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2)>
“왜 그렇게 인상을 써? 난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데.”
취조실이었다. 장지혁 검사가 들어오기로 했는데, 뜬금없이 서진이 나타났다.
서진은 활짝 웃었지만 김윤환은 계속해서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알지? 네가 아무리 지랄해도 나 교도소 안 가. 재판 질질 끌다가 조용해지면, 무혐의로 나갈 거야. 그러니까 그냥 가라, 꼴도 보기 싫으니까.”
“뭐야, 또 날 의심하는 거야?”
“가라고 했다.”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 생각해 봐. 형 사건에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생각해 봐, 마약 수사 들어온다는 것도 내가 말해 줬잖아? 그리고 여자 데리고 논 것,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날 의심하고 미워해? 그거 웃기는 거야.”
“하…….”
김윤환이 머리를 쥐어뜯자 서진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담배와 라이터를 놓아두며 말을 이었다.
“그만 의심하고 담배나 피워.”
“씨발…….”
김윤환의 입에서 허망한 욕설이 내뱉어졌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며 서진을 바라봤다.
“그래서, 왜 왔냐?”
“사실 그 전부터 형 얼굴 보고 싶었는데, 우리 관계가 좀 그렇잖아. 주변 시선도 있고. 그래서 이제야 왔어. 미안.”
“찾아온 이유가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김윤환도 서진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찾아온 거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다.
서진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할 말도 있고.”
서진이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올려 뒀다. 김윤환이 휴대폰을 들어 확인한다.
화면에는 지난번 김윤환이 봤던 지라시가 있었다.
그러니까 김영준 총장의 아들이 김윤환이 아니라는 것.
김윤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이걸 왜!”
“이 지라시가 꽤 많이 퍼지고 있어.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관해. 그래서 작은아버지 몰래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서진은 이미 검사 결과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진이 임의로 조사한 것,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 알려지는 순간 서진의 인생이 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서진은 김윤환을 통해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지를 우연히 김영준 총장이 알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그 집안을 파멸로 이끌 거다.
“검사하자.”
김윤환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주먹으로 테이블 ‘쾅!’ 치며 외친다.
“새끼야, 그걸 확인해야 알아!”
김윤환의 감정이 동요되고 있다.
이럴 때는 같이 흥분하는 척, 그 마음을 더 혼돈으로 몰아세워야 한다.
서진 역시 테이블을 쾅! 쾅! 쾅! 치며 말했다.
“누가 뭐래? 확인이 아니라 검사라고 했잖아! 조금 있으면 대선이야. 이 찌라시가 여당에 들어가면, 그래서 그 새끼들이 작은아버지를 물고 늘어지면?”
“……!”
“그때 되어서 검사할래? 그래도 안 믿을걸. 그 사람들은 일단 물고 늘어질 거야. 진실이 나와도 어떻게든 거짓으로 만들 테고! 그러니까, 그놈들이 물고 늘어지기 전에 검사 결과를 준비해야지!”
서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윤환이 입술을 씹으며 대구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걸 네가 왜 해?”
“몰라서 묻는 거야? 나 검사야! 작은아버지가 살아야 내 인생도 편해!”
“이 새끼가!”
“새끼, 새끼 하지 마. 만약에 형이 미적거리다가 작은아버지 잘못되면…….”
“잘못되면, 뭐!”
“난 형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 인생을 망친 거나 다름없으니까.”
서진의 눈빛이 살벌했다.
김윤환은 더 말하지 않았다. 손에서 담뱃재가 길게 이어질 뿐이다.
서진은 김윤환의 모든 행동을 눈에 담았다.
놈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불안해하는 것.
의심을 담고 있는 것.
자신이 김영준 총장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
그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기까지.’
서진은 예상하고 있었다.
김윤환은 서진을 통해 검사를 진행하지 않을 거다.
그나마 자신이 믿는 사람을 불러 확인하려 할 게 분명하다.
서진이 이곳에 온 이유는 김윤환의 마음에 불씨를 던지는 것.
서진은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내가 형 기분은 생각 못 했네.”
서진이 몸을 틀어 취조실의 문으로 향할 때, 김윤환은 어떤 말도 안 했다.
그저 담배만 피워 댔다.
그러다가 서진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입을 열었다.
“잠깐만.”
서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렇게 빨리 손을 내밀 줄은 몰랐다.
그만큼 김윤환도 김영준 총장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몸을 틀어 김윤환을 바라봤을 때, 서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 왜?”
“전화 한 통만 쓰자.”
서진이 웃으며 다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든지.”
“나가 있어.”
“알았어. 밖에서 보고 있다가 전화 끊으면 들어올게.”
서진이 밖으로 나가자 김윤환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엄마, 나야. 아니, 잘 있으니까 됐고. 내 방 서랍 열면 휴대폰 있어. 비밀번호 1231. 거기서 장석민이라는 애 전화 번호 좀 찾아봐. 그리고 아줌마 좀 바꿔. 누구겠어? 집안일 하는 아줌마!”
그리고 취조실의 밖.
서진이 김윤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윤환의 앞에서 보였던 얼굴은 없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눈으로 김윤환을 노려보고 있다.
김윤환은 입 모양이라도 새어 나갈까 봐 고개를 숙이고 전화하는 중이다.
통화가 종료되면 발신 번호도 삭제할 기세.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숨겨도…… 난 네가 누굴 부를지, 무슨 짓을 할지, 뻔히 보여.’
김윤환은 서진을 믿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놈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자신이 부하라 생각하는 장석민을 부르려 하고 있다.
***
“머리카락 받아 왔어요.”
그날 밤, 서진은 장석민을 만나고 있었다.
