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00화 (200/250)

<발버둥을 쳐도 (2)>

김영준 총장이 휴대폰을 들어 귀에 댔다.

-초, 총장님!

이어지는 중앙지검 검사장의 보고에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이어서 눈빛이 도깨비처럼 변한다. 그 시선이 김윤환을 노려본다.

“저, 저기…….”

김윤환은 하려던 말을 삼키며 공포에 질린 얼굴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김영준 총장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마약?”

“그, 그게 아니라요.”

“마약을 손에 대?”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김영준 총장이 재떨이를 꽉 쥐었다. 그 손이 파르르 떨렸다.

“멍청한 새끼!”

김영준 총장이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재떨이가 벽에 맞고 떨어진다.

그 순간, 김윤환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서진에게 떠들었던 말이 스쳤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하라 해. 감정적으로 나섰다가 다 잃을 수도 있잖아. 지금은 친부모가 누구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돈 많은 부모가 중요한 거야.

지금 김윤환은 마약 소지라는 함정에 빠진 상태.

친부모가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

앞에 선 김영준 총장에게 권력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검찰에 끌려가 굴욕을 당하느니 김영준 총장에게 처맞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영준 총장이 시계를 풀며 다가오자 김윤환은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쩍!

* * *

“뺏겼다.”

다음 날, 장지혁 검사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뺏겼다고!”

김윤환의 마약 소지, 그 사건이 형사부에서 반부패수사제1부로 넘어갔다.

장지혁 검사가 닭 쫓던 개의 심정으로 툴툴거렸고 서진이 그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 그래요?”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장지혁 검사의 시선이 서진을 향해 홱 돌아갔다.

“너 예상했지? 김윤환…… 내가 잡을 수 없다는 거. 김영준 총장 백으로 흐지부지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

“조금은요. 꾸중 정도 듣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오!”

장지혁 검사가 가슴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나도 예상했거든? 예상은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그런데 예상대로 되니까 기분이 참…… 더럽네.”

“그럼, 기분 좋게 만들어 드릴까요?”

“……어?”

그런데 서진의 표정이 씁쓸하다.

장지혁 검사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뭔데?”

“그런데, 진짜 유배 갈 수도 있어요.”

“유배 간다고 월급 깎나? 아니잖아? 그리고 유배가 아니라 옷을 벗어도 괜찮아. 김윤환 그 새끼는 반드시 교도소로 보내고 만다. 그러니까 말해 봐.”

장지혁 검사의 눈빛은 어떻게든 김윤환을 잡아 처넣을 생각으로 가득하다.

서진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전, 자신의 눈을 보는 것만 같다.

상대가 누구라도 일단 달려들던 그 때.

서진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장지혁 검사에게 건넸다.

깡패 출신 장석민에게 받은 것.

김윤환이 그동안 해 왔던 쓰레기 같은 짓.

장석민은 김윤환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모아 놨던 자료다.

장지혁 검사가 재빨리 서류를 받아 착착 넘겼다. 그 눈이 부릅떠진다.

“……이, 이거 진짜야?”

“해외 성매매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깡패들에게 정기적으로 성 상납을 받았네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 미친 새끼. 발정이 나도 그렇지…….”

“그 연예 기획사의 대표 김현봉이 김윤환을 VVIP로 모셨대요.”

“김현봉? 그런데, 지금까지 왜 조용했어?”

김현봉은 김윤환이 미국에서 돌아온 것을 모른다.

그리고 밖에 있는 장석민이 김윤환을 통해 형량을 감형에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장지혁 검사가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이내 폭소를 이어 갔다.

“푸하하하!”

그런데 입꼬리는 웃고 있지만 눈빛은 서늘하다.

당장이라도 김윤환의 얼굴을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참을 웃던 장지혁 검사가 웃음을 뚝 그치며 서진을 바라봤다.

“넌 진짜 나쁜 놈이야.”

“네? 김윤환이 아니라 제가요?”

“그래, 나쁜 놈이라고.”

“전 제가 착한 사람이라고…….”

“이런 거 있으면 간 보지 말고 바로 주는 거야. 그게 착한 사람. 오케이?”

장지혁 검사가 낄낄 웃으며 서류를 챙기는 사이 서진의 시선이 건물로 옮겨졌다.

멀리 김윤환이 보인다.

소변 검사를 받고 나오는 길이다.

선글라스에 마스크, 자기가 연예인이라도 된 줄 아는 것 같다.

“장지혁 검사님, 저기 나오네요.”

“땡큐. 동남군으로 유배 가면 놀러 와. 내가 회 사 줄게.”

장지혁 검사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벅저벅 김윤환을 향해 다가갔다.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점차 바뀐다.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괴물과 같다.

“어이.”

김윤환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틀었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장지혁 검사가 보인다.

김윤환이 한숨을 내뱉으며 걸음을 멈춰 서자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코앞에 섰다.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맞았나 봐?”

선글라스와 마스크,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시커멓게 번진 멍.

밤사이 참혹한 일이 있던 게 분명하다.

김윤환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내 담당 검사 아닌 것 같은데, 인사 다 했으면 그만 가라. 말 섞기 싫으니까.”

“백이 좋긴 좋아. 이제 떡하니 나온 마약이 있는데, 증거 불충분으로 끝나려나? 너한테는 해피엔딩이네?”

“백 없으면 모르는 세상이지. 왜 부러워?”

“엄청 부럽네. 능력 없는 놈이 아빠 힘으로 검사되고 범죄를 저질러도 풀려나고. 와, 나도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네 부모를 탓해 새끼야.”

부모를 언급하자 장지혁 검사의 눈이 사납게 돌변했다.

