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30화 (230/250)

<파도가 몰려오면 (2)>

감사 팀장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이제 됐습니까?”

이곳은 소고기 전문점이었다. 모든 식탁이 칸막이와 미닫이문으로 가려져 프라이빗한 공간, 그곳에서 서진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들려왔다.

“잘하셨어요.”

“그럼…… 그거 찢어 주세요.”

감사 팀장의 손가락이 테이블 한쪽에 놓인 서류를 가리켰다. 그것은 감사 팀장이 지금껏 저지른 비리가 담긴 것.

“지금 당장, 제 눈앞에서 찢고 버려 주세요!”

상추에 쌈을 싸던 서진이 눈동자만 움직여 감사 팀장을 바라봤다.

“되게 당당하네?”

서진의 음성이 서늘했다.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꾹 참고 있는 것 안 보이나? 이 서류가 아니라, 그쪽 머리를 찢어 버리고 싶은데, 고기까지 사 주는 중이야. 그럼, 얌전히 먹어.”

“거, 검사님…….”

“재정건설에서 15년을 일했다고 들었어. 그런데도 아버지가 아니라 작은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 회사의 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았고 귀를 막은 인간. 그런 사람을 내가 쉽게 살려 줄 것 같아?”

서진은 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당당한 척하던 팀장은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서진이 말을 이었다.

“미안한데, 작은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했다고 당신의 죄를 없애 줄 수는 없어.”

“검사님!”

팀장이 다급히 외쳤다.

“곧 결혼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수사를 받게 되면……!”

“그 아들…… 청탁으로 공기업에 취업하지 않았나?”

“네?”

“누구나 안타까운 사연은 있어. 그러니까 애원하지 마.”

팀장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고개를 숙이며 통곡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팀장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김영준 총장의 손과 발이 되어 재정건설에서 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중간에 가로챈 돈이 꽤 많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 징역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팀장의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팀장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사람. 지금은 더 압박해야 한다.

“피해액이 높아서 특정 경제법 가중 처벌에 속하게 되겠지. 검사로서 약속할게. 최소 10년. 예순이 훌쩍 넘어야 세상 밖에 나오게 될 거야.”

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애원하던 눈초리가 아니다. 이제는 분노하고 있다. 김영준 총장에게 전화까지 걸었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팀장이 될 대로 되라는 듯 외쳤다.

“혼자 죽지 않을 겁니다! 김영준 총장에게 다 말할 거예요! 김서진 검사님이 지시했……!”

“말해.”

“……!”

서진이 젓가락을 내려 뒀다. 그리고 음산한 눈빛으로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는 너희 가족 전부를 괴롭혀 줄게. 횡령한 돈으로 수천만 원 학비의 외국인 학교를 다닌 아들, 온몸에 명품을 걸치고 벤츠를 끄는 아내. 약속하지. 전부, 알거지로 만들어 줄 거야.”

“……!”

“그게 싫으면 끝까지 내 말 들어.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개처럼 꼬리를 흔들고 고개를 숙여. 알았으면 입 닥치고 고기나 먹어.”

* * *

서진이 한정식집을 빠져나오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토끼몰이 시작할 거야. 오늘 밤은 고생 좀 해.”

-옙!

도광현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며칠 전, 도광현이 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검사님의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도 충분할 정도의 그림, 그런 큰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필요한 도구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확실한 사람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감사 팀장이에요.”

서진은 곧장 감사 팀장의 뒤를 캤고 그 비리를 손에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감사 팀장은 서진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서진이 저벅저벅 차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 밤, 김영준 총장은 움직일 거다.

외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 그간 지은 비리를 모두 한곳에 모을 게 분명하다.

서진은 그곳에 불을 지필 생각이다.

‘이제…….’

사냥 시작이다.

* * *

김영준 총장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상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김영준 총장이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이 실장, 들은 말이 있어. 내일 외부감사가 있다는데, 사실인가?”

상대는 김준만의 비서실장이다.

-저도 지금 소식 듣고 막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주체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주주 측에서 연락이 온 것인지…….

김영준 총장의 표정이 무심해졌다. 어떤 감정도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뭐지?’

감사 팀장에 이어 비서실장조차 외부감사의 주체를 모르고 있다. 놈들이 누구인지 내일이면 밝혀지겠지만, 뭔가 꺼림칙하다.

‘설마 그놈이?’

장지혁 검사의 뒤에 선 그림자가 의심된다. 놈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권력을 휘두를 줄 안다.

‘나를 치기 위해 재정건설을 타깃으로 잡았을 가능성이 커.’

김영준 총장은 놈이 재정건설의 비리를 캐다가 자신의 그림자까지 밟는 그 최악의 순간을 가정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실무자들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비리에 관련된 것을 빼돌리라고 해.”

-……네? 문서에 틈이 생기면 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됐어. 그건 내가 해결하지. 장소도 내가 제공할 테니, 일단 숨겨.”

장지혁 검사의 뒤에 숨은 놈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고작 평검사를 통해 칼을 휘두르는 놈이라면,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김영준 총장이 쉽게 짓밟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체는 내일 드러날 거다.

“외부 감사가 들어오면 일단 막아. 주체부터 확인해. 그래야 압박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의 목소리에는 김영준 총장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그 어떤 세력이 들어와도 김영준 총장이 뒤에 있다면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통화를 종료한 김영준 총장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제 김영준 총장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중이다.

