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 (2)>
***
“어제도 많이 드셨는데, 또 드세요?”
그날 밤, 장지혁 검사는 말없이 술잔만 꺾었다. 안주도 먹지 않고 이런저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굴이 붉어졌을 무렵,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진아.”
“말씀하세요, 술은 그만 마시고.”
“미안하다.”
힘없는 목소리에 서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지혁 검사는 오늘 김영준 총장실에 불려 갔고 그 자리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게 분명하다.
장지혁 검사가 술잔을 ‘탕!’ 내려 두며 말했다.
“오늘 좋은 거 배웠어.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라고 하더라. 누가? 네 작은아버지가.”
“……!”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말했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고.
장지혁 검사는 힘없는 정의의 무력함을 맛 봤다.
서진이 씁쓸하게 장지혁 검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장지혁 검사는 서진에게 김영준 총장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했다. 친척에서부터 보육원까지.
김영준 총장은 장지혁 검사의 심지를 알아봤고 장지혁 검사의 목을 직접 베지 않았다. 주변 인물을 쳐 내며 비명을 듣게 만들었다.
결국, 장지혁 검사는 김윤환을 놓아주겠다고 말했다.
“친척들에게 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해. 난 그 생각은 변함없어. 그런데, 애들이 무슨 죄야? 아, 가난이 죄라고 하더라. 그래, 가난한 게 죄네.”
“…….”
“졌어. 난 유배를 가고 김윤환은 출소하고. 뭐, 덕분에 애들은 그 자리에서 계속 지낼 수 있겠네.”
장지혁 검사는 축 처진 어깨로 술잔을 채웠다.
쪼르르 술이 따라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서진과 장지혁 검사의 사이는 적막했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가 다시 술잔을 입에 댈 때, 앞에서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현아, 경기도에 청마 보육원이라고 있어. 이사할 수 있게 전원주택 하나 알아봐. 돈 생각은 하지 말고. 양평? 그래, 거기 좋겠네. 텃밭도 있고 애들 뛰어놀 수도 있고. 이사 가면 학교하고 거리가 떨어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등하교 차량도 준비해 주고. 땡큐.”
장지혁 검사가 눈을 깜빡이며 서진을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요, 금수저의 기부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배웠어요.”
“어?”
“그래서 김윤환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풀어 주실 거예요?”
“잠깐만, 너 지금 되게 재수 없어.”
“네?”
“지금 서민과 부르주아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는 중이야.”
장지혁 검사는 하루 종일 이 문제로 고심했다. 그런데, 전화 한 번에 해결해 버리다니.
역시 돈은 많고 볼 일이다.
장지혁 검사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술잔이 부딪치고 장지혁 검사는 시원하게 술을 털어 넣었다. 방금과 다른 분위기다. 쳐져 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있다.
“고맙다. 그러니까, 오늘은 서민이 술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줘. 내가 계산할게.”
“아, 정말요?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뭘?”
“요즘 한우가 그렇게 맛있대요. 마블 넘버 나인인가?”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블 넘버 나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비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장지혁 검사가 정말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껍데기 추가요!”
“또 껍데기요?”
“껍데기에 콜라겐이 많잖아. 피부 관리 해야지.”
로션도 안 바르는 사람이 콜라겐을 따지며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서울의 한 바, 지하실에 있는 곳으로 낡은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곳.
그곳에 김영준 총장과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야.”
김준만이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가게를 둘러보며 잠시 과거를 더듬었다.
이십여 년 전에는 김영준 총장과 자주 드나들던 곳.
그때는 김영준 총장과 사이가 참 좋았다.
서로 세상의 정점을 향해 가며 밀어주고 끌어 주고, 밤마다 고생을 나누며 술을 마셨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김준만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변했는데, 여긴 변한 게 없어.”
“원래 있던 사장님은 돌아가셨다더라.”
“그래?”
“어. 오기 전에 알아봤어.”
두 형제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김준만이 김영준 총장의 잔에 위스키를 채우며 물었다.
“그런데, 바텐더까지 치운 이유는 뭐야?”
가게에는 김영준 총장과 김준만만 앉아 있었다.
바텐더는 밖에 나가 있고 닫힌 문에는 ‘CLOSE’라고 적혀 있다.
“뭐겠어? 오랜만에 형이랑 조용히 마시고 싶어서지.”
김영준 총장이 김준만과 대화하기 위해 통째로 빌린 거다.
“할 말 있으면 취하기 전에 해라. 오랜만에 체면 내려놓고 마실 테니까.”
김준만이 넥타이를 풀며 픽 웃었다. 오랜만에 동생이란 한잔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영준 총장이 한마디를 더 던졌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어. 형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거야. 단둘이 언제 술을 마셨는지 생각해 보니까, 몇 년은 지났더라고.”
“그래, 둘이 마신 게 5년도 더 됐네. 항상 가족들이랑 같이 만났으니까.”
두 형제는 천천히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주제는 없다. 추억을 더듬었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가볍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 술이 몇 잔 들어간 후 김영준 총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서진이는 언제 결혼시킬 거야? 여자 친구 없대?”
서진의 결혼에 대한 것, 가벼운 대화 속에 숨겨 둔 의도였다.
김영준 총장은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김준만을 불러냈고 이제야 그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이 김준만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입을 열었다.
“윤환이는 저렇게 돼서 조금 늦춰야 하지만, 서진이는 괜찮잖아?”
