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3화 (223/250)

<쑥대밭. (2)>

장지혁 검사는 조용히 김영준 총장을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은 석상이 된 것처럼 멎어 있었다. 검사 결과를 스치는 눈동자만 움직일 뿐이다. 믿을 수 없는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는다.

물론 검사 결과지에 적힌 김영준 총장과 김윤환의 이름은 인쇄된 게 아니다. 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있을 뿐이다.

김윤환은 김영준의 아들이 아니었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장지혁 검사는 확신 없이 검사 결과를 내밀 사람이 아니며 금방 들통날 일로 협잡질할 멍청한 인간이 아니다. 즉, 이 결과지는 사실일 거다.

김영준 총장이 눈을 꾹 감았다. 씹힌 입술에서 침음이 새어 나왔다.

장지혁 검사는 그런 김영준 총장을 보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단단히 굳은 얼굴로 장지혁 검사를 노려봤다가 다시 검사 결과지를 바라봤다.

“……사실인가?”

김영준 총장이 검사 결과지를 테이블에 올려 두며 물었다. 그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건조했다. 그 어떤 감정도 혼란도 섞여 있지 않다.

“네…….”

“사실이라…….”

순간 장지혁 검사는 봤다. 김영준 총장은 살벌하게 웃고 있었다. 눈빛 역시 말투와 달랐다. 시뻘겋게 치솟은 불길이 보이는 것만 같다.

장지혁 검사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킬 때, 김영준 총장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

장지혁 검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후 몸을 틀어 문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뒤에 있는 그 사람에게 전해 줘. 좋은 선물 전해 줘서 고맙다고.”

“……!”

장지혁 검사가 우뚝 서서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김영준 총장이 보였다.

김영준 총장이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전해 줘. 나도 선물 하나 보내 줄 테니 기대하라고.”

“알겠습니다.”

장지혁 검사가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기울었다. 그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검사 결과로 향한다.

그리고 손을 뻗어 검사 결과를 콱, 움켜쥐었다. 그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윤환이가?”

김영준 총장의 입에서 끌끌끌 어이없다는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웃음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공간을 울렸다. 그리고 뚜벅뚜벅 책상으로 걸어가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다들 올라오라고 해.”

김영준 총장이 전화기를 내려 두며 중얼거렸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

***

-검찰이 검찰총장의 집을 압수수색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여당은 검찰이 총장의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냐며, 당장 특검을 발동해야 한다고…….

채널이 돌아갔다.

역시 압수수색에 대한 일로 시끄럽다.

-김영준 총장은 오늘 오후 2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김 총장은 압수수색을 받아들이겠다며 국민의 앞에 진실을 보여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화면에 김영준 총장의 자택이 나타났다.

높다란 대문이 쾅, 쾅 열리며 검찰 수사관들이 파란 박스를 들고 빠르게 들어가는 게 보였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도 난리다.

-수사도 안 했는데, 압수수색? 최지범인가 그 사람 말만 듣고?

└엄청나게 많은 범죄 혐의가 드러났잖아. 증거인멸하기 전에 압수수색 해야지.

-김영준 총장 대단하네. 의혹은 빠르게 벗는 게 좋은 것.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지랄. 찔리는 게 있으면 압수수색 거부했을걸. 무대응하는 인간들 많잖아? 이건 김영준이 잘하는 거지.

└또, 또, 또……. 속아넘어가는 인간 있죠? 저건 각본 있는 드라마다.

└개소리 그만. 검찰 모두가 김영준의 개도 아니고. 한 명이라도 몰래 찌르면 박살 나는데, 저걸 허락한다고? 김영준이 청렴한 거임.

└미친 ㅋㅋㅋㅋ 청렴해서 수십억대 단독주택에 살고 있냐?

└김영준 형이 재정건설 대표잖아. 하나 사 줬겠지. 좀 색안경 끼고 보지 말자.

└그런데 떡하니 증거 나오는 거 아니냐? 김영준은 진짜 아무것도 몰랐고?

└그럴 수도 ㅋㅋㅋㅋ

김영준 총장의 집은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검찰 수사관들이 서랍을 열고 소파 밑을 살폈다.

서진의 작은어머니 엄시영은 팔짱을 낀 채 그 혼돈의 도가니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주방에도 거실에도, 그 아주머니는 없다.

그리고 쥐 잡듯이 집을 뒤지는 수사관들을 보던 엄시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벌레 새끼들…….’

***

그 시각, 경차 한 대가 김영준 총장의 자택을 지나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운전자는 김영준 총장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그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기겁한 눈동자로 핸들을 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숨을 내뱉었다.

‘왜…… 나한테…….’

방금 전, 김영준 총장의 아내 엄시영이 아주머니를 찾았고 오래된 여행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아줌마, 이거 아줌마 집에 숨겨 둬요.”

“……네?”

아주머니도 압수수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엄시영은 극단적일 정도로 차분했다.

아주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제, 제가요?”

“그럼, 누가?”

“사, 사모님…….”

아주머니가 겁을 내자 엄시영의 붉은 입술이 뒤틀렸다.

“우리 오랫동안 함께했잖아. 이 정도 일도 못 도와줘?”

“……!”

“왜? 돈 줄까?”

엄시영이 품에서 5만 원권 몇 다발을 꺼내 아주머니의 손에 건넸다.

