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98화 (198/250)

<허세 (4)>

* * *

“이해했겠지? 어? 이해했을 거야? 그렇지?”

장석민은 중얼거리며 초조한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여자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대기하던 세 명의 여자가 묻는다.

“올라가요?”

“아니, 10분 후에 올라오래.”

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파묻었다.

“야, 물어볼 게 있는데…….”

여자들이 ‘뭐? 왜?’라는 눈빛으로 시선을 틀자 장석민이 답답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ㅂㄷㅋ ㅁㅇ.”

“네?”

“이거 뭔 거 같아?”

“비읍디귿…… 뭐요?”

장석민이 메모지를 뜯어 ‘ㅂㄷㅋ ㅁㅇ’을 적은 후 여자들에게 보였다.

“이게 무슨 뜻 같아?”

여자들이 메모지에 적힌 글씨를 조용히 바라본다.

“초성 퀴즈?”

“맞혀 봐.”

“상금 있어요?”

“줄 테니까 맞혀 봐.”

장석민은 긴장한 표정으로 여자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들이 맞힌다면 서진도 반드시 알아챌 거다.

하지만.

“븅닭…… 크, 뭐임? 이거 아니에요?”

“어? 그렇게 보여? 보드카 마약…… 이렇게 안 보여?”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여자들은 해맑게 웃었고 장석민의 얼굴은 더 심각하게 굳어졌다.

* * *

김윤환은 얼음이 담긴 컵에 술을 따른 후 서진의 앞에 내려 뒀다.

“마셔.”

서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장석민이 건넨 쪽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다급한 심정은 느낄 수 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뜻.

변수가 생겼다는 것.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진의 눈동자가 테이블의 구석으로 향했다.

장석민의 휴대폰이 놓여 있다.

어떤 것도 믿지 않고 정보를 통제했다는 의미.

‘머리 좀 썼나 보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술잔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김윤환의 표정을 살폈다.

김윤환의 얼굴 근육이 움직인다. 서진이 술을 마시길 간절히 원하는 표정이다.

심지어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빠지고 있다.

서진의 눈동자가 술병으로 향했다.

‘보드카…….’

장석민이 적은 ‘ㅂㄷㅋ’의 초성과 맞다.

‘술에 어떤 짓을 했나?’

서진은 더 많은 정보를 눈에 담기 위해 시선을 움직였다.

더 보이는 것은 없지만 짚이는 것은 있다.

‘마약.’

‘ㅁㅇ’의 초성은 마약.

보드카에 마약을 탔다는 것.

그렇게 예상된다.

“왜? 못 마시겠어? 독할 것 같아서 무서운 거야? 남자 새끼가 이런 거 하나 못 마시냐?”

서진이 술잔을 들고 가만히 있자 김윤환이 도발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더 확신이 든다.

김윤환이 이 술에 장난질을 쳤다는 것.

“맥주 없나?”

“뭐?”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보드카는 너무 독하잖아.”

“한 잔이잖아. 한 잔!”

서진이 술잔을 내려 뒀다.

김윤환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야, 형이랑 오랜만에 한잔하는데, 따라 준 술을 버리냐? 너무한 거 아냐?”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 후 김윤환을 바라봤다.

“형, 내가 오늘 왜 늦었는지 알아?”

“왜? 누가 갈궜어? 조우재 부장검사님?”

“최선혜라고 마약 가지고 장난하던 여자 잡힌 거 알지?”

김윤환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최선혜, 지금껏 자신과 관계없는 사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동시에 심장이 쫄깃해짐을 느꼈다.

“……왜?”

“명단에 형 이름이 있어.”

“……!”

김윤환의 얼굴이 뻣뻣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서진이 상체를 굽히며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김광원이라고 강남에 건물 하나 가진 놈이 있는데, 그놈이 형을 팔았네. 맞아?”

“맞기는 뭘 맞아!”

김윤환이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무서운 눈으로 서진을 노려봤다.

“그냥 몇 번 놀아 준 게 다야. 그런데, 그 새끼가 나를 팔아?”

“하…… 나도 안 믿는데, 형한테 마약을 줬대. 명단 적었고 휴대폰에 형과 통화한 기록 있고.”

