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02화 (202/250)

<날개를 달다 (1)>

김영준 총장 그리고 백기호 의원을 잡고 싶다는 말.

그들에게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그들의 비리를 모아 넘겨주겠다는 제안.

공대출 전 의원은 말없이 막걸리를 비웠다. 그리고 천천히 서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뒷방 늙은이로 살려 했는데, 안 되겠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겠어.”

서진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말.

공대출 전 의원이 잔에 막걸리를 채우며 계속 말했다.

“김영준이가 내 목에 채울 개목걸이가 대출을 받았던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게 있는 가?”

“그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조만간 날 소환해. 날짜는 내가 일러두지.”

“……!”

서진이 눈을 크게 뜨며 공대출 전 의원을 바라봤다.

잡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공대출 전 의원은 스스로 검찰에 오겠다고 한다.

“그게 무슨…….”

공대출 전 의원이 막걸리 잔을 손에 쥐며 말했다.

“날 잡아가야 김영준이 자네를 의심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때였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법 대출을 받았던 것, 5년도 더 전에 했던 더러운 짓이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그 죗값은 치러야 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통령의 비서실장.

느닷없이 나타난 비서실장이 공대출 전 의원의 옆에 태연하게 다가와 앉고 있었다.

그가 서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비서실장 최서우라고 합니다.”

“……!”

서진의 시선이 공대출 전 의원에게 향했다. 공대출 전 의원은 비서실장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끌끌 웃으며 농담을 던지고 있다.

“예끼, 이 사람아. 늙은이 감옥에 넣어서 뭐 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이성윤 원내 대표가 말하던데요?”

“그 인간…….”

공대출 전 의원이 혀를 끌끌 차며 막걸리 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빈 잔에 막걸리를 채워 비서실장의 옆에 두며 말을 이었다.

“멍청하게 끌려가지는 않을 게야. 대선은 혼란, 그 혼란에 불씨를 던지는 게 뒷방 늙은이가 할 일이지.”

김영준 총장은 공대출 전 의원을 망신 주면서 여당의 지지율을 꺾을 생각이다.

하지만 공대출 전 의원은 정치판에서 오랜 시간 굴러먹은 이무기, 상대의 계략을 알게 된 이상 호락호락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비서실장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서진을 만나기 전에 청와대와 긴밀한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

공대출 전 의원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고 소환하게.”

“알겠습니다.”

서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공대출 의원이 파전을 죽 찢어 서진의 앞 접시에 올렸고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비서실장이 휴대폰을 꺼내 서진에게 건넸다.

화면에는 최근 연이어 터지는 실종 사건이 보였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타깃, 전국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사건.

경찰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도시 괴담의 전설만 이어지는 중이다.

“검찰이 사건을 해결하고 사법부에서 엄벌을 내리면,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마련이죠.”

“……!”

“김서진 검사에 대해 조금 알아봤어요. 미제 전문이라죠? 동남군부터 춘천의 아궁이 사건까지. 이 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대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은 빅 쇼를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면, 언론의 포커스가 틀어진다.

백기호 의원의 이름은 언론에서 사라지고 포털 사이트의 메인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장식될 거다.

그리고 대통령의 립 서비스 ‘엄벌을 처해라.’라는 목소리가 세상을 울리면 여당에 힘이 실린다.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공대출 전 의원과 비서실장.

이들의 손을 잡으면 어깨에 날개가 달리는 것은 분명한 일.

서진이 목표로 한 모든 것을 손에 얻는 그 순간이 훅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 되는 게 있다.

“그런데, 저를 믿습니까?”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조카, 겉모습만 놓고 보면 한배를 탄 사람.

그런 서진을 어떻게 믿고 이런 식으로 권유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비서실장이 묘하게 웃었다.

“말씀드렸는데요. 김서진 검사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고. 십여 년 전, 김영준 총장이 아버지 회사를 압수수색 했었죠?”

“……!”

“김영준 총장의 아내가 차명을 이용해 그 회사의 주식을 알음알음 모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억지로 김영준 총장의 아들을 그 회사에 집어넣었고요. 제가 김서진 검사라면, 김영준 총장이 좋아 보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틀렸나요?”

작은어머니의 차명까지 들여다보다니, 청와대의 소식통 역시 만만치 않다.

비서실장이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은 다음 대권을 누가 잡든 상관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백기호는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당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은 제 이득에만 관심 있는 사람, 거짓말이 입에 붙은 사람, 그런 사람이니까요.”

“…….”

“일단은 백기호의 지지율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보내야 하죠. 비리를 터뜨리고 네거티브로 가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래서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이 사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서진은 말없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비서실장과 공대출 전 의원이 활짝 웃으며 서진의 술잔에 잔을 부딪쳤다.

비서실장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럼, 김서진 검사만 믿고 있겠습니다.”

* * *

“그러니까, 어제 외박을 했다고요?”

“외박이 아니라 실종이라고요!”

서울의 한 파출소.

경찰이 심드렁한 태도로 앞을 보고 있었다.

다급한 표정의 중년 남자.

딸이 대학에 입학했는데, 친구들과 과제를 하겠다고 나선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젯밤부터 전화도 안 돼요!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9시쯤 집에 갔다고 하는데…….”

“남자 친구는요?”

“……네?”

“남자 친구 없어요?”

중년 남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딸이 사라졌는데 남자 친구를 묻고 있다니.

“이봐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소장이 다가와 말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일단 이쪽으로 와서 차분히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따님이 어제 과제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요?”

“네.”

