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베다. (1)>
서진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대검 앞에서 시작한 시위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김영준은 지금 당장 총장직을 사퇴하고 수사를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김영준은 지은 죄를 반성하고 당장 내려와라!
-내려와라! 내려와라!
서진은 무심한 눈으로 다시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 기사, 그곳의 댓글도 시끄럽다.
-여당에서 백기호 잡으려고 수 쓰는 거 아니냐? 김영준은 자기 아내와 아들까지 잡아넣은 사람이야.
└동의합니다.
└대선이 가까워지니까 별 쇼를 다하고 있네.
-정부 여당에서 김영준이 무섭나 보다. 이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재정건설은 갑자기 갑툭튀?
└신도시에 부지 하나 주겠다고 쇼부 쳤겠지. 좋은 땅에 건설할 수 있도록 해 줄 테니까, 김영준 잡으라고.
백기호 의원을 지지하는 측에서 김영준 총장을 보호하고 나섰다.
김준만이 울먹이며 기자회견을 했지만, 반대 진영 측에서는 그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하나. 사건의 연쇄 작용으로 백기호 의원의 지지율이 꺾일까 걱정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김영준 총장을 옹호하고 있다.
‘재밌네…….’
서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 * *
그날 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특검법에 동의할 겁니다.”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동의한다고요?”
“네.”
백기호 의원이 술잔을 내려 두며 말을 이었다.
“총장의 팔다리가 잘렸어요. 대검의 부장검사와 주요 직책의 검사들이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죠. 검사장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검사들이 배신했다. 자칫, 지금의 물살에 휩쓸려 죽을까 걱정하는 거다.
백기호 의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영준 총장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나한테 김영준 총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아직 느긋함을 버리지 않았다. 끌끌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의원님……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혼자 죽지 않아요. 내 지시를 따르던 검사들, 치졸하게 그 애들과 함께 저승길을 걷고 싶지는 않고……. 백 의원님이라면 외로운 저승길에 좋은 말동무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기호 의원의 입술이 뒤틀렸다.
“국민이 김 총장의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나를 공격하는 동시에, 지금껏 김 총장을 비호하던 세력도 사라질 거예요. 그 사람들은 나를 위해 김 총장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까요.”
“버티겠습니다.”
“……네?”
김영준 총장이 테이블에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특검 수사는 하루 이틀 안에 끝나는 게 아니에요. 몇 달을 이어 갈 겁니다. 대선이 끝나고 백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어도 계속되겠죠. 그때까지 견디겠습니다.”
“……!”
“그리고 백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면 흐지부지 만들어 주면 됩니다.”
백기호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김 총장…….”
“시간이 흐르면, 국민은 지칠 겁니다. 나중에는 제가 정말 정치적 음모에 휘말렸다고 생각하겠죠. 지금부터 저는 불쌍한 남자가 될 겁니다. 청렴결백한 검사, 아내와 아들을 잡아넣었고 형까지 치려 했던 남자. 하지만 정치적 음모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
백기호 의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김영준 총장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이런 이미지를 만들겠습니다. 의원님은 계속 제 결백을 인정해 주는 척 노력하세요. 대선은 의원님의 것이 될 겁니다.”
“……!”
“내 곁을 잠시 떠났던 검사들, 그 애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사탕을 던져 주면 언제든 달려올 애들입니다.”
백기호 의원이 끌끌끌 웃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주먹을 감싸 쥐며 말했다.
“뭔가 오해했던 것 같은데, 난 김 총장과 잡은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어요.”
* * *
-일명 ‘김영준 게이트’의 특별검사로 이두진 변호사가 임명되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수사를 맡게 된 이두진 변호사는 그동안 신마화학 산업재해 사건, 천하자동차 급발진 사건 등을 해결하며…….
이두진 변호사가 천천히 시선을 틀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봤다.
검사보로 임명된 변호사와 파견 검사 수십 명이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엔 장지혁 검사도 있었다.