“그 말을 믿냐고!”

극단적인 거부 반응은 진실을 뜻하는 법, 김윤환은 자신이 격하게 흥분했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씹었다.

서진이 김윤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자극했다.

“아니지?”

“왜? 약쟁이 말만 믿고 수사하려고?”

“그래, 당연히 아니겠지. 믿어. 그런데 수사는 할 것 같아. 약식이겠지만, 약물 검사와 차량 내부 정도는 확인할 거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의심될…….”

“그런 거 없어.”

김윤환은 혀를 차며 담배를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연기를 내뱉는다.

하지만 머릿속은 초조하다.

서진에게 마약을 먹이겠다는 생각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

지금은 혹시라도 의심될 게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

‘약쟁이와 논 것은 죄가 아니야.’

단지 어울렸다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약을 복용한 적이 없기에 불시 소변 검사를 한다 해도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김윤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씨, 씨발…….’

갑자기 떠오른 것, 차 안에 숨겨 둔 마약.

오늘 서진의 차로 옮겨 두기로 한 것.

김윤환이 다급히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10분.’

수사관이 들이닥칠 시간은 지났다.

야간 압수 수색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제한되는 것이 많고 검찰총장의 아들을 대상으로 움직일 겁 없는 놈은 없다.

‘지금 당장…….’

서진의 차로 옮겨야 한다.

그럼, 만사 해결이다.

내일 아침 수사가 들어와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정말…… 형, 의심될 것 없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래, 다행이네.”

김윤환이 담배를 비벼 끄며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의 표정이 뭔가 껄끄럽다.

“왜? 무슨 일이 또 있어?”

“작은아버지가 검찰총장이잖아. 언론에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 기자들 모르게 야간에 움직인다네.”

“……어?”

“배려하는 거래. 배, 려.”

“어, 어떤 새끼가…….”

“장지혁 검사.”

김윤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장지혁? 그 또라이 새끼?”

“약식으로 차량만 간단히 조사하고 소변만 확인한 후 간다고 했으니…….”

“언제!”

김윤환이 벌떡 일어섰다.

핏발 선 눈이 부릅떠져 있다. 미끈한 입술이 불안하게 떨려 온다.

서진은 놈의 심정을 뻔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김윤환을 보며 말했다.

“……왜 그래?”

“언제냐고 이 새끼야!”

“그건 나도 모르지……. 영장이 나오면…….”

김윤환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전 차 키를 찾는 거다.

그런데, 없다.

‘미치겠네.’

장석민의 부하, 발렛 직원으로 위장한 놈에게 넘겼다.

자신의 차에 있는 마약을 서진의 차로 옮기기 위해.

“……왜? 마음에 걸리는 거 있어?”

서진은 분명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김윤환에게는 정말 얄밉게 들려왔다.

“장지혁한테 전화해서 언제쯤 출발하는지 물어봐.”

“어?”

“어서!”

서진이 휴대폰을 손에 쥘 때, 김윤환은 거실을 서성였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거다.

‘젠장…….’

단순 소지 역시 법에 어긋나는 행위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0조, 마약을 소지한 것만으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물론 김윤환은 징역의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돈 있고 백이 있으면 마약에 중독된 약쟁이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세상.

교도소에 가는 것은 힘없는 약자들뿐이다.

김윤환이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김영준 총장의 분노.

악귀처럼 일그러진 김영준 총장의 얼굴.

마약을 소지하고 있던 게 김영준 총장의 귀에 들어가면 김윤환은 그 두려움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안 돼.’

그리고 서진의 입에서 절망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장지혁 검사, 바쁜가 봐. 전화를 안 받는데?”

“다시, 다시 해 봐!”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장석민이 여자들과 함께 들어왔다.

“한잔들 하고 계셨네. 벌써 취하면 안 돼. 얘들이 오늘 벼르고 왔다는데.”

장석민은 양아치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눈동자는 재빨리 테이블을 확인하고 있었다.

서진이 술을 마셨는지, 마시지 않았는지.

장석민에게는 그게 우선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런데 김윤환이 다급하게 다가와 장석민 앞에 섰다.

다짜고짜 내뱉은 말이 예상과 달랐다.

