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13화 (213/250)

<충견 (3)>

***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이 반가운 얼굴로 한정식 집에 들어섰다.

방에 앉아 있던 서진의 작은어머니 엄시영이 몸을 일으켜 살짝 허리를 굽히자 김준만이 만류했다.

“아이고, 편히 계세요. 하하하.”

김준만은 크게 웃었다. 며칠 전에는 동생 김영준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제수씨가 찾아왔으니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김준만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제수씨랑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고맙습니다.”

김준만은 자신의 아내와 엄시영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든 풀어 주고 싶었다. 그게 가족의 화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준만이 컵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유미는 잘하고 있죠?”

김준만은 김윤환의 안부는 묻지 않았다. 구치소에 가 있는 녀석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엄시영의 입에서 김윤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싸늘한 말투로.

“윤환이 소식은 들으셨죠?”

“하하.”

김준만이 멋쩍게 웃을 때, 엄시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엄시영은 김영준 총장이 손을 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준만을 찾아와 말하는 거다.

“아주버님은 정재계의 인물을 잘 알잖아요. 언론사도 쥐고 있고요. 그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윤환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어제도 찾아갔는데, 수척한 얼굴로 저를 보며 우는데…….”

“제수씨, 영준이도 어려운 일을 제가 어떻게…….”

그런데, 그 순간 엄시영의 표정이 돌변했다. 침울했던 눈빛이 사라지고 서늘한 살기가 채워지고 있다. 그녀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주버님, 부탁이 아니에요.”

협박이라는 거다. 김준만이 눈살을 찌푸리자 엄시영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우리 그이와 나, 재정건설의 지분을 상당 수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 재정건설이 시작되던 초기에 어마한 투자를 하셨던 분이죠.”

“제수씨, 사돈어른께 도움 받은 것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투자금은 이미 이자까지 쳐서 돌려드렸어요. 그리고 영준이와 제수씨가 가진 지분은…….”

“어마, 아직 내 말 안 끝났는데…….”

엄시영이 살짝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냉랭한 눈빛으로 김준만을 바라봤다.

김준만은 그 미소가 불길했다. 지금껏 지켜본 엄시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며 성격은 극단적이다.

그리고 엄시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아버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돈을 아낀다고 옷 한번 안 바꾸는 양반이에요. 돈이 차고 넘치는데 고철이나 폐지가 있으면 주워 팔기도 하고요. 그게 취미생활이라나?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주워 담는 게 또 하나 있네요?”

“……!”

“투자한 회사가 있으면 그 주변을 돌며 먼지까지 주워 담는 취미.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재정건설에서 떨어진 먼지가 얼마나 되더라?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몇 박스는 될 것 같은데.”

“……!”

“남편 성공시키겠다고 연 끊은 딸이 울면서 찾아가면, 그리고 그동안 챙긴 것 좀 보여 달라고 하면 외면하실까요? 아니면 고생했다고 쓰다듬어 주실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김준만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수씨…….”

“부탁드릴게요, 아주버님.”

***

그 시각. 호텔의 지하 주차장.

서진은 사이코메트리에서 작은어머니와 함께 있던 최지범을 만나고 있었다.

서진이 최지범의 옆을 스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발가벗은 여자는 집에 가라고 해. 그 방에서 이야기하게.”

“김서진!”

“아니면, 여기서 이야기할까? 그쪽 나이 생각해서 배려하는 거야. 오래 서 있으면 힘들잖아?”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에 최지범은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서진을 보낼 수는 없다.

서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최지범이 고개를 끄덕, 휴대폰을 귀에 댄 후 입을 열었다.

“나가. 다음에 연락하지.”

그게 끝이었다. 최지범은 어떤 말도 없이 앞서 걸었다. 따라오라는 뜻이다.

서진이 장석민을 향해 시선을 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다가 시끄러워지면…….”

“시끄러워지면 들어갈까요?”

“아니, 경찰에 신고해. 너희는 저 사람 못 이겨.”

“네?”

대한민국의 큰손 엄 회장의 더러운 뒤를 닦는 놈들이다. 장석민 같은 깡패가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다.

“……검사님?”

“신고해.”

서진은 손을 흔들며 걸었고 그 순간 장석민은 봤다.

저벅거리며 들리는 발소리,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커먼 양복을 입은 놈 여럿이 서진과 최지범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사 놈들이 아니다. 장석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

잠시 후, 서진은 VIP실의 호텔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물기가 있는 것으로 봐서 여자가 막 씻은 후 돌아간 것 같다.

서진이 픽 웃으며 이죽거렸다.

“딸보다 어린애 데리고 벨트를 풀려고 했어? 추잡스럽게 뭐 하는 거야?”

서진이 도발했지만 최지범은 느긋하게 와인을 꺼내며 말했다.

“내 나이의 사람에게 이런 것은 추잡스럽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정하다고 하는 거야. 한잔하겠나?”

“깡패랑은 안 마셔.”

최지범이 서진의 앞에 마주 앉아 와인 잔을 채우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그리고 편안하게 등을 기대며 조용히 물었다.

“날 찾아온 이유는?”

“우리 작은어머니가 과거에 만났던 남자, 네가 죽였나?”

서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최지범의 표정에 변화는 없다.

“난 살인은 하지 않아.”

“그럼, 작은어머니가 죽였나?”

순간 최지범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찰나다. 이내 끌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사가 하는 게 선량한 시민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것이었나?”

최지범의 여유로운 태도는 허세가 아니다. 그는 숱하게 많은 검사를 만나 본 적이 있는 사람. 서진은 한 수 아래로 생각하며 내려다보고 있다.

서진이 최지범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시 묻지. 네가 죽였나?”