이두진 변호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상대는 김영준이라는 이름의 괴물입니다. 막강한 대선 후보 백기호 의원과 함께하며 그 권력을 채찍처럼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죠.”
“…….”
“우리의 목적은 김영준을 시작으로 권력 카르텔을 끊어 내는 겁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을 겁니다. 검찰은 우리의 수사를 반기지 않을 테고, 국민은 우리에게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겠죠.”
“…….”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가 포섭되어 프락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사 기간 동안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잘 겁니다. 서로를 의심해 주십시오. 그럼, 휴대폰 반납해 주세요.”
모인 사람들이 바구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휴대폰이 지급되었다.
이두진 변호사가 계속 말했다.
“우리는 공적으로 모였습니다. 개인의 시간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휴대폰의 통화 내역을 매일 확인하겠습니다. 그러니 휴대폰은 공적으로만 사용해 주시고 나머지는 제 앞에서 해 주세요.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이두진 변호사가 정중한 태도로 허리를 굽혔다.
* * *
“특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겁니다.”
서진은 공대출 전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막걸리를 입에 대던 공대출 전 의원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특검은 검사가 아니다. 고위 공직자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움직이지만 수사에 제한이 많다.
게다가 백기호 의원 측의 방해가 만만치 않을 거다. 그들의 지지자들이 광적으로 김영준 총장을 비호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백기호 의원이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특검은 김영준 총장의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할 겁니다. 사형수의 눈에 안대를 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런데 목을 벨 방법이 있는가?”
“네.”
공대출 전 의원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특검으로도 해결 못 할 일을 할 수 있다니, 공대출 의원이 물끄러미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인 청부.”
“……!”
원래의 서진이 아파트에서 떨어진 이유, 그 원흉.
아직은 의혹이다. 하지만 서진은 거의 확신하고 있다, 김영준 총장이 원래의 서진을 죽이려 했다고.
“물론 다른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 정치적 음모라고 떠들 수 없는 완벽한 증거를 찾아 그 입을 틀어막을 생각입니다.”
서진의 머릿속에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런데…… 사고의 순간은 기억 안 나?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제 그 진실을 확인할 순간이다.
* * *
끼이이익.
구치소, 접견실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엄시영이 의자에 앉은 서진을 보고 입꼬리를 뒤틀었다.
“왜 왔지?”
엄시영의 목소리가 차갑다. 하지만 서진이 몸을 일으켜 엄시영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빨리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작은어머니.”
엄시영이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았다.
직원이 접견실을 떠나고 공간에는 두 사람만이 있었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거래를 하려고 왔습니다.”
“……거래?”
서진이 테이블에 휴대폰을 올렸다. 기사가 보인다. 아버지 김준만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봤어. 개판이더라.”
엄시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 진해졌다. 김영준 총장과 김준만의 싸움을 지켜보느라 신이 난 모양이다. 엄시영은 김영준 총장의 가식적인 모습에 치를 떨고 있었다.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아버지가 엄 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작은어머니를 꺼내 주는 대가로 재산의 반을 달라고.”
엄시영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눈에 살기가 솟아난다.
“……반? 그 인간이 미쳤구나?”
“그래서, 저도 작은어머니께 거래를 제안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왜? 너도 재산의 반을 원하니?”
서진이 슬며시 웃었다.
지금의 발언은 김영준 총장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어 주기 위한 씨앗일 뿐이다.
“아뇨,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올 텐데요. 돈에는 욕심 없어요.”
“그럼?”
“윤환이 형을 꺼내겠습니다.”
“……!”
엄시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녀의 행동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서진이 테이블을 툭툭 건들며 말을 이었다.
“물론 재정건설에 입사는 못 할 겁니다. 하지만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겠죠. 불법적인 일만 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조용히 서진의 말을 듣던 엄시영이 깔깔 웃었다.
