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베다. (7)>
그 모습을 이소희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은 언제나 대단했던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고 모든 사람을 거만하게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도 당황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백기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백기호 의원이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이다.
그때, 백기호 의원의 시선이 이소희에게서 멎었다. 그녀의 평온한 눈빛과 입술에 맺힌 잔잔한 미소를 봤다. 백기호 의원이 입술을 씹으며 물었다.
“서, 설마…… 네, 네가?”
뇌물을 받은 것, 그 대가로 신마그룹의 잘못을 무마해 준 것, 모두 스스로 했던 일이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았다. 분노의 눈빛으로 이소희를 바라보고 있다.
“대답해.”
이소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기호 의원의 눈빛은 확신으로 물들어 갔다.
백기호 의원은 대통령이 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는 중이었고 광신도들의 외침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엿이 뿌려졌다. 백기호 의원은 이소희가 그 엿을 뿌렸다고 생각했다.
이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 아니에요.”
“그럼, 누구지? 어떤 새끼야? 알고 있지? 어떤 새끼냐고!”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이소희가 차분히 물컵을 내려 두며 백기호 의원과 눈을 마주쳤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뭐?”
“누가 고발을 했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여쭸어요.”
“이소희!”
백기호 의원의 손바닥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와 함께 이소희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지금껏 저질렀던 죄. 지금까지 평안하게 살아왔다면, 지금부터 받으세요.”
이소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을 향해 예의 있게 허리를 굽혔다.
“그럼…….”
백기호 의원이 벌떡 일어서서 이소희의 손목을 잡아챘다.
“놔요!”
이소희가 외쳤지만 백기호 의원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백기호 의원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이소희를 벽에 밀치고는 일그러진 눈빛으로 이소희를 쏘아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보좌관이 당황했다.
“의, 의원님!”
하지만 보좌관은 말리지 못했다. 백기호 의원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 괜히 욕만 처먹을 것 같다.
그때, 백기호 의원의 살벌한 목소리가 이소희의 귓가를 스쳤다.
“내가 무너지면 네 어미가 행복할 것 같아? 네 어미는 매일 울면서 지낼 거야. 널 원망하겠지.”
“…….”
“약속했다. 대통령이 되면 네 어미를 풀어 주겠다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그 약속 반드시 지킨다. 그러니까, 말해.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지? 여당?”
백기호 의원은 이 상황을 만든 주동자를 찾고 싶었다. 그놈만 박살 내면 된다. 메시지를 막지 못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간단한 방법. 그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이소희가 시선을 틀어 자신의 손목을 쥔 백기호 의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은 뭐라고 말씀하실지 정말 궁금해요. 이번에도 실수였다고 말할 건가요?”
“뭐?”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결정하세요.”
백기호 의원은 평생을 거래로 살아온 사람이다. 이소희가 지금 내뱉은 말 역시 그 거래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소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백기호 의원의 예상과 달랐다.
“하나, 내가 당신의 딸이란 것을 밝히는 것.”
“……!”
“둘, 어리고 예쁜 여검사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것.”
“……!”
“뭐가 됐든, 대통령은 될 수 없겠네.”
백기호 의원은 이소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의 눈빛이 의문으로 채워질 때였다.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며 ‘찰칵! 찰칵!’ 하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
난데없이 나타난 이은하 기자였다. 그녀가 백기호 의원이 이소희의 손목을 잡고 벽에 밀어붙인 것을 찍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의 놀란 모습, 이소희의 찡그린 얼굴,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백기호 의원은 눈을 부릅뜨고 이소희와 이은하 기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곧 마른침을 삼키며 잡았던 이소희의 팔목을 놓았다. 이어서 끌끌 웃기 시작했다.
당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 자리에서 어떤 변명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 입에서 강압적인 목소리가 흘렀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 제 얼굴을 보더니, 인터뷰하는 줄 알고 그냥 들여보내 주던데요?”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써 보면 알겠죠?”
이은하 기자는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당장 지워.”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은하 기자의 옆에 덩치들이 병풍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백기호 의원이 그 덩치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기호 의원의 사람이 아니다. 모두 이소희를 경호하는 장석민의 부하들이었다. 이소희가 백기호 의원과 약속을 잡은 후 미리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백기호 의원의 경호원들이 나타났다. 한정식집의 좁은 복도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채워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언제든 싸울 준비를 마쳤다.
이은하 기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여기서 소란 피우면, 조용히 식사하던 분들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릴 것 같은데요. CCTV도 있고요.”
