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14화 (214/250)

<충견 (4)>

“그렇잖아? 그쪽이 작은어머니의 옛 남자친구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죽였겠어?”

“…….”

“충견이 무슨 죄가 있나? 지시받은 대로 물어뜯은 거지. 모두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의 잘못이야. 그러니까 그쪽이 했다고 하면, 엄 회장이란 사람의 청부였겠지.”

최지범에게는 진퇴양난이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끌려간다.

언론에 이름이 올라가고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자신이 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 엄 회장에게 총구가 돌아간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이라 해도 지금은 대선 시즌.

정치권은 엄 회장과 상대 당을 어떻게든 엮어서 그 이름을 씹고 물어뜯으며 즐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서진의 작은어머니 엄시영의 이름을 꺼내기도 어렵다.

엄선주와 엄시영의 싸움은 자매끼리의 싸움이었기에 화를 참고 있지만, 이번은 다르다.

엄 회장은 새끼 잃은 짐승이 될 거다.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최지범은 자신의 자식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답해.”

서진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올 때, 최지범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입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갖가지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흐릿하게 웃었다.

“내가 했다.”

최지범이 다시 담배를 손에 들었다. 마지막 남은 한 개비를 손에 쥐고 입에 물었다. 담뱃갑을 구겨 버린 뒤 잿빛 연기를 내뱉었다.

“내가 했다고.”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 회장의 지시라는 것인가?”

“아니야. 나 혼자 한 일이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난 시영 아가씨를 짝사랑했지. 그 남자가 미웠어. 아가씨에게 버림받은 뒤에도 끝까지 달라붙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서, 아가씨를 위해…….”

“죽였다고?”

최지범이 고개를 저었다.

“말했는데, 난 살인은 하지 않는다고. 난 부탁을 했지. 서울의 아파트를 여럿 살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돈과 함께.”

“…….”

“그놈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돈을 보더니 곧 다른 나라로 떠났지. 거기서 잘살고 있는지,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지범이 천천히 등을 폈다. 그리고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파묻으며 말을 이었다.

“공소시효?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무슨 공소시효야? 이게 네가 알고 싶은 진실이야.”

“…….”

“하나 부탁하지. 아가씨에게는 말하지 마. 그분, 심성이 여려. 찝찝한 과거로 현재가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약속하지. 나도 네가 여기 왔다는 말을 하지 않겠어. 이해했으면 나가.”

거짓말이다. 모두 거짓이다. 놈은 거짓말을 지껄이고 있다. 그리고 서진을 이겼다는 듯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한다, 어서 꺼지라고.

서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최지범이 서진을 향해 손을 뻗어 악수를 권했고, 서진이 그 손을 맞잡았다.

“나중에 봅시다.”

“됐어. 몇 번을 찾아와도 마찬가지야. 난 회장님을 배신하지 않아. 부모를 죽인 원수는 잊어도 재산을 훔친 원수는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 그 말을 반대로 하면, 내게 재산을 주신 분은 회장님이야. 부모보다 더 소중한 분이지.”

“법정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자신을 하는지 모르겠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으로 놈을 몰아넣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을 찾아온 것은 누가 전 남자 친구를 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

그리고 오늘 놈의 태도로 서진은 확신했다.

전 남자 친구를 살해한 것은 작은어머니다.

이어졌던 서진의 질문에 놈의 눈빛과 행동이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사이코 메트리가 펼쳐진 거다.

***

“계속 연락이 오고 있어! 계속!”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겁에 질린 채 서재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 얼굴에 주름을 그으면 서진의 작은어머니 엄시영이다.

초조하게 서재를 걷던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틀어졌다.

그곳에 젊은 날의 최지범이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그가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자기와 도망가자고 했어! 그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이에게 가서 말하겠대. 윤환이는 자기 자식이니,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최지범이 초조하게 행동하는 작은어머니를 향해 한 발 다가섰다.

창 밖에서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번쩍거리며 번개가 떨어졌다.

간헐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가운데, 최지범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아가씨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최지범이 창가를 향해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당분간 장마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피가 씻기고 천둥소리로 비명이 가려질 겁니다. 드러나는 것은 어떤 것도 없겠죠.”

작은어머니가 원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손에 쥔 편지를 구기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러지 마. 난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해. 그런데…… 지금 상황도 만족해. 이 삶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

전 남자 친구를 쫓아가면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

집안에서 내팽개쳐질 테고 돈 한 푼 들고 나올 수 없을 거다.

남자 친구가 일류 대학을 졸업했기에 월급쟁이로 무난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작은어머니가 그 정도 수준에 만족할 수는 없다.

가계부를 쓰며 콩나물값을 아끼는 행복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쩌지?”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기도 어렵다. 이때의 작은어머니는 아직 어렸다.

작은어머니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피가 배어 나와도 잘근잘근 쉬지 않고 뜯는다.

“어떻게 해야지?”

그리고 사이코메트리의 장면이 바뀌었다.

서재가 아니라 산속에 있는 어느 허름한 별장.

“아…….”

그곳의 거실에서 작은어머니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바닥에는 전 남자 친구가 쓰러져 있다. 가슴에 칼이 박힌 채, 원한 가득한 눈을 부릅뜬 상태다.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서던 작은어머니가 피가 튄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지…… 윤환이가 왜 네 아들이야? 내 아들이지. 윤환이를 왜 데려가? 왜 데려가냐고, 이 미친 새끼야!”

