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94화 (194/250)

<너의 과거는 (7)>

김윤환이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러다가 눈물가지 흘린다.

‘막장이네, 개 막장이야.’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김윤환은 서진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끼리끼리 노는 거야.’

김윤환은 생각하고 있었다.

서진이 병신 같으니까 그런 집안의 아들놈과 어울리는 거라고.

그렇게 한참을 웃던 김윤환이 겨우 진정하며 입을 열었다.

“네 친구한테 위로할 게 뭐 있어? 불쌍한 것은 그 아비지. 뻐꾸기 새끼를 제 자식인 줄 알고 30년을 키운 거잖아?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서진이 전한 것은 김윤환의 이야기, 하지만 놈은 그 이야기의 진실을 모른 채 비웃고 있다.

즉, 놈은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조언 좀 받으려고 했더니.”

“알았어. 진지하게 대답해 줄게. 이런 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그 친구네 집, 부자야?”

서진은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김윤환을 바라봤다.

검찰총장의 집안.

재정건설 대표의 친척.

“그냥, 부자 정도가 아니라 어깨에 힘 좀 들어가는 집이야.”

“그래? 나도 아는 사람이야?”

“그럴 수도.”

김윤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진의 말을 들으면 권력자의 집안, 생각해 보면 주변에 막장 집안은 많다.

첩의 자식.

무늬만 부부.

쉰이 넘은 남자가 스무 살 어린 애와 호텔을 드나들고 그 아내는 호빠를 오가며 제비를 키우고.

김윤환은 호기심을 드러내며 서진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서진의 표정을 살펴도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김윤환은 그 막장 집안의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럼, 친자 검사인지 뭔지 결과지 찢어 버리라 해. 끝까지 모른 척하다가 아비 죽으면 유산이라도 받아야지.”

“가난하면?”

“생각할 게 뭐 있어? 당연히 출생의 비밀을 밝혀야지. 나중에 돈 없는 부모 모시고 살면 그것도 골치 아픈 거야. 피도 안 나눈 아버지를 왜 모시고 살아? 기회다 생각하면서 인연을 딱 끊어야지.”

서진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만약에 형이 그런 입장인데, 돈으로 부모를 재단하라는 말을 들어 봐.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고마울 것 같은데?”

“뭐?”

“당장은 기분 나쁘겠지. 하지만 그게 날 위한 거잖아? 옆에서 달콤한 말 전해 주는 친구 필요 없어. 진짜 내가 필요한 말을 해 줘야 좋은 친구지.”

김윤환은 제 이야기인 줄 모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가고 있다.

당장의 기분 나쁨에 연연하지 마라.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라.

미래를 고민해라.

서진은 김윤환이 내뱉은 그 모든 말을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말을 들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나중에 만나면 형이 말한 대로 이야기 전해 줄게.”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하라 해. 감정적으로 나섰다가 다 잃을 수도 있잖아. 지금은 친부모가 누구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돈 많은 부모가 중요한 거야.”

김윤환은 자신이 던진 모든 말이 그대로 돌아올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지금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서진은 얼마 남지 않은 그 날을 정말 간절히 기대했다.

그리고 서진이 다리를 외로 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 있는 거 아냐?”

“어?”

“아까, 작은어머니가 잡았는데도 날 쫓아온 거 보면 할 말이 있으니까 온 거잖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어서 해.”

서진이 어른들의 대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으로 이동할 때, 김윤환이 쫓아오려 할 때, 작은어머니가 김윤환의 옷깃을 잡았다.

하지만 김윤환은 작은어머니의 손길에서 빠져나와 서진을 따라왔다.

서진의 직설적인 질문에 김윤환이 어색하게 웃었다.

“검사 생활 몇 년 하더니 눈썰미가 좋아졌네?”

서진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김윤환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장석민이라고 기억하지?”

“……장석민?”

장석민은 김윤환의 친구이자 김현봉의 부하였던 놈.

