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다 (5)>
김은범은 마름침을 삼켰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떠벌렸다가 어떤 식으로 죽을지 예상하기도 어렵기 떄문이다.
"됐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대답해 줄 놈들은 많아."
"...?"
서진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장석민의 부하들에게 입을 열었다.
"잡아."
장먹민의 부하들, 그들은 전직 깡패. 해외까지 세력을 넓히던 악랄한 놈들.
그들이 손에 야구 방망이와 각목을 든 채 폐 창고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창고 안에 모여 떠들던 놈들이 할 수있는 것은 없었다.
"뭐, 뭐야?"
"악!"
"때리지 마!"
"씨발!"
"끄아아악!"
드럼통에서 치솟아 오른 불꽃에 놈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처박히는 게 보였다.
도망치려다 잡혀 각목으로 두들겨 맞는 게 선명하게 드러났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김은범에게 틀어졌다.
김은범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
그동안 많은 경찰을 만나 봤지만 이런 식으로 험악하게 일하는 자들은 없었다.
저들은 정말 죽일 듯이 패고 있다.
지금도 비명이 들려온다.
"아아아악!"
서진이 김은범의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놈의 입에 담배를 물린 뒤 친절히 불까지 붙여 주며 입을 열었다.
"저 애들 경찰 아닌 것 알고 있지?"
"검, 검사잖아요. 검사가 이러면 안 되잖아요!"
"넌 사람이잖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몰라? 여자친구를 납치하고, 팔아먹고. 내가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게 몇 년이지만 너 같은 쓰레기는 처음 본다."
"신, 신고할 거에요. 검사가 사람 때렸다고!"
서진이 낄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해 봐. 그런데, 세상이 네 말을 믿을까? 아니면 내 말을 믿을까?"
답은 뻔하다. 여자 친구를 팔아먹은 김은범의 말을 믿어 줄 사람은 없다.
김은범이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순간 창고 안이 적막해졌다.
상황이 정리된 거다.
장석민의 부하들이 사내들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왔다.
김은범의 눈동자가 기겁으로 물들어 갈 때, 서진은 몸을 틀었다.
그리고 상황이 정리된 창고로 향했다.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굴러다니는 소주병이 보인다.
낄낄대며 웃고 떠들었던 모습이 서진의 눈가에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다.
서진은 담배꽁초를 짓밟으며 사무실로 이용되던 공간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을 살피자 여자가 쓰러져 있다.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 얼굴을 살폈다.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입술은 터져 있고 고통스러운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다.
하지만 약에 취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뒤척이기만 한다.
'다행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성퐁력은 당하지 않은 것 같다.
옷이 구려졌고 먼지에 뒤덮여 있찌만 블라우스의 단추는 멀쩡하다.
실종자를 살피던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창고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잡혀 나온 사내들의 앞에 섰다.
'하.....'
그들의 어굴을 보자 절로 한숨이 흘렀다.
잡혀 나온 놈들의 얼굴이 모두 앳되다.
많아 봤자 이십 대 중반, 놈들이 앳된 얼굴로 발발 떨고 있다.
"저,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앞으로는....."
"진경식. 맞지? 중학교 때 친구를 괴롭혀서 자살로 몰아갔던 놈."
"...네?"
놈이 눈을 깜빡였다.
서진이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서진의 시선이 옆으로 틀어졌다.
"김동만도 있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옆 테이블의 사람들을 폭행, 감금."
"......!"
"아이고, 박중현. 고등학교 때부터 원조교제 포주 노릇을 하더니, 이제는 인신매매야?"
모두 김은범과 같은 소년원에 있던 놈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엄벌을 받지 않고 나온 자들.
그래서 법을 우습게 아는 새끼들.
"그런데, 어쩌나? 너희 이제 성인인데."
".....!"
"형법 제289조에 이런 말이 있어. 노동력 착취, 성매매, 장기 적출을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그런데,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해. 납치를 했는데, 조용히 판 게 아니라 때리거나 죽였어. 그럼, 25년 이하의 징역이야."
".....!"
"마흔 이후에 바깥 공기 마시게 해 줄게. 그리고 가능하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해 줄게."
놈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십 대 초반에게 마흔 살이란 숫자는 크게 다가온다.
자신이 마흔이 될 것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기징역을 노린다니.
놈들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잔인하게 이어졌다.
"그것만은 약속할게."
"안 때렸어요! 안 죽였어요! 앞으로 잘할게요! 정말 착하게 살게요!"
놈들의 목소리가 간절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진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미안, 난 사람은 안 변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럼 딱 한 놈만 봐준다. 먼저 부는 놈. 먼저 자백하는 놈."
물론 안 봐줄 거다.
하지만 놈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김은범의 여자 친구 한 명 납치한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 하지만 놈들의 입방정으로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 * *
"씨발!"
다음 날, 중앙지검.
이석우 부장검사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김서진 이 새끼는?"
그 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검사가 쪼르르 달려와 옆에 섰다. 이어서 허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아직 출근 안 했다고 합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다.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출근을 안 했다니.
"미친 새끼, 출근하면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서진이 오면 온갖 트집을 잡을 계획이다.
어젯밤, 포천까지 달려가 달밤에 똥개 훈련을 한 것을 생각하면 찢어 죽여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석우 부장검사의 신경이 날카로운 이유는 또 있다.
오늘 오후 1시에 계획된 브리핑.
여대생 실종 사건을 공론화 시키며 헛물 켠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젠장'
전 국민 앞에 욕받이가 되는 거다.
'하, 돌아 버리겠네.'
