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을 쳐도 (1)>
장지혁 검사의 살벌한 눈동자에 김윤환은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거다.
이제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눈앞에 영장을 보이며 수사관들에게 입을 열었다.
“확인하시죠.”
수사관들이 움직였다.
발렛 직원으로 위장한 장석민의 부하에게 키를 받아 차량의 문을 연다.
그리고 트렁크부터 글로브박스, 시트의 아래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불안하게 들려올 때, 김윤환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눈을 감았다.
‘제발…….’
마약은 혹시 모를 상황을 걱정해서 선루프 내부 가림막 안쪽에 던져뒀다.
즉, 가림막을 열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
아니, 걸리지 않아야 한다.
김영준 총장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아니, 두들겨 맞을 거다.
비참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누가…… 그 안에 숨겼다고 생각하겠어.’
검사로 있던 시절, 몇 번 정도 차량 압수 수색을 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선루프의 가림막까지 확인한 적은 없다.
‘이번에도…… 똑같을 거야.’
김윤환은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하며 긴장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접어야 했다.
“검사님? 여기 뭐 있는데요?”
“……!”
장지혁 검사의 시선이 김윤환을 향해 확 틀어졌다.
김윤환은 고개를 숙인 후 “씨발…….”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잠시 후, 장지혁 검사가 작은 약봉지를 흔들며 김윤환의 앞으로 다가왔다.
김윤환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하다. 화를 참지 못하는지 두 손에 부들부들 떨리는 중이다.
그 앞에 선 장지혁 검사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새끼들을 잡아 봤는데, 이번에 제일 재밌네, 검사 출신 그것도 검찰총의 아들이 옷을 벗은 후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니. 내가 다 쪽팔릴 지경이야.”
“…….”
“내일 아침 10시까지 내 방으로 와. 왜 대답이 없어? 싫어? 싫으면 지금 갈까?”
김윤환이 냉랭한 눈으로 장지혁 검사를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장 검사, 오늘 일 후회하게 될 거야.”
“설마……. 후회는 네가 하고 있겠지.”
“언제까지 이죽거리나 보자.”
그 말을 끝으로 김윤환은 몸을 틀었다.
그리고 김윤환이 사라지자 수사관들이 장지혁 검사의 옆으로 다가섰다.
“괜찮으시겠어요? 눈에 독기가 뚝뚝 떨어지던데요.”
“김영준 총장 아들이잖아요.”
수사관들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지만 장지혁 검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검찰총장 아들 잡고 유배 가는 검사, 멋있지 않나요? 이런 것은 드라마 각인데.”
“검사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끽해 봤자 유배가면 되죠.”
“네?”
장지혁 검사가 몸을 틀며 수사관들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유배 가기 전에 야식으로 국밥 한 그릇 때릴까요? 새벽에 소주 한잔이 또 제맛이잖아요. 국밥은 오 수사관님이 쏘시는 건가요? 흐흐.”
수사관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장지혁 검사, 막무가내로 시작하는 수사가 말썽을 부리기 때문에 검사들 사이에서 또라이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이런 검사가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 *
“그런데, 그거 보셨어요?”
“뭘?”
호텔의 VIP실.
서진과 장석민은 김윤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석민이 안주로 준비해 둔 견과류를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거요. 그거.”
“그러니까 뭐?”
“ㅂㄷㅋ ㅁㅇ. 제가 그거 쓰면서 얼마나 심장 떨었는지 아세요? 김윤환이 검사님 마중하러 딱 나갔을 때, 메모지 뽑아서 바로 빡!”
서진이 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미안.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
“어? 그런데 어떻게 술을 안 마셨어요?”
“네가 다급히 쪽지를 줬을 때는 변수가 생겼다는 거잖아? 그래서 조심했지. 김윤환이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서진이 김윤환이 든 보드카를 보며 ‘ㅂㄷㅋ’의 초성을 알아봤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김윤환이 들어왔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서진은 김윤환의 표정을 보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열어 김윤환을 자극하지 않았다.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김윤환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손을 바르르 떨며 초조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연기를 내뱉는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됐는지 입을 열었다.
“야, 서진아. 장지혁 그 새끼 요즘 백 있냐?”
“어?”
예상 밖의 질문에 서진은 조금 당황했다.
백이라니…….
30대 중반의 나이에 백을 찾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말에 서진은 대답을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대답해!”
“아, 미안. 없는 것 같은데.”
“뭐? 없다고? 없는데 뭐 그렇게 당당해?”
“원래 그렇잖아. 그런데, 벌써 차량 압수 수색하러 왔던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모른 척, 천연덕스럽게 묻는 서진을 보며 김윤환이 인상을 찡그렸다.
“됐어. 없어.”
김윤환은 다시 담배 연기를 내뱉었고 서진은 그 표정을 살폈다.
지금 김윤환은 탈출구를 찾고 있다.
자신을 밀고한 놈을 찾아 협박할 생각.
검찰에 닿은 끈을 이용해 벗어날 방법.
그 온갖 더러운 계획.
그리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김영준 총장 또는 작은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싹싹 빌 게 분명하다.
범죄를 저질러도 몇 대 맞으면 해결되는 일.
교도소가 아니라 세상을 거닐며 떵떵거릴 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지금부터 김윤환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있다가 교도소로 보낼 생각이다.
‘시작하자.’
서진이 결정을 내리며 힐끗 장석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길을 알아챈 장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서진이 했던 말.
“조금 있다가 김윤환이 돌아오면, 내가 눈치 봐서 그 메시지를 보낼게. 사진을 저장하고 김윤환이 볼 수 있도록 유도해.”