“서진아…… 네 도움이 없어도 난 조만간 이곳에서 나갈 수 있어. 윤환이도 마찬가지고.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야.”
“…….”
“내가 검사는 아니지만, 그동안 지켜봐서 알거든. 검찰이 돈 많은 사람을 기소해서 교도소까지 보낸 사례가 몇이나 될 것 같아? 비행기를 돌려도 집행유예야.”
엄시영이 가소롭다는 듯 서진을 바라봤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믿어서다. 검사를 사고 판사를 섭외하고 일류 변호사를 곁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하지 마. 그런 것은 거래가 아니야.”
엄시영의 눈빛은 거만했다. 그런데 서진은 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작은어머니, 죄송한데……. 작은아버지는 지금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의혹을 받고 있어요. 이 상황에 작은어머니와 윤환이 형이 멀쩡히 나온다고요?”
“……!”
“작은아버지는 어떻게든 중형을 내리려고 노력할 거예요. 이빨이 빠졌다 해도 검찰총장, 그 정도 힘은 있어요. 그리고 윤환이 형은…….”
서진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 뜻은 엄시영도 정확히 알았다. ‘김윤환은 김영준 총장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 게이트를 무릅쓰고 구할 이유가 없다는 뜻.
엄시영의 얼굴에 느긋함이 사라졌다. 입술을 씹으며 생각에 빠져 있다.
서진의 말이 옳다. 김영준 총장은 그 알량한 권력을 위해 엄시영과 김윤환을 지옥으로 던질 거다.
엄시영이 서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네가 할 수 있다고?”
“네.”
“무슨 힘이 있다고?”
서진이 다시 휴대폰을 내려 뒀다. 이번엔 주소록이 보인다. 공대출 전 의원과 각 국회의원의 이름, 신마그룹 신지연의 이름 그리고 대검의 주요 간부들.
서진이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쿡 찍으며 말했다.
“아무나 찍으세요. 제가 이 사람들의 힘을 손에 쥐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서진이 휴대폰의 갤러리로 들어가 사진을 펼쳤다.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이 나란히 한정식집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있다.
며칠 전, 장석민의 부하가 찍어 보낸 사진이다.
“정보력도 있죠.”
“……!”
“약속하죠. 윤환이 형을 꺼내 드리겠습니다. 말끔히 차려입고 작은어머니께 면회하러 올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거래…… 하시겠습니까?”
엄시영이 휴대폰을 보며 손을 가늘게 떨었다.
“……너 뭐야?”
“작은어머니의 조카죠.”
“뭐냐고!”
“지금 생각하실 것은, 제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작은어머니.”
그동안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던 서진의 뒷모습은 거대했다. 상상할 수 없던 힘을 남모르게 기르고 있던 거다.
엄시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핥았다. 서진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져서다. 그리고 서진이라면 정말 김윤환을 꺼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건은?”
서진은 원래의 서진을 밀어 죽이라고 청부했던 사람, 그게 김영준 총장인지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서진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입을 닫고 침묵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엄시영이 모르고 있다면? 그게 진실이 아니라면? 또 다른 추악한 게 뒤에 있다면?
그 모든 것은 대답을 듣고 난 후 생각할 일이다.
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몇 년 전, 저를 밀었던 사람…… 그것을 청부한 사람이 누굽니까?”
엄시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거다.
서진의 목소리가 그녀를 쑤시듯 파고들었다.
“대답하셔도 좋습니다. 작은아버지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확인하려 온 겁니다.”
엄시영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서진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
“……어디서 들었어?”
“기억이 조금은 돌아왔고 기억나는 얼굴의 양아치 한 놈을 잡았죠.”
“양아치? 누군지 몰라도 겁 없는 애였나 봐? 그런 걸 떠들고 다니고.”
“작은아버지가 맞습니까?”
엄시영이 물 잔을 손에 들었다. 가볍게 목을 축인 후 서진을 바라봤다.
“윤환이, 정말 약속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