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 (3)>
김현봉은 실핏줄이 죽죽 그어진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뒤로 물러서며 도망가려 했지만 무리다.
모든 곳에 수사관이 서 있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그들은 손에 몽둥이를 든 채 살벌한 눈동자로 김현봉을 쏘아봤다.
‘젠장…….’
김현봉은 이곳이 끝이라는 것을 느꼈다.
반항해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다.
김현봉의 얼굴이 처참하게 변하며 머릿속에서는 단 한마디가 반복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조직원들도 모른다.
밀항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 그래서 철저히 숨어 이동했다.
휴대폰을 택시에 던져 두어 혼선을 주기도 했고 검찰이 나타난 곳에 부하들을 보내 시간까지 끌었다.
그런데 이곳에 서진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 새끼가 찔렀구나!’
김현봉의 뇌리에 떠오른 사람은 하나, 살인 청부업자 진용식.
그놈밖에 없다. 아니, 그놈이 확실하다.
그놈이 아니면 서진이 이곳에 나타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현봉의 눈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몸은 파들파들 떨려 왔다.
그리고 서진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흘렀다.
“피워. 나름 배려해 주는 거니까.”
서진이 다시 라이터를 튕기며 김현봉의 앞으로 내밀었다.
김현봉은 라이터의 불꽃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담배를 빨아들였다.
“……하나만 알고 싶습니다. 누가 불었습니까?”
김현봉의 질문에 서진이 한심하다는 듯 웃었다.
“왜? 누가 불지 않으면 안 잡힐 줄 알았어?”
“죽을 때 죽더라도 나 죽인 사람은 알고 싶습니다. 누굽니까?”
서진은 물끄러미 김현봉의 표정을 살폈다.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이곳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놈은 오해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켰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을 더하기 위해 서진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럴 때는 미끼를 던져 주는 게 예의다.
서진이 김현봉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물건도 확인하지 않고 선금을 넣으면 안 돼.”
김현봉의 주먹이 으스러질 정도로 쥐였고 동시에 청부업자 진용식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낄낄 웃으며 농락하듯 던지던 그 목소리.
“미안한데, 선금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어. 배가 한두 푼이야? 배에서 내린 후에 튀어 버리면?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새끼들이 워낙 많아서 믿을 수 있어야지.”
김현봉은 지금 당장이라도 진용식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서진이 읽었다.
김현봉을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복수해 줄까? 내가 연락을 받기는 했는데, 그놈이 숨어 있는 곳은 모르거든. 원한다면, 그놈도 교도소로 보내 줄 수 있는데. 어때?”
“……그러고 싶은데, 몰라요. 이곳으로 온다는 이야기까지만 나눠서요.”
“아…… 여기로 온다고 그랬었어?”
서진의 말투가 뭔가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담배 연기를 내뱉던 김현봉이 조심스레 서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서진의 얼굴, 짓궂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뭔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서, 설마? 설마!”
“머리를 좀 더 쓰지 그랬어? 공익 제보자를 발설하는 검사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김현봉은 털이 뻣뻣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놀아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하지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서진은 듣고 싶은 것을 들었고 김현봉은 배신자가 되었다.
놈의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하고 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씨바알!”
1/17
놈은 서진의 옷깃을 쥐려 했다.
하지만 실패, 놈의 손은 허우적대며 허공을 쥐는 게 전부였다.
어느새 다가온 수사관들이 그를 제압했고 억센 손으로 질질 끌어냈기 때문이다.
“놔! 놓으라고! 놔!”
김현봉은 번뜩거리는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끝까지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은 초라했다.
“놔아!”
김현봉은 수사관들의 차에 끌려 지검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본 후 서진과 장지혁 검사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향하는 곳은 김현봉이 묵고 있던 방, 노리는 것은 그곳에 있을 놈의 장부.
저런 놈들은 돈보다 장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장부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그 장부는 방에 있을 게 분명하다.
