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다 (4)>
중앙지검, 연쇄 실종 사건 특별수사 팀.
이석우 부장검사는 상석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대생을 특정해서 벌어지는 사건이야. 실종 신고가 들어온 각 지역 경찰에 협조 요청하고 수사 기록 넘기라고 해. 다른 지역에도 공문 보내서 여대생 실종 신고 들어오면 바로 보고하라 하고.”
이석우 부장검사는 지방까지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현장은 경찰이 도는 것, 이석우 부장검사는 경찰이 수사 기록을 보고받고 지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면 우리도 총장의 라인으로 올라설 수 있어!”
이석우 부장검사는 손바닥으로 인생을 살아온 자, 이 사건을 해결하면 인생의 날개를 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석우 부장검사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을 울렸다.
발신 번호는 오늘 낮에 파출소의 경장.
이석우 부장검사가 낄낄 웃었다.
“열심히 하네.”
그리고 휴대폰을 귀에 대며 방금 비웃던 목소리는 지운 채 최대한 점잖은 척 입을 열었다.
“아, 네. 말씀하세요.”
-김서진 검사가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네?”
예상하지 못한 말이다.
서진이 어떤 짓을 하는지 보고할 줄 알았는데, 벌써 용의자를 특정했다니.
-경기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알겠습니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휴대폰을 내려 두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검사들을 향해 지시했다.
“경기도로 이동할 거야. 수사관들 준비하라 해!”
이석우 부장검사는 재킷을 몸에 걸치며 미소를 그렸다.
* * *
그 시각, 서진은 차를 운전하며 장석민과 통화하고 있었다.
-시흥 지나고 있대요.
실종자의 전 남자 친구 김은범은 외곽을 타고 시흥을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정확한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그대로 쭉 가면 인천.
실종자를 납치한 것으로 추측되는 승합차의 목적지와 같다.
“계속 쫓으라고 해. 연락 주고.”
-넵!
“아, 그리고 부탁할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이쪽으로 사람 좀 보내 줘.”
예상대로라면 놈들은 승합차를 이용해 사람을 납치한다.
그런 놈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수사기관이라 해도 겁을 먹지 않을 거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일에 경찰의 협조를 구할 수는 없다.
지금은 장석민을 활용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장석민의 시원한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슬쩍 웃었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다.
김영준 총장은 이 사건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다.
경장과 마찬가지로 단순 가출 정도로 생각한다.
심지어 이석우 부장검사 같은 사람을 팀장으로 두며 해결할 의지도 없다.
‘김영준 총장이 노리는 것은…….’
사건을 공론화시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정부 여당의 지지율을 깎아 내리는 것.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면 김영준 총장 자신의 지지율을 드높일 수 있겠지만, 그는 조금 더 먼 곳을 보고 있다.
백기호 의원을 당선시킨 후 그 뒤에 정점에 오를 계획.
‘그런데…….’
이석우 부장검사가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연락을 하면 김영준 총장은 난처해할 거다.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 * *
잠시 후 서진이 도착한 곳은 인천의 한 부두에 도착했다.
-거기서 놓쳤대요.
신호 등에 의해 차를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결국 장석민의 부하는 김은범의 뒤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고생했다고 전해 줘. 애들은 언제쯤 도착할까?”
-말씀 듣고 바로 보냈으니까 20분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요?
서진은 통화를 종료한 후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지도를 살폈다.
사람을 숨겨 둘 만한 곳.
또는 극악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곳.
‘폐 공장, 폐 창고…….’
주변에 문 닫은 공장과 창고가 꽤 된다.
더욱이 야간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서진은 계속해서 상황을 떠올렸다.
사람을 납치하는 자들, 그 행위에는 끔찍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납치를 할 뿐이다. 사람을 돈 주고 사는 놈들이 존재할 게 분명하다.
‘이곳에서도 더 안전할 곳. 그러면서 거래를 할 수 있을 만한 공터가 있는 곳.’
서진은 지도를 보며 자신이 범인이었다면 어떤 곳을 거점으로 사용했을지 생각했다.
‘입구는 아니야. 하지만 너무 떨어져 있어서도 안 돼.’
서진의 시선이 지도의 한 부근에서 멎었다.
‘여기.’
서진은 차에서 내린 후 김은범의 차량 번호를 떠올리며 공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잘못된 정보였다고 하네요…….”
경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이석우 부장검사를 보고 있었다.
경기도 양주였다.
논밭이 가득한 그곳에 수십 명의 수사관을 태운 검찰 승합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이석우 부장검사가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서, 김서진은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하…….”
이석우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달밤에 이곳까지 출동한 수사관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김영준 총장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그게 문제였다.
이미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보고했고 곧 잡아 오겠다고 떠들었다.
그 설레발이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보고는 해야 한다.
이석우 부장검사가 몸을 틀어 경장의 곁에서 떠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초, 총장님…….”
-잡았나?
“그, 그게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이석우 부장검사는 벼락같은 호통을 예상했다.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의외로 다정하다.
-어디서 들은 정보야?
이석우 부장검사는 서진의 이름을 꺼낼 수 없었다.
서진이 관여했다는 게 김영준 총장의 귀에 들어가면, 이 팀에 서진이 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럼, 공을 나눠야 한다. 어쩌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서진에게 빼앗겨 버릴 수도 있다.
“경찰에게 들었습니다.”
-괜찮아. 수사를 하다보면 헛다리도 짚고 그러는 게지.
“죄송합니다.”
-아니야. 정말 괜찮아. 그런데…… 이거 나도 미안해서 어쩌지?
“네?”
-브리핑 한번 해야 할 거야.