“그런데, 서진이가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아, 진영이는 여자 친구가 있는 것 같더라.”
“진영이? 설마, 진영이가 먼저 가는 거야?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형이 먼저 가야지.”
“글쎄…….”
김영준 총장에게 진영의 결혼은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요리를 한다고 밖으로 도는 놈, 누구를 만나고 다니든 상관없었다.
“아, 괜찮은 애가 있는데, 볼래?”
“누구?”
“잠깐만, 서진이랑 동기라고 들었어.”
“동기? 검사야?”
“사진이 있는데…….”
김영준 총장이 “어디 있더라.”라고 중얼거리며 휴대폰 화면을 넘겼다. 그리고 김준만에게 건넸다.
이소희의 얼굴은 예쁘다. 검사라는 직업은 그 스펙까지 높여 주고 있다. 게다가 서진의 동기라고 한다.
김준만의 눈빛에 호감이 서리자 김영준 총장이 작게 속삭였다.
“내가 서진이한테 넌지시 이야기해 볼까? 난 같은 직장에 있잖아. 오며가며 편하게 떠볼 수 있어.”
“그래 주면 고맙고.”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설득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이 본 서진은 자신과 똑같은 사람. 이득 될 것이 있다면 사랑 따위는 등 뒤에 둬도 상관없을 인물.
이소희와의 결혼이 가져다줄 이득을 알려 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이 조용히 웃으며 술잔을 손에 들었다.
“마시자.”
그런데, 그때였다.
김영준 총장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장지혁 검사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총장님 말씀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자네 같은 검사가 있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서는 법이지.’라는 말씀 새겨듣고 김윤환의 죄를 낱낱이 밝히겠습니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의 예상을 벗어난 것은 장지혁 검사만이 아니다.
또다시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고…….
-이석우 부장검사가 공대출 의원을 소환한다고 합니다.
공대출 의원은 서진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한 타깃 중 하나다. 그런데, 뜬금없이 꼴뚜기가 날뛰고 있다.
김영준 총장이 껄껄 웃었다.
“왜? 재밌는 일 있어?”
김준만의 질문에 김영준 총장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이렇게 날파리가 꼬일까? 손만 휘둘러도 사라질 놈들인데…….”
***
그리고 다시 서진과 장지혁 검사가 앉아 있는 고깃집.
장지혁 검사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보냈다. 이제 문자 보내는 것도 심부름을 시키네.”
“항상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됐어. 내가 고맙지.”
장지혁 검사는 보육원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해했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장지혁 검사가 젓가락을 손에 쥐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 아냐?”
“아, 그러라고 보낸 거예요.”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장지혁 검사의 선전포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다. 김영준 총장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신경을 쓸 것은 분명하며 강자는 약자가 덤벼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
“작은 일에 집중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다가올 큰일은 알 수 없도록.”
곧 김윤환의 가족 상봉이 일어날 거다.
그때까지 김영준 총장은 장지혁 검사 그리고 그 외의 일로 바빠야 한다.
모르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 정말 아플 테니까.
‘문제는…….’
김영준 총장이 김윤환의 일을 알고 있을지, 모르고 있을지 그게 문제다.
***
-검찰이 공대출 전 의원을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민당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의 선거 개입이 아니냐며…….
서진이 라디오를 껐다. 그리고 차량 내부는 적막해졌을 때, 핸들을 틀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호텔.
작은어머니의 비밀을 품고 있는 최지범, 그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서진은 호텔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에서 몸을 빼냈다.
서진의 앞으로 장석민이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능글능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지범은 지금 객실에 있는데요. J킴 아시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이돌 가수. 걔랑 같이 들어갔는데…….”
“차는?”
“네?”
“최지범 차는 어디에 주차되어 있어?”
서진은 더러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장 본론을 물었고 장석민은 능글맞던 표정을 고치며 몸을 틀었다.
“이쪽이에요.”
VIP라고 찍힌 주차 라인, 그곳에 최지범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6억이 넘어서는 고가의 오픈카.
서진이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예순 넘어서 오픈카라……. 멋있게 사네.”
서진은 전화번호를 확인 후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호텔의 VIP룸.
최지범은 아이돌 가수의 샤워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접촉 사고가 있어서요. 와서 좀 보시죠.
난데없이 건방진 목소리에 최지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네?”
-접. 촉. 사. 고. 잘 안 들리세요?
“자기, 젊은 친구 같은데,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게 우선 아닌가?”
-알았으니까 내려오세요. 여기 지하 3층 G11 라인이에요.
그게 끝이다. 전화가 뚝 끊어졌다.
최지범이 황당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어떤 미친놈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을 정도다.
“나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몸을 틀어 룸을 벗어난 최지범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량을 발견한 최지범이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예의를 갖춰 말하면, 서로 인상 쓰지 않고 좋잖나?”
“아, 미안. 내가 깡패 새끼한테 예의 차리는 사람은 아니라서.”
“……!”
최지범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다.
서진이 최지범의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서며 말했다.
“검사.”
“……?”
“검사라고. 우리 대화 좀 하자.”
최지범이 어이없다는 듯 끌끌 웃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날 찾아온 것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아나 본데……. 내가 검사라고 하면 무서워할 줄 알았나?”
“아니. 안 무서워하겠지.”
“그럼, 지금이라도 예의를 갖…….”
서진이 최지범의 말을 막아섰다.
“저기, 그쪽이 검사를 안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아? 내 얼굴 봐. 몰라?”
최지범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김……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