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90화 (190/250)

<너의 과거는 (3)>

그리고 장석민의 이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의 입가에 점차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해.”

-네?

“김윤환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

-마, 마약이 있다니까요?

장석민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마약은 중범죄다.

서진의 차량에서 마약이 발견되면 그리고 마약을 투약했다는 결과가 발표되면, 아무리 검사라 해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됐고, 조만간 술 한잔 마시자. 할 말도 있고 하니까, 시간 비워 둬.”

-아, 네.

서진은 통화를 종료하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놈.’

지난번에도 김윤환은 비슷한 함정을 설치했었다.

마약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또 여자와 술?’

계획이 실패했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짐승이라 해도 같은 계획에 휘말리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윤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한다.

발상의 범위가 거기서 거기다.

서진은 기지개를 쭉 켜며 김윤환에 대한 생각을 끝냈다.

지금은 일을 해야 할 때다.

* * *

“김 총장의 조카 맞지?”

다음 날, 서진은 황윤성 의원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황윤성, 깡패 김현봉에게 뒷돈을 받으며 살아왔고 여동수 의원이 타깃으로 정해 준 자.

김현봉을 체포하는 순간부터 저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복잡한 일이 이어져 이제야 얼굴을 보러 왔다.

황윤성 의원은 김영준 총장의 이름을 들먹이며 서진을 맞이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그런데, 어쩐 일인가?”

황윤성 의원이 서진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검사가 찾아왔으면 긴장된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시종일관 여유로운 자세다.

비서가 가져다 준 찻잔을 입에 대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기까지 한다.

하지만 서진은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황윤성 의원의 옆에 선 보좌관을 바라봤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눈빛.

황윤성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나가 있어.”

보좌관이 몸을 틀어 방을 빠져나갔다.

공간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황윤성 의원이 찻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고, 보좌관까지 물리라고 한 것을 보면, 편한 이야기는 아닌가 봐?”

“네,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진의 말에 황윤성 의원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거물처럼 행동한다.

“괜찮으니까, 편히 말해.”

서진은 슬쩍 황윤성 의원의 표정을 살폈다.

놈은 3선 의원.

따르는 초선과 재선 의원도 꽤 많이 거느리고 있다.

놈을 잡으면 알아서 손에 들어올 잔챙이가 대여섯 마리는 추가될 거다.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아.’

이 정도급의 쓰레기는 어지간한 비리에 쓰러지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비난의 칼날이 쇄도해도 꿋꿋이 버틸 능력이 있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 여론을 움직여 상황의 반전을 꾀할 힘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진은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대선 기간.

유일하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비리가 밝혀지면 혼자 죽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놈이 소속된 당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지탄할 거다.

지지율은 떨어지고 해당 당의 대표로 나온 대선 후보도 검증을 받아야 한다.

즉, 놈은 자신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쓰레기를 줍기에는 최적의 시기다.

서진은 최대한 죄송스럽게, 그리고 공손히 입을 열었다.

“……김현봉이라는 놈이 있습니다.”

김현봉이라는 이름이 던져짐과 동시에 황윤성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잠시다.

놈은 얼굴에 철판을 깐 채 눈동자를 굴리다가 오리발을 내밀었다.

“김현봉? 그게, 누구지?”

김현봉의 이름을 정말 처음 듣는 것 같은 말투.

“최근 잡힌 깡패입니다. 그런데 그놈이 의원님을 잡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깡패? 깡패가 날 안다고 하나?”

“네.”

황윤성 의원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소파의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입을 열었다.

“자네, 내가 이 자리에 몇 년을 앉아 있었는지 아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그 이상을 이 자리에 있었어. 내 이름을 팔면 이득이 있는지, 온갖 날파리가 꼬여들어. 내 친척이라며 사기 치는 놈, 친분이 있다며 음주 운전을 회피하려…….”

서진은 황윤성 의원의 헛소리를 더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가방에서 김현봉의 장부를 꺼내 테이블에 던져뒀다.

그러자 황윤성 의원의 눈동자가 장부를 향해 기울어졌다.

이어서 손으로 툭툭 장부를 넘기더니 그 입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

“놈이 내민 장부입니다. 의원님의 성함이 적혀 있더라고요.”

