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5화 (225/250)

<쑥대밭. (4)>

***

김영준 총장이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서진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펼쳐진 업무가 한가득이었지만 손도 대지 못했다.

계속해서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본 것을 되새기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 보는 중이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적당히 끝내서는 안 됩니다.”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번에는?’

그 말을 풀이하면 예전에도 김영준 총장이 살인 청부를 했던 적이 있다는 거다.

“제대로 하셔야 할 겁니다.”

이어진 말을 기억하면, 살인 청부는 실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구를 죽이려 했던 거지?’

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어지간한 인물은 김영준 총장의 손에서 해결할 수 있다. 웬만한 사람은 김영준 총장의 손가락질 한 번에 지옥의 나락에 빠져 버린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은 직접 나서지 못하고 사채업자에게까지 부탁하며 살인을 청부했다.

떠오른 인물은 백기호 의원, 여당의 권력자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엄 회장의 목소리.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게 한 3, 4년 됐나?”

서진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달력을 검색했다. 툭, 툭 년도를 넘겼다.

‘3, 4년…….’

서진의 손가락이 뚝 멎었다.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죽었을 때야.’

서준경이 죽었을 때의 시기와 겹친다.

하지만 서준경의 죽음은 밝혀졌다.

남은 것은 서진.

옥상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기억을 상실했던, 정확히 말하면 서준경이 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 그 원인.

‘설마…….’

서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지금껏, 작은어머니의 계략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어머니와 원래의 서진 사이에 어떤 갈등과 폭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이 틀어졌다.

원래의 서진, 그 등을 떠밀어 옥상에서 던졌던 그들, 그 뒤에 김영준 총장이 서 있는 것만 같다.

서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몸에 들어와 처음으로 김영준 총장을 만났던 그때를 떠올렸다.

동남지청으로 떠나기 직전, 서진의 집에 찾아왔던 김영준 검사장은 날카롭고 어두운 눈, 그 눈빛으로 서진을 관찰했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물었었다.

“그래, 기억이 없다고?”

“그런데…… 사고의 순간은 기억 안나?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퍼즐이 맞춰진다.

김영준 총장이 계속해서 서울로 올라오라 했던 것도 모두 서진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

서진은 지금껏 자신이 김영준 총장을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김윤환을 통해 서진을 파악하려 했고 조우재 부장검사를 이용해 서진의 모든 것을 살피려 했다.

관찰당하고 있던 것은 서진이다.

‘미치겠네.’

지금껏 이어 온 추론이 사실이라면, 김영준 총장은 조카를 죽이려 한 사람이다. 형의 회사를 빼앗고 자신이 꿀꺽하려 했던 자다.

고개를 저으며 어이없다는 듯 웃던 서진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아버지 김준만이 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진의 안쓰러운 표정은 잠깐이었다.

‘무슨 이유로?’

김영준 총장이 살인 청부까지 지시했던 것.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김영준 총장이 위기를 느꼈을 그 무엇이 존재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무엇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지금은 앞에 놓인 지뢰를 넘어 계속해서 전진할 때다.

김영준 총장은 서진에게 엄 회장을 박살 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게 함정일지, 김영준 총장의 진심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용할 수는 있어.’

대어를 잡을 때는 미끼도 큰 놈을 사용하는 법.

서진은 엄 회장이든 김영준 총장이든, 그들을 미끼로 사용해서 그들의 카르텔을 부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 날.

대검찰청 브리핑 실은 기자들로 가득했다.

어제 있었던 엄시영의 체포.

그에 따른 김영준 총장의 기자회견.

30년 전의 살인 사건과 그동안 저지른 비리.

“이래서 집안 단속을 잘해야 하는 거야. 차기 대선 주자까지 거론되던 사람이 한 방에 무너지네.”

“사퇴 발표하려나?”

“혹시 모르지. 버틸 수도 있어.”

“버틴다고 해서, 뭐? 국민의 신뢰가 이미 바닥을 쳤는데? 끝난 거야.”

기자들은 김영준 총장이 내뱉을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김영준 총장의 사퇴를 점치고 있다.

청렴해야 할 검찰총장이 역외탈세와 편법 증여, 차명까지 이용했으니, 버틸 수 없다고 여긴 거다.

그 증거로 국민의 민심이 불같이 일어나는 중이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은 김영준 총장을 욕하고 있다.

