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4화 (224/250)

<쑥대밭. (3)>

***

취조실.

엄시영의 앞에 설렁탕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수저 한 번 들지 않는다. 그저 회까닥 돌아 버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게 전부다.

끼이이익.

취조실의 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엄시영이 시선을 틀어 문을 바라보자 김영준 총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엄시영이 입술을 씹으며 물었다. 그러나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엄시영의 앞으로 다가와 설 뿐이다. 그러자 엄시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화를 왜 안 받냐고!”

“…….”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엄시영을 내려다보는 게 전부였다.

엄시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엄시영이 머리를 질끈 묶으며 몸을 일으켰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여기서 1초도 있고 싶지 않으니까, 집에서 말해.”

엄시영은 생각했다. 김영준은 검찰의 수장이며 언제든 자신을 빼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김영준 총장이 나타난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다.

“앉아.”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엄시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조사는 받아야지?”

“……조사?”

김영준 총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의자를 빼내고 엄시영의 앞에 마주 앉아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앉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앉으라고 했어.”

묵직한 목소리에 엄시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김영준 총장이 계속 말했다.

“그 옛날, 우리의 결혼. 난 당신을 이용하려고 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최지범과 함께 전 남자 친구의 시신을 파묻었던 것도 그 이유야. 난 계속해서 당신이 필요했고 당신의 아버지를 협박할 무언가가 필요했지.”

“알았으니까, 집에서 말하자고!”

엄시영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엄시영의 히스테리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성공적이었어. 당신의 아버지는 살인을 무마하는 대가로 내게 자유를 줬으니까.”

“뭐라는 거야!”

“그런데, 그 일이 때로는 약점도 됐지. 내가 시신을 유기했다는 게, 어떤 루트인지 모르겠지만 백기호의 귀에 들어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참았어. 서로에 대한 거래, 그게 우리의 관계였으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

“그리고 당신도 내가 필요했다고 여겼어. 내가 가진 검사라는 직업과 권력, 고생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엄시영과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 완벽할 정도의 적대감이 느껴졌다.

엄시영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지금 그 거래가 끝났다는 거야?”

“적어도 거래에 대한 의리는 지켰다고 생각했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득을 원하며 만난 관계였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지켜야 할 선. 당신은 그 선을 넘었어.”

엄시영이 테이블을 손으로 쾅, 짚으며 벌떡 일어섰다.

“말 빙빙 돌리지 말고 하고 본론이나 말해! 내가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이제 이득 될 게 없으니까,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

“난 선은 지켰다. 하지만 넌 아니야.”

그 말과 동시에 김영준 총장이 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툭 올려뒀다.

엄시영의 눈동자가 종이봉투로 향한다. 김영준 총장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봐.”

엄시영의 초조한 손길이 종이봉투로 향했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김영준 총장과 김윤환에 대한 친자 검사 결과였다.

“……!”

엄시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눈초리로 김영준 총장과 검사 결과를 번갈아 봤다.

김영준 총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느릿하게 말했다.

“윤환이는 지은 죄를 다 받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할 거야. 아, 윤환이가 내 친자가 아니란 것도 세상에 알릴 생각이야.”

“여, 여보…… 유, 윤환이만큼은…….”

“세상은 나를 동정하겠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내에게 속고 산 남자. 아내가 범죄자란 것도 모른 채 세상의 정의를 위해 강직한 검사로 살아온 남자. 괜찮은 스토리텔링, 난 그렇게 기억될 거야.”

“여보!”

“시영아…… 고맙다. 마지막까지 도움을 줘서.”

김영준 총장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틀어 문으로 향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엄시영이 악을 지르며 김영준 총장을 불렀다. 문고리를 잡던 김영준 총장이 시선을 틀어 엄시영을 바라봤다.

엄시영이 멈칫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입술도 움찔거릴 수 없었다. 김영준 총장의 눈빛이 자신을 갈아 먹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엄시영이 어떤 말도 하지 않자,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취조실을 울렸다.