장석민은 그 말을 기억하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곧 지라시를 캡처한 사진이 서진의 대포폰에서 장석민의 휴대폰으로 전달됐다.
장석민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용은 김윤환의 친부에 관한 것.
‘설상가상…….’
서진은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설상가상는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쏟아진다는 뜻의 사자성어.
서진은 김윤환에게 그 사자성어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려 한다.
그리고 장석민이 놀란 척 연기했다.
“유, 윤환아?”
줄담배를 피우던 김윤환의 눈동자가 장석민에게 틀어졌다.
“왜?”
“이, 이거…….”
“불렀으면 말을 해!”
장석민이 재빨리 휴대폰을 넘겼고 김윤환은 별생각 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장석민의 태도가 이상했지만 지금보다 더 나쁠 게 있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최근 인기 만점인 검사 A 씨, 그에게는 검사 출신의 아들 B 씨가 있는데요. 부자지간이 검사로 함께할 수 있던 영광은 잠시였죠. B 씨는 사건 조작으로 실적을 올리려다 꼬리가 잡히며 미국으로 도주했거든요. 최근 B 씨가 국내로 복귀했는데, B 씨가 A 씨의 친자가 아니란 이야기가 있네요.
“이, 이거 네 이야기 아니야?”
장석민의 연기는 조잡했다.
하지만 김윤환에게 장석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에 파묻힐 것처럼 글씨를 읽고 또 읽는 중이다.
그리고 영혼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 이거 출처가 어디야?”
“지, 지라시잖아.”
“그러니까, 이게 어디냐고! 이 미친 새끼들,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무서운 게 뭔지 모르고 있네.”
“이거 사실 아니지? 어?”
“이게 사실이겠…….”
김윤환이 장석민의 질문에 답할 때였다.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던 김윤환의 눈동자가 갑작스레 서진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서진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얼마 전 서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잘 아는 지인의 이야기, 친자 검사를 했더니 친부가 아니었다던 것.
서진이 내뱉었던 말이 깨진 조각처럼 마구잡이로 귓가를 스쳤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까?”
“만약에 형이 그런 입장인데, 돈으로 부모를 재단하라는 말을 들어 봐.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 말이 꼭 자신에게 향한 것만 같다.
김윤환이 눈을 부릅떴다.
“이 개새끼야, 너 뭐 알고 있지?”
“어?”
서진이 모른 척하자 김윤환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집어 던지며 말을 이었다.
“알고 있잖아? 대답해 이 새끼야!”
하지만 서진은 이번에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다가선 길은 지옥일 거다.
“대답하라고!”
김윤환이 살벌한 눈빛으로 서진을 향해 다가왔다.
손에 칼이 있다면 휘두르고도 남았을 살기가 김윤환의 눈에서 질질 흐른다.
장석민이 빠르게 서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윤환아, 왜 그래? 흥분하지 마! 그만, 그만해!”
장석민은 깡패 출신이다. 공부만 했던 김윤환이 그 억센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놔! 놓으라고!”
김윤환이 바동거릴 때였다.
그 순간 김윤환은 봤다.
장석민의 어깨 너머, 서진이 조용히 웃는 것을.
살기로 가득했던 김윤환의 눈빛이 삽시간에 심란해졌다.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로 더듬더듬 물었다.
“지, 진짜야?”
“형, 이런 걸 믿어? 지라시잖아. 오늘은 그만 들어가. 내일 출근하면 바로 알아봐 줄게.”
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며 김윤환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옆을 스치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서진은 그 말을 남긴 채 호텔을 떠났다.
하지만 김윤환은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영혼 잃은 눈동자를 굴리며 꿈인지 현실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하려 하고 있다.
서진을 엿 먹이려다 마약 소지가 걸린 것.
말도 안 되는 지라시.
서진이 했던 이야기.
마지막에 봤던 서진의 미소.
김윤환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서진이 나간 곳을 노려보며 비명처럼 악을 내질렀다.
“씨발!”
* * *
김영준 총장은 서재에 앉아 복잡한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검찰을 떠난 뒤에 펼쳐질 새로운 삶.
지금의 지율을 보면 정계 입성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이 노리는 것은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 아니다.
임계점을 넘어선 권력.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정점.
그 꿈을 이우려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그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많은 돈이 나올 곳은 단 하나.
재정건설이다.
‘그런데…….’
그 막대한 돈을 형 김준만이 고스란히 내주지는 않을 거다.
김영준 총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형과의 관계도 검찰에 있을 때 마무리 지어야 해.’
김영준 총장이 몸을 돌려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손에 쥐었다.
형과의 관계, 좋게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
형과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면, 나중에 다 되돌려 놓을 테니 이해를 해 줬으면…….’
김영준 총장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흘렀다.
그때, 서재의 문이 딸칵 열렸다.
김윤환이다.
초췌한 표정으로 문틈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버지……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일찍 다녀.”
“저기, 아버지?”
“술 마셨으면 곱게 들어가 자. 내일 또 출근해야지. 큰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생각 하지 말고.”
김영준 총장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허세가 가득하고 여리기만 한 아들, 나이가 저만큼 먹었으면 사람 구실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
김영준 총장이 보기엔 첩의 자식 이소희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들어가라는 말에도 김윤환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문틈으로 조용히 김영준 총장을 보고 있다.
“저기…… 아버지…….”
김윤환이 어떤 말을 내뱉으려 할 때였다.
드르르륵, 김영준 총장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중앙지검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