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9화 (189/250)

<너의 과거는 (2)>

“잠깐만...”

김유미가 몸을 일으킨 후 2층으로 올라가 김윤환의 바지를 들고 내려왔다.

서진이 김윤환의 바지를 건네받으며 입을 열었다.

“욕실도 좀 쓸 수 있을까?”

김유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서진은 김윤환의 바지를 손에 쥔 채 주방을 벗어났다.

거실의 끝에서 김영준 총장과 전화 통화하는 작은어머니가 보인다.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

작은어머니의 표정이 심각하다. 간간히 욕설도 들리는 것을 보니 여전히 심각하게 싸우는 모양이다.

서진은 슬쩍 웃은 후 계단을 걸어 2층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

‘좋아.’

김유미의 등장으로 계획이 어그러질 뻔 했지만, 지금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이제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그렇게 서진은 욕실의 앞에 도착했다.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딸칵.’ 문을 잠근 후 샤워기를 틀었다.

물줄기가 뻗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서진의 시선이 칫솔걸이로 옮겨졌다.

칫솔은 4개.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 그리고 김윤환과 김유미의 것.

하지만 상관없다.

아니, 망설일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들고 가면 된다.

‘드디어...’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칫솔을 얻게 되었다.

이제 그동안 의문으로 품고 있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김영준 총장과 김윤환의 관계...’

서진은 김윤환이 김영준 총장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첫 의문의 시작은 김영준 총장의 태도였다.

아들을 대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냉랭한 모습.

그 차가운 눈빛.

물론 김영준 총장이 나약한 성격의 김윤환을 강하게 키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심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심지어 김윤환은 김영준 총장과 닮지 않았고 그 성격조차 완벽히 다르다.

‘게다가...’

작은어머니의 과거는 그 의심을 더 했다.

작은어머니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김영준 총장과 결혼했다.

그 날카로운 성격에 김영준 총장과의 결혼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난리를 피웠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아직은 가설이다.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도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진의 머릿속에 엄선주가 했던 말이 스쳤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일 것 같아? 이미 똑같은 짓을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어. 그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있는데, 가르쳐 줄까? 언니가 형부를 만나기 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어.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엄선주는 작은어머니가 과거의 남자를 죽였다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엄선주의 말을 100% 신용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상황을 되짚어 생각해야 할지도 몰라.’

서진의 시선이 다시 칫솔로 틀어졌다.

시작될 친자 검사, 그 안에 숨어 있던 진실의 작은 조각이 드러날 거다.

서진이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에 수건 없을 거예요. 앞에 수건 내려 둘 게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였다.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애초에 아주머니를 부르려 했는데, 이렇게 올라와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서진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잠시 만요.”

1층으로 내려가려다 문 앞에서 멈칫 거리는 아주머니의 기척이 느껴졌다.

서진이 문을 열고 아주머니와 마주했다.

그리고 바닥에 던져 둔 칫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서 어쩌죠? 씻다가 미끄러졌는데, 실수로 칫솔걸이를 쳤거든요. 그런데, 떨어지면서 변기에 빠지기도 했어요. 바꿔 주시겠어요?”

“네, 바꿔 둘게요.”

“아뇨, 가져다주세요. 제가 걸어 둘 게요.”

아주머니는 의심 없이 새 칫솔을 들고 욕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진은 칫솔걸이에 새 칫솔을 꽂는 것으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했다.

“조금 짧네?”

서진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던 김유미가 서진의 바지 기장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서진이 김윤환보다 조금 더 키가 크다.

허리는 맞아도 밑단이 맞지 않는다.

“뭐, 밤인데. 누가 보겠어?”

“바지 넣어 갈 쇼핑백 하나 꺼내줄까?”

“그럼, 좋고.”

김유미가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서진이 바지를 쇼핑백에 넣고 몸을 일으킬 동안, 그리고 집을 벗어나기 위해 현관으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작은어머니는 여전히 통화 중이다.

날카로운 목소리.

떨리는 손.

이어지는 히스테리.

김유미도 서진을 배웅하며 거실의 끝에서 김영준 총장과 싸우는 작은어머니를 봤다.

김유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떨 때 보면 병원이 더 편하다니까.”

***

“가족 확인이요?”

“네.”

친자 확인을 전문으로 하는 유전자 감식 센터.

국과수에도 유전자 감식 센터가 있지만 서진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다.

찾아가는 순간 김영준 총장의 귀에 흘러갈 가능성이 미약하지만 존재한다.

대학 병원도 마찬가지.

어디에 김영준 총장의 눈과 귀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이곳.

그런데, 당직하는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해가 떨어진 시간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나타난 남자.

다짜고짜 유전자 감식을 해달라는 요구.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 당장은 어렵고요. 시험 의뢰서하고 동의 서류가 필요하니...”

“서류는 번거로우니까, 이걸로 대신합시다.”

서진이 흰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져 뒀다.

직원의 시선이 봉투로 틀어진다.

두툼한 게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슬쩍 보이는 노란 색, 신사임당이다.

직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망설인다.

“그래도...”

“그럼, 다른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있는 곳은 많다.

이곳이 아니라도 돈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줄을 서기 마련이다.

서진이 가차 없이 일어서려 하자 직원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어디에 쓰시려는 건데요?”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이 맞는지 확인해 보려 하는 거예요. 내가 부모님의 친자가 아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키워 주신 분이고 지금껏 받은 은혜를 저버릴 짐승은 아니니까요. 단지, 확인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누구인지 그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서진이 적당한 핑계를 댄 후 흰 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다른 곳을 찾아 가겠다는 뜻을 직원에게 보이는 거다.

