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4화 (184/250)

<동아줄 (4)>

작은어머니는 엄선주 서로를 살벌한 눈동자로 쏘아봤다.

자매라고 볼 수 없는 시선.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바텐더는 흉흉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마른침을 삼키다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VIP 손님들의 언성이 높아지면 자리를 피하는 게 이곳의 룰이다.

그리고 적막해진 공간에서 엄선주의 목소리가 태연히 울렸다.

“……체포한다고? 웃기네.”

작은어머니는 한숨을 내뱉을 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딱 봐도 당황했고 난처한 게 느껴진다.

작은어머니는 서진에게 엄선주를 체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엄선주에게는 서진을 죽여 달라고 청부했다.

둘 중 하나가 다치기를 바라며 세운 계획이 이렇게 틀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작은어머니가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중에……. 지금 급한 것은 윤환이가…….”

“윤환이? 지금도 윤환이야?”

엄선주의 입꼬리가 틀어졌다.

그리고 작은어머니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윤환이 핑계 대지 마. 당황하지도 말고. 애초에 언니는 그런 사람이잖아.”

“야…….”

엄선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작은어머니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서진이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언니가 조카 죽이려 했다는 말, 비밀로 해 줄게.”

“……!”

“물론, 앞으로 언니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엄선주는 서진의 작은어머니와 싸우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이용해 개목걸이를 채우려 한다.

작은어머니의 남편은 김영준 총장, 언제든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사채시장이라는 이름의 험난한 곳을 살아온 엄선주에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언니를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엄선주가 천천히 상체를 바로 하며 작은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싱긋 웃는다.

“내 말 이해했지? 우리는 자매잖아.”

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지켜봤다.

두 사람의 행동은 서진의 예상과 달랐다.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머리채를 잡고 싸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냉랭할 정도로 차분하다.

오히려 불똥은 서진에게 튀고 있었다.

엄선주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지난번에는 기분 좋게 커피를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니네요? 나를 체포할 수 있다고요? 아니, 체포 영장이 나왔다고 그랬나? 무슨 죄로?”

“뭐, 이것저것요.”

“하!”

서진의 눈빛에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끝까지 엄선주의 손목에 수갑을 선물해 주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그 눈빛을 마주하던 엄선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다시 작은어머니에게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연다.

“형부한테 전화해.”

“…….”

“전화하라고!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

“싫어? 같이 죽고 싶어? 자매끼리 오순도순 교도소에 들어가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그러고 싶어? 설마, 옛날처럼 사이좋은 자매 놀이를 하고 싶은 거야? 그게 그리워? 내일 아침에 언니 이름이 언론에 오르게 해 줄까? 그게 싫으면 전화해!”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작은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엄선주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지만 명분은 엄선주에게 있다.

엄선주가 입을 뻥끗하면 지금보다 더 난처해질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라야 한다.

작은어머니가 휴대폰을 손에 쥘 때였다.

“저기…….”

서진이 입을 열었다.

엄선주와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서진을 향해 홱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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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 엄선주를 향해 한 발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말 다 했으면 가죠. 영장도 나왔는데, 시간 끌 필요 없잖아요?”

엄선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서진을 쏘아볼 뿐이다.

김영준 총장까지 거론했는데, 서진은 여전히 망설이지 않는다.

시간 끌 필요 없이 검찰로 가자고 말하고 있다.

“……지금 뭐라고 그랬니?”

급기야 엄선주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서진은 상관하지 않고 또박또박 일러 줬다.

“가자고요, 검찰로.”

서진은 힐끗 작은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작은어머니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처음 그 자리에 서 있다.

성격대로라면 길길이 날뛰어도 모자랄 텐데,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뿐이다.

서진은 작은어머니 역시 엄선주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어머니의 편에 서야 한다.

위급할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

작은어머니에게 환심을 산다는 것은 앞으로의 계획에 꽤 큰 이득이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엄선주에게 틀어졌다.

엄선주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다.

“미쳤구나? 일개 검사가 나를 잡아? 내가 누군…….”

“그쪽이 누구라 해도 상관없어요. 죄를 지었으면 교도소에 가는 게 법이잖아요?”

서진이 말을 뚝 끊자 엄선주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목숨이 여러 개 있나 봐?”

서진은 정말 황당한 눈으로 엄선주를 바라봤다.

저런 말을 태연하게 내뱉는 사람은 흔치 않다.

권력자도 깡패도, 체포 영장을 들고 온 검사 앞에서 협박을 내뱉지 않는다.

엄선주는 말 그대로 천민자본주의, 돈이 있으면 전부라는 생각,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서진이 끌끌 웃으며 엄선주를 향해 다가섰다.

“미치겠네…… 내 목숨까지 걱정해 주시고. 이거,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나요?”

“고마우면, 여기서 멈춰. 진짜 다치기 전에.”

“그런데 어떤 혐의로 체포 영장이 떨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엄선주는 서진의 목소리가 불길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서진이 계속 입을 열었다.

“김현봉 대표라고 있는데…….”

뜬금없이 김현봉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엄선주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자신감에 차 있던 눈동자가 식겁해진다.

그리고 서진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누군지 알죠? 그 사람, 잡혔어요.”

“자, 잡혔다고?”

“중요한 것은 그놈이 잡혔다는 게 아니라, 체포되는 순간에 그놈이 가지고 있던 거예요.”