지금은 서진의 지시에 따라 경호 업체와 흥신소를 운영하려 하는 놈.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모른 척 눈을 깜빡였다.

“그때 나 귀국하던 날에 호텔에서 같이 놀던 친구.”

“아…… 기억나.”

“그놈이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한 번 더 같이 놀자고 하는데, 어때?”

서진이 가만히 있자 김윤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기억상실증 완쾌된 거 아니지? 너 건물에서 떨어지기 전에, 우리 꽤 잘 놀았었어. 다시 잘 놀아 보자. 우리 평생 같이 가야 하잖아.”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약속 잡히면 알려 줘. 최대한 시간 내 볼게.”

“그래, 꼭 시간 내라.”

순간이었지만 김윤환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놈은 자신이 시간을 잡는다고 생각할 거다.

장석민을 통해 여자를 부르고 손에 쥔 마약을 서진의 차에 넣을 계획을 세우고.

하지만 장석민은 서진의 손아귀에 있다.

김윤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거다.

오히려 그 계획이 김윤환의 목을 옭아맬 예정이다.

***

며칠 후, 점심시간.

서진은 중앙지검 근처의 국밥집에서 장지혁 검사와 식사하고 있었다.

장지혁 검사가 숟가락을 들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밤이야.”

장지혁 검사는 얼마 전 마약을 배달하려다 잡힌 구영진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늘 밤, 100kg에 달하는 고 순도의 마약이 인천의 항구, 컨테이너에 숨겨진 채 들어올 거라고.

“……100kg이요?”

서진이 눈을 깜빡였다.

100kg이라 말하면 작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1회 투여량이 보통 0.03g이다.

그런데 100kg.

그것도 고순도.

“돈 벌려고 작정을 했네요.”

“염소 고기가 들어오는데, 그 배 속에 숨겼을 거라고 하더라.”

마약을 들여오는 방법은 나날이 대담해지고 있다.

불상, 원단, 중장비, 화강암, 각 고기.

“보고는 하셨고요?”

“어. 부장검사에게 보고했고 검사장과 총장도 알고 있을 거야. 듣기로는 소탕하는 즉시 언론에 대서특필한다고 하던데?”

김영준 총장은 지지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백기호 의원에게 양보하지만 국민의 머릿속에 ‘김영준이야말로 진짜 검사였다’는 이미지를 만들려 한다.

모든 것은 다음 대선의 승자가 되기 위한 작업이다.

“스케일은요?”

“국정원도 도울 것 같고 인천의 모든 경찰이 대기할 것 같아.”

장지혁 검사가 힐끗 서진의 표정을 살핀 후 픽 웃었다.

“야, 정보 새어 나갈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작전에 투입하는 경찰이나 수사관, 휴대폰 다 압수하고 일단 대기하는 중이야. 그리고 지게꾼부터 공급책까지 박살 내서 실적 쌓을 수 있는 기회인데, 경찰서장 같은 높은 양반들이 정보가 새어 나가게 놔둘 것 같아? 꽁꽁 틀어막겠지.”

“스타 되시겠어요.”

“유배될 수도 있지.”

이번 사건의 계획은 두 가지.

마약 소탕과 김윤환.

그리고 그 안에는 각 권력자와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즐비하다.

장지혁 검사가 그들의 눈엣가시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

어디론가 유배당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나 옷 벗으면 너희 아버지 회사 법무 팀에 입사할 수 있냐? 밥만 잘 주면 열심히 일할 수 있는데.”

“거기 김윤환 있어요.”

“씨발. 차라리 백수를 하지.”

툴툴거리는 장지혁 검사를 보며 서진이 슬쩍 웃었다.

“그런데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김윤환의 이름이 드러나면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와 거래할 가능성이 크다.

김윤환의 이름을 덮어 주는 대가로 장지혁 검사의 신변을 보장할 거다.

물론, 예측일 뿐이다.

김영준 총장이 어디로 튈지는 모른다.

장지혁 검사가 숟가락을 툭 내려 두며 말했다.