황윤성 의원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입술을 씹으며 입을 연다.

“그 말을 믿는가?”

“당연히 믿지 않죠.”

“그런데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윗선에 보고하기 전에 의원님께 사정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보고? 하! 깡패 새끼의 장부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게 증거가 되나? 여기에 자네의 이름이 있으면 자네도 깡패와 아는 사이인가?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달아오른 얼굴, 무섭게 치켜뜬 눈, 황윤성 의원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아니라는 거죠?”

“아니야.”

“그런데 김현봉이 이용하는 대포통장이 있어요. 그 돈을 빼는 과정에 보좌관의 얼굴이 잡혔어요. 이건 어떻게 설명할…….”

“그럼 보좌관이 받았나 보지. 아, 보좌관이네. 저 새끼가 내 이름을 팔아 돈을 받고 있었어! 어쩐지, 의심스럽다 했더니!”

황윤성 의원은 거침없이 보좌관을 팔고 있다.

자신의 아래서 개처럼 일한 보좌관을 찢어 먹는 중이다.

연기력도 출중하다.

정말 화가 난 것처럼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심지어.

“보좌관!”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보좌관을 호출했다.

보좌관이 다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네, 의원님!”

보좌관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황윤성 의원의 앞에 서서 떨어질 명령을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폭력이다.

황윤성 의원이 보좌관의 얼굴을 향해 곽 티슈를 집어 던졌다.

퍽!

보좌관은 무슨 상황인지 모른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다.

황윤성 의원이 쩍, 쩍 소리가 날 정도로 보좌관의 뺨을 후려치며 악을 질렀다.

“이 개새끼! 내 이름을 팔아 돈을 처먹어!”

보좌관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시뻘겋게 새겨졌다.

하지만 황윤성 의원은 계속 손을 휘두른다.

짝! 짝!

보좌관이 휘청거릴 때, 황윤성 의원이 장부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

“이 미친 새끼야! 김현봉이란 새끼한테 돈 먹었다며? 변명할 생각 하지 마. 네 얼굴이 똑똑히 찍혔다니까!”

보좌관은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개처럼 일한 과정의 결말.

토사구팽.

하지만 개는 주인을 물 수 없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가족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두들겨 대는 방망이에 힘없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죄, 죄송합니다.”

서진은 힐끗 황윤성 의원의 보좌관,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을 눈에 담았다.

분노, 배신감 그리고 검찰에 끌려 갈 수도 있다는 초조함.

권력에 길들여진 황윤성 의원을 손에 쥐는 것보다 저 보좌관을 얻는 게 더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보좌관은 모시는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한다.

의원과 연결된 다른 자들의 비리도 손에 쥐고 있다.

‘황윤성 의원을 잡으면…….’

딸려 올 잔챙이가 대여섯 마리.

하지만 보좌관을 잡으면 황윤성 의원 외에 대어를 낚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진의 머릿속에 국회의원을 잡으려면 그 보좌관부터 털라는 말이 스쳤다.

“제가 분란을 일으킨 것 같네요.”

서진의 목소리와 동시에 황윤성 의원이 천천히 시선을 틀어 서진을 향했다.

황윤성 의원의 눈이 반짝이고 있다.

벼랑 끝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본 거다.

서진이 장부를 가방에 넣으며 계속 말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의원님을 협박하거나 검찰에 출석 요청을 하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으니까 조심하시란 말을 드리려고 했는데, 분위기만 망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황윤성 의원이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민생에 귀를 기울이느라 집안 관리를 못했어. 보좌관은 내가 엄하게 가르치지.”

서진은 보좌관의 턱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 *

황윤성 의원의 사무실에서 나온 서진은 옥상의 흡연실에 서 있었다.

난간을 통해 내려다본 도심은 복잡하기만 하다.

끼이익.

옥상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틀어 뒤를 보니 보좌관이 들어오고 있다.

맞았던 뺨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흡연실로 다가오던 보좌관은 서진이 서 있는 것을 확인 후 깜짝 놀랐다.

“……아직 안 가셨습니까?”

“네, 보좌관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서진의 옆에 선 보좌관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수사를 덮어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괜히 애꿎은 사람 조사할 필요는 없잖아요?”

