형사?"
놈의 말에 잘생긴 청년이 입을 열었다.
"나? 검사 김서진."
<완결>
<작가의 말>
지금까지 읽어주신 의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이러 저런 말을 하고 싶은데, 앞으로 더 나은 글을 보여드리는 것뿐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시국에 건강 유념하시고 조만간 더 좋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이해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