그리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인간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돈, 누군가에게는 연봉이야. 하지만 아줌마는 가방 하나 집에 모셔다 두고 얻게 될 돈이지. 남편이 아프다며. 병원비 안 필요해? 우리 돕고 살자.”

“…….”

“생각해. 만약에 내가 잘못되면, 아줌마 일자리 어떻게 할 거야? 그 나이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리고 내가 누군지 잘 알잖아. 아줌마가 안 도와주면, 내가 잘못되더라도 끝까지 아줌마한테 복수할 거야. 남편은 병석에서 죽을 테고, 자식들의 취직은 막히겠지. 그런 후회 하지 말고 우리 웃으면서 돕자. 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아주머니는 입술을 씹었다. 다시 한번 검찰총장의 아내가 정말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며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검찰 승합차를 지나 계속해서 언덕 아래로 향했다.

그렇게 30분 후, 아주머니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주택가였다.

차에서 내린 아주머니가 차량의 트렁크를 열고 오래된 여행 가방을 꺼냈다.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가방이 무겁다. 낡은 바퀴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낑낑대며 가방을 옮기려 했다.

“도와드릴까요?”

낯선 목소리에 아주머니의 시선이 틀어졌다. 동시에 눈이 부릅떠졌다. 그 안에 담긴 눈동자가 앞을 바라본 채 정지되어 있다.

“기, 김서진 검사님?”

앞에서 서진이 친절한 미소를 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주세요. 도와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가방을 들고 이곳에 온 것은 엄시영과 그녀 자신밖에 모른다. 그런데 앞에 서진이 있다는 것은…….

“호, 혹시 사모님께 말씀 들었어요?”

그렇게 물었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엄시영은 아주머니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엄시영에게 아주머니는 그저 집 안을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 서진이 저벅저벅 걸어와 아주머니의 앞에 섰다.

“도와드릴게요. 남편분의 병원비 전액, 자녀들의 취직 자리,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안전.”

서진이 가방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주세요.”

***

다시 김영준 총장의 자택.

“더 가져갈 것 없으면 이제 그만하죠? 이제 저녁 준비할 시간인데…….”

엄시영의 목소리가 자택을 울렸다.

그러자 현장을 지휘하던 장지혁 검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몇 시간 동안 집을 뒤졌다.

이삿짐을 쌓는 것처럼 모든 것을 헤집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없었다.

노트북을 몇 개 집어넣기는 했지만 그곳에도 결정적인 것은 없을 거다.

엄시영은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전 모든 증거를 증발시켰다.

엄시영이 장지혁 검사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갔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의 어깨를 먼지를 터는 것처럼 툭툭 치며 조용한 목소리를 이어 갔다.

“아니면…… 저녁이라도 드시고 갈래요? 된장찌개 끓일 건데.”

장지혁 검사의 이마에 심줄이 솟았다. 하지만 지금 장지혁 검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그만 가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지혁 검사가 치아를 빠득 갈며 그 말을 입에 담으려 할 때였다.

장지혁 검사는 품에서 진동을 느꼈다. 발신 번호가 서진이다.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전화를 받으며 서진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네, 김 수사관님.”

-결정적 증거 찾았습니다. 탈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역외 탈세, 차명…….

장지혁 검사의 입에 미소가 걸렸고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가 통화를 종료하며 엄시영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된장찌개는 나중에 먹어야겠네요.”

“어마? 가시세요?”

“대신 제가 설렁탕 특으로 모시겠습니다.”

엄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지혁 검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한 거다.

하지만 곧 그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검사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죠.”

“…….”

장지혁 검사가 엄시영을 향해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엄시영 씨, 당신을 부동산 차명 거래와 탈세 등에 대한 죄로 긴급체포 합니다.”

“뭐 하는 거야?”

“어떻게 하죠?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잡혔네요.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고…….”

엄시영의 차분했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솟구쳤다. 붉은 입술이 움찔거리더니 곧 뻣뻣하게 굳어 갔다. 그 얼굴이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장지혁 검사가 시선을 틀어 여성 수사관들을 향했다.

“체포해 주세요. 검찰로 갑니다.”

여성 수사관들이 엄시영을 향해 다가섰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엄시영이 발악했다.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여성 수사관들을 막았다.

“오지 마!”

여성 수사관들이 멈칫거렸다. 아무래도 검찰총장의 아내다.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수사관들은 장지혁 검사와 엄시영의 눈치를 봐야 했다.

엄시영은 눈동자를 좌우로 흔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휴대폰을 들고 김영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영준 총장의 한마디면 된다.

체포는 하지 말라는 말, 그거면 모든 게 끝난다.

엄시영은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난 후 뒷일을 계획하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만 이어질 뿐이다. 김영준 총장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엄시영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미친 것처럼 장지혁을 쏘아보며 말했다.

“미쳤어? 날 체포한다고? 증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장지혁 검사가 여성 수사관들을 바라봤다.

“뭐 해요? 체포하세요.”

여성 수사관들이 엄시영의 양쪽에서 팔을 잡아챘다. 엄시영이 발버둥 쳤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그녀는 비참할 정도로 끌려 나가야 했다.

“놔! 놓으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아아아아악!”

엄시영의 비명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차에 기댄 채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진의 귀에도 엄시영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서진이 빙긋이 웃었다.

“넌 끝. 이제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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