“걱정하지 마. 유미는 잘 키울 거니까. 그리고 다른 생각하지 마. 당신이나 윤환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바깥공기를 마시길 원한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내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할 거야, 지금처럼 영원히.”

그 말이 끝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취조실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엄시영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

밖으로 나온 김영준 총장의 표정은 엄시영과 달랐다. 건조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부재중 통화가 서른 통은 넘게 와 있었다.

기자, 기자, 부장검사, 기자, 유미, 서진 그리고 형, 형, 형, 형, 형…….

형 김준만에게 온 메시지도 가득하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 일 없을까?

-뭐든 말해. 일단 아는 언론사 사장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김영준 총장은 형 김준만에게 온 모든 것을 외면했다. 여전히 건조한 눈빛으로 주소록을 툭툭 넘긴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일 아침에 기자회견 준비해. 오늘 밤은 바쁠 거야.”

김영준 총장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주소록을 확인했다. 손가락이 멈춘 곳에 서진의 이름이 있다.

김영준 총장이 거침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퇴근했나?”

***

서진은 휴대폰을 내려 두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김영준 총장이 엄시영을 만나기 위해 중앙지검에 들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이 갑자기 서진의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한다.

‘갑자기 왜?’

김영준 총장은 지금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엄시영이 긴급체포되었고 모든 언론이 김영준 총장을 비난하고 있다.

게다가 김윤환이 아들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즉,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서진을 만나 잡담을 나눌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다.

서진이 입술을 쓸며 김영준 총장이 찾아오는 이유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지금 서진은 김영준 총장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과 같다.

서진 혼자였다면 거침없이 싸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가족이 있다.

자칫, 싸움의 불똥이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동생 진영에게 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언제나 최악을 염두에 뒀다. 벗어날 대비를 준비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의 수를 예측하며 방비하려 노력하는 거다.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 장지혁 검사가 했던 말이 스쳤다.

“야…… 죽일 것처럼 노려보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네 뒤에 있는 그 사람에게 전해 줘. 좋은 선물 전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또 하나 전해 줘. 나도 선물 하나 보내 줄 테니 기대하라고.’ 그 말 들으면서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서진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설마?’

몇 개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중 최악은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의 뒤에 선 사람이 서진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김영준 총장이 서진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오셨어요?”

서진은 최대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인사하며 김영준 총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굳은 얼굴로 서진을 향해 다가온다. 하지만 목소리는 평온하다.

“작은어머니의 소식은 들어 알고 있지?”

“아, 네.”

“부끄럽게 됐어.”

김영준 총장이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리고 무심한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몸은 어때?”

“몸요?”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눈을 깜빡이자 김영준 총장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기억상실, 아직도 똑같은가?”

“아, 네.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는데, 큰 불편함도 없어요. 그래서 잊고 살았네요.”

“그래?”

“네.”

김영준 총장의 눈빛이 이상했다. 저것은 작은아버지의 눈빛이 아니다. 서진의 모든 것을 파헤치려는 검사의 눈이다.

서진은 지금 김영준 총장의 모든 행동이 낯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배를 손에 들었다. 서진이 그 앞에 재떨이로 사용할 종이컵을 내려 두자 계속 말했다.

“부탁 하나 하자.”

“……!”

뜬금없던 질문에 이어 난데없는 부탁.

“먼저…… 난 지금 너조차도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이 일을 지시할 사람이 너밖에 떠오르지 않아.”

김영준 총장의 곁에는 기라성 같은 검찰의 인물이 가득하며 권력을 휘어잡은 정치인도 수두룩하다.

반면에 서진은 일개 평검사다. 외부에서는 스타 검사니, 미제 전문이니 하는 말을 내뱉으며 띄워 주지만 김영준 총장 같은 사람의 눈에는 아직 애송이일 뿐이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지목했다. 서진은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입술이 움직였다.

“엄 회장, 내 장인 어른이기도 했지. 우리나라에서 현금 보유량으로 따지면 손에 꼽힐 사람. 그 사람을 치울 거야.”

“……!”