백기호 의원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이소희에게 시선을 틀었다.
“너…….”
이은하 기자에 이어 덩치들까지 나타난 것을 보며, 백기호 의원은 이 일의 뒤에 이소희가 있다고 확신했다.
“너구나?”
이소희가 잡혔던 손목을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변명 기대할게요.”
“넌 지금 선을 넘었어.”
“그쪽은 언제나 넘었어요.”
“나가.”
“그런데, 내 평생 그쪽에게 부탁한 적이 없는데,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내가 그쪽 딸이란 것은 안 밝혔으면 좋겠네. 그쪽과 연관되면, 역겨워지거든요.”
백기호 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서 나가라는 듯 문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자 이소희와 이은하 기자가 백기호 의원에게 허리를 굽힌 후 밖으로 나갔다.
미닫이문이 닫히는 동시에 백기호 의원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씨이발.”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분노의 목소리가 토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소희와 이은하 기자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백기호 의원은 평생을 강자로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하찮은 것들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씨바알!”
백기호 의원이 초조한 걸음으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그 시선을 다급히 보좌관에게 틀었다.
“……김영준에게 연락해. 당장!”
* * *
김영준 총장이 창밖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같이 삽시다! 내가 무너지면 당신도 죽어! 그러니까, 압수 수색 막아!
김영준 총장의 미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믿었던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초조하다. 휘몰아친 태풍이 이제 백기호 의원까지 할퀴고 있는 거다.
-대답해요!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엄 회장이 백기호를 쳤다고?’
이 일의 뒤에 정말 엄 회장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엄 회장은 몸을 사릴 줄 아는 사람이다. 백기호 의원이 이런 상황을 이겨 내고 덜컥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를 계산할 줄 안다.
‘엄 회장은 그럴 그릇이 아니야.’
하지만 만약 이 일의 뒤에 엄 회장이 서 있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다.
백기호 의원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까지 계속해서 바람을 불어 댈 거다. 그 바람이 몰고 올 파도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엄 회장은 그럴 능력이 있다.
-총장!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에 김영준 총장이 한숨을 내뱉었다.
“걱정스러운 일이 있으면, 지금 모두 다 토해 내세요. 그래야, 내가 막아 줄 수 있어요.”
-총장!
김영준 총장은 더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열린 문틈으로 김영준 총장의 퇴직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중이다.
-김영준은 당장 퇴임하라!
-퇴임하라! 퇴임하라!
“이놈이나 저놈이나…….”
김영준 총장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살기 위해 백기호를 구해야 한다.
김영준 총장이 휴대폰을 들어 중앙지검장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런데 통화 연결음만 이어진다. 중앙지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지 않아…….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 * *
-백기호 의원 측은 신마그룹과 관련된 모든 게 사실 무근이라며…….
채널이 돌아갔다.
-신지연 사장은 모든 벌어진 논란에 사과한다며,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서진은 라디오를 들으며 홍천의 요양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산으로 둘린 곳, 서진은 요양병원까지 오르지 않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 나무가 가려져 있기에 신경 쓰지 않고 간다면, 차가 주차되었는지 모를 곳이다.
차에서 내린 서진은 요양 병원으로 향하는 길을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이 박정길을 이곳에 가뒀다는 것은 이 요양원 전체가 김영준 총장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다는 뜻. 서진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서진은 안내 직원을 거치지 않았다. 박정길의 아들에게 들은 호실을 찾아 곧장 걸음을 옮겼다. 비상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랐고 복도로 나와서는 이곳에 상주하는 직원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310호.’
서진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간소하다.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가습기가 전부다. 흔한 텔레비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박정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나칠 정도의 감금, 서진은 박정길이 김영준 총장의 어떤 치부를 손에 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정말 부모를 죽였는지, 아니면 목격 후 입을 닫고 살았는지. 이제 그 사실을 확인할 시간이다.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앞으로 틀어졌다.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이 보인다. 저 노인이 박정길일 것이다. 젊은 시절 떡 벌어졌었을 어깨가 이제 축 늘어진 채 외소하게 보인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쳤던 깡패의 마지막은 초라했다.
서진이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딸칵하고 공간을 울렸지만 박정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마네킹처럼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서진이 박정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박정길 씨?”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박정길의 시선이 천천히 틀어졌다.
“……!”
그리고 서진의 얼굴을 확인한 노인의 눈이 공포로 채워졌다. 마치 끔찍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