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31화 (231/250)

<파도가 몰려오면 (3)>

김준만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김영준 총장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섰다. 김영준 총장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 여기는 왜?”

김준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영준 총장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 눈빛에 어떤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영준 총장이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하지만 김준만은 그 목소리를 외면했다. 천천히 시선을 틀어 주차된 트럭을 바라본다.

“열어 봐도 될까?”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톤 없이 사무적이다. 아니, 힘이 빠져 있다.

“형……!”

“뭐가 들었지?”

김준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김영준 총장은 변명을 내뱉었다.

“외부감사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어. 털어서 먼지 나는 곳 없는데, 공사판에서 뒹군 곳이 오죽하겠어? 그래서 내가…….”

“외부감사? 그건, 누구한테 들었는데?”

“……!”

회사에 심어 둔 사람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영준 총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김준만은 트럭을 향해 걸었다.

“형!”

김영준이 말리려 했다. 하지만 김준만은 거침없이 화물칸을 열었다. 박스 하나를 거칠게 꺼내 바닥에 던진 후 테이프를 북북 뜯으며 박스를 펼쳤다. 드러난 것은 재정건설의 서류였다.

“……!”

김영준 총장이 한숨을 내뱉었다.

“형, 내가 다 설명한다니까!”

김준만은 눈을 꾹 감았다.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 인간은 절망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배신감보다 허탈함을 느낀다.

천천히 눈을 뜬 김준만이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영준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오해야. 난 정말 형을 위해서…….”

“나를 위해?”

“그래!”

“그럼 확인해 보자.”

“……확인?”

동시에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며 모자를 쓴 남자 열댓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도광현과 그 친구들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김영준 총장이 눈을 찌푸렸다.

“이, 이 새끼들은 누구야?”

“확인해 보자고 했잖아.”

도광현과 그 친구들은 김영준 총장과 김준만을 스쳤다. 이어서 빠르게 행동했다. 트럭에서 박스를 꺼냈고 테이프를 뜯었다. 박스를 엎어뜨리며 서류를 좍 쏟았다. 그리고 도광현이 김준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외부감사 시작하겠습니다!”

“하세요.”

김준만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도광현과 친구들은 빠르게 서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날짜별, 항목별로 세분화시켰고 그중 특이한 점이 있는 것은 따로 빼 뒀다.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김영준 총장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형……!”

김영준 총장은 갑작스레 이뤄진 외부감사가 장지혁 검사의 뒤에 선 누군가에 의한 수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펼쳐지는 상황을 보면, 형 김준만의 계획인 것처럼 여겨졌다.

“형!”

김영준 총장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그제야 김준만의 시선이 김영준 총장에게 닿았다.

김영준 총장이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서슬 퍼런 눈으로 김준만을 쏘아봤다.

“미치겠네……. 날 의심하고 있었어?”

“…….”

“재정건설, 그래 형의 노력이 컸지. 그런데 내 도움 없이 이 정도까지 컸을 것 같아? 내 힘이 절반이었어.”

김영준 총장이 김준만을 향해 상체를 굽히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핏발 선 눈으로 김준만의 시선을 마주하며 살기로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중에 사이좋게 반으로 나누자고 했는데, 그거 다 가식이었나? 친근한 척, 위해 주는 척하면서 나를 의심을 했다고? 아니지, 이것도 혼자 먹으려고 준비했던 것인가? 그렇게 살지 마.”

그 순간이었다. 김준만의 손이 휘둘렸다. 그 손이 김영준 총장의 뺨에 닿았고 ‘짝!’ 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모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문서를 확인하던 도광현과 그 친구들의 행동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은 고개가 틀어진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금…….”

김영준 총장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상황을 파악했다. 무엇이 자신의 뺨을 때렸는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사태를 파악한 김영준 총장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여 김준만을 노려본다.

“……뭘 하는 거지?”

창고 안에는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적막 속에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만이 극단적일 정도로 건조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형…… 감을 잃었구나?”

김영준 총장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느릿하니 만지며 김준만을 향했다. 그 입에서 똑같은 말이 전해졌다.

“감을 잃었어, 멍청할 정도로.”

“정신 차려.”

김준만의 말에 김영준 총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스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재정건설에 압수 수색이 들어갈 거야. 모든 자산은 동결될 테고, 은행은 대출 상환을 요구할 거야. 파산하겠지. 누렸던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

“직원들은 월급을 달라며 아우성치겠지. 그리고 고용노동부에 달려가 신고를 할 거야. 월급을 떼어먹혔다고. 수천 명의 실직자. 언론도 움직이겠네. 직원들의 월급을 씹어 먹은 악덕 기업가 김준만이라는 타이틀이 적히겠지. 그럼 마지막은 뻔해. 교도소에 들어가 구형을 받고 비참하게 처박힐 인생.”

“……!”

“지금껏, 형이 잘나서 잘사는 줄 알았지? 가르쳐 줄게. 그게 아니란 것, 모든 게 내 힘이었다는 것을.”

그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옆에서 그 모든 말을 듣던 도광현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도광현은 긴장된 숨을 내뱉으며 품을 뒤졌다. 휴대폰을 꺼내 서진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다.

