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있다 (1)>
***
경기도 양평의 작은 산, 8만 평의 부지, 그곳은 작은어머니가 소유한 땅.
예전에는 자동차가 오를 정도의 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관리가 되지 않은 지 오래, 흙더미와 죽은 나뭇가지가 곳곳을 가로막고 있었다.
서진은 그곳을 오르는 중이었다.
-늦깎이 더위 속에 막바지 장맛비가 내릴 전망입니다. 특히 남양주와 양평 그리고 가평은 국지성 호우가 예상되는 만큼 호우 피해…….
라디오가 호우주의보를 알리며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쏴아아아, 비가 쏟아졌고 서진의 온몸이 젖었다. 천둥소리가 ‘쿠르르릉!’ 하고 무섭게 울렸다.
“……검사님?”
옆을 쫓던 장석민이 서진을 불렀다.
“물이 더 불어나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옆에는 계곡이 있다. 비가 내리며 물살이 빨라졌고 어쩌면 길이 끊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석민은 서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서진은 장석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저 저벅저벅 젖은 풀을 스치며 위로 오를 뿐이다.
잠시 후, 서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폐가처럼 방치된 별장.
잡초가 무성한 공터.
잡초를 치우고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면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것이다.
장석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는데요?”
별장은 흉가처럼 보였다. 지붕은 무너져 있고 습기를 머금은 목재는 언제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있을 수도 있어.”
“네?”
“귀신.”
“검사님? 제가 그런 거 안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서진이 차갑게 웃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30년 전,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야. 아직도 현장이 멀쩡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어.”
“네?”
“감사하네. 정말 감사해…….”
장석민은 서진이 말한 ‘감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진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잠기지 않은 문이 끼이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곳곳에 쳐진 거미줄, 자욱한 먼지.
30년 전, 살인을 저질렀던 현장은 지워졌다. 하지만 서진에게는 그날의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전 남자 친구가 쓰러졌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을 손으로 더듬었다.
이곳은 소유주가 한 번 바뀌었다가 다시 작은어머니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전 소유주는 별장을 건든 적이 없다. 몇 개 없는 가구와 별것 없는 인테리어는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던 것과 동일하다.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면 그날의 기억이 담겨 있는 법.
서진은 품에서 루미놀 시약을 꺼내 바닥에 뿌렸다.
“……남아 있겠어요?”
“아무리 큰비가 내려도 혈흔은 지워지지 않아. 혈흔을 없애려면 마룻바닥을 뜯어내거나 이 별장을 없앴어야 했어.”
“그래도 30년이나 지났는데요?”
“이곳은 현장 보존이 잘되어 있고 드나든 사람이 없어. 15년 된 혈흔도 검출된 적이 있으니까, 가능해.”
장석민은 ‘설마…….’라고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곧 푸른 형광색이 끔찍할 정도로 나타났다.
장석민은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려야 했다.
사방에 튄 핏자국.
선명히 드러나는 그날의 현장.
서진의 머릿속에 광기에 휩싸인 작은어머니가 보였다. 뒤로 물러서며 살기 위해 발악하는 전 남자 친구가 그려졌다.
칼을 막다가 남자 친구의 손바닥이 깊게 베였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었다.
‘그리고 여기.’
서진은 벽을 짚은 손이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봤다.
‘여기가 한계였어.’
전 남자 친구는 이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숨을 토해 내며 피를 뚝뚝 흘렸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첫 살인.
살인이 주는 쾌락과 공포.
작은어머니는 죽어 가는 남자 친구를 향해 계속해서 칼을 찔러 넣었다.
서진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시약을 뿌렸다.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최지범은 시신을 등에 걸치고 문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핏방울이 떨어졌고.
‘어쩌면 파묻은 곳까지 이어졌을 수도 있어.’
하지만 시약에 반응한 것은 현관 앞까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지만 공터에 나가서는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빗소리가 거세게 들릴 뿐이다.
서진은 길게 풀이 자란 공터를 둘러봤다.
‘어디에 묻었을까…….’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다. 당시는 폭우가 내리던 중이었고 최지범의 우선순위는 시신을 파묻는 게 아니라 작은어머니의 안전이었다.
‘나였다면…….’
서진은 자신이 최지범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그 순간,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다시 나타난 사이코메트리.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최지범은 시신을 땅에 던져 둔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우의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걸어왔다.
최지범이 그를 향해 우의를 건넨다.
“아가씨는 이 사람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의를 받아 든 남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우의를 걸칠 뿐이다.
최지범이 삽으로 시신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난 이 사람을 병원에 데려다줬고 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겁니다.”
이번에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다.
곧 퍽, 퍽 땅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서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도움을 준 사람이 있어.’
누군가를 부르지 않고 혼자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지범은 누군가를 불렀다.
‘이유는?’
서진은 별장의 뒤쪽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문을 벌컥 열자 곰팡이 냄새와 함께 썩어 문드러진 삽과 곡괭이 그리고 톱이 보인다.
서진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곡괭이를 손에 쥐었고 땅을 찍어 봤다. ‘퍽! 퍽!’ 하고 소리만 날 뿐, 잘 파지지 않는다.
‘역시…… 이곳은 돌이 많아.’
홀로 땅을 파서 사람을 묻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부른 거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가장 믿을 수 있는 자.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인물.
‘확신…….’
서진이 시선을 틀어 다시 별장을 바라봤다.
‘사람을 믿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최지범 정도의 인물이 사람을 믿지는 않았을 거다.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톱니바퀴처럼 얽히고설킨 이득.
