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1)>
* * *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 중앙지검 검사장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물 컵을 입에 댔다.
“왜…….”
뜬금없이 대검 전동국 차장검사에게 연락이 왔다.
-얼굴 한번 봤으면 하는데…….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의 2인자. 실질적인 권한은 크지 않지만 이름값은 결코 가볍지 않다.
라인 없이 중앙지검 검사장에 오른 그에게 차장검사의 호출은 반가운 일이었다.
“오셨습니까?”
미닫이문이 열리며 전동국 차장검사가 들어오자 중앙지검 검사장이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혔다.
전동국 차장검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손을 저었다.
“뭘 그렇게 예의를 갖추나? 편히 앉아.”
검사장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전동국 차장검사의 앞에 마주 앉았다.
전동국 차장검사가 끌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막걸리 어떤가?”
검사장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막걸리?’
가난한 대학 생활 이후 마셔 보지 않은 술이다. 성공을 하면 앞으로 비싼 술만 먹겠다고 다짐했었다.
“자네도 나와 같은 대학 아닌가? 내 후배라고 들었는데?”
전동국 차장검사의 말에 검사장이 활짝 웃으며 벨을 눌렀다.
곧 찌그러진 주전자에 막걸리가 받아져 왔고 비싼 음식과 어울리지 않게 테이블 위에 놓였다.
“가끔은 대학 생활이 그리워. 한잔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그렇게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전동국 차장검사가 빈 잔을 채우며 계속 말했다.
“자네, 검사장이 된 이유가 김영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지?”
법무부 장관과 김영준 총장의 관계가 좋지 않다.
법무부 장관은 김영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어떤 라인도 없는 그를 검사장에 올렸고…….
“나도 똑같네.”
전동국 차장검사 역시 그 임무는 김영준 총장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네…… 요새 김영준 측에 붙었다는 이야기가 많아.”
“하하.”
검사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대답할 수 없다. 살기 위해 박취처럼 붙었다는 말을 스스로 내뱉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과 손을 잡고 그 훗날까지 계획한 사람.
정권이 바뀌는 순간 사라질 법무부 장관의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다.
그래서 검사장이 내뱉은 변명은…….
“붙지 않았습니다. 저는 법을 수호할 뿐입니다.”
“법을 수호해?”
“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게 전부입니다.”
검사장은 어떤 동아줄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거친 바다와 같다.
어떻게 바뀔지 모를 파도에 휩쓸려 죽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동아줄을 꽉 잡고 버티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변명했는데, 전동국 차장검사의 표정이 돌변한다.
싸늘하게 검사장을 노려보며 말없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들긴다.
그 세기가 점차 강해진다. 이어서 부서질 정도로 ‘쾅!’ 테이블을 내리 찍었다.
“그런 사람이 김서진에게 사건을 몰아주고 있어!”
벼락같은 목소리에 검사장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타박은 이제 시작.
“국민은 모르지! 그저 김서진이라는 애송이가 날뛰며 사건을 해결하면, 그게 좋은 거라고 여기지! 그런데, 김서진의 위치가 무엇인가!”
서진은 반부패수사부에 소속되어 있다.
“형사에서 할 일을 그놈이 왜 하고 있어! 살인 사건을 그놈이 왜 조사해? 납치 사건에 그놈이 왜 튀어나와!”
“차, 차장검사님…….”
검사장은 또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전동국 차장검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김영준 총장이 시키던가? 김서진을 스타로 만들라고? 자기 조카를 밀어주라고! 그런데, 법을 수호해? 규칙을 따라?”
검사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저, 저는…….”
검사장은 서진에게 어떤 일도 지시하지 않았다. 서진이 마음대로 설쳤을 뿐이다. 검사장은 서진을 내버려 둔 게 전부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끝까지!”
전동국 차장검사가 술잔을 콱 쥐었다. 동시에 검사장을 향해 집어 던졌다. ‘캉!’ 소리와 함께 막걸리 잔이 벽에 부딪쳤다 떨어진다.
살벌할 정도의 적막함. 그 속에서 검사장은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전동국 차장검사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자네…… 위에서 주시하고 있는 것 알고 있나?”
“……!”
“내가 말한 ‘위’는 대검이 아니야. 그보다 더 위야.”
전동국 차장검사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분노는 사라지고 후배를 타이르고 있다.
“명예롭던 검사 인생의 종지부에 망신이라는 단어를 채워 넣고 싶지는 않잖아?”
“…….”
“그럼, 앞으로 김서진에게 그런 사건 주지 마. 김영준이 지시한다 해도 자네가 말한 규칙을 지켜. 그럼, 망신이란 단어는 사라질 게야.”
“……!”
“그리고 자네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해서 김영준이 뭐라 하겠나? 자네는 규칙을 따른 것뿐인데…….”
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전동국 차장검사가 빙긋이 웃으며 검사장의 잔을 채웠다.
“이 사람아, 난 자네 선배야. 자네를 아끼고 있어. 급한 마음에 발밑을 보지 말고 조금 더 앞을 내다봐. 그럼, 자네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천천히 식사하고 가도록 해. 계산은 내가 하지.”
전동국 차장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으름장을 놨으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은 당연한 거다.
그런데, 그렇게 밖으로 나온 전동국 차장검사는 밖으로 향하지 않았다. 곧바로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동국 차장검사가 활짝 웃었다.
“오래 기다렸나?”
안에는 서진이 앉아 있었다.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동국 차장검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전동국 차장검사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을 저었다.
“됐어. 원래 대검 차장검사가 할 일이 그래. 새까만 평검사 뒤치다꺼리나 하는 거야. 그래야 새까만 놈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하겠지.”