하지만 김윤환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장지혁 검사야. 내가 검사 짓 몇 년 하면서 배운 게 있는데, 하나 알려 줄까? 공권력으로 권력을 이길 수 없어. 지금 내가 한 말, 머릿속에 새겨 넣어라. 검사 생활 오래 해서 연금 받고 싶으면.”

“…….”

“그리고 넥타이 잘 매고 다녀. 이게 뭐냐?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품위 없어 보이잖아. 다른 검사들이 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지? 제발, 쪽팔리지 말자. 어?”

김윤환이 하대하듯 말하며 장지혁 검사의 팔을 툭툭 두들겼다.

그리고 그 옆을 스쳐 지나려 했다.

그런데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어딜 가?”

김윤환이 자신의 손목을 봤다가 장지혁 검사를 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왜? 할 말이 더 있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어? 넌 날 못 잡아. 부장검사실에 끌려가서 혼나…….”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검사 짓 하면서 배운 게 있어. 그걸 말해 주고 싶은데, 잘 들어.”

장지혁 검사가 상체를 구부리며 김윤환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계속 말했다.

“권력자를 잡을 때는 가족부터 끌고 오더라. 마누라, 자식새끼, 그 비리부터 털더라. 못 알아들어? 시작은 너라고.”

“이런 미친 새끼가…….”

김윤환이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인상을 쓸 때였다.

장지혁 검사가 들고 있던 서류를 김윤환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팍!’ 소리와 함께 수많은 서류가 땅바닥으로 쏟아진다.

김윤환의 얼굴이 분노로 휩싸일 때, 장지혁 검사의 말이 이어졌다.

“김윤환 씨, 검사 생활할 때 깡패한데 성 상납을 받았네? 그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고. 그 깡패 새끼가 김현봉, 여기 잡혀 왔는데 우리 대면 한번 해야지?”

“뭐, 뭐라는 거야!”

“긴급체포 한다고.”

“미친!”

“48시간 안에 영장 받고 네 이름 전 국민에게 알려 줄게. 범죄자 새끼한테,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르쳐 줄게. 그러니까 집에 갈 생각 말고 얌전히 가자.”

장지혁 검사가 땅에 쏟아진 서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윤환의 눈동자가 서류를 다급히 훑는다.

명확한 증거.

김윤환의 얼굴이 쩍 갈라졌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 *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팔을 끌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

야외 휴게실에 앉아 조용히 보고 있던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커피를 입에 댔다.

‘김영준은 저것도 막으려 할 거야.’

하지만 상관없다.

김윤환의 죄는 양파를 까듯 끊임없이 나올 거다.

서진이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콩가루 집안에 콩가루가 뿌려지는 시기.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주소록에서 멈춘 연락처는 이소희.

-말해.

“파혼 축하해.”

-뭐래…….

“축하한다고. 네 전 약혼남, 지금 긴급체포 됐네.

* * *

“윤환이가!”

연락을 받은 김영준 총장이 벌떡 일어섰다.

김윤환이 긴급체포로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

마약 소지가 아니라 성 상납이라는 것.

그것도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김현봉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의 흥분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어느새 그 어떤 것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담당이 누구야?”

-자, 장지혁 검사입니다.

“언론부터 막아.”

-알겠습니다.

검사장의 말을 들으며 김영준 총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추가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입단속 제대로 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 없게 만들어.”

정부 여당은 김영준 총장이 백기호 의원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소식이 여당의 귀에 들어가면 살벌할 정도의 공격이 들어올 거다.

그럼 정계에 들어가 탑의 자리에 선다는 계획이 처음부터 흔들릴지도 모른다.

“윤환이 구치소로 보내지 말고 취조실에 처박아 둬. 그리고 장지혁, 그놈 내 방으로 보내.”

김영준 총장이 수화기를 내려 두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곧장 연락처 하나를 찾았다.

이양호 사장, 국내 최고 기획사 중 하나라 불리는 HH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최선혜라는 여자에게 마약 구매한 연예인이 있어. 그래, 그쪽 소속이야. 왜? 이름도 알려 줄까? 신주미, 이혜선…….”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알려진 여배우와 아이돌 가수의 이름이 주르륵 흘러나오자 이양호 대표의 입이 꾹 닫혔다.

저들이 한 번에 잡혀 들어가면 기획사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이번에도 눈감아 주지. 대신 부탁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빠른 대답에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세상 한번 시끄럽게 만들어 줘. 여배우의 리벤지 포르노도 좋고 톱 배우의 결혼도 좋고.”

* * *

전화를 끊은 HH엔터테인먼트의 이양호 대표는 끔, 신음을 내뱉으며 담배를 손에 쥐었다.

사무실에 뿌연 연기가 차오르는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이양호 대표가 책상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USB 하나가 보인다.

“하…….”

USB를 만지작거리며 손에 든 이양호 대표가 한숨을 내뱉었다.

“또 뭘 덮으려고…….”

* * *

서진은 창밖을 바라보며 김영준 총장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일의 반복.’

사건이 터지면 연예인으로 덮는다.

음모론을 부르짖는 사람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연예인의 추락을 그 무엇보다 물어뜯으며 즐긴다.

하지만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일회성 자극일 뿐이다.

세상은 또 다른 사건이 튀어나오며 이전의 이슈를 덮어 버린다.

‘당장 시선을 돌린 후 장지혁 검사를 사건에서 배제하고 다른 사람을 채워 넣으려 하겠지.’

김윤환에 대한 담당으로 자신의 충신을 집어넣고 사건을 조작.

김윤환은 모함당했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뻔한 시나리오야.’

서진은 서준경이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잡아 왔던 많은 권력자, 그들이 빠져나간 방법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 후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이미 식어 버린 떡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어떨까?’

서진이 슬쩍 웃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주르륵 넘긴 연락처에 HH엔터테인먼트 이양호 대표의 전화번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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