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8화 (228/250)

<모였다 (3)>

* * *

호텔의 레스토랑, 그곳의 VIP실.

신지연은 그 넓은 공간에 홀로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보던 신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론이 뜨겁다. 이곳도 저곳도 서진의 이야기다.

서진이 순식간에 사건을 해결한 것, 그에 대한 내용이 SNS와 각 커뮤니티 사이트를 달궜고 기사가 올라갔다.

미제 전문 검사 김서진, 단번에 범인을 지목하다

김서진 검사, 보면 안다. 숨질 뻔한 여성 구해

신기에 가까운 능력. 이 시대의 히어로?

댓글을 읽어 내려가던 신지연의 입술이 휘어졌다. 그녀가 휴대폰을 툭 내려 두며 중얼거렸다.

“우리 동생…….”

신지연은 다리를 외로 꼬며 처음 서진을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저 조금 똘똘한 검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지연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크려나? 궁금하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며 서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진유경 형사와 이두진 변호사가 쫓아오고 있다.

진유경 형사는 조금 놀란 눈으로 VIP실을 훑었다. 이곳은 1인당 식사비가 최하 34만 원, 인테리어 역시 화려하다. 그것만으로 기가 확 눌릴 정도다.

“신지연이에요.”

신지연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진유경 형사에게 인사했다.

지금껏 조금 멍해 있던 진유경 형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신지연은 신마그룹의 일원, 아들과 남편의 사망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진유경 형사의 마음에 들기는 어려웠다.

“진유경입니다.”

진유경 형사가 입술을 씹으며 대답할 때였다. 신지연이 정말 예의 바른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김서진 검사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어떤 사과를 드려도 그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죄송합니다.”

진유경 형사의 눈이 커졌다.

언론에 비친 신지연은 도도했고 그 눈빛은 강했다.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여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 신지연이 진유경 형사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다.

신지연이 천천히 허리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람…….”

“……!”

“말 한마디로 세상의 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 저도 그렇게 배우고 자라 왔지만 이제는 바꾸고 싶네요.”

“……!”

“함께하고 싶습니다, 진유경 형사님. 허락해 주십시오.”

진유경 형사는 물론이고 이두진 변호사도 멍한 눈이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서진이 손뼉을 치며 물었다.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신지연 사장님께서 형제들을 치려는 그 이유.”

신지연의 시선이 진유경 형사와 이두진 변호사를 천천히 훑어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와 공주, 그들의 운명은 뻔해요. 왕자는 성에서 쫓겨나 죽을 테고, 공주는 원치 않는 시집을 가야 하죠. 웃음을 팔아야 하고…… 보여 주는 삶을 살아야 해요.”

“……!”

“저는 남편의 액세서리가 되는 삶이 싫어요. 이유가 됐을까요?”

신지연의 눈동자가 다시 진유경 형사에게 향했다.

“사과는 진심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오르면, 저질렀던 모든 것을 사과할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잡으려면…… 제가 필요할 겁니다.”

진유경 형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그러려고 온 거예요.”

* * *

잠시 후.

서진은 핸들을 틀고 있었다.

‘신지연, 진유경 그리고 이두진.’

이렇게 또 한 그룹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신마그룹을 공격하며 엄 회장을 견제할 거다.

지금까지 서진은 두 개의 집단을 만들었다.

하나는 장지혁, 이소희 검사와 이은하 기자 등으로 이뤄진 수사와 정보 집단.

이들은 서진의 헤드가 되어 모든 전략을 총괄할 거다.

다음으로 ‘신지연, 진유경 그리고 이두진’으로 구성된 재벌 견제 집단.

이들은 신마그룹이 정계에 힘을 쓰는 것을 억제하며 엄 회장의 마지막 수단을 방해할 거다.

‘이제…….’

서진의 손에 정보와 재력이 쥐였다.

하지만 세상을 쥐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권력 그리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명예.

‘권력은 있어.’

서진의 옆에는 정치인들이 있다.

공대출 전 의원처럼 호의적인 사람은 물론이고 비리로 목줄을 걸어 둔 꼭두각시도 존재한다.

‘문제는…….’

명예다.

정보력과 재력, 권력이 있어도 사람들을 이끌고 움직일 수 없다.

차량이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은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기사를 검색했다.

‘부족해.’

이름은 알렸다.

많은 사람들이 서진을 응원하고 있다.

서진의 능력에 열광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직업에 대한 칭찬.

이 시기에 확실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도 갖고 있다. 아니, 가진 것만 따지면 그들이 훨씬 더 압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진은 자신이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의 힘을 단단히 믿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강하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무너진 성벽을 살피지 않는 법.

서진이 손가락으로 핸들을 툭툭 두들기며 조용히 웃었다.

* * *

그 시각, 김영준 총장의 자택.

음산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영준 총장이 전화하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보셨습니까? 총장께서 대선 출마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꺼내지도 않았는데 지지율이 폭등하고 있어요. 하하하!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청와대도 난감할 거예요. 자기들이 짠 판, 오히려 당하게 생겼으니까요. 총장…… 총장이 도와주시면 난 갈 수 있어요. 내 다음은 총장이 될 겁니다.

김영준 총장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천천히 집을 둘러봤다.

집 안이 적막하다.

술에 취한 채 눈에 핏발을 세우고 덤벼들던 엄시영은 이제 없다.

눈치를 보며 인사하던 김윤환도 구치소에 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뒀다.

그 넓은 집, 김영준 총장은 혼자였다.

