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3)>
* * *
“아, 내일? 좋아.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하자. 발렛하는 새끼 똑바로 교육시켜 놓고. 어? 잘되면, 찐하게 술 한잔 살게.”
재정건설, 법무 팀 앞 복도.
김윤환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장석민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드디어…….’
서진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시기도 딱 좋다.
언론에서 연일 ‘마약왕 최선혜’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중이다.
이런 때에 서진의 차량에서 마약이 나왔다는 게 알려지면.
‘그 새끼 인생은 쫑나는 거지.’
안타깝게도 김윤환은 최선혜의 이름을 몰랐다.
언론에서도 마약 유통 조직이 잡혔다고 알려 올 뿐, 그 유통 조직이 부유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소식은 내뱉고 있지 않다.
‘좋네.’
김윤환은 낄낄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온 만큼 기분 좋게 담배 한 대 피울 생각이다.
그리고 잠시 후, 옥상에 있는 흡연실.
김윤환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지는데, 라이터가 없다.
“저기요,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 네.”
직원이 김윤환에게 라이터를 건넸다.
김윤환이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부서가 어디예요?”
“영업 3팀입니다.”
김윤환의 얼굴과 이름은 회사에서 유명하다.
대표의 조카, 대표적인 금수저.
직원이 예의 바른 자세로 어색하게 웃자 김윤환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영업 3팀……. 어려운 일은 없고요?”
“네?”
“내 말이 어렵나?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 있냐고 물어봤는데.”
“어, 없습니다.”
“불편한 것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괜찮으니까.”
김윤환이 직원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 * *
그 시각, 법무 팀.
법무 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기분 나쁜 일이 있는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탁, 내려 두며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모여 봐. 오미산업에서 일용직 임금을 슈킹했다고 하는…….”
법무 팀 팀장의 시선이 김윤환이 있어야 할 자리로 틀어졌다.
“쟤 또 어디 갔어?”
모두가 법무 팀장의 앞으로 모이고 있는데, 딱 한 놈만 안 보인다.
“어디 갔냐고!”
“……모르겠습니다.”
“미치겠네.”
법무 팀 팀장이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건설회사의 법무 팀은 분양된 아파트의 부실 문제부터 각 하청에서 벌어지는 일 게다가 공무원들의 갑질까지, 이런저런 소송과 고발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곳이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하다.
그런데 경력직으로 들어왔다는 놈이 대표의 조카, 검찰총장의 아들.
“아주 상전 나셨네, 상전 났어!”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그 시간도 SNS와 온라인 쇼핑으로 때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 일을 열심히 하는 순간도 있기는 하다.
바로 서진의 아버지가 등장했을 때, 그 순간 김윤환은 다르다. 말 그대로 재정건설에 뼈를 묻은 직원처럼 보인다.
“아오!”
일을 해야 하는데, 눈엣가시로 방해만 된다.
법무 팀 팀장이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겼다.
* * *
“형, 들었어?”
그날 밤, 서진이 샤워를 한 후 거실로 나왔을 때다.
동생 진영이 소파에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듣다니, 뭐를?”
“윤환이 형…… 회사에 내 친구가 주임으로 있거든.”
“그런데? 문제 있대?”
서진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김윤환이 재정건설에서 무슨 짓을 벌리고 있는지 불안하기만 했다.
놈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다.
진영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진상이래. 일도 안 하고 여기저기 거들먹거리고. 재벌 2세 놀이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데?”
“아버지는 모르시나?”
“아버지 앞에서는 깍듯하대. 열심히 하는 척 땀도 흘리고. 그게 더 재수 없다더라.”
서진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그리고 진영에게 캔 하나를 던지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몇 달은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예상 밖이네.”
“그치? 아무리 백으로 들어갔어도 몇 달은 긴장 타야 하는 거 아냐?”
“신경 쓰지 마.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서진이 슬쩍 웃자 진영은 서진에게 어떤 계획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방법이 있어?”
“피곤한 것 같은데, 잠이나 푹 자.”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진영이 맥주를 입에 대며 고개를 저었다.
“형이나 어서 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어.”
“그려. 난 잔다.”
