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2)>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의 말에 법정은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고 그곳엔 김영준 총장만이 서 있었다.
재판장의 시선이 김영준 총장에게 향했다.
“피고인, 생년월일을 말씀하십시오.”
김영준 총장은 대답 대신 방청석을 슥 둘러봤다. 그곳엔 이소희와 이은하 기자가 앉아 있었고 멀리 자신의 형 김준만이 보였다.
김영준 총장과 눈을 마주친 김준만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았다.
하지만 김준만을 바라보는 김영준 총장의 눈빛은 건조했다. 그저 물건을 바라보듯 김준만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이 곧 틀어졌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또 다른 사람을 찾는 거다. 그 사람은 바로 서진이다. 하지만 서진은 법정에 없었다.
‘어디?’
김영준 총장은 서진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기대해. 땅 밑에 지하가 있다는 걸 가르쳐 줄게. 그리고 그 밑에는 지옥도 있어.”
그런 말을 지껄인 놈이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서진은 보이지 않았고 김영준 총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재판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피고인? 생년월일을 말씀하세요.”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재판장을 향해 틀어졌다.
* * *
그 시각, 법원 주차장.
조우재 부장검사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연신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하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앞으로 서진의 차량이 들어와 멈췄다. 서진이 운전석에서 내리며 곧장 물었다.
“시작했어요?”
“어, 지금쯤 피고인신문 하고 있을걸.”
조우재 부장검사가 대답하며 조수석 뒷자리를 힐끗 봤다. 안에는 박정길이 수갑에 구속된 채 앉아 있다.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악마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다.
물끄러미 박정길을 살피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물었다.
“어디서 잡은 거야?”
“안산이요.”
서진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박정길의 도주로를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었으면 진작 잡았어야지. 왜 사람 간 떨어지게 왜 이제야 잡은 거야?”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김영준 총장 측에서 반박거리를 준비했을걸요.”
물론 김영준 총장이 반박을 한다 해도 파고들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완벽한 타이밍을 계산하며 김영준 총장이라는 괴물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계획했다.
서진이 품에서 키를 꺼내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게요.”
“어? 어. 그래, 가 봐.”
조우재 부장검사는 박정길을 태우고 중앙지검으로 이동할 거다. 그리고 그사이 서진은 김영준 총장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지옥으로 보낼 생각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법원 건물로 향하는 서진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 * *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법정은 살벌할 정도로 적막했다. 그곳에 김영준 총장과 이두진 변호사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피고인! 질문에만 답하세요.”
“모든 것이 조작인데, 대체 어떤 질문에 답하라는 겁니까?”
김영준 총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두진 변호사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쾅!’ 하고 치며 김영준 총장을 노려봤다.
“피고인!”
“제발…… 거짓을 억지 포장하지 말고 진실을 가져와 주세요. 특별검사님, 수사비로 수십억을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뭘 한 겁니까? 그 돈의 사용 내역은 밝힐 수 있습니까?”
“질문에나 답하세요!”
“밝힐 수 없다는 거네요?”
김영준 총장의 비웃는 목소리에 법정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수사비가 수십억이야?”
“어디에 그렇게 많이 써?”
“씨발,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지.”
김영준 총장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정말 느긋한 태도로 이두진 변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제 아들의 잘못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도 구속시켰습니다. 심지어 제 장인어른도 압수 수색했죠.”
“……!”
“검찰총장이라는 권력이 있지만 제 가족의 죄를 눈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살벌하게 들여다봤습니다. 그런 제가 형의 재산을 빼돌리고 살인미수를 저질렀다고요? 저는 일평생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
“그런데 활동 내역도 공개하지 못하는 특검이 나를 심판한다고요? 그럴 거면, 억지 재판 그만하고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사형이나 구형하고 가세요.”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장지혁 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끝까지…….”
김영준 총장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두진 변호사가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조작’과 ‘음모’라는 두 단어를 앞세웠다. 그리고 지금은 특검을 비리 집단으로 만들어 내며 논점을 흐리고 있다.
장지혁 검사는 김영준 총장의 그 뻔뻔한 얼굴이 재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김영준 총장의 행동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피고인! 앉아요!”
재판장이 지시했지만 김영준 총장은 그 목소리를 외면한 채 방청석을 향해 몸을 틀었다. 정말 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방청객과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씀드립니다. 저는 죄가 있어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권력과 싸우다가 이곳에 잡혀 온 겁니다.”
“……!”
