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16화 (216/250)

<기억하고 있다 (2)>

그렇게 서진이 생각을 이어 갈 때였다. 품에서 진동을 느낀 서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 번호가 장지혁 검사의 실무관이다.

서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역시…….’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김영준 총장이라면 당연히 장지혁 검사의 주변을 관찰할 거라고 생각했다.

장지혁 검사는 김윤환을 잡아넣은 사람이며 김영준 총장의 지시를 외면한 인간이다.

김영준 총장의 성격에 장지혁 검사를 가만 놔두는 게 이상한 거다.

놈은 실무관에게 돈을 찔러주고 장지혁 검사의 모든 것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 옛날처럼…….’

서진은 자신이 서준경 검사였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서준경은 김영준 총장의 눈엣가시.

서준경의 모든 것은 실무관을 통해 김영준 총장에게 전해졌었다.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하는 것은 멍청한 거야.’

서진은 김영준 총장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나섰고 수사관과 실무관을 이미 섭외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건넬 것이라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던져 줬다.

이번엔 서진이 한발 더 빨랐다.

“네, 김서진입니다.”

-총장님께 전달했어요. 송파에 간다고 전했어요.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정보망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김영준 총장은 실무관 따위가 배신을 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거다.

그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찰 게 분명하다.

“장지혁 검사님에게는 비밀입니다.”

실무관과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은 휴대폰의 주소록을 찾기 시작했다.

찾는 것은 이은하 기자.

“기사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네, 어떤?

“폭우가 내려 시설물 피해가 잇따랐다. 경찰에 따르면 양평의 한 야산에서 토사가 무너지며 변사체가 발견됐고 그 옆에 칼이 있었습니다. 칼의 DNA를 검사하면…….”

김영준 총장에게는 혼란을, 작은어머니의 마음에는 조급함을 선물해 줄 생각이다.

조급한 마음이 실수를 남기는 것은 역사의 진리.

“정보 제공자는 약초를 캐던 사람이라고 전해 주세요.”

-네? 약초요?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비가 쏟아지는데, 갑자기 약초 캐는 사람이 제보를 했다니, 그런 핑계를 믿을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은하 기자는 묻지 않았다.

상대는 서진이다. 쓸데없는 말을 전할 리가 없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서진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 옆에 선 장지혁 검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경찰이 올 거야.”

“네.”

“그런데…… 네가 작은어머니를 잡으려는 이유, 가족 문제라고 하지만 나 같은 서민이 그런 싸움을 이해하기는 어렵네. 금수저라고 행복한 것은 아닌가 봐?”

장지혁 검사가 끌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유는 달라도 목적은 같다고 생각해.”

“…….”

“아내의 죄.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해도 타격이 커. 김영준 총장이라 해도 버티기는 어려울 거야. 가난이 죄라고 말하는 총장, 가진 권력을 제 보신에 쓰는 총장.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돼.”

“…….”

“어차피 난 이미 타깃이야. 날 방패로 그리고 미끼로 써라. 총장까지 잡자.”

장지혁 검사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하지만 서진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장지혁 검사가 서진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에 내가 죽으면, 김영준의 어깨에 살인죄까지 올려.”

“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막아 드리겠습니다.”

“그 말 들으니까 듬직하네.”

장지혁 검사가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소로에서 경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그 시각, 대검.

김영준 총장이 서류를 툭 내려 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지혁이 송파에 간다고? 갑자기?’

서류를 뒤져 봤지만 장지혁 검사가 송파에 갈 일이 없다.

‘송파…….’

김영준 총장이 입술을 쓸어 만졌다. 어쩐지 실무관이 거짓을 내뱉은 것 같다.

김영준 총장이 책상 서랍을 열어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장지혁 검사가 봉사 활동을 다니는 ‘청마 보육원’에 대한 것.

‘이사를 가겠다고 했어.’

김영준 총장은 장지혁 검사를 압박하기 위해 ‘청마 보육원’에 압력을 넣고 있었다.

보육원이 있는 건물을 차명으로 구입한 후 리모델링을 하겠다며 위협을 가했다.

그런데 ‘청마 보육원’은 그 짧은 시간 이사를 결정했고 그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장지혁에게는 해결할 돈이 없어.’

그렇다고 청마 보육원에 그만큼의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럼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

누군가 장지혁 검사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

‘그게…… 누구지?’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 몇몇 인물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보육원의 이사를 도와줄 재산이 있는 놈.

실무관의 머리채를 잡고 혼선을 줄 수 있는 자.

