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다 (6)>

백기호 의원의 시선이 그대로 텔레비전에 박혔다.

화면은 더 이상 이석우 부장검사를 잡고 있지 않다. 스르륵 움직이며 출입구로 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서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동시에 카메라가 서진의 얼굴을 확 끌어당기며 자막으로 중앙지검 검사 김서진이라는 타이틀이 ‘쾅!’ 떠올랐다.

백기호 의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부 여당의 지지율을 깎아 내리려 했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 오히려 지지율이 올라가게 생겼다.

백기호 의원이 입술을 씹으며 서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김. 서. 진!”

* * *

그 시각, 중앙지검 브리핑실.

이석우 부장검사 역시 덜컥거리는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석우 부장검사의 눈빛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서진에게 집중하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새끼가 왜?’

이석우 부장검사의 머릿속에 지금까지의 상황이 스치기 시작했다.

여대생 실종 사건의 팀장을 맡은 것부터 파출소에서 서진을 마주친 것 그리고 포천에 간 것에서 김영준 검사장에게 전화를 받은 것까지.

그 많은 일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확신하는 것은 두 가지.

-김영준 총장의 라인에 합류하는 것은 실패했다.

-김서진은 혼자 실적을 독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석우 부장검사의 옆으로 다가온 서진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해결했습니다.”

“고, 고생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시선을 틀었다. 기자들의 눈동자가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서진에게 집중하는 중이다.

그들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석우 부장검사를 원하지 않는다. 서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발표하도록 해.”

브리핑의 주인공이 바뀌는 순간이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내줬고 서진이 마이크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눈이 부실 정도로 터지고 있었다.

“중앙지검 검사 김서진입니다. 검찰은 최근 연이어 벌어지는 여대생 실종 사건에 평소와 다름을 느끼고…….”

서진의 목소리에 브리핑실은 적막해졌다.

20~25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인신매매를 통해 해외의 성매매 조직에게 넘기거나 장기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

“범인들은 사건의 공론화를 피하기 위해 1주일에 한 명을 목표로 움직였고…….”

데이트 폭력에 지친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자 인신매매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어젯밤부터 새벽까지가 놈들의 거래일이었습니다. 본 검찰은 인천지방경찰청과 협조했고, 인천의 한 폐 공장에서 브로커 일당 전부를 체포에 성공했습니다.”

서진의 브리핑이 이어지는 동안 기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기사가 속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갔다.

여대생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인신매매, 장기 매매 같은 끔찍한 단어가 순위를 차지했고 이어서 서진의 이름도 한곳에 보인다.

<속보>김서진 검사, 이번엔 인신매매.

<속보>김서진 검사, 범죄 조직 일망타진!

그 잠깐의 사이 댓글도 폭발적이다.

-역시 김서진!

ㄴ이 정도면 코난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김서진이 나섰다고 하니까 속이 시원하네.

-특별 팀 팀장이 놓쳤다고 보고하는데, 들어와서 잡았다고 보고하는 클라스!

ㄴㅋㅋㅋ 미쳤음. 생방 보고 있었는데, 인신매매라고 해서 쫄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툭튀 잡았대.

ㄴ특별 팀장 표정 레전드. 짤방 만들어지겠네.

-이 정도면 김서진도 우리 형으로 인정해 줘야 하지 않냐?

ㄴ우리 오빠지.

-야, 그런데 백기호가 뜬금없이 범인 못 잡는다고 박무혁 대통령 욕하는 거 봤음?

ㄴ대통령 되고 싶었나 보지!

ㄴ추가 기사에 CCTV 많이 설치하겠다고 하더라.

ㄴCCTV 됐고 김서진이나 설치해 달라고 해라.

“……추가 수사 이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진이 마지막 말을 내뱉은 후 기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단상에서 내려와 문으로 향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꺼질 줄 몰랐고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 모든 것은 복도로 나와 문을 닫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서진은 적막한 복도에서 넥타이를 풀며 숨을 돌렸다.

‘이제 다음…….’

꼬박 밤을 샜지만 할 일이 많다. 잡아 온 놈만 서른 명이 넘는다. 그들을 조사해서 추가 범죄를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야!”

“…….”

“김서진!”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틀자 이석우 부장검사가 도깨비 같은 얼굴로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몸을 틀며 내뱉은 말은 단 하나였다.

“따라와.”

* * *

이석우 부장검사의 사무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무서운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가.”

그 말에 실무관과 수사관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저런 표정으로 들어올 때면 더러운 성격이 폭발하는 순간이란 걸 잘 알고 있어서다.

그렇게 방에는 이석우 부장검사와 뒤쫓아 온 서진만 남았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손에 쥐고 있던 발표문을 테이블 위에 쾅!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 엿 먹이고 있지?”

“……네?”

이석우 부장검사가 서진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서진의 가슴을 기분 나쁘게 쿡쿡 쑤시며 계속 말했다.

“엿이 아니면, 똥을 뿌리려고 했냐?”

“아닙니다.”

“그런데, 특별 팀이 구성된 것을 알면서 혼자 지랄을 해? 왜? 다른 선배 검사들은 못 믿겠어? 너만 잘났고 나머지는 병신 같아?”

“그게 아니라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했는데?”

서진이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전원이 꺼져 있다.

“휴대폰을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연락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이 연락드리기 힘들었습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이석우 부장검사는 뺨이라도 때릴 것처럼 손을 치켜세웠다.

이석우 부장검사의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휘두르지는 못한다. 총장의 조카를 차마 때리지는 못하는 거다.

“하, 씨발…….”

이석우 부장검사가 주먹을 힘없이 내리며 턱짓했다.

“꺼져.”

“죄송합니다.”

서진은 허리를 굽힌 후 방을 벗어나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그때, 이석우 부장검사의 살벌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

“지켜본다.”