한쪽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고장 나는 삶.
믿을 수 있는 것은 탐욕이다.
‘설마…….’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설마!’
떠오르는 게 김영준 총장밖에 없다.
당시 김영준 총장은 작은어머니와 결혼한 상태였고 장인어른이 깔아 준 고속도로를 이동하고 있었다.
우의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이 사건 이후 김영준은 처갓집과의 연을 끊었어.’
그런데 그 뒤로 아버지의 재정건설이 막대한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지금껏 들었던 과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딘가에 거짓이 들어가 있다.
‘겉으로만 끊은 것이라면? 김영준 총장이 작은어머니의 죄를 손에 쥐고 엄 회장을 협박했다면?’
사나운 개를 길들이려면 그 새끼의 목에 방울을 달라는 말이 있다.
김영준 총장은 그런 짓을 서슴없이 벌일 수 있는 소시오패스다.
애초에 검사가 된 이유도 돈 없고 백 없는 놈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노리는 이유도 차고 넘치는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서다.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일단 작은어머니의 전 남자 친구를 찾아야 한다.
“저기야.”
서진이 장석민에게 삽을 넘기며 빠르게 걸어갔다.
“네?”
장석민은 눈을 깜빡이며 서진의 뒤를 쫓았다.
***
“네, 곧 유배 가는 장지혁 검사입니…… 어? 양평?”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장지혁 검사는 서진의 전화를 받았다.
뜬금없이 양평에 와 달라는 말에 장지혁 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설마…… 찾았어?”
-네.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
장지혁 검사는 창밖을 바라봤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창문을 때리고 있다.
“알았어. 갈게.”
장지혁 검사가 재킷을 손에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사관과 실무관에게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며 그 자리를 떠났다.
장지혁 검사가 밖으로 나가며 문이 탁, 닫혔다.
업무를 보던 수사관이 책상을 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난 담배 좀 피우고 올게.”
수사관이 실무관을 남겨 두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러자 실무관이 책상에 놓인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댄 실무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총장님, 지금 장지혁 검사가…….”
***
“이 땅의 소유자는 작은어머니예요. 10년 정도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예상해 보면 그 전의 소유주는 최지범의 차명이었을 가능성이 커요.”
놈들은 이 집을 허물 수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처럼 공사자가 시신을 발견하거나 미처 살피지 못한 증거가 나올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놈들이 결정한 것은 방치.
장지혁 검사는 눈을 크게 뜬 채 백골이 된 전 남자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이 놓인 칼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슴에 박힌 칼, 이 안에 담긴 혈흔을 조사한다면 그리고 소유주가 작은어머니란 명분으로 그쪽의 DNA까지 얻는다면 진실이 드러나겠죠.”
“……미쳤어.”
“완전범죄를 노렸겠죠. 개인이 소유한 땅,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곳.”
말을 이어 가던 서진이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몸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집 안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야?”
장지혁 검사가 물었지만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걸어서 들어갈 뿐이다.
장지혁 검사와 장석민 역시 서진의 뒤를 쫓았다.
서진이 향한 곳은 별장의 1층 화장실.
서진은 양변기를 발로 밟고 천장에 박힌 환풍구를 툭툭 쳤다.
장지혁 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거긴 왜?”
“피 묻은 우의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비에 씻겨 내려갔다고 하지만 찝찝했기 때문에 그냥 버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
“하지만 태워 버릴 수도 없었겠죠. 장시간 비가 내렸고 이 별장에 벽난로는 없네요.”
그 말과 동시에 ‘쾅!’ 하고 환풍기가 뜯어졌다.
서진은 계속 말했다.
“숨기기 편한 곳, 하지만 찾기는 힘든 곳.”
서진이 장갑을 낀 후 곧바로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있네요, 우비.”
서진이 우비 두 개를 꺼내 바닥에 툭 던졌다.
“이걸로 사건 당사자가 총 세 명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살인자 그리고 시체를 유기한 두 명.”
칼에서 작은어머니의 DNA가 검출 될 거다.
전 남자 친구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작은어머니의 손에도 상처가 났고 그 혈흔은 지워지지 않은 채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의는 남성의 것, 작은어머니의 체구에 비하면 지나치게 크다.
문제는 지난 사건을 공론화할 수 있는 명분.
서진이 장지혁 검사의 옆을 스치며 말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면 돼요.”
30년 동안 묻혀 있던 시신.
전 여자 친구가 소유한 토지.
피해자 어머니의 눈물.
“세상이 시끄러워질 거예요.”
“……!”
“그리고 그 시기에 맞춰 장지혁 검사님이 유배를 가면…… 김영준 총장도 끝일 겁니다.”
장지혁 검사가 유배를 가면 수사를 방해했다며 김영준 총장을 욕할 거다.
게다가 대선 시즌, 여당과 정부는 대선의 승리를 위해 김영준 총장을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서진은 그 말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봤다.
빗줄기가 더 거세게 내리고 있다.
그 먹구름 속에 원래의 서진이 보이는 것만 같다.
‘네가 걱정했던 것이 뭔지 알아.’
원래의 서진은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를 두려워했다.
그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는 극단적인 소시오패스, 성공을 위해서라면 형제마저 찔러 죽일 수 있는 자.
‘하지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김영준 총장은 발악할 거다.
어쩌면 살인을 청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네가 갈 곳은 뻔해.’
교도소.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머리카락을 쥐고 교도소로 보낼 생각이다.
서진의 머릿속에는 그 계획이 전부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