서진이 손을 흔들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침대에 눕지 않았다.
문을 닫은 후 책꽂이를 젖혔다.
잡다한 낙서가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술 먹고 끄적거린 것.
하지만 서진에게는 원래의 서진과 연결되는 유일한 길.
서진의 시선이 김윤환의 이름으로 향했다.
‘곧…….’
김윤환의 이름에 엑스가 그어질 거다.
이어서 작은어머니와 김영준 총장도 마찬가지.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거울로 틀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생각하던 불상사는 없을 거야. 이 사람들 전부 치워 줄게.’
* * *
“발렛은 교육했어?”
“몇 번을 물어봐?”
호텔의 VIP실, 작은 풀장과 테라스까지 마련된 곳.
김윤환과 장석민이 앉아 있었다.
김윤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는 왜 안 와?”
서진과 만나기로 한 게 2시간이나 지났다.
그런데 온다고 했던 서진은 무슨 일이 있는지 연락도 없다.
“바쁘다고 안 오는 거 아냐? 검사들 바쁘다며?”
장석민의 말에 김윤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곳은 서진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자리.
서진의 얼굴에 엿을 던질 생각이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늦고 있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는 중이다.
“미치겠네.”
김윤환이 짜증을 부렸고 장석민은 힐끗 그 표정을 살폈다.
장석민은 서진이 왜 늦는지 알고 있다.
일부러 늦장을 부리는 거다.
‘3시간 후에 온다고 했나?’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이성을 흔드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략.
그것을 모르는 김윤환이 불안하게 다리를 떨며 중얼거렸다.
“오겠지, 올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눈을 빛내며 장석민을 바라봤다.
“술은 준비됐어?”
“종류별로 가득 채워 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한 병 가져와 봐.”
“응?”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가져오라고!”
김윤환이 벼락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미친 사람도 아니고 감정의 기복이 크다. 뜬금없는 김윤환의 분노에 장석민이 눈을 깜빡였지만 그게 전부다.
장석민은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애초에 김윤환은 장석민을 친구로 대하지 않았다.
언제나 아랫사람.
친구라 말하지만 명확한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사이.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검사와 깡패였을 때는 더 그랬다.
그리고 그 관계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재수 없는 새끼.’
장석민이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괜찮다. 김윤환은 곧 서진의 앞에 박살 날 사람이다.
그걸 생각하면, 어떤 모욕도 참을 수 있다.
장석민이 와인 냉장고를 열며 물었다.
“와인? 아니면…….”
“코르크 말고 뚜껑 있는 것으로 아무거나 가져와 봐.”
장석민이 와인을 툭툭 건들며 확인하다가 보드카 한 병을 손에 쥔 채 테이블로 돌아왔다.
조금 더 빨리 취할 수 있는 보드카가 서진이 취할 계획에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김윤환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보드카의 뚜껑을 뜯은 후 약봉지 하나를 꺼내 쏟아 넣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장석민이 더듬더듬 물었다.
“이, 이걸 김서진에게 먹이려고?”
“생각해 보니까 차에서 발견되는 것만으로는 약하잖아? 양성반응이 나와야 완벽하지. 보드카에 마약, 한 잔만 마셔도 뿅 갈걸.”
김윤환이 입술을 찢어 웃었고 장석민의 얼굴은 굳어졌다.
계획에 없던 일, 서진은 모르는 일.
서진이 이곳에 오면 술 한 잔은 입에 댈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술은 김윤환이 전하는 마약.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는 거다.
장석민은 서진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여, 여자애들 불러올게.”
서둘러 몸을 일으킨 장석민이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 서진에게 전화를 걸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하지만 장석민의 행동이 그대로 멎었다.
그 순간 김윤환의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왔기 때문이다.
“됐어. 앉아.”
“어? 애기들 있어야 분위기가 좋아지잖아?”
장석민은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데 장석민을 쏘아보는 김윤환의 눈빛이 싸늘하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하대하고 있다.
하지만 장석민은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애들 얼굴은 봐야 하지…….”
“됐다고 했어.”
“지난번처럼 김서진 스타일 아니면 좀 그렇잖아?”