엄선주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김현봉이 가지고 있던 게 무엇인지 예상되는지 얼굴에서는 핏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장.부.”

“……!”

“그런데 그 장부에 들어 있는 내용은 청부네요. 어떤 청부인지는 그쪽이 잘 알 테고. 그러니까,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작은 그쪽이 했으니까. 검사를 건드리려 한 죄가 가볍지는 않을 겁니다.”

“……!”

“그리고 반말하지 마세요. 작은어머니 때문에 참고 있는 거니까.”

엄선주는 부릅뜬 눈으로 서진을 살폈다.

직업이 검사라고 하지만 세상살이는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잘생긴 놈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서진의 눈빛은 소름 끼칠 정도로 매섭다.

서진에게서 김영준 총장의 모습이 겹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선주는 억지로 미소를 그렸다.

엄선주는 닳고 닳은 사채업자, 그 험한 생활 끝에 알게 된 게 있다.

벼랑 끝에 몰릴수록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그리고 엄선주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서진의 작은어머니, 그 뒤에 있을 김영준 총장이다.

김영준 총장이 나서면 서진 따위는 언제든 치워 버릴 수 있다.

“……너 정말 겁이 없구나?”

하지만 서진에게 엄선주의 허세가 통할 리 없다.

서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겁은 그쪽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하자는 거야?”

“말했잖아요, 시작은 그쪽이 했다고. 그리고 난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합니다, 누구 하나 뒈질 때까지.”

엄선주가 입술을 씹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언니, 지금부터 본 것 모른 척해.”

“뭐?”

“이 미친 새끼가 날 잡아다다잖아? 내가 가만히 잡혀가는 꼴을 보고 싶어? 그게 싫으면 형부한테 전화하든가!”

엄선주의 휴대폰에는 자신의 부하 직원 목록이 떠올랐다.

작은어머니 그리고 서진에게 경고하는 거다.

멈추지 않으면 이곳에서 사달이 날 거라고.

분명 협박일 뿐이지만 작은어머니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졌다.

엄선주의 눈빛은 말하고 있다.

‘어서 형부한테 전화해! 살인 청부를 한 게 언니라는 걸 밝히기 전에!’

엄선주는 필사적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작은어머니에게 느껴졌다.

“할게, 한다고!”

작은어머니가 비명처럼 외칠 때였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틀어졌다.

그곳에 김영준 총장이 서 있었다.

소란스러웠던 공간은 얼음이 쏟아진 것처럼 적막해졌다.

김영준 총장은 무심한 눈으로 엄선주를 바라본다.

엄선주는 활짝 웃었다.

이곳에 어떻게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겁 없이 날뛰는 서진의 고삐를 잡아 줄 구세주가 등장한 거다.

“형부!”

그런데 김영준 총장의 눈빛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감정 없는 눈동자.

엄선주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입을 열어 본다.

“얘 좀 말려 줘요. 뭔가 오해가 있는지 나를…….”

김영준 총장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엄선주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섰다.

그리고 엄선주의 앞에 서서 천천히 시계를 풀어내더니 서진에게 건넨다.

그 뒤의 일은 찰나였다.

쩍!

김영준 총장이 엄선주의 따귀를 때렸다.

엄선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저 당황한 눈동자를 움직여 김영준 총장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다.

왜 맞았는지, 왜 때렸는지.

“혀, 형부…….”

“감히, 내 아내와 조카를 건드려?”

“형부!”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엄선주와 눈을 마주쳤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너희 집안은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서늘했다.

저승사자 같은 눈으로 엄선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엄선주는 발악한다.

“형부! 그게 아니라!”

“경고했어. 네 남편부터 시작할 거야. 다음은 네 아들, 그다음은 딸, 그리고 너희 일가친척. 원한다면 계속 떠들어.”

상대는 검찰총장, 그녀는 사채 집안.

김영준 총장의 한마디면 쑥대밭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엄선주는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입술을 움직이려 한다.

“내, 내가 입을 열면…… 형부는…….”

순간, 김영준 총장이 엄선주를 향해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네가 아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지껄이는 것을 내가 못 막을 것 같아? 이해했으면 입 닥치고 수사나 받아. 너희 집의 기둥뿌리까지 뽑히기 전에.”

엄선주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이어 문이 열리고 대검찰청의 검사들이 빠르게 들어왔다.

모두 김영준 총장의 심복이다.

엄선주가 어떤 말을 지껄여도 들은 척하지 않을 자들.

그들이 엄선주의 앞에 섰다.

“가시죠.”

엄선주는 영혼이 빠져나간 눈동자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비척비척 끌려 나갔다.

서진을 스치던 엄선주가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결국 입을 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엄선주와 검사들이 떠난 바는 적막했다.

김영준 총장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참 동안 연기를 내뱉으며 생각에 빠져 있던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서진에게 닿았다.

“내일 이야기하자. 수습하고 집에 들어가.”

“네.”

김영준 총장을 부른 것은 서진이다.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도록 유도한 거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은 자신의 아내와 처제의 응어리를 봤다.

그 덕에 서진은 엄선주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미움받을 일이 사라졌다.

오히려 신뢰를 얻었다.

김영준 총장이 자신의 아내를 향해 다가섰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난리가 났을 때 조용히 집에 들어갈 거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김영준 총장을 노려본다.

광기 어린 눈빛.

“이소희, 걔 뭐야? 첩의 자식 맞아?”

“여보!”

“맞냐고 물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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