“야, 발렛 직원 전화해 봐.”

“어?”

“빨리!”

김윤환의 조급하고 당황한 기색은 장석민도 느낄 정도로 역력했다.

입술이 말라붙었고 피부가 허옇게 질렸다.

반면에 서진은 느긋하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다.

심지어 손을 흔들며 김윤환의 뜻대로 움직여 주라는 신호를 보내기까지 한다.

장석민은 느꼈다.

김윤환이 좆 됐다는 것.

장석민은 크게 웃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놓아둔 휴대폰을 손에 들어 발렛 직원으로 위장한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릴 때다.

김윤환은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장석민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답답하게!”

언제 장지혁 검사가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 사이코 새끼. 미친 새끼!’

장지혁 검사의 일탈은 유명하다.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덤벼드는 짐승.

진실을 찾는다며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

상대가 장지혁이라면 앞일이 어떻게 흔들릴지 예상할 수 없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던 신호가 끊기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형님.

“너 어디야 새끼야! 당장 내 차로 뛰어와!”

김윤환은 그 말과 동시에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공간이 적막해졌다.

장석민은 분위기가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막 들어온 여자들도 끌어냈다. 그렇게 여자들도 떠났다.

거실에 남은 것은 서진과 장석민이 전부.

서진이 장석민의 앞에 담배를 놓아두며 입을 열었다.

“해 줘야 할 게 하나 더 있어.”

“뭐든 말씀하세요.”

서진이 휴대폰을 건넸다.

화면을 본 장석민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 이건…….”

“조금 있다가 김윤환이 돌아오면, 내가 눈치 봐서 그 메시지를 보낼게. 사진을 저장하고 김윤환이 볼 수 있도록 유도해.”

화면에 보이는 것은 지라시를 캡처한 사진.

그런데 장석민의 목소리가 지진을 만난 것처럼 떨려 왔다.

“……윤환이가 친자가 아니에요?”

* * *

띵!

호텔의 지하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김윤환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벗어나 복도를 걸어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 이름은 왜 팔아서…….’

김윤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애초에 그런 새끼와 거래해서는 안 됐어.’

룸살롱에서 놀 때는 얼싸안고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수와 같다.

‘하…… 돌아 버리겠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진이 검사라는 것.

중앙지검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만약 모르고 있었다면 빼도 박도 못한 채 마약 소지로 걸릴 뻔했다.

‘마약은 버리고. 그 새끼가 물귀신으로 잡고 늘어졌다고 하면 끝이야.’

이번에도 서진을 옭아매는 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또 기회가 올 거다.

김윤환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지하 주차장으로 나섰다.

그런데.

“전화하려고 했는데, 딱 나타났네?”

장지혁 검사와 수사관 세 명이 김윤환의 차 앞에 서 있었다.

앞에 선 장석민의 부하는 경직된 얼굴로 수사관들에게 잡혀 있다.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마약 수사로 왔는데, 총장님 얼굴을 봐서 조용히 확인만 하고 갈 거야. 협조 좀 부탁한다.”

김윤환이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에 선 장지혁 검사를 쏘아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짜증 나네.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지?”

김윤환은 센 척했고 허세가 통했는지 수사관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섬뜩할 정도의 표정으로 김윤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아빠한테 이르려고? 왜 그래? 정말 단순히 확인만 한다니까. 영장도 있고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다 뒤집어 줄까?”

“뒤집어? 누가? 네가?”

“내가 어떻게 뒤집을지 궁금하면 계속하든지.”

장지혁 검사가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온다.

그리고 웃음을 뚝 그친 장지혁 검사가 김윤환을 바라봤다.

“나도 이 말 꼭 해 보고 싶었는데.”

“……!”

마약왕 최선혜를 잡아 온 날.

서진이 취조실에서 최선혜를 취조하던 그때.

장지혁 검사는 유리벽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당시 서진이 했던 말을 김윤환에게 전했다.

“제발…… 허세 부리지 마. 난 너같이 범죄를 저지른 새끼가 거물인 척하는 게 정말 역겨워.”

“……뭐?”

“뒤집겠다고? 해 봐. 너도 뒈질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