“됐고. 휴대폰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 둬. 그리고 지금부터 여기서 나가지 마.”
“……어?”
장석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김윤환이 장석민의 뻣뻣해진 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석민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검찰에 있을 때도 중요한 작전이 있으면 항상 이렇게 했으니까.”
김윤환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돌처럼 굳어 있는 장석민의 행동을 재촉했다.
“어서.”
이제 어쩔 수 없다. 장석민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며 마른침을 삼켰다.
“됐지?”
“이해해 줘서 고맙다.”
김윤환은 다리를 외로 꼬아 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입에서 흥얼흥얼 콧노래가 흐른다.
하지만 장석민의 표정은 달랐다. 그는 서진에게 전화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 * *
서진은 차를 운전하는 중이었다.
향하는 곳은 김윤환과 만나기로 한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차한 서진이 차에서 내렸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밤 11시, 약속보다 3시간이나 늦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한 김윤환의 표정이 예상됐다.
‘괜찮네.’
서진은 엘리베이터를 잡고 약속된 층으로 향했다.
* * *
딩동, 딩동.
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차갑게 식어 있던 김윤환의 얼굴이 얼어붙은 것처럼 냉랭해졌다.
“서진이 들어오면 바로 나가. 그리고 10분 후에 여자애들을 데리고 들어와.”
“10분 후? 바로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석민아, 내 친구 석민아……. 오늘따라 왜 그렇게 말이 많을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김윤환의 눈빛에 장석민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장석민은 서진에게 어떻게든 알리려 했다.
술에 마약이 들어 있다고.
말을 할 수 없다면 손짓 발짓이라도 해서.
하지만 김윤환은 서진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나가란다.
심지어 10분 후에 들어오라고 한다.
장석민의 모든 계획이 막혀 버렸다.
김윤환이 장석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거든. 어떻게든 성공할 거야. 그런데 넌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잖아. 그러니까, 나가 있어. 부탁할게.”
부탁이 아니라 지시다.
장석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얼굴에 힘 빼고. 누가 보면 내가 널 잡아먹는 줄 알겠네.”
김윤환은 그 말을 끝으로 기지개를 켜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며 서진을 반겼다. 지금까지와 다른 밝은 표정.
“아이고,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왜 이렇게 늦었어? 누구야, 누가 내 동생을 야근시켜? 확, 죽여 줘?”
“미안, 시간 맞춰 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네.”
“됐어. 고생했어.”
김윤환이 서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방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장석민에게 눈짓했다.
‘어서 나가.’
장석민이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뒤 서진을 향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 왜? 같이 술 마시는 거 아니야?”
“석민이? 애기들 데리고 온대. 예쁜 애들로. 일단 우리부터 마시고 있자.”
김윤환이 설명했고 장석민이 인정했다.
“드시고 계세요. 금방 데리고 올게요.”
장석민은 그 말을 끝으로 서진과 김윤환을 스쳐 룸을 벗어났다.
탁, 문이 닫혔다.
서진과 김윤환만 남은 서먹한 공간. 김윤환이 그 서먹함을 날려 버리듯 손뼉을 짝 치더니 냉장고로 향하며 말했다.
“앉아 있어. 세팅은 내가 할 테니까.”
“형, 나 화장실 먼저 다녀올게.”
“어, 그래.”
김윤환이 안주를 꺼내고 있을 때, 서진은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구깃구깃한 쪽지를 꺼내 펼쳤다.
방금 서진을 스쳐 가던 장석민이 은밀히 건넨 것.
김윤환이 서진을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할 때 급하게 적은 것.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다.
ㅂㄷㅋ ㅁㅇ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뭐지?’
장석민은 보드카 마약이라고 적은 것, 하지만 서진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욕인 줄 알았다.
휴대폰을 꺼내 ‘ㅂㄷㅋ’을 검색하자 이상한 내용만 나온다.
이번에는 ‘ㅁㅇ’을 검색했다.
‘뭐임? 미워? 마음?’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조심하라는 것은 분명하다.
서진이 종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몸을 틀었다.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자 김윤환이 보드카를 손에 든다.
“보드카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