“아니라고 했어.”

“솔직히 말해도 괜찮아. 30년 전의 일이야. 이미 공소시효는 끝났어. 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고.”

최지범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을 살폈다. 그리고 소파의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진실은 가려져 있을 때, 아름다운 거야. 그러니까 아름답게 내버려 둬. 그리고 이제 한계야. 더 알려 하면 위험해. 내가 그쪽을 죽여야 할 수도 있어.”

명백한 협박이다.

하지만 저런 협박에 밀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찾아오지 않았다.

서진이 가방을 열어 서류를 한 뭉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최지범의 눈동자가 서류를 향해 틀어질 때, 서진이 서류를 손가락으로 쿡 누르며 입을 열었다.

“보니까, 공소장 여러 번 찢었던데, 그때마다 그쪽의 담당 검사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지. 용돈을 두둑이 줬나?”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 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진은 또 한 뭉치의 서류를 덮어 올렸다.

“또 다른 죄.”

탈세부터 시작해서 기업 사냥 그리고 주가 조작에 이어 폭력까지.

서진이 놓인 서류를 손가락으로 툭 치며 말했다.

“난 돈은 필요 없는데, 뭐로 회유하려나?”

최지범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벌한 눈동자로 서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고작 이걸로 날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못 할 게 뭐야? 난 검사고 너 같은 새끼를 잡아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데.”

서로의 살벌한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최지범의 입가에 미소가 조용히 걸렸다.

이번엔 최지범이 서진을 향해 상체를 굽히며 말했다.

“젊은 검사 양반, 잘 들어. 난 엄 회장님을 배신하지 않아.”

“내가 엄 회장 배신하라 했나? 난 우리 작은어머니의 과거를 알려 달라 한 것뿐이야.”

“나에겐 그게 똑같은 거야. 잡아넣어.”

교도소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치 마실을 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최지범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10년이든 20년이든 구형해. 무기징역도 괜찮아. 회장님께서는 돈도 있고 힘도 있지. 판사는 회장님의 말을 따를 테고 난 금방 나올 거야. 나오면 더 큰 보상을 주시겠지. 앞으로 100세 시대야. 1~2년 고생하고 30~40년 편히 사는 게 좋은 거야.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검사를 한다고…….”

최지범은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힐끗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서진이 낄낄 웃고 있다. 급기야 배를 잡고 웃는다.

“크핫핫핫!”

최지범은 오랜 세월 동안 난다 긴다 하는 검사를 무수히 만나 봤다. 하지만 서진 같은 행동은 처음이었다.

이건 건방짐을 넘어 미친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웃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엄 회장이란 사람,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정말 부럽네. 돈만 던져 주면 죽는 시늉을 하는 강아지도 있고. 푸핫핫핫!”

강아지라는 말에 지금껏 평온하던 최지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지범이 담배를 재떨이에 짓눌러 끄며 무섭게 말했다.

“더 꺼낼 카드 없으면 그만하지.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아가씨에게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 조심할 수 있도록 하고.”

“…….”

“나가. 내 인내심도 여기까지야.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반말을 듣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야.”

하지만 서진은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내가 배운 게 있어.”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를 불렀던 일.

주변 사람을 통해 장지혁 검사를 옭아맸던 것.

“강직한 사람에게는 주변의 비명을 들려줘라.”

“뭐?”

“궁금하네. 충성스러운 강아지인데, 자식의 비명을 들으면 어떻게 할까?”

최지범의 행동이 뚝 멎었다.

분노 가득한 눈으로, 서진을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거침이 없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아들, 딸 만나서 송편 빚어야지. 윷놀이도 하고.”

“……!”

“제사 지내면서 조상님께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네. ‘우리 딸이 절세를 위해 해외로 돈을 빼돌리다 걸렸어요.’라고 할까? 아니면, ‘우리 아들이…….’.”

최지범은 참지 못했다.

“그만!”

“그럼, 말해. 누가 죽였어. 어디에 파묻었어!”

최지범의 주먹이 사납게 쥐어졌다. 당장이라도 서진을 죽일 듯이 쏘아본다.

그리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밖에서 대기하는 부하들을 불러들여 연약한 팔목을 비틀어 밖으로 집어 던져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너…… 진짜 죽고 싶어?”

그때였다.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하며 이동영 수사관의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서진이 스피커폰을 누르자 이동영 수사관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검사님, 최민우, 최민지에 대한 것 정리 끝났습니다. 영장 신청할까요?

“5분 있다가 처리하세요. 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 검사님께 전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서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최지범을 바라봤다.

“어쩌나? 내가 죽어도 자식들의 죄가 없어지지는 않을 텐데.”

“난 힘이 있어. 금방 꺼내 올 수 있어.”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발신 번호에 이소희 기자라고 떠오른다. 서진이 스피커폰을 누르자 이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사님, 최민우, 최민지 기사 작성 끝났어요. 어떻게, 지라시부터 시작할까요? 아니면, 메이저?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 같은데요.

물론, 이소희는 기자가 아니라 검사다. 이것은 서진이 미리 부탁한 것.

하지만 이 방법은 통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최지범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서진이 최지범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다시 연락하죠.”

서진이 전화를 끊으며 말을 이었다.

“추석에 자식 얼굴 보고 싶으면 말해. 누구야?”

“…….”

“공소시효도 지난 거잖아! 말해!”

서진이 분노 가득한 눈으로 최지범을 노려보며 손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최지범이 눈을 꾹 감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다. 그리고 그는 결정했다.

‘내가 했다고 해야 해.’

최지범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하려 할 때였다. 서진이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스스로 했다고 말하면, 난 엄 회장이란 사람이 청부했다고 여길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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