“어쨌든, 넌 오늘 밤 푹 쉬고 있어. 이 형이 마약 대장의 멱살을 잡아끌고 올게. 일단은 밥 먹자.”

장지혁 검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

그날 밤, 오후 6시.

장지혁 검사와 수사관이 대거 인천으로 이동할 때였다.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디야?”

상대는 마약을 배달하다 잡혔던, 그래서 지금은 정보를 제공하는 구영진.

“서초구로 와. 식사나 하게.”

-……지금요?

구영진의 목소리가 떨떠름했다.

아무래도 놈은 범죄자다.

서초구로 오라는 게 꺼림칙한 모양이다.

“밥 먹이고 잡아갈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와.”

몇 시간 후, 놈들의 조직은 뿌리째 뽑힐 거다.

그 상황에 구영진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진은 정보 제공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진과 구영진은 서초구의 한 고깃집에서 마주 앉았다.

구영진은 계속해서 서진의 눈치를 보는 중이다.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안 잡아가. 혹시 몰라서 오라고 한 거야. 여차하면, 한 달 정도 구치소에 넣었다가 빼 줄게.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잖아?”

마약은 점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정보 제공자가 없다면 잡아내기 힘들다.

그리고 정보 제공자에게 신뢰를 줘야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지금 서진의 말과 행동은 수사기관과 놈들의 암묵적인 룰이다.

토사구팽하는 순간 놈들은 정보를 게워 내지 않는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소고기?”

“아뇨, 돼지면 충분합니다. 충분해요.”

“술은?”

“소주 좋아합니다.”

서진은 소고기와 함께 증류수로 만들어진 소주를 주문했다.

한 병에 3만 원.

서진이 놈의 잔에 소주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마셔. 고생했어.”

서진은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구영진은 시종일관 불편한 모습이었다.

서진이 놈의 팔을 툭툭 쳤다.

“편히 마셔. 아니, 불편해도 어쩔 수 없으니까 편히 있어. 안전이 보장되면 보내 줄 테니…….”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색을 되찾았을 때, 서진이 차갑게 웃었다.

지금껏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던 가식적인 미소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말 그대로 악마.

서진이 술을 홀짝이는 구영진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너 미쳤구나?”

“……네?”

난데없이 돌변한 서진의 태도에 구영진이 섬뜩함을 느꼈다.

***

“확인했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가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질문을 던지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붉은 입술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나올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인천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블루투스를 통해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자가 깔깔깔 웃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검경이 안 되는 거야. 정보가 오면 팩트 확인을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무조건 믿으니까 그 모양 그 꼴이야. 거기에 백날 있으라고 해. 미친 새끼들.”

여자는 마약 조직의 대모라 불리는 사람.

구영진은 검찰보다 그녀를 두려워했다. 아니, 그녀에게 잘 보이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자백했다.

“검찰과 접선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곧장 마약 밀수의 방식을 바꿨다.

구영진을 통해 수사에 혼선을 주며.

“그래서, 현 상황은?”

-중간에 어선과 접선했고 제부항으로 이동할 겁니다. 택배 차량 섭외했고 항구 도착하는 즉시 옮겨 실으면 끝입니다.

“콜.”

제부도에 있는 작은 선착장.

근처의 탄도항과 전공항에는 해경이 존재하지만 그곳엔 해경도 없다.

썰물에만 열리는 바닷길이 단점이지만 마약을 옮기는 시간이면 충분히 맞출 수 있다.

“나도 그쪽으로 갈게.”

계획을 확인받은 여자가 통화를 종료했다.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다.

제부도로 진입하는 바닷길로 향하던 때, 그 앞을 가로막은 경광봉.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사방을 가로막은 경찰.

이미 잡혀서 변명을 이어 가는 택배 기사.

그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갈 때, 인천에 있어야 할 장지혁 검사가 그녀의 차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장지혁 검사가 창문을 툭툭 치며 무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려. 뒈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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