“따님 전화 번호 말씀해 주시면 통신사에 연락해서 위치 한번 찾아볼게요. 그리고…… 따님이 친구들과 과제하러 간 곳이 어디죠?”

“성남이라고 들었어요.”

소장이 볼펜을 들고 중년 남자의 말을 차분히 적어 내려갔다.

“평소에 늦게 다닌 적은 없고요?”

“없어요. 항상 10시 전에는 들어왔어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조사해 볼 테니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마음 편히 있으시고요.”

중년 남자는 입술을 씹었다.

딸이 사라졌는데 마음 편히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중년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장의 말대로 집에 가서 기다리는 게 전부다.

“……알겠습니다.”

중년 남자가 파출소를 떠났다.

그러자 소장이 적었던 종이를 경찰에게 건네며 미간을 찌푸렸다.

“민원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딴 식으로 대응해? 미쳤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할까요?”

“통신사에나 연락해 봐. 술 처먹고 모텔에서 쓰러져 자고 있을 거야.”

실종된 곳의 CCTV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찾아온 딸의 아비를 욕하고 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번에도 실종 신고 들어왔었는데요.”

젊은 경찰이 입을 열었지만 소장은 오히려 그를 타박했다.

“외박한 거 가지고 일일이 확인하면 치안은 누가 담당해? 어? 요즘 애들 몰라?”

“두 달 동안 실종 신고가 벌써 세 건인데요…….”

“그중에 하나는 술 먹고 뻗어 있던 거 찾았잖아? 이번에도 똑같아. 가출 아니면 술이야.”

“그래도 평소에 10시면 집에 들어온다는 애가…….”

젊은 경찰은 뭔가 꺼림칙한 마음에 소장이 적은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모습에 소장이 분노를 내뱉었다.

“됐다고! 이런 일로 찾아온 사람 일일이 대응하지 마.”

그때, 문이 열리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언제 찾아와야 해요?”

경찰들의 시선이 홱홱 틀어졌다.

나타난 사람은 서진이었다.

방금 나간 중년 남자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서진의 얼굴을 알아본 소장과 경찰들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서진은 종로 경찰서 서장을 잡은 사람.

경찰의 원수.

지금 한 말을 들었다면, 돌아온 중년 남자가 비난적인 말을 내뱉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 그게…….”

소장이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서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그들의 앞에 섰다.

“물어봤는데요. 그럼, 경찰을 언제 찾아야 하냐고요?”

“……네?”

그 일 하라고 세금 내는 것이며, 그 일 하라고 월급 받는 거다.

하지만 경찰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지독한 업무에 시달린다.

사사로운 민원, 주요 사건으로 생각해 출동하면 어처구니없는 일, 게다가 밤이 되면 술에 취한 사람들까지.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젊은 경찰을 바라봤다.

“이곳에 실종 신고가 자주 들어온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거…… 주시겠어요?”

“아, 네.”

젊은 경찰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다급히 넘겼다.

서진이 물끄러미 서류를 바라봤다.

“최근 실종 신고 들어온 것 전부 주세요. 그리고 선생님은…….”

서진이 중년 남자를 경찰서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질문을 이어갔다.

“알고 있는 친구 전화번호가 있다면, 그것도 주시겠어요?”

중년 남자가 다급히 번호를 적었고 서진이 그 번호를 젊은 경찰에게 건넸다.

“이 사람에게 전화해서,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 파악해 주세요.”

“아, 네.”

“그리고 그 부근 CCTV 위치 전부 확인해 주시고요. 통신사 연락해서 위치 파악도 해 주세요.”

사건은 초동 조치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곳에는 CCTV가 존재하며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달려 있다.

발 빠르게 움직이면 제아무리 치밀한 범죄자라 해도 잡힐 수밖에 없다.

서진의 시선이 소장에게 틀어졌다.

소장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어린 검사가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서진이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켜 소장의 가까이 다가갔다.

경찰의 도움 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

게다가 이번 사건은 김영준 총장이 알 수 없도록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즉, 이 경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앞에 선 서진이 소장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소장님, 제가 여기까지 왜 왔겠어요?”

“네?”

검사가 파출소까지 와서 설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이거…… 윗선의 지시예요.”

“위, 윗선요?”

“검찰이 아니라 그 위…….”

소장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순경으로 시작해 소장이 된 인물, 진급은 포기한 채 워라벨을 추구하며 진급을 포기하고 인생을 달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회가 온 것 같다.

“성공하면 특진이에요.”

“……!”

서진은 소장의 눈가를 스치는 욕망을 봤다.

그럼, 이제는 일을 해야 할 때다.

서진이 중년 남자의 앞에 마주 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따님, 꼭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가 계시고요. 혹시라도 돌아오면 연락 주세요.”

서진의 목소리에는 신뢰가 담겨 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중년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일으켰고 파출소를 떠났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은 관할 지도로 이동했다.

이 지역에서 사건이 벌어진 곳,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곳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여기요.”

젊은 경찰이 지도를 프린트해서 다가왔다.

친구들과 헤어진 곳 그리고 통신사에 연락해 찾은 마지막 위치.

두 곳의 거리는 불과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통신사의 위치 추적이 끊긴 것도 친구들이 헤어졌다고 주장한 시간과 거의 동일하다.

즉, 친구들과 헤어진 그 짧은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

서진이 몸을 틀었다.

“가 보죠.”

“네?”

이번엔 젊은 경찰이 당황했다.

검사가 사건 현장을 찾으러 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눈으로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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