즉, 돈이 있고 야비한 놈.

‘그런데…….’

선명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원수가 많다.

그 모든 사람들이 장지혁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김영준 총장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 같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장지혁의 모든 것을 가져와. 누구를 만나고 밥을 먹는지, 집에 있는 속옷까지.”

김영준 총장은 자신의 정보망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이 움직이면 장지혁 검사의 뒤에 선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때였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눈은 곧 일그러졌다.

아내 엄시영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광기에 어린 눈빛으로 김영준 총장을 노려보며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살기로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윤환이 보내 줘.”

김영준 총장이 입술을 씹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늘 지라시를 봤어. 딱 봐도 윤환이에 대한 내용이었어.”

검찰 출신의 변호사가 깡패들에게 성 접대를 받았다는 것.

그 때문에 지금 구치소에 있다는 것.

“댓글도 있더라? 그중에는 윤환이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었어. 그런 애들을 개돼지라고 하지? 그런데 걔들 시끄러워지면 윤환이 못 꺼내잖아? 당신의 그 하찮은 권력을 유지해야 하니까.”

“여보!”

“끝없는 권력을 원한다고? 개돼지 눈치 보며 사는 게 권력이야? 시간 끌지 말고 내 아들 내놔.”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장지혁 검사부터 김윤환까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다. 그런데 아내까지 와서 이러고 있다.

“집으로 가.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

“아니. 이제는 내가 해야겠어. 내 아들 이름이 가난한 새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지켜보고 싶지 않아.”

엄시영이 김영준 총장의 테이블에 USB를 툭 던졌다.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USB로 향한다. 그 USB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엄시영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 그동안 재정건설에 사람 심어 놓고 많이도 해 먹었더라? 윤환이 꺼내지 않으면 당신이 해 먹은 모든 것을 당신 형의 잘못으로 넘길 거야.”

“……!”

“윤환이 옆으로 가겠지. 그래도 큰아버지인데, 옆에서 잘 보살펴 주겠지. 윤환이 마음이 여린데, 그 상처 보듬어 주시겠지.”

김영준 총장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엄시영을 노려봤다. 그럴수록 엄시영의 입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왜 그래? 당신도 당신 형을 거위로 생각했잖아? 언젠가 잡아먹을 생각 아니었어? 왜? 내가 잡겠다고 하니까, 그건 또 싫어?”

“난 형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순간, 엄시영이 김영준 총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 생각은 상관없어. 내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내 아들 달라고.”

그때 김영준 검사장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김영준 검사장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귀에 댔다.

“김영준입니…….”

동시에 김영준 총장의 눈이 일그러졌다.

언론사에서 전화가 온 거다.

장지혁 검사의 총구가 김영준 총장을 향한 것 같아서 걸어 뒀던 보도 금지.

-양평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고 하는데요. 혹시 이걸 금지시킨 게 맞습니까?

“……정보 제공자가 누구지? 경찰인가?”

-아뇨. 약초꾼이라고 하던데요.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데없이 약초꾼이 튀어나올 리 없다.

이것 역시 누군가 뒤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그림자가 김영준 총장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장지혁…… 약초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김영준 총장이 통화를 종료하며 엄시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엄시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윤환이…….”

“변사체가 발견됐어. 양평. 당신 소유의 땅. 난 나설 수 없어. 내가 움직이면, 여당의 귀에 들어가니까.”

김영준 총장이 USB를 손에 들며 말을 이었다.

“당신 잘난 아버지한테 전화해, 지금 당장.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끝이야.”

엄시영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잠시다. 이내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사, 살았다고 했잖아. 그때 안 죽었다고 했잖아. 다른 나라로 보냈다고…….”

“제발…….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

***

“아빠, 그러니까…….”

“그만.”

다음 날, 넓은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곳의 정자에 앉은 사람은 엄시영의 아버지 엄 회장이다.

엄 회장이 장기짝을 내려 두며 시선을 들었다.

앞에는 최지범이 그 옆에는 엄시영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아빠…….”

엄시영은 입을 열려 했지만 엄 회장의 매서운 눈빛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엄 회장의 시선이 최지범에게 향했다.

“출가외인이야. 신경 쓰지 말고 장기나 둬.”

최지범은 힐끗 엄시영의 눈치를 본 뒤 장기짝을 손에 들어 옮겼다.

엄 회장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장기판을 보며 말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어. 어제는 찾아와서 재정건설의 비리를 달라고 하더니, 오늘은 뭐?”