보좌관의 입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흘렀다.

지금 한마디로 정리된 거다.

서진은 황윤성 의원의 죄를 알고 있지만 보좌관을 위해 사건을 덮은 거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

“보좌관 생활, 계속하실 겁니까?”

“해야죠.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알아보니까 경력이 꽤 되시던데, 중앙 정치에 도전할 수도 있잖아요?”

“의원님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벗어난다 해도 도망친 노비에게 공천을 줄 정당도 없고요.”

“방법이 있으면요?”

보좌관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낄낄 웃었다.

서진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원님의 뒤통수를 치라고요? 3선 의원이에요. 10년 이상 이 바닥에서 뒹군 구렁이라고요.”

“…….”

“건방진 말씀 드려도 될까요? 검찰에 끌려가는 정치인들 있죠? 그 사람들은 비리가 있어서 잡혀가는 게 아니에요. 힘이 없어서 잡혀가는 거죠.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잡을 수 없어요.”

“…….”

“황윤성 의원님은 힘이 있어요. 검사님이 날고뛰어도, 제가 뒤통수를 쳐도 불가능합니다.”

서민을 잡는 것은 쉽다.

죄의 증거를 찾아 들이밀면 끝이다.

아니, 죄가 없어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를 잡는 법은 단 두 가지가 전부다.

권력자의 힘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그 권력자보다 더한 힘을 손에 쥐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의원님을 잡을 수 없죠.”

서진이 수긍하자 보좌관의 입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조용히 담배를 피울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대선을 앞둔 상황이잖아요. 황윤성 의원님의 비리, 여당에 가져다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네?”

“어린애들을 꼬드겨 성매매에 앞장 선 김현봉. 그런 놈의 돈을 받았다는 귀중한 증거. 그걸 여당의 손에 넘겨주면, 그때도 도망친 노비로 생각할까요? 아니면, 열사로 대접할까요? 궁금하네요.”

“……!”

보좌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타들어 가는 담배가 길게 재를 늘어뜨리는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서진을 보고 있다.

대선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 찢어발기는 악마들이 날뛰는 시기.

황윤성 의원을 벗어나 여당의 품에 안겨도 비난할 사람은 없다.

서진은 보좌관이 품고 있는 갈등의 눈빛을 보며 쐐기를 박았다.

“아시겠지만, 황윤성 의원님의 아래서 공천을 받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서진이 손에 든 서류 가방을 들어 올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생각 정리되면 찾아오세요. 여당에 넘길 선물은 제가 갖고 있을게요.”

보좌관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하다.

눈에는 야망이 솟구쳤고 황윤성 의원과의 신뢰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하지만 모시던 의원의 목을 친다는 죄책감을 덜어 낼 고민의 시간은 필요한 법.

서진은 어떤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몸을 틀어 보좌관의 옆을 스치며 옥상을 벗어났다.

* * *

서진은 차에 올랐다. 사무실로 향하기 위해 시동을 거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유전자 감식 센터입니다.

이틀이 걸린다고 했던 친자 확인 결과가 곧바로 나왔다.

서진이 조수석에 놓인 모자를 슥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지금 갈게요.”

* * *

커피숍.

서진이 모자를 쓴 후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만났던 직원이 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셨어요?”

서진을 알아본 직원이 반갑게 인사 후 누런 서류 봉투를 건넸다.

“몰래 처리하느라, 회사로 부를 수가 없어서요.”

“괜찮습니다. 빨리 처리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하네요.”

그 말이 끝이었다.

받을 것을 받은 이상 직원과 더 할 말은 없었다.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한 후 커피숍을 빠져나갔고 서진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류 봉투를 손에 들었다.

서진의 표정은 굳어 있다.

웬만한 일에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서진인데, 이게 뭐라고 긴장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다.

예상대로 김윤환이 김영준 총장의 자식이 아니었을 경우.

김영준 총장은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알려야 할까.

괜히 뒷조사를 했다며 의심받는 것은 아닐까.

알고 있다면 어떻게 알려야 할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 가던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지금은 확인이 우선이다.

생각은 그 뒤에 할 일.

서진이 봉투를 열어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미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