문제는 이석우 부장검사도 지금 이 사건의 실체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정말 범인이 존재 하는 것인지.
여대생들이 집단으로 가출 한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
이석우 부장검사를 제외한 연쇄 실종 사건 특별 팀, 그들은 야외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늘 브리핑 있잖아, 김영준 총장이 범인 잡을 줄 알고 기자들 불러 놓은 거래. 잔칫집인 줄 알았는데, 초상집 된 거지."
"미치겠네. 어제 그 뻘짓 김서진 짓이라며?"
"그 새끼 원래 그래. 탐정 놀이 한다고 여기 쑤시고 저기 쑤시고. 그 새끼 떄문에 몇 명이 고생하는 거냐? 그럴 거면 검사 때려치우고 경찰이나 하던가."
그들의 옆으로 장지혁 검사가 섰다.
담배를 입에 문 장지혁 검사가 그들을 슬쩍 보며 입을 열었다.
"서진이가 업무에 지장 준 것도 아니고 자기 업무도 밤새서 다 하는 놈인데, 오히려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 줘야 하지 않아요?
"뭐?"
"그렇잖아요? 후배 검사 뒷말을 왜 흡연실에서 하고 계실까?"
"이 새끼가!"
검사들이 죽일 듯이 장지혁 검사를 노려봤다.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죽거린다.
"아이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마음에 안 들면 때려요. 어차피 유배 갈 거, 손잡고 같이 가면 좋겠네. 가서 낚시도 하고 회도 먹고. 아, 회는 제가 사겠습니다."
장지혁 검사는 김윤환을 옭아매고 있다.
유배는 거의 확정된 분위기.
인상을 구기던 검사들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던지며 그 옆을 스쳤다.
"새끼야, 얌전히 있다 가라."
"에이, 얌전히 있을 수는 없죠. 어차피 떠날 거, 폭탄 한번 터뜨릴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장지혁 검사의 눈빛이 돌변했다. 선배 검사들을 잡아먹을 것처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조심해. 포탄 파편에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
검사들이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라는 말을 내뱉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장지혁 검사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뱉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서진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이 중앙지검에 쫙 퍼져 있다.
평소 지각 한 번 하지 않던 서진이기에 장지혁 검사의 눈은 걱정으로 물들었다.
*
오후 12시 50분.
이석우 부장검사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이제 기자들 앞에 설 시간.
이석우 부장검사의 입에서는 연신 욕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때, 한 검사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부장검사님, 시간 됐습니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테이블에 놓인 수사 결과 발표문을 구겨질 정도로 움켜쥔 후 몸을 틀었다.
"가자, 가서 망신 한번 당해 보자."
막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지이이잉'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김영준 총장이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총장님!"
-내 마음대로 기자들을 불러 놓은 게 미안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봤어. 어떻게 하면 우리 이 부장검사가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데, 방법이 있더라고.
수화기 너머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들려왔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 사건을 최대한 심각하게 알려. 검찰이 헛물 켠 게 아니라 그만큼 위험한 놈이 설치고 있다고 전해.
".....!"
연쇄 살인범이 누비면, 사람들은 수사기관을 욕하지 않는다.
공포에 짓눌린 채, 범인이 잡히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럼 되는 거야.
이석우 부장검의 눈이 반짝였다.
탈출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총장의 라인에 한 걸음 다가선 것처럼 여겨졌다.
"감사합니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힘차게 말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손에 쥐었던 발표문을 다시 테이블에 강하게 내던지며 입을 열었다.
"야, 펜 하나 가져와 봐."
발표문을 고칠 생각, 범인을 최대한 악랄하게 만들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할 계획이다."
*
"최근 전국 각지에서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브리핑실.
기자들의 앞에 선 이석우 부장검사는 '대학생'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20대 여성'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했고 '실종'이라는 말 대신 '인신매매'를 선택했다.
그게 더 파격적이고 효과적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종 사건과 무관한 사건을 끌고 와 MSG를 뿌렸다.
"며칠 전, 제주에서 발견된....."
제주의 한 앞바다에서 떠오른 시신이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밝혀졌고 이 사건과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석우 부장검사는 그 사건을 연관시키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검찰은 모든 수사 인력을 동원하여 하루 빨리 범인을 체포하고....."
십여 분간 이어진 브리핑, 기자들은 긴장된 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던 이석우 부장검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어."
이제 욕받이 탈출이다.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숙제가 있지만 상관은 없다.
'범인을 잡는 것은 경찰이 할 일이지.'
적당히 경찰의 무능을 비난하면 된다.
그럼, 욕먹는 것은 경찰.
이석우 부장검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떡이나 받아 먹을 생각이다.
"질문 받겠습니다."
기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번쩍 번쩍 손을 들었다.
* * *
"아, 올리라고 해."
백기호 의원이 기분 좋게 웃으며 보좌관에게 지시했다.
검찰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백기호 의원이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내용의 기사가 삽시간에 포털 사이트를 채울 거다.
여성들이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 대통령은 잠이 오냐는 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CCTV의 대수를 배로 늘려서라도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만들겠다는의지.
"기사 올라갔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보고를 들으며 백기호 의원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실종 사건이 있었던 곳이 어디라고? 기자들 대동해서 현장 한번 돌고 와야지. 준비해."
백기호 의원이 재킷을 손에 들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 이석우 부장검사가 보인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저 친구 승진시켜 줘야겠어."
그런데 화면 속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을 때, 누군가가 서둘러 올라가더니 이석우 부장검사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이석우 부장검사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버, 범인 일당이..... 잡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