김영준 총장은 이석우 부장검사가 범인을 잡지 못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허탕만 치고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언론을 끌어모았다.
중앙지검의 이석우 부장검사가 여대생 실종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할 거라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함이다.
* * *
폐 창고.
드럼통에서 모닥불이 타오른다.
흔들리는 불꽃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험상궂게 생긴 아홉 명의 사내들, 그들이 드럼통 주변에 의자를 놓고 빙 둘러 모여 앉았다.
잿빛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한 사내가 김은범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냐? 거래는 안 따라온다고 하더니.”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요.”
그 말에 사내들이 낄낄 거린다.
“이 새끼, 사랑했네. 사랑했어.”
사내들의 놀림을 받으며 김은범의 시선이 한쪽으로 틀어졌다.
창고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무렵에는 사무실로 사용하던 곳.
그곳에 자신의 전 여자 친구가 약에 취해 쓰러져 있다.
김은범은 쓰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여자 친구의 헤어지자던 말, 그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몇 번이나 엉겨 붙었다.
그리고 그날, 김은범은 집에 간다는 여자 친구의 뒤를 쫓았다.
손목을 잡고 골목으로 끌었다.
“사랑한다고!”
“그만해! 난 너 같은 양아치와 만나고 싶지 않아. 따라오지 마. 신고할 거야.”
“씨발!”
김은범은 여자 친구의 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며 비명처럼 외쳤다.
“죽여 버린다, 진짜!”
살벌한 눈빛에도 여자 친구는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악을 쓰고 덤볐다.
“미친 새끼야, 죽여 봐! 죽여 보라고!”
짧은 기억을 마친 김은범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사랑했다.”
그리고 담뱃재를 툭툭 털며 사내들에게 시선을 틀었다.
김은범의 얼굴에 아쉬움은 사라졌다. 지금은 오로지 돈만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 리스비, 가을을 맞이하며 새로 사야 할 옷.
여자 친구는 새로 사귀면 된다.
“그런데, 얼마쯤 받을까요?”
“우리가 아냐? 가격은 그쪽이 정하는 거지. 반반하게 생겼으니까 통나무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한 3천?”
“3천…….”
“이번에는 네 역할이 컸으니까 많이 떼어 줄게.”
“감사합니다.”
김은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홉 명이서 나눠야 할 몫을 생각했다.
‘얼마 안 되네…….’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던 김은범이 담배를 비벼 끄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검찰이 찾아왔거든요.”
검찰이라는 말에 사내들의 눈이 커졌다.
“……검찰? 경찰이 아니라 검찰?”
“네.”
“왜? 이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것저것 간단히 묻고 떠나기는 했는데…… 그 검사가 유명한 사람이에요.”
“누군데?”
김은범이 휴대폰을 꺼내 서진을 검색한 후 사내들에게 보였다.
사내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구지?”
사내들은 뉴스를 안 보고 사는 사람들, 서진의 얼굴을 모른다.
시사 상식이 부족한 사내들을 보며 김은범이 픽 웃었다.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꼬리를 밟힌 것 같아?”
“아뇨. 제가 그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죠.”
김은범은 사내들에게 서진을 만났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 앞에서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을 피력하며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 자랑을 이어 갔다.
그 말이 끝날 때마다 사내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즐거워한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한참 이야기를 끌어 가던 김은범이 몸을 일으켜 창고 밖으로 향했다.
‘끼이이익.’ 하는 음산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김은범이 소변을 누기 위해 공터의 끝자락으로 걸었다.
관리가 되지 않은 공터엔 잡초가 가득하다.
걸을 때마다 풀 밟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려온다.
어둠 속에 멈춰 선 김은범이 벨트를 풀어 헤칠 때다.
“헤이.”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김은범의 눈이 부릅떠졌다.
“소리치지 마. 네 목뼈가 살갗을 찢고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도 있으니까.”
섬뜩한 손길이 김은범의 목에 닿았다. 방금 한 말처럼 입을 뻥끗거리는 순간 목을 꺾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김은범이 눈동자만 틀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서진이 서 있었다.
김은범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 여기는…….”
“어떻게 왔냐고? 네 차 저기 주차되어 있잖아.”
“저, 저는 친구 만나러 왔어요.”
“좋은 친구 둬서 좋겠네.”
“정말이에요.”
“다 알고 왔으니까 변명은 됐고.”
“거, 검사님…….”
“됐고. 안에 몇 명 있어?”
김은범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진은 모든 것을 알고 온 것만 같다.
그리고 풀숲에 다른 그림자가 가득하다. 대충 훑어봐도 스무 명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겨, 경찰?’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이는 덩치가 예사롭지 않다.
손에 몽둥이까지 들고 있다.
분명 강력계다.
김은범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몇 명 있냐고 물었는데.”
“저까지 아홉 명 있어요.”
김은범의 판단은 빨랐다.
수사기관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것 같다.
빠르게 정보를 알려 주고 조금이라도 선처를 받는 게 유리한 거다.
그리고 서진은 김은범의 얍삽함을 느꼈다. 이런 놈을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묻자, 너희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게 누구지?”
“……네?”
“누가 인신매매 같은 것을 시키는 거지?”
“그, 그게…….”
서진은 김은범과 같은 심부름꾼에서 끝낼 생각이 없다.
그 위에서 사람을 유통하는 쓰레기들.
놈들까지 찢어 버릴 생각이다.
김은범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죄송해요. 저 진짜 죽어요.”
전 여자 친구를 팔아먹으려던 놈이 제 목숨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간절한 표정을 보던 서진이 서늘하게 웃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전부 말해. 그리고 교도소로 들어가. 그럼, 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