작은어머니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욕을 내뱉었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

곧 작은어머니가 벽을 등진 채 무너지듯 주저앉아 흐느꼈다.

“미안해. 잘 키울게. 정말 잘 키울게. 네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순간, 문이 ‘쾅!’ 열리고 비에 젖은 최지범이 들어왔다.

그가 놀란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가슴에 박힌 칼, 몇 번을 찔렀는지 시신은 만신창이다. 험한 인생을 살아온 최지범에게도 바닥을 채운 피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살펴야 할 것은 시신이 아니다.

“아, 아가씨…….”

작은어머니의 상태도 좋지 않다. 이미 온몸이 피범벅. 전 남자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옷은 찢겨져 있고 여기저기 상처가 보인다.

“괘, 괜찮으십니까?”

“네가 죽인 거야.”

“……네?”

뜬금없는 말에 최지범이 눈을 깜빡이자 작은어머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빨리 죽이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죽인 거야! 아니지, 아니야. 아직 숨이 붙어 있어.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 살려야지? 어?”

작은어머니의 말은 횡설수설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은어머니의 눈빛은 말 그대로 미쳐 있다. 살인을 저지른 충격에 휩싸인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지범이 마른침을 삼키며 전 남자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맥박을 확인했다.

‘하…….’

당연히 맥박은 멈춰 있고 숨을 쉬지 않는다. 사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미 인간이라기보다는 고깃덩이처럼 보였다.

“살아 있지?”

작은어머니의 말에 최지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살아 있습니다.”

작은어머니가 피범벅이 된 얼굴로 맑게 웃었다.

“다행이네. 그럼, 병원으로 데려가. 난 2층에서 쉬고 있을게. 다녀오면 거실 정리도 하고.”

작은어머니는 비틀비틀 계단을 걸어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2층의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최지범은 손에 장갑을 낀 후 시체를 들어 올렸다. 삽을 손에 쥔 채 밖으로 나갔다.

쏴아아아아!

거센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는 중이었다.

최지범이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봤다.

***

세상이 색을 찾으며 서진의 눈앞에 최지범이 나타났다.

젊었던 최지범의 얼굴은 주름이 가득했지만, 또렷한 눈빛은 여전했다. 최지범이 악수를 끝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가.”

“나중에 봅시다.”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누구 말이 맞을까?”

서진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뒤에 선 최지범을 향해 손을 흔들며 호텔방의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방을 벗어나려 했는데, 시커먼 양복을 입은 자들이 서진의 앞을 가로 막았다.

놈들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고 있다.

“보내 줘라.”

최지범의 말에 놈들이 몸을 비틀어 서진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내줬다.

서진이 끌끌 웃으며 놈들을 스쳐 복도를 걸었다.

“깡패 새끼들이…….”

최지범, 지금은 거물인 척하고 있지만 곧 발가벗겨진 채 살려 달라 애원할 거다.

***

호텔의 커피숍.

장석민은 답답한 마음에 커피만 벌컥벌컥 마셔 댔다. 지금껏 장석민이 마신 커피만 해도 벌써 세 잔이다.

그런데, 지금껏 서진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

‘최지범은 장갑을 꼈어. 시신의 가슴에 박혀 있던 칼과 함께 묻었어. 지문은 사라졌겠지만 혈흔은 남아 있을 수 있어.’

작은어머니의 몸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손도 찢겨져 있었고 여기저기 할퀴고 물린 자국이 보였다.

그 피가 남아 있다면,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

서진은 손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별장…….’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은 분명 별장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 방치된 것 같은 느낌.

부자들이 산을 산 후 그곳에 집을 지어 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땅값을 올리기 위한 한 방법이다. 예상하건데, 그런 목적으로 지어진 곳일 거다.

‘그럼…….’

지금 팔렸을 수도 있다. 별장은 허물어졌고 펜션이나 전원주택이 들어섰을 확률도 크다.

물론, 엄 회장이 소유했던 산을 살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차명으로 샀을 경우, 그 땅이 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섰을 경우. 그럼, 골치 아파지는 거다.

‘그래도 일단 확인해 보기로 하고.’

서진은 이동수 수사관에게 엄 회장이 소유했던 임야를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틀었다.

‘살해를 저지른 후 최지범이 들이닥쳤다는 것은 작은어머니가 연락했다는 거야. 한남동에서 가까이 갈 수 있는 곳. 적어도 1시간 이내.’

서진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1시간 이내의 지역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실종 신고를 한 것은 며칠 후. 실종 신고 일자에서 폭우가 내린 곳을 찾으면…….’

서진은 휴대폰을 들고 30년 전의 신문 기사를 찾았다. 폭우, 강수량.

그렇게 서진의 머릿속에 지역이 맞춰지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일로 보냈습니다.

서진은 메일을 확인했다. 엄 회장이 소유했던 땅과 폭우가 내렸던 곳을 비교하며 슥슥 내용을 읽어 갔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서진의 시선이 멎었다.

‘양평…….’

한남동에서 1시간.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다.

서진이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양평에 있던 임야 있잖아요, 여기 지금 소유주가 어떻게 되죠?”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탁!’ 소리와 함께 이동영 수사관의 목소리가 흘렀다.

-여기…… 소유주가 검사님의 작은어머니인데요? 중간에 소유주가 한 번 바뀌었다가 10년 전에 작은어머니가 매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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