김윤환이 구속된 일까지 찾아내며 그 집안을 문제 삼는 중이다.

“사퇴 안 하면 돌 맞아 죽을걸. 극성 지지자 외에는 다 등 돌렸잖아?”

그때 문이 열리며 김영준 총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기자의 시선이 김영준 총장에게 향했다.

그들의 떠들어 대던 목소리가 사라졌고 기자회견장은 적막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단상에 섰다.

김영준 총장의 모습은 초췌하다. 잠을 못 잔 것처럼 눈이 충혈되어 있고 표정은 침울하다. 손에 쥔 서류를 영혼 빠진 눈으로 바라보며 한숨만 내뱉었다.

그러기를 잠시,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먼저……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고뇌에 고뇌를 이어 간 것처럼 목소리 역시 힘이 없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기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리발 내밀고 버티겠다는 거야?’

‘그 많은 돈을 꿍쳐 뒀는데, 남편이 몰랐다고?’

‘정치한다고 준비하더니, 그새 치매에 걸렸나 보네.’

기자들의 눈빛은 대놓고 불신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며칠 전만 해도 김영준 총장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지금 김영준 총장은 날개가 꺾였다.

기자들은 숙였던 고개를 뻣뻣이 세우며 펜을 움직여 김영준 총장을 찌를 준비를 마쳤다.

그사이에도 김영준 총장의 변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바쁜 공직 생활로 인해 집안을 소홀히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내를 바라보지 못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종이 한 장을 손에 들어 공개했다.

“……저도 어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

기자들의 눈이 번쩍였다.

친자 확인 검사.

김윤환이 김영준 총장의 아들이 아니란 것.

동시에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저, 저는…… 이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

“사실, 숨기고 싶었습니다. 30년을 넘게 키웠는데, 이제와 제 핏줄이 아니라 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하지만 이걸 공개한 이유는 하나! 제 결백을 믿어 달라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

“앞으로도 저는 제 아내와 제 아들을 보듬을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제 아내와…… 아들입니다.”

순간, 김영준 총장의 눈에 눈이 충혈됐다. 곧 눈물이 그렁거렸다.

김영준 총장은 이어 가던 말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

눈물을 참기 위해 단상을 꽉 쥔 손.

그 모습이 정말 애처롭게 느껴졌다.

김영준 총장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 주는 중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들이 술렁였다.

다시 판세가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판세는 이미 기울었다.

포털 사이트의 모든 댓글은 김영준 총장을 응원하고 있다.

남자들은 뻐꾸기를 키워 온 김영준 총장이 불쌍하다며 글을 올렸고 여자들은 감동을 받았다며 댓글을 작성했다.

“……수십 년 검사로 살아온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합니다. 제 아내와 제 아들 역시 그 지은 죗값을 치르게 할 겁니다. 아니,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 무거운 벌을 내리겠습니다.”

“……!”

“그리고 저 김영준은! 아내와 아들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국민께 봉사하겠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믿어 주십시오.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만 보이겠습니다!”

***

서진의 사무실.

서진 역시 텔레비전을 켜고 김영준 총장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다.

서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끌끌 웃었다.

‘정말…… 미친 새끼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들이 핏줄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 패닉 상태를 보인다. 저런 식으로 이용할 생각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훌륭히 활용했다.

놈은 파충류 같은 냉혈한, 세상 모든 것은 이용 대상일 뿐이다.

서진이 리모컨을 들어 기자회견을 종료했다.

“저걸 또 저렇게 빠져나가나?”

옆에 있던 이동영 수사관이 혀를 쯧쯧 찼다.

서진이 몸을 일으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예상은 했어요. 저렇게 할 거라는 상상을 못 했을 뿐이죠.”

서진이 재킷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

그 시각, 기자회견을 끝낸 김영준 총장이 곧바로 차량으로 이동했다.

차에 올라 휴대폰을 귀에 댔다.

“지금 가겠습니다.”

엄 회장에게 연락한 거다.

통화를 종료한 김영준 총장이 운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남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가.”

기자가 핸들을 틀었고 김영준 총장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올라온 기사의 댓글을 보는 거다.

여론이 바뀌었다.

어제만 해도 김영준 총장을 비난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김영준 총장이 껄껄 웃으며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세상이 이렇게 쉬운 것을…….”