장석민이 비닐에 담긴 머리카락과 칫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칫솔?”
“윤환이 집에 가니까, 거기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주던데요.”
서진이 픽 웃었다.
김윤환이 김영준 총장의 DNA를 어떻게 확보하려 할지 그것은 조금 궁금했는데, 놈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생했어.”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요?”
장석민의 질문에 서진이 명함 하나를 건넸다.
명함의 주인공은 일전에 김윤환의 유전자 검사를 해 줬던 사람.
“이거 들고 이 사람한테 찾아가 봐. 검사해 줄 거야. 그다음에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리고 칫솔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받았다고?”
“아, 네. 윤환이 친구라고 하니까, 그냥 주던데요.”
순간, 장석민은 서진의 눈이 잔인하게 빛나는 것을 봤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그리고 서진은 움찔거리는 장석민을 느꼈다.
장석민을 향한 분노가 아닌데, 괜히 미안했다.
“밥 먹자.”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장석민 역시 숟가락을 들며 서진을 다시 힐끗 살폈다.
‘검사님 얼굴이 참…….’
장석민은 정말 잘생기고 순하게 생긴 청년이었다가 때로는 악마 같은 표정을 짓는 서진이 신기하기만 했다.
***
장석민과 헤어진 서진은 곧장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책장을 밀친 후 낙서처럼 휘갈겨진 글씨를 바라봤다.
아직 해석하지 못한 것이 많지만 상관없다. 이제는 서진이 새로 적어 내려가는 게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의 서진이 적어 둔 것 중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적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천천히 알아보면 될 일.
서진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동생 엄선주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얼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엄선주가 체포된 이후 서진은 꾸준히 엄선주를 만나 왔고 그녀는 말했다.
-네 작은어머니……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비밀이 많은 사람이야. 그런데 그 비밀, 지금도 많네? 뭐냐고? 미안, 알려 줄 수는 없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건 나에게 보험이거든.
김윤환이나 엄선주나 실형을 살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다.
아니, 실형을 산다고 해도 금방 빠져나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데…….’
서진은 엄선주가 했던 또 다른 말을 떠올렸다.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
-언니가 가진 판도라의 상자가 어디에 있을까? 어렸을 때는 머리맡에 꽁꽁 숨겨 뒀었는데.
그 말을 하던 엄선주의 표정, 서진을 가소롭게 보고 있었다.
자신은 알고 있지만 서진은 모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서진은 엄선주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지금도 작은어머니가 자신의 치부를 근처에 숨겨 두고 있다는 뜻.
‘어디에…….’
서진은 벽면의 빈 공간에 김영준 총장의 집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2층에는 침실과 욕실 그리고 드레스 룸.
‘1층에는…….’
작은어머니가 치부를 숨겨 둘 곳.
‘집 안에 있을 거야.’
***
며칠 후,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집을 찾았다.
오늘은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가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하는 날.
오면서 김유미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늘도 당직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즉, 김영준 총장의 집에는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만 집에 있다는 것.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윤환이 형이 가져다 달라고 한 게 있어서요.”
“들어오세요.”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는 어떤 의심도 없이 서진을 들였다.
며칠 전에도 김영준 총장의 칫솔을 몰래 챙겨 달라는 등 이상한 부탁을 했었기 때문이다.
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온 서진이 아주머니를 스치며 물었다.
“윤환이 형 방문 열려 있죠?”
“네.”
무엇을 가지러 왔냐고 물으면 ‘보던 책이 있다고 해서요.’라는 말을 하려고 준비했는데, 아주머니는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서진은 곧장 2층으로 향하며 슬쩍 아주머니를 확인했다.
아주머니는 기지개를 켜며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다.
‘올라오지는 않을 테고.’
아주머니가 2층에 올라오는 것은 오전에 청소를 하는 게 전부.
다른 시간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다.
고가의 귀중품이 놓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고 싶은 거다.
그렇게 2층에 오른 서진은 김윤환의 방을 스쳐 작은어머니의 드레스 룸에 다가섰다.
이곳은 작은어머니가 혼자 사용하는 곳으로 그 어떤 사람도 들어가지 않는다.
김영준 총장은 물론 김유미까지도.
무엇인가를 숨겨 두려 했다면, 이곳을 이용했을 거다.
서진은 거침없이 드레스 룸의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끼익’ 열렸고 드레스 룸답게 엄청난 양의 옷이 서진을 반겼다.
모두 고가의 명품, 서진이 알고 있는 브랜드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서진은 행거에 걸려 있는 옷을 슥슥 옆으로 치우며 의심스러운 게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자주 확인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곳. 금고가 설치되어 있나? 아니면…….’
그렇게 옷을 치우던 서진이 행동을 멈칫거렸다.
‘어?’
캐리어 가방 3개가 보인다.
명품 캐리어 가방이 2개 그리고 수십 년은 된 것 같은 가방이 1개.
서진은 낡은 캐리어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고 가방을 끄집어냈다.
뭔가 가득 들어 있는지 무게가 꽤 나간다.
열어 보려 했지만 가방은 잠겨 있다.
4자리의 비밀번호.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생일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이어서 김윤환과 김유미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생일, 심지어 결혼기념일까지 넣어 봤지만 마찬가지.
‘설마…….’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이동영 수사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조사를 부탁했던 분 있잖아요?
오래전,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을 통해 작은어머니의 전 남자친구의 신상을 파악한 적이 있다.
-생년월일 좀 알 수 있을까요?
곧 답장이 왔다.
그 사람의 생일은 8월 17일.
서진은 캐리어의 비밀번호에 0817을 맞춰 봤다.
그리고 ‘덜컥!’ 가방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