딸칵, 소리와 함께 놈이 묵고 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과자 봉지와 소주, 침대 아래에 놓인 보스턴 가방이 보인다.
서진은 거침없이 놈의 가방을 열었다.
예상대로 몇 벌의 옷과 가득 담긴 노트가 담겨 있다.
서진이 장부 하나를 꺼내 착착 넘겼다.
적힌 것은 뇌물과 성 상납 그리고 투자자들의 명단과 각종 청부.
그중에 서진이 찾는 이름은 단 하나, 엄선주의 이름.
이제 엄선주의 비명 소리를 들을 차례다.
* * *
호텔을 벗어난 서진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50분.’
청부업자 진용식을 잡는 것은 장지혁 검사에게 맡겨 뒀다.
진용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김현봉을 밀항시키기 위해 호텔에 들어올 거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수사관들에게 붙잡힐 게 분명하다.
서진은 그 모습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엄선주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찾아낸 장부에는 엄선주의 투자금과 그것을 빌미로 놈들에게 험한 일을 지시한 정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차고 넘치는 의혹.
깡패를 타고 올라가면 엄선주의 발목을 잡아챌 수 있다.
그 준비가 우선이다.
서진이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서울로 내비게이션을 맞출 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작은어머니.
서진은 곧장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작은어머니.”
-너…… 이소희라는 애 알고 있지?
“네?”
-알아, 몰라!
작은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분기가 섞여 있다.
이유는 충분히 예상된다.
엄선주에게 이소희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서진은 모른 척 되물었다.
“이소희요?”
-동남군 그리고 강원지검에 같이 있던 거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 왜……?”
* * *
서진의 작은어머니가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충혈된 눈으로 맞은편에 앉은 엄선주를 쏘아봤다.
“서진이가 이쪽으로 온다네.”
“나도 여기에 있다는 말은 왜 안 했어?”
“오면 알 텐데, 굳이 할 필요가 있나?”
“그래도 조카는 조카인가 봐? 죽여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소희가 궁금하니까 쪼르르 불러?”
작은어머니는 엄선주의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곳은 강남의 한 바.
비록 룸에 들어와 있다고 하지만 소란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곤란하다.
그런 작은어머니의 심정을 아는지 엄선주가 술잔을 빙글 돌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확인할 필요 없다니까?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했어. 우리 윤환이가 결혼한다는 데, 내가 헛소리 듣고 왔을 것 같아? 이소희라는 애, 미혼모의 딸이야. 아비가 증권회사를 운영한다고? 지랄.”
“…….”
“그 애 엄마,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했거든? 그런데 직업도 없는 년이 돈 부족한 것 없이 애를 키웠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첩이야. 확실해.”
“…….”
“형부는 어디서 그런 거지 같은 것을 데리고 왔대? 윤환이를 안 좋아하나?”
작은어머니는 치아가 으깨지도록 입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질수록 엄선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 * *
그 시각, 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던 서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방금 작은어머니와의 통화,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음성 뒤로 엄선주의 목소리가 흐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
‘고맙게도…….’
서진이 고민하는 것은 엄선주를 잡은 뒤에 일어날 일이었다.
엄선주는 김영준 총장의 처제.
그녀를 잡으면, 그리고 시작부터 소문을 잡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올 게 분명하다.
“검찰총장의 처제가 사채업자였대.”
“그런데 검찰에서 대대적으로 사채를 단속한 거야?”
“와…… 믿을 놈 없네.”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어? 다 똑같은 놈이야.”
“씨발, 제 집 단속이나 하지. 퉤퉤퉤.”
지금 김영준 총장은 대선 주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엄선주가 터지면 지지율은 폭락할 게 분명하다.
총장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불러 줄 정당이 없을 수도 있다.
김영준 총장은 그 원흉을 서진의 탓으로 돌리며 소문을 수습하기 위해 애쓸 게 분명하다.