“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정부패와 권력자들의 민낯을 밝히고 깨끗한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저는 제 소명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거대한 권력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이제 특검과 정부 여당의 시나리오에 의해 옥살이를 해야 할 겁니다.”
재판장이 단상을 꽝, 꽝, 꽝 내리치며 외쳤다.
“피고인! 당장 앉으세요! 경위, 뭐 하는 겁니까!”
법정이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도떼기시장에서 김영준 총장만이 고요했다. 김영준 총장은 선서를 하는 것처럼 한 손을 올린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검찰이라는 직업을 얻을 때, 저는 선서했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이번엔 국민을 선동하는 거다. 자신은 권력의 희생양이며 모든 음모의 피해자라는 것.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재판부를 압박하려 한다.
그동안 권력자들이 해 왔던 행태 때문에 국민은 정치권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을 구속했던 김영준 총장을 순교자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 내는 용기 있는 검사!”
그 순간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법정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고요한 곳으로 저벅저벅, 발소리만 들렸다. 바로 서진이었다.
검사 선서를 내뱉던 김영준 총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다. 지금은 우겨야 한다. 자신은 어떤 죄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럼, 이길 거다. 김영준 총장은 자신하고 있었다.
‘이 재판에서 받을 형량은 기껏해야 징역 5년.’
어쩌면 집행유예 또는 무혐의를 노려볼 수도 있다. 게다가 징역을 살아도 상관없다. 그 뒤에는 권력자와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며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안 죽어.’
김영준 총장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진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게임은 안 끝났어.’
김영준 총장은 계속해서 검사 선서를 이어 갔다.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서진의 앞을 법정 경위가 가로막았다. 그 상황에도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국민에게 자신의 진실을 알려 선동하기 위함이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그사이 서진은 재판장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중앙지검 김서진 검사입니다. 피고인 김영준의 살인 청부 증거를 지금 막 찾아냈습니다. 국민을 선동하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 피고인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재판의 순서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
김영준 총장의 입이 막혔다. 눈을 부릅뜬 채 서진을 살폈다. 그러다가 더듬더듬 물었다.
“……뭐?”
“피고인 김영준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조카인 저를 죽이려 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서진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박정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영준 총장의 표정이 덜컥거렸다. 박정길이 잡혔고 저 휴대폰에 자신의 음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아…….”
김영준 총장의 마른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서진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피고인은 부모를 죽였고 40년 전 1억이라는 돈을 대가로 받았습니다.”
“……!”
“제가 그 사실을 밝혀내자 입을 막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를 보냈는데, 그 지시를 내린 음성이 이 휴대폰에 담겨 있습니다.”
김영준 총장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벌떡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40년 전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입니다! 게다가 사전에 동의되지 않은 증거를 가지고 재판에 나선다는 것은 특검 측의……!”
서진의 시선이 변호사를 향해 천천히 틀어졌다. 서진의 살벌한 눈동자에 변호사가 움찔거릴 때, 서진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럼 증거로 채택할지 말지는 직접 듣고 결정하세요.”
“……?”
그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서진은 휴대폰을 꾹 눌렀다. 재판의 절차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서진은 김영준 총장에 대한 것이면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기자도, 심지어 재판장도, 그 누구도.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기 위해선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과 박정길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네가 할 일은 하나야. 김서진을 아파트 옥상으로 데려와.
-그, 그럼요? 제, 제가 죽이나요?
-노인네가 무슨 힘이 있을까? 애들 부를 테니까,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
휴대폰의 음성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 순간은 정말 찰나였다. 김영준 총장이 피고인석을 박차고 나와 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장 꺼! 다 거짓이야! 조작이야! 아아아아악!”
김영준 총장이 시뻘건 눈으로 달려 나왔다. 경위를 지나 울타리를 넘으려 했다. 하지만 구속된 몸으로 울타리를 넘을 수는 없었다.
콰당탕탕탕!
김영준 총장이 울타리에 걸려 요란하게 넘어졌다.
“씨발!”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들더니 다급한 얼굴로 서진을 올려다봤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벌한 눈동자로 서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새끼가…….”
서진은 건조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엎어진 김영준 총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은 언제나 고고한 눈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봤다. 자신은 법 위에 있는 인간이라 생각하며 다른 자를 하찮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느낌은 없다. 그저 발악하는 범죄자 하나가 추악하고 초라하게 엎어져 있을 뿐이다.
서진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김영준 총장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빙긋이 웃으며 김영준 총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넌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