직원의 눈에는 이미 탐욕이 들어섰다.

서진의 행동은 그 고민을 짧게 만들어 줄 기폭제일 뿐.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자, 잠시 만요.”

직원의 목소리가 다급히 들리며 봉투를 쥐려던 서진의 손이 멎었다.

천천히 시선을 틀어 직원을 향하자 직원이 민망하게 웃는다.

“선생님의 사정이 안타까워서요. 제가 조용히 해드릴까요? 다른 곳에 가셔도 상관은 없지만, 요즘 법이 무서워서 쉽게 해 줄 곳은 없을 거예요.”

“얼마나 걸리죠?”

“검사는 3시간이면 끝나는데요. 요즘 친자 확인 요청이 많아서 밀린 게 좀 있고 남 몰래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틀. 이틀 안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진이 봉투를 향했던 손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서진은 몸을 틀어 건물을 벗어났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차에 오르는 서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

김윤환은 룸살롱에 앉아 장석민을 만나고 있었다.

여자는 없다.

둘이서 술을 주고받을 뿐이다.

그런데, 장석민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마약?”

장석민의 말에 김윤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잖아? 김서진 그 새끼가, 나한테 미끼를 던지고 가짜 범인을 만들게 했다고. 엿 먹은 만큼 돌려 주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하더라.”

“잠깐만, 똑같이 가짜 범인 준비해서 병신 만들려고 했던 거 아니야?”

김윤환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그 새끼 눈치가 보통이 아니야.”

김윤환이 테이블 위에 놓인 흰 가루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꿨어.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간단한 게 최고잖아? 네가 해 줄 일은...”

김윤환이 장석민을 향해 말을 전했다.

조만간 서진을 불러 다시 술 한잔 하자.

그때, 독한 술을 준비해서 이 약을 타라.

여자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약에 취해 여자의 품에 안겨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두면 빼도 박도 못할 테니까.

“그리고 발렛한다는 명분으로 차키를 뺏어. 그 다음에 그놈 차에 이 약을 숨겨. 의자의 틈이나 매트의 아래, 그런 곳이 좋겠네.”

“.....!”

“며칠 후, 난 신고를 할 테고, 김서진은 약쟁이 검사가 되어 잡히겠지.”

“.....!”

“그 새끼는 끝이야.”

장석민은 입을 열지 못했다.

김윤환의 눈빛이 시퍼렇다.

깡패 출신의 장석민도 두려워할 정도의 눈빛.

김윤환은 서진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부탁하자.”

김윤환은 낄낄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댔다.

머릿속에 서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서진...’

김윤환은 생각했다.

지금 서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

김영준 총장의 총애, 다른 검사들의 인정, 스타 검사라는 명함.

그 모든 것은 원래 김윤환 자신이 누려야 했을 명예다.

하지만 서진으로 인해 무너졌다. 아니, 빼앗겼다.

‘그 개새끼...’

김윤환이 손에 쥔 술잔을 부서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

손을 바르르 떨며 다짐했다.

반드시 서진에게 지옥을 보여 주겠다고.

빼앗겼던 것을 되찾을 수 없다면 가질 수 없도록 망가뜨리겠다고.

그리고 서진이 가장 아파할 것, 재정 건설을 손에 얻겠다고.

김윤환이 천천히 고개를 틀어 장석민을 향했다.

“축의금 필요 없으니까, 내 결혼 선물로 김서진의 구속 영장을 던져 줘.”

“......”

“이번에는 실수가 있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제발 신경 좀 써라. 적어도 고등학교는 졸업한 애들로 배치하고. 오케이?”

김윤환이 귀국했을 때, 여자들을 불러 서진의 성매매 현장을 찍으려 했었다.

그 파일은 서진이 가져갔지만 김윤환은 장석민의 부하가 실수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실수 없이 해달라는 말을 반복해서 주입하고 있다.

“알았어.”

장석민이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에 뿌려진 흰 가루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 김서진이 루트 몇 개 끊어 버려서 구하기 힘들 텐데.”

“형이 아메리카 출신이잖아. 부모 잘 만나 도피 유학한 애들이 거기서 뭐하겠냐? 여자 만나고 약 처먹고 잠자는 거지. 그 새끼들한테 약국하는 애들 연락처 좀 땄어. 됐고. 이번에는 실수 하지 마.”

김윤환은 또 한번 실수를 강조하며 마담을 불렀다.

이제 장석민과 할 이야기는 끝났다.

아가씨들을 불러 질펀하게 놀면 된다.

곧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술을 마시고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술이 오가며 김윤환의 혀는 꼬여갔고 테이블에 돈다발을 던져 뒀다.

“오늘 이 오빠를 즐겁게 해 주는 애한테, 저 돈 다 준다.”

“정말?”

여자들이 꺄!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하지만 장석민은 웃지 않았다.

김윤환에게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잠깐, 전화가 와서.”

김윤환이 혀를 끌끌 찼다.

“새끼, 분위기 파악을 못해요. 어서 다녀 와.”

장석민은 룸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복도로 나서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

그 시각.

서진은 사무실에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허리를 펴고 벽시계를 확인하자 새벽 1시다.

‘아이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쌓인 기록물이 줄어들었다 싶으면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건이 줄지어 들어온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의 집에 갔다가 유전자 감식 센터까지 들렀으니, 오늘도 철야를 해야 할 것 같다.

멍한 눈으로 사무실 한 쪽에 접힌 간이침대를 바라볼 때였다.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을 울렸다.

장석민이다.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검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진의 눈이 반짝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