“아빠…… 그게 아니라…….”

“입 다물어.”

“내가 혼자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엄 회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엄시영의 목소리는 계속 날카롭게 울렸다.

“만약에 내가 곤란해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이가 혼자 죽을 사람이야? 아니야, 어떻게든 물고 늘어질걸! 난 그 사람을 알아. 평생을 지켜보며 어떻게 기어 올라갔는지 봤어. 그럼 아빠는 괜찮을 것…….”

엄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엄시영의 철없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이어졌다.

하지만 엄시영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내가 평생 손가락질받으며 사는 꼴 볼 거야!”

엄 회장의 시선이 최지범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인 사건 검거율이 98.2%라고 하지? 그런데 돈이 없어서 잡히는 게야. 잡히지 않은 1.8%. 내 딸의 과거를 지우려면 얼마가 들 것 같나?

엄 회장의 말에 엄시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엄 회장은 결국 그녀의 손을 들어 준 거다.

엄 회장이 장기짝을 손에 쥐며 말을 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정성우지? 그 친구 사는 아파트, 내가 사 준 거야. 아들 유학 비용도 내가 내줬지. 유전자인지 뭔지 어려운 말들 하는데, 그것도 사람이 결과를 받아 보는 것 아닌가?”

“…….”

“장군이네.”

최지범이 골똘히 장기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졌습니다.”

“연구원장 만나기 전에 언론사에도 연락해. 잘난 펜대로 내 딸 이름 쓰지 말라고. 눈앞의 특종에 취해 허우적거리면, 앞날은 없는 법이라고.”

“네.”

최지범이 장기짝을 정리할 때, 몸을 일으킨 엄 회장이 엄시영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리고 안타까운 눈으로 엄시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이리도 철이 없을까?”

“아빠, 미안해요. 그런데 이번만 해 주면…….”

“김 서방한테 가서 말해. 네 일 덮어 주는 조건으로 선주도 빼내라고.”

“……선주?”

“뭐가 됐든 네 동생이야. 그만큼 고생했으면 이제 덤비지 않을 게야.”

“그건…….”

“대답해.”

“알았어.”

엄 회장은 혀를 쯧, 찬 뒤 정자 아래로 내려갔다.

최지범은 다시 힐끗 엄시영을 바라봤다.

‘김서진이 찾아왔던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하지만 최지범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자칫 자신의 자식들이 검찰에 수사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때 정자를 떠나던 엄 회장이 몸을 틀어 최지범을 향했다.

“가족 없고 돈 필요한 놈, 언론에 얼굴 팔려도 상관없는 뻔뻔한 놈. 그런 놈 하나 찾아서 그 어미한테 보내.”

살인자를 연기할 배우를 찾으라는 것.

엄 회장이 스산하게 웃으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뭐든 확실한 게 좋잖나?”

***

며칠 후, 강남의 한 한정식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정성우는 기겁한 표정으로 최지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증거를 바꾸라고요?”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껏, 원장님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바라는 것 하나 없으셨다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도움 좀 받아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건 제가 하기 어려운…….”

“원장님…… 단 한 번의 실수로 지금껏 쌓아 온 명예가 무너질 수 있어요. 자식들은 뭐라 할까요? 자식들의 친구는 뭐라고 할까요? 이웃은? 친척은? 그 비난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최지범이 태블릿 PC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기사 하나가 보인다.

공직자의 비리, 비난을 이기지 못한 일가족의 자살.

원장에게는 그 기사가 자신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최지범이 태블릿 PC를 손으로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아드님께서 판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법원장으로 가는 도로를 깔아 드리죠.”

***

잠시 후, 최지범이 떠났고 홀로 남은 원장이 묵묵히 술잔을 입에 댈 때였다.

다시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서진이었다.

서진이 말없이 마주 앉자 원장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최 실장이 찾아올 거란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원장은 어젯밤 서진의 연락을 받았다.

-최지범이 찾아올 겁니다. 지금껏 던져 준 돈으로 옭아매려 하겠죠. 아드님도 거론할 겁니다. 판사의 앞길을 닦아 주겠다고 당근을 던지면서요.

원장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서진의 예측은 흡사 귀신을 보는 것처럼 정확했다.

하지만 서진은 무심한 눈으로 원장의 잔에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할 행동이야 뻔하죠. 저는 그걸 예측했을 뿐이에요.”

“…….”

“그건 그렇고 난 원장님께 줄 당근이 없어요. 채찍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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