“그래도 죄송합니다.”
“됐다니까.”
“그럼, 앞으로도 뒤치다꺼리 좀…….”
서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전동국 차장검사도 낮은 목소리로 끌끌 웃었다.
그리고 전동국 차장검사가 술잔을 입에 대며 말했다.
“자네에게 깡치 같은 사건은 이제 안 들어올 거야.”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이 서진에게 지시할 다음 일은 깡치.
그들은 서진이 그들의 눈을 피해 저지를 일을 살펴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그들의 앞일을 예상했고 전동국 차장검사에게 부탁했다.
세상에 가장 좋은 전략은 상대의 생각을 한발 앞서 모든 걸 무너뜨리는 거다.
서진은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의 뜻대로 움직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다음은…….’
술잔을 손에 쥐는 서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 * *
다음 날, 이석우 부장검사는 자신의 심복 검사와 함께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총장님께는 연락이 오고 있습니까?”
“아니.”
이석우 부장검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인신매매범의 일망타진 이후 팀은 해산됐다. 당연하지만 김영준 총장에게 연락도 없다. 버려진 거다.
하지만 이석우 부장검사는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만, 딱 하나만…….’
이석우 부장검사는 생각했다, 김영준 총장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 다시 연락을 줄 거라고, 그 라인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럼, 성공의 지름길을 밟는 거다. 어쩌면, 대검의 중추에 들어갈 수도 있다.
“총장님이 대선에 개입하려 하시는 것 같아.”
이석우 부장검사의 말에 심복의 눈이 부릅떠졌다.
“대선…… 개입요?”
“생각해 봐.”
이석우 부장검사가 브리핑을 할 때, 기다렸던 것처럼 백기호 의원의 기사가 튀어나왔다.
“준비하고 있던 거야. 만약에 우리가 계속해서 범인을 못 잡았다면, 백기호 의원의 지지율이 올라갔겠지.”
“그럼 우리는…….”
“어, 장기짝이었어.”
“……!”
심복의 얼굴이 찌푸려질 때, 이석우 부장검사가 계속 말했다.
“기분 나빠 하지 마. 장기짝으로도 선택되지 못하는 인간이 수두룩해. 그리고 총장님이 지금껏 해 오신 일을 생각해 봐. 도움을 준 사람을 외면하신 적은 없어. 멍청한 조우재가 지금도 중앙지검에 붙어 있는 거 봐 봐.”
이석우 부장검사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대선에 개입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 도움을 드리면, 보답을 해 주실 거야.”
“…….”
이석우 부장검사가 심복의 등을 툭툭 다정히 두들겼다.
“정용아, 나쁘게 생각하지 마. 우리같이 지방대 나온 놈들이 성공하는 방법은 하나야. 위에 붙는 것. 그게 아니면, 받아 주는 로펌도 없어.”
그런데, 그때였다.
어떤 목소리가 이석우 부장검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김서진이 공대출을 수사한다고? 햐, 그래도 거물인데,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야?”
이석우 부장검사의 눈동자가 천천히 틀어진다. 복도의 끝, 창가에 기대 전화하는 수사관이 보였다.
“진짜? 김영준 총장에게 지시받았다고? 씨발, 친척이라고 자기들끼리 해 먹네.”
김영준 총장의 지시라는 말에 이석우 부장검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군지 모를 수사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지시를 받은 게 몇 주가 넘었다면서 왜 지금까지 추진 안 하는 거야? 하긴…… 무섭기도 하겠지. 거물을 건드는 건데…….”
이석우 부장검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수사관이 떠벌린 단어를 곱씹었다.
‘김서진이 공대출 전 의원을 수사한다고? 그런데, 추진하지 않는다고?’
그사이 수사관의 목소리는 시답잖은 내용으로 넘어갔다.
“야, 끝나고 술 한잔해.”
더 들을 것은 이제 없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이석우 부장검사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답이 보이는 것 같아.’
이석우 부장검사가 복도의 끝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뚜벅뚜벅 이석우 부장검사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전화하던 수사관이 복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이석우 부장검사의 자리에서 볼 수 없던 사각지대. 그곳에서 장지혁 검사가 걸어 나왔다.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시죠? 음료는 제가 쏠게요. 하하하.”
장지혁 검사가 시원하게 웃으며 흡연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먼저 이동하는 수사관의 뒷모습을 보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어, 서진아.”
서진의 부탁이었다.
수사관과 친하게 지내는 장지혁 검사만이 할 수 있는 일.
“미끼 던졌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서진은 장지혁 검사의 말을 들으며 휴대폰을 내려 뒀다.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던진 미끼.
‘하지만…….’
미끼는 통할 거다.
‘한 번이라도 황금을 본 사람은 황금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
탐욕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고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주변에서 위험하다며 신호를 줘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기에 빠진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은 크다.
그들은 자신이 남들과 달리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성향은 이석우 부장검사도 똑같았고.
‘이석우에게 김영준은 황금이야.’
이석우 부장검사는 서진의 뜻에 따라 거침없이 분탕질을 시작할 거다.
‘이제…….’
공대출 전 의원의 일은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맡기면 된다.
스스로 혼란에 빠질 수 있도록 한 번씩 도와주면 되는 거다.
생각을 마친 서진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정말 밝은 미소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형.”
서진의 앞에는 죄수복을 입은 김윤환이 보였다. 놈이 썩은 표정을 짓고 앉아 있다.
서진이 김윤환을 향해 상체를 굽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치소 밥이 맛있나 보네? 살 좀 찐 거 같아.”
“이 새끼가!”
김윤환이 험악한 얼굴로 서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김윤환의 얼굴이 구겨질수록 더 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