지켜보겠다는 말이 꼭 서진을 찢어 죽이겠다는 말처럼 들려왔다.

서진은 이석우 부장검사를 향해 허리를 굽힌 후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복도로 나선 서진의 눈빛이 돌변했다.

‘이석우…….’

실력은 없으면서 그걸 인정하지 않는 자.

윗선에 손바닥을 비벼 자리를 유지하려는 사람.

그런 인간은 검찰에 필요 없다.

서진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이석우 부장검사의 방에서 봤던 것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이석우 부장검사가 들어오자마자 집어 던지듯 테이블에 내려 둔 발표문.

‘수정되어 있었어.’

곳곳에 붉은 글씨로 수정한 게 보였다. 평소의 글씨가 아니라 날아가듯 낙서처럼 휘갈겨 둔 것.

‘브리핑 직전에 내용을 바꿨다는 거야.’

사무실에 돌아온 서진은 노트북을 열고 이석우 부장검사의 브리핑 영상을 찾아 재생시켰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브리핑을 위해 선택한 단어를 보며 서진은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몇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범인을 흉악범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려고 하는 것.

-경찰에게 허수아비 같은 이미지를 씌우는 것.

‘김영준의 특기야.’

즉, 이석우 부장검사는 브리핑 직전 김영준 총장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거다.

‘이용할 수 있겠어.’

이석우 부장검사는 어떻게든 김영준 총장의 눈에 들고 싶어 한다.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는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그 욕망을 이용하면 이석우 부장검사를 조종할 수 있다.

서진이 서랍을 열었다.

많은 휴대폰이 보인다.

그중에 서진이 손에 쥔 휴대폰은 여당 출신 공대출 전 의원과 연락하는 것.

“의원님, 김서진입니다.”

-아, 지금 봤어. 하하하하.

공대출 전 의원의 목소리가 시원했다.

이 사건을 이용하려던 백기호 의원이 역으로 당한 게 기분 좋은 모양이다.

-한동안은 백기호 이름이 언론에 나오지 않을 거야. 모두 이 사건으로 뒤덮겠지.

정치인은 연예인과 비슷하다. 언론에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그 지지율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잠잠해지면, 내 이름이 세상을 뒤덮을 게야. 백기호는 없는 게지.

공대출 전 의원은 스스로 검찰에 오겠다고 했다. 또 한 번 놈들을 역으로 공격하기 위해.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그것?

서진은 공대출 전 의원을 조사하는 그 모든 과정을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넘길 계획이다.

놈은 공대출 전 의원을 조사하는 것이 마지막 날개라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은 지옥.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늪.

‘김영준과 같이 죽여 주마.’

서진은 공대출 전 의원과 계획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마친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머릿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욕망이 권력에 집중된 만큼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진은 그중에 최악의 상황을 뽑았다.

-백기호 의원이 서진을 의심하며 검증하려 할 수 있다.

-김윤환이라는 장기짝이 사라진 김영준 총장이 재정건설을 집어삼키려 할 수 있다.

‘그 전에 우선되는 것은…….’

김영준 총장이 지시한 공대출 전 의원에 대한 결과가 지지부진한 상태.

대선을 앞둔 지금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손을 잡기 위한 촉매제를 찾고 있고 그 제물로 서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검증 과정부터 시작할 거야.’

서진은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의 다음 행동을 확정 지었다.

* * *

“김서진과 이소희를 혼인시키죠.”

그 말이 나온 것은 백기호 의원이었다.

김영준 총장이 술잔을 입에 대며 미간을 찌푸렸다.

“김서진, 그놈 위험해요. 주변을 돌며 훼방을 놓고 있어요. 그럴 바에는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확실한 내 편.”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거겠죠. 원래 동남에 있을 때부터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김영준 총장에게 서진은 조카다. 그 콩깍지가 눈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총장, 나 판사 출신이에요. 지랄맞은 정치 싸움, 가족 싸움, 악랄한 범인. 셀 수 없는 사람을 봤고 사건을 봤죠. 그리고 얻은 것은 하나예요. 사람을 보는 눈.”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 눈이 말하고 있어요. 김서진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죽이기는 아깝죠. 그 능력,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써 준다면 더없이 행복할 테니까.”

“…….”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윤환이가 아니라 김서진을 주세요.”

김영준 총장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입에 대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백기호 의원이 말하지 않았다면 서진과 이소희의 결혼을 김영준 총장이 먼저 거론했을 거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고 이제 서두를 필요는 없어졌다.

언제나 먼저 제안한 자가 약자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은 김영준 총장이 가만히 있는 이유를 다르게 해석했다.

김영준 총장은 단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 말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공대출에 대한 것은 왜 조용하겠습니까? 지시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보고가 안 올라오고 있습니까?”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백기호 의원에게 닿았다.

백기호 의원이 술잔을 채우며 계속 말했다.

“내 말이 억지라고 느끼겠죠. 그런데, 나도 내 눈이 정확한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데, 이 방법을 한번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김서진에게 깡치 하나 던져 주세요. 김서진에게 공대출을 치겠다는 말을 넌지시 던져 보세요. 그리고 지켜보는 거죠. 우리가 생각한 방향대로 움직이는지, 다르게 움직이는지.”

김영준 총장이 껄껄 웃었다.

“서진이가 꿍꿍이가 있다는 겁니까?”

“총장, 그 나잇대 애들은 다 똑같아요. 허상과 같은 정의에 목을 맬 때도 있어요. 확인해 보고 혼내야 할 일이 있으면 혼을 내고 칭찬할 일이 있으면 칭찬하고, 소희와 결혼시켜서 어른이 되게 해 줘야죠.”

백기호 의원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혼사로 묶여야 진정으로 한배에 오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