김영준 총장의 극단적인 선택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은 지금 내뱉은 말은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청렴한 사람이라 해도 타깃으로 정한 채 탈탈 털기 시작하면 더러운 먼지가 쏟아지기 마련, 재정건설은 그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광현이 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저 트럭에 있는 모든 자료가 청와대로 향할 거야.”

김준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영준 총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김준만이 김영준 총장을 노려보며 계속 말했다.

“대통령이 기뻐하겠네. 눈엣가시 같은 너를 처박을 수 있을 테니까.”

“……!”

“영준아, 나도 힘이 있어. 내일 점심은 각 당의 원내 주요 의원들과 점심을 먹어야겠어. 내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너를 타깃으로 움직이겠지.”

“……!”

“그리고 언론사라고 그랬나? 그 사람들이 누구 손을 들어 줄지 궁금하네. 재정그룹의 광고료가 꽤 짭짤하거든. 그자들이 돈을 좇을까? 아니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네 권력에 고개를 숙일까?”

김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거친 건설 현장을 오가며 재정건설을 키워 낸 자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김준만도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게다가 김준만은 김영준 총장의 형이다. 그 핏줄은 어디 가지 않는다.

김영준 총장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자료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형도 무사할 수 없어.”

“상관없어. 같이 죽자, 영준아.”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도 많이 컸네.”

“10여 년 전에 네가 지시했던 압수 수색, 똑같은 걸 당할 수는 없잖아?”

“그래. 그건 넘어가고. 하나만 묻자. 형 혼자 한 일이야? 표정 보니까, 뒤에 누가 있구나? 그 사람한테 전해. 더 다가오면…… 그때는 참지 않겠다고.”

김준만은 대답하지 않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냉랭한 눈빛으로 김준만의 옆을 스치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알려 줄게. 대선이 끝나기 전에 남은 비리가 있다면 다 털어 내. 그때는 내 세상이 될 거야. 지금 같은 어설픈 협박으로 날 멈출 수 없어.”

“…….”

“그리고 서진이…… 자식의 앞날이 걱정되면, 계속 나한테 협조해. 그게 좋을 거야.”

김준만의 턱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리고 그 눈빛이 변했다. 지금껏 김준만의 눈에 살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준아, 나도 하나 알려 줄게. 서진이 잘못되면…… 넌 죽어.”

김영준 총장이 슬쩍 웃었다.

“기대되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손을 흔들며 창고의 문을 향해 걸며 말을 이었다.

“트럭은 가져. 선물이야.”

김영준 총장이 창고를 벗어났지만 김준만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김준만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도광현과 그 친구들은 서류를 분류했고 어떤 곳에서 어떻게 자금이 빠져나갔는지, 모두 예측을 끝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김준만에게 다가가서 “끝났다.”라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김준만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 * *

그 시각, 엄 회장의 자택.

넓은 방에 놓인 것은 티 테이블이 전부다. 그곳에 엄 회장과 서진이 마주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수십 명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다. 서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매섭다. 엄 회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 서진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주변에 선 사내들을 무시하며 어떤 불안도 없이 여유롭게 엄 회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엄 회장이 찻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엄 회장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노골적인 불쾌감마저 드러난 상태다.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말씀드리죠. 김영준 총장은 엄 회장님을 공격할 겁니다.”

“……!”

엄 회장의 손에 심줄이 솟아났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린다.

서진은 엄 회장의 모든 행동과 감정의 변화를 지켜보며 계속 말했다.

“김영준 총장은 두 마리의 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엄 회장님 또 하나는 재정건설. 그런데 재정건설에서 나오던 돈줄이 끊겼어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사라진 거죠. 두 개를 가지고 있다가 하나가 되었을 때,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서진이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남은 것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꽉 쥐고 있어야겠다. 이건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죠. 그 남은 하나가 엄 회장님의 자산입니다.”

엄 회장이 껄껄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가 몇 인지 아는가? 영준이 그놈은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 내가 죽으면 내 자식들을 쳐 내고 모든 유산을 먹으려 하지.”

“…….”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어. 난 사후를 위해 준비하는 중이야.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내가 살아 봐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

“그리고 놈은 내 힘을 알고 있어. 내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을 때, 덤벼들 만큼 멍청하지 않아.”

엄 회장은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이 이빨을 드러내기는 하겠지만 직접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고. 엄 회장에게는 아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볍게 던져진 서진의 말에 엄 회장의 행동이 뚝 멎었다.

“그럼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겠네요. 두 따님을 구치소에 잡아 두고 재산 정리를 하면 훨씬 더 손쉬우니까요. 어쩌면 모두 꿀꺽할 수도 있겠네요.”

엄 회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고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재정건설에 김영준 총장이 심어 둔 사람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서진이 천천히 시선을 틀어 주변에 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계속 말했다.

“이 중에 김영준 총장이 심어 둔 사람이 없다고 확신하십니까?”

“……!”

“김영준 총장의 욕심을 생각하세요. 하나를 놓치면 남은 하나는 자신의 뱃속에 넣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에요.”

엄 회장의 입술이 꾹 닫혔다.

그리고 서진이 엄 회장을 향해 천천히 상체를 굽혔다.

“간은 그만 보고 이제 요리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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