“이유와 목적은 묻지 마. 말했듯이 지금 나는 너도 믿을 수 없으니까.”

김영준 총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의자에서 일어서 서진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서진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

강남의 한 한정식집.

김영준 총장은 그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끝에 있는 VIP실로 향했다.

그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김영준 총장을 알아보며 허리를 굽혔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의 손에 의해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 엄 회장이었다.

“왔는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게 한 3, 4년 됐나?”

“그 정도 됐을 겁니다.”

“앉게.”

김영준 총장이 마주 앉으며 손목시계를 살폈다.

오후 7시다.

엄시영이 체포된 후 약 3시간이 지난 시각, 그러니까 서진이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보는 이것은 중앙지검에 오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다.

엄 회장이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급한 일이 있나?”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지금껏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예순다섯 명이야. 국회의원과 법원장, 청와대의 요직에 앉은 놈들과 언론사의 사장들, 그놈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있다가 떠났지.”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엄 회장이 끌끌끌 웃었다.

“돈이 좋기는 좋은가 봐. 하나같이 내 죄는 묻지 않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잠시 말을 줄인 엄 회장이 술잔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내려뒀다. 그리고 서늘한 눈동자로 김영준 총장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시영이는 어쩔 수 없다고 했어. 거지새끼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나? 김 서방, 내가 살아 봤자 얼마나 살겠나? 교도소에 몇 년 있다가 죽는다 해서 그게 뭐 어떻겠나? 그래서, 내 자네에게 거래를 제안하려고 해.”

“…….”

“선주가 구치소에 있는 것은 내가 눈감아 줬어. 천방지축 날뛰는 성격을 잠시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자매 싸움이라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시영이와 선주 그리고 윤환이, 당장 내보내.”

김영준 총장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엄 회장이 분노했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쾅, 쾅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자네도 어쩔 수 없다는 겐가!”

“네.”

담담한 말투에 엄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영준 총장이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검찰의 압수수색,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못하겠다고?”

“그리고 저도 알게 됐습니다.”

“뭘!”

“윤환이가 제 아들이 아니란 것을요.”

“……!”

엄 회장의 행동이 멎었고 김영준 총장이 스산하게 웃으며 술을 입에 댔다. 그리고 빈 술잔을 내려 두며 말했다.

“장인어른…… 아니 회장님도 알고 계셨나 봅니다?”

“자, 자네…….”

“대한민국 검찰총장, 별것 없는 권력을 가진 자리. 그런데 30년 넘게 바보로 만든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는 있겠네요. 내가 망가질 생각을 한다면, 회장님도 버티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그래도 그동안 살아온 정이 있지 않은가?”

엄 회장은 강자다.

하지만 딸 가진 아비는 약자다.

엄 회장의 목소리는 약해지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이 다시 술을 채우며 물었다.

“됐습니다. 이제, 진짜 거래를 하시죠. 뭘 주시겠습니까?”

“바, 방법은 있다는 것인가?”

“있습니다. 사건은 더 큰 사건으로 덮는 법이죠.”

“그래서?”

“검사 하나 죽여 주십시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적당히 끝내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하셔야 할 겁니다.”

“검사?”

“장지혁이라는 놈이 있습니다.”

***

사이코메트리가 끝났다.

흑백이 걷히며 세상은 색을 되찾았다.

서진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해졌다.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전해 줘. 나도 선물 하나 보내 줄 테니 기대하라고.”

그 선물이 장지혁 검사의 목숨이었다.

그리고 서진을 혼란하게 만든 것은 또 있었다.

사이코메트리에서 김영준 총장이 내뱉은 마지막 말.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적당히 끝내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하셔야 할 겁니다.”

김영준 총장이 사무실에 들어와 뜬금없이 던졌던 질문.

“기억상실, 아직도 똑같은가?”

눈앞에 복잡한 퍼즐이 확 펼쳐진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 그 퍼즐을 맞출 시간은 없다.

서진은 표정을 관리하며 김영준 총장을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이 입을 열었다.

“엄 회장을 잡을 레시피는 주지. 넌 요리만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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