만약, 자신이 그놈을 막지 못했을 경우, 그래서 재정건설이 횡령 의혹에 휩싸여 흔들리는 상황.

그런데 그 최악을 상상하던 김영준 총장의 입술에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만약…… 뭔가 잘못된다면, 형이 증거를 은닉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

김영준 총장은 김준만을 방패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한다면…….’

김영준 총장의 도움으로 재정건설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 김준만은 김영준 총장에게 더 의지하게 될 거다. 형제밖에 없다며 감사할 게 분명하다.

‘게다가…….’

김영준 총장은 이번 일로 재정건설의 모든 비리를 손에 얻었다.

언제든 포탄을 터뜨려 김준만을 날려 버리고 재정건설을 꿀꺽할 수 있게 되었다.

김영준 총장이 끌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하지만 지옥을 벗어나면 반드시 천국이 있는 법.

김영준 총장은 지금 상황조차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 * *

재정건설.

건장한 남성들이 박스에 각종 서류를 넣고 있었다.

“이건?”

“담아. 그건 빼고.”

“바로 옮기겠습니다!”

사무실을 비추는 CCTV는 꺼져 있다. 박스를 들고 오고가는 모습은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대기한 트럭에 착착 쌓였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감사 팀장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비서실장이 픽 웃었다.

“총장이 가드해 준다고 했잖아요. 누가 감사를 오든 상관없죠. 여차하면 그쪽에 검찰의 수사가 들어갈 텐데, 누가 버티겠어요?”

비서실장은 웃었지만 감사 팀장은 웃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서다. 이 모든 것은 서진의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어디로 간대?”

“총장이 사람 믿는 거 봤어요? 당연히 저도 모르죠.”

감사 팀장이 서진에게 지시받은 것은 트럭의 목적지를 알아내는 것, 그것을 보고하는 것.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조차 피해를 받는다. 서진의 눈빛은 정말 살벌했다.

“모른다고?”

“슬쩍, 트럭운전사한테 물어봤더니 절대 알려 줄 수 없다고 하던데요?”

감사 팀장은 입술을 씹었다. 목적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영준 총장은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확인하려 한다.

김서진이나 김영준이나 감사 팀장에게는 똑같은 악마였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감사 팀장이 몸을 틀어 서류를 확인하는 남성의 옆으로 향했다.

이들은 재정건설의 직원이 아니다. 김영준 총장의 지시를 받은 비서실장이 끌고 온 자들이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요. 내가 하고 있을게요.”

“괜찮습니다.”

“다녀와요.”

남성이 힐끗 감사 팀장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남성이 자리를 피했고 감사 팀장이 서류가 가득 든 박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뭘 하는 건지…….”

감사 팀장은 박스 안에 휴대폰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몇 개의 서류를 더 집어넣은 뒤 박스에 테이프를 둘둘 감았다.

* * *

-목적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대신 위치 추적 어플이 깔린 휴대폰을 넣어 뒀습니다. 실시간으로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서진은 감사 팀장의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도광현이었다.

-애들 출발하네요. 동영상으로 전부 찍어 뒀어요. 동영상 보낼게요.

도광현이 보낸 동영상을 확인한 서진이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재정건설에서 아버지의 사람은 몇 없었다. 모두 김영준 총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재정건설은 서진의 아버지가 피땀 흘려 키워 낸 곳이다. 그런데 떨어지는 이득은 전부 김영준 총장이 먹어 대는 중이었다.

함께 고생했던 아버지를 배신하고 김영준 총장에게 붙은 인간들, 권력과 탐욕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서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들에게 탐욕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 줘야 한다.

“가시죠.”

서진이 어둠에 대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 있던 그림자가 몸을 틀었다.

* * *

재정건설에서 출발한 트럭은 두 번이나 운전자를 바꿨다. 중간에 멈춰 서서 다른 운전자가 옮겨 탔고 그 뒤에 그 과정을 또 거쳤다.

철저히 은폐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주의 거대한 창고다.

트럭은 물건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내리지 않는다. 심지어 운전기사들은 트럭에서 내린 후 창고 밖으로 몸만 빠져나갔다.

잠시 후, 그곳에 김영준 총장의 차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김영준 총장이 무심한 눈빛과 함께 뚜벅뚜벅 창고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간 김영준 총장이 주차된 트럭 세 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김영준 총장은 이제 장지혁 검사의 뒤에 선 놈의 얼굴을 확인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외부 감사의 주체가 반드시 그놈일 거라 여기고 있었다.

‘내일이면 그놈이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

타깃을 알게 되면 짓밟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찰총장이 가진 모든 권력을 사용해서 지옥을 줄 거다.

김영준 총장이 느릿한 행동으로 휴대폰을 꺼내 재정건설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생했어. 내일은 내가 말한 대로 행동해. 외부감사 들어오면 놈들이 뭐라 말하든 상관하지 말고 막아.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비서실장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창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영준 총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 올 사람은 없다. 이곳은 철저히 김영준 총장 혼자 있어야 한다.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몸을 틀어 뒤를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의 부릅뜬 눈, 그 안에 담긴 눈빛이 흔들렸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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