어쩌면 서진의 아버지까지 김영준 총장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놈은 아버지의 회사 재정건설을 박살 내며 말할 거다.
“제 형이라 해도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
엄선주의 사건이 나비효과가 되어 서진과 사생결단의 일전을 벌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직은 아니야.’
서진은 김영준 총장과 싸우는 것을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해 봤다.
결과는 언제나 처참하다.
그 때문에 서진은 계속해서 다짐하고 있다.
아직은 숨어 있을 때이며 조금 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작은어머니가 엄선주와 함께 있다.
‘드디어…….’
서진의 눈앞에 탈출구가 보였다.
그 집안싸움에서 새우 등 터지지 않을 방법.
오히려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은 휴대폰을 들었다.
발신 번호는 김영준 총장이다.
“작은아버지, 서진입니다. 조금 난처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진의 목소리는 힘이 빠진 것처럼 울렸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 *
잠시 후, 강남의 한 바.
서진이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을 걸어 올라 도착한 곳은 2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침침한 공간에 조용한 음악이 퍼지고 있다.
보이는 손님은 없고 바텐더가 앉아 인사를 전한다.
서진은 일행이 있다는 말을 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작은어머니, 도착했어요.”
말과 동시에 구석에 있는 룸의 문이 벌컥 열렸고 작은어머니가 밖으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서진의 앞에 섰다.
“물어볼 게 있어.”
인사도 하기 전에 던지는 질문.
작은어머니는 마음이 급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소희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거다.
서진은 작은어머니를 살폈다.
몸에서 알코올 냄새가 살짝 풍겼지만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그저 분노만 가득하다.
취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이소희라는 애랑 친해? 친하겠지? 동남군에서 강원지검까지 같이 있었으니까.”
“작은어머니, 소희를 왜 물어보시는지 모르지만, 저부터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친하냐고!”
“잠시만요. 급한 일이에요.”
작은어머니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화를 식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먼저 말해.”
서진은 시선을 빠르게 움직였다.
향한 곳은 작은어머니가 나온 룸의 내부.
문이 살짝 열려 있고 여성의 치맛자락과 하이힐이 보인다.
엄선주가 있다는 뜻.
준비는 끝났다.
지금부터 가정불화의 시작이다.
* * *
룸에 앉아 있던 엄선주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언니의 성격에 다짜고짜 질문을 던질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서진이 먼저 할 말이 있다며 언니의 질문을 막았다.
엄선주는 서진이 어떤 말을 할까 기대하며 술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빙긋이 웃음을 흘렸다.
‘잘생긴 총각, 공부만 열심히 했나 보네. 사람 볼 줄을 몰라.’
엄선주가 볼 때, 서진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의 호출에 쪼르르 불려 나온 거다.
게다가 실실 웃으며 이런저런 말까지 전하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멍청해.’
그런데 이어진 서진의 목소리에 엄선주의 눈이 부릅떠졌다.
분명 속삭이는 말투, 하지만 엄선주의 귀에는 또렷이 박힌 그 말.
“그때 작은어머니가 말씀하신 엄선주라는 분요, 지금쯤 체포 영장 떨어졌…….”
엄선주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거칠게 문을 젖히며 밖으로 나섰다.
어두침침한 공간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자신의 언니가 서진의 입을 틀어막았고 서진은 놀란 눈으로 엄선주를 보고 있다.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지금 상황을 보고 엄선주는 확실히 깨달았다.
서진의 말은 진실이다.
언니는 자신을 교도소에 집어넣으려 한다.
“하!”
엄선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미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서진의 앞으로 다가섰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담은 채로.
그렇게 엄선주는 서진과 작은어머니의 앞에 섰다. 이어서 그 붉은 입술을 움직인다.
살벌한 눈빛을 보면 막말과 쌍욕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엄선주의 입에서는 건조한 목소리가 흘렀다.
“언니, 무슨 말이야? 나를 체포하라고 말했어?”
“잠깐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