***

잠시 후, 김영준 총장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하남의 한정식집이었다.

김영준 총장은 재킷을 툭툭 털며 약속된 룸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김영준 총장이 엄 회장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자 엄 회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제는 시간이 없었고…… 이제 그다음 이야기를 해야지? 편히 이야기하게. 오늘 이 가게는 내가 전부 빌렸으니까.”

어제는 장지혁 검사의 목숨과 엄시영의 석방을 거래했다.

이번에는 엄선주에 대한 거래를 할 차례다.

“바로 본론인가요?”

“인사는 어제 다 했잖나?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사를 나눌 사이가 아니야.”

어제, 김영준 총장은 엄 회장을 향해 장인어른이라는 말을 거뒀다.

그것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은 것.

엄 회장이 입을 열었다.

“뭘 원하지?”

“아시겠지만, 저는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욕심도 많아. 그 욕심 다 채우려면 어찌 살려고 그러나?”

“회장님처럼 살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다음 대선까지 앞으로 5년, 힘든 시간이 되겠죠. 그런데 5년 후에도 회장님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엄 회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엄 회장은 일제강점기와 전쟁까지 겪은 사람. 이제 자신의 시대는 갔다. 언제 하늘이 그 목숨을 거두어 갈지 모른다.

“그래서?”

“위자료를 받고 싶습니다. 이혼에 대한 위자료. 회장님이 가진 절반의 재산. 물론 이혼 서류가 작성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는 마세요.”

“……절반?”

“네.”

“김영준!”

엄 회장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거침없다.

“회장님은 나쁜 짓만 하고 사셨습니다. 그 돈, 기부하고 가세요. 제가 잘 사용하겠습니다.”

“이놈!”

“절반의 재산을 주신다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손에 쥘 인사권의 반, 그 절반을 엄시영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원한다면 계약서를 써서 공증이라도 받아 두겠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엄 회장이 분노 가득한 눈으로 김영준 총장을 노려봤다.

엄시영에게 권력을 절반을 준다는 말, 당연히 거짓이다. 아니, 준다고 해도 문제다. 엄시영은 김영준 총장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철저히 짓밟히며 가졌던 모든 것을 토해 내야 할 거다.

엄 회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손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하지만 엄 회장은 그 자리에서 거부의 뜻을 내뱉지 않았다.

“……생각해 보지.”

김영준 총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김영준 총장의 발언은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포석일 뿐, 실제 그것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엄 회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김영준 총장은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계속해서 엄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때 엄 회장이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

“말씀하세요.”

“선주는 물론이고 윤환이도 꺼내 주게. 자네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첫 손주야. 그 어린것이…….”

김영준 총장이 무심한 눈으로 엄 회장을 살폈다.

조건이 너무 좋다.

엄시영, 엄선주, 김윤환을 꺼내는 것만으로 절반의 재산이라니.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엄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어.”

김영준 총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조건이 많아지네요.”

“5년 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때 또는 자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난 자네 형의 목숨을 거두어 가겠네.”

김영준 총장이 미간을 찌푸렸고 엄 회장이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을 이었다.

“재정건설, 그곳에서 벌어진 비리가 창고에 가득해. 자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창고 앞에 기자들이 모일 게야.”

엄 회장은 김영준 총장의 형 김준만을 카드로 내놓았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은 어떤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엄 회장이 히죽 웃었다.

“형제의 목을 벨 수 있다는 겐가? 난 자네의 그런 면이 두려워. 꼭 나 같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가. 자네는 바쁠 테고, 난 자네 얼굴 보며 식사하면 체할 것 같아.”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겠습니다. 식사하십시오.”

김영준 총장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건조한 시선으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벗어났다.

혼자 남은 엄 회장이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한참 이어졌다. 김영준 총장이 차를 타고 그 주차장을 떠날 때까지.

그러자 가로막혀 있던 벽이 스르륵 미닫이문처럼 열리며 옆방과 이어졌다.

그 옆방에 서진이 보였다.

엄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이어서 서진을 보며 정말 활짝 웃었다.

“저놈이 자네 아비를 어찌하려 하는지 똑똑히 들었지?”

서진은 조용히 물컵을 내려뒀다.

김영준 총장은 엄 회장을 부수라고 말했다.

엄 회장은 김영준 총장을 짓이겨 달라 부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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