잠시 우두커니 서서 거실을 바라보던 김영준 총장이 넥타이를 풀며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소파에 등을 파묻고 천장을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은 한참동안 석상처럼 멈춰 있었다. 그렇게 있던 김영준 총장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딩동!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김영준 총장이 눈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형 김준만이 보인다. 김준만이 웃으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김영준이 문을 열자 곧 김준만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뭔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밥 안 먹었지? 배고프다. 밥 먹자.”

김준만은 김영준 총장의 대답을 듣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비닐봉지를 내려 두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네 형수가 오랜만에 팔 걷고 파김치를 했거든? 잘 익었더라. 한 통 가져왔으니까, 꺼내 먹어.”

김준만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동생을 걱정하는 거다. 괜한 위로보다 그 기분을 풀어 주고 싶어서다.

그래서 엄시영과 김윤환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이건 햇반. 요즘 햇반 잘 나와서 먹을 만해. 전자레인지 돌릴 줄은 알지?”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방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김준만의 음식 준비를 조용히 지켜봤다.

김준만이 돼지고기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형이 김치찌개 해 줄게. 얼큰하게 끓여서 소주 한잔하자.”

“…….”

“회사에 복잡한 일이 많아서 너랑 한잔하고 싶었거든. 너 예전에 내가 한 김치찌개 좋아했잖아.”

김영준 총장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먹을 게 없으니까 먹었던 거지.”

김준만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뭐야?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매일 그것만 먹었는데, 좋아할 수 있겠어? 그리고 형이 하는 게, 무슨 김치찌개야? 라면에 김치 넣은 거지.”

김영준 총장의 말에 김준만이 멋쩍게 웃으며 라면을 들어 보였다.

“그래도 맛있잖아.”

김영준 총장이 낄낄 웃었고 김준만이 돼지고기를 볶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우리 막 서울 올라왔을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김치 줬던 거 기억하지? 그 아주머니 손맛이 있었는데. 가끔은 그리워.”

“그랬나?”

“그래, 우리가 먹었던 김치가 어디서 났겠어?”

김영준 총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그 아주머니 별로였어. 우리가 물과 전기를 얼마나 썼는지 매일같이 확인했잖아. 선풍기 쓰지 마라. 9시 넘으면 불 꺼라. 조금이라도 많이 쓰면 잔소리하고.”

“…….”

“형 출근하고 내가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계속 불러 댔던 거 알아? 그때도 똑같은 말 했어. 아껴 써라, 어째라.”

김준만이 물끄러미 김영준 총장을 바라봤다.

그 시절, 함께 고생했고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추억은 달랐다.

김영준 총장은 좋지 않은 것만 기억하고 있다.

김준만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돼지고기도 넣었으니까, 예전보다는 맛있을 거야.”

그렇게 돼지고기가 완성됐다. 김준만과 김영준 총장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 소주잔이 기울어지고 김치찌개를 입에 댔다.

“조금 싱거운데?”

김영준 총장의 말에 김준만이 고개를 저었다.

“싱거운 게 몸에 좋은 거야.”

“물 조절 실패했지?”

“아니라니까? 우리도 건강 생각해야 할 나이인 거 몰라?”

“에이…… 아닌데?”

“마셔.”

두 형제는 한참 동안 농담을 이어갔다.

그렇게 소주 두 병이 싹 비워졌을 때, 김영준 총장이 김준만의 잔에 술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형.”

“어?”

“미안하다고.”

김영준 총장은 생각했다.

위기는 끝난 게 아니다. 자산은 동결되었고 언제 끊길지 모른다.

엄 회장의 돈을 빼앗지 못하면 앞으로 계획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정치도 권력도 돈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생각한 두 번째 계획, 재정건설이다.

엄 회장의 자산을 빼앗지 못하면 그 차선책으로 재정건설을 움켜쥘 거다.

벌어질 일은 뻔하다.

형 김준만에게 미움을 받을 테고, 그 과정에서 김준만이 교도소에 들어갈 수도 있다.

“……잠시 힘들어도 다시 잘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야.”

김영준 총장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성공하면…… 모두 형의 덕이라고 생각할게.”

김준만이 씁쓸하게 웃었다.

김영준 총장의 생각은 읽지 못한 채, 그저 엄시영과 김윤환의 일로 힘들어한다고 생각했다.

“힘내, 인마.”

* * *

다음 날.

서진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장지혁 검사가 다가오고 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말없이 눈빛으로만 인사를 나눴다.

보는 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김영준 총장의 귀에 들어갈지 몰라서다.

그리고 서로가 마주친 순간 장지혁 검사가 서진에게 휴대폰과 USB 하나를 건넸다.

휴대폰은 지난번 김영준 총장의 집 근처 분리수거장을 뒤져 찾아낸 것. 바로 엄시영의 것. USB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너희 집에 대한 일이 있을 수도 있어서…… 난 안 봤다.”

“감사합니다.”

서진과 장지혁 검사는 작게 대화를 나눈 후 서로를 스쳐 갔다.

* * *

사무실로 돌아온 서진은 노트북을 켜고 USB를 꽂았다.

엄시영이 누군가와 대화했던 메시지와 연락처가 가득하다.

서진은 메시지를 넘기며 엄시영의 대화를 읽어 내려갔다.

중요한 것은 없다. 거의 대부분이 쓸데없는 것.

계절 신상으로 명품관에 뭐가 들어왔는지, 어떤 시계가 좋은지.

때때로 외도를 한 것도 같다. 누군지 모를 남자와 달콤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보인다.

‘다음, 다음, 다음…….’

서진은 계속해서 파일을 넘겼다.

그러다가 최지범과의 대화에서 멈칫거렸다.

-최 실장 : 재정건설에 대한 것, 회장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서진이 엄시영의 휴대폰을 손에 쥐며 눈을 찌푸렸다.

‘재정건설?’

그 순간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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