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 (2)>
***
FLF엔터테인먼트가 있는 건물 앞.
승합 차량이 멈춰 서고 수사관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수사관들의 눈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전원 체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항하는 새끼 있으면 그냥 조져!”
입구는 하나.
수사관들은 거침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서 뒤늦게 협조 요청을 받고 도착한 경찰 버스도 주차됐다.
그들 역시 숨 쉴 시간 없이 건물로 진입한다.
곧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개새끼가!”
“죽어!”
욕설을 덮는 창문 깨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무전.
장지혁 검사는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래된 3층짜리 건물, 1층에는 옷 가게가 있지만 2, 3층은 놈들이 사용하는 공간.
“깡패 새끼들이 있다기에 삐까 번쩍할 줄 알았는데, 허름하네.”
“저렇게 보여도 50억은 넘을걸요. 김현봉이 건물주래요.”
서진의 목소리에 장지혁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잉? 50억?”
“어쩌면 100억도…….”
“100억? 100억이면…….”
장지혁 검사가 손가락을 꼽았다.
숨만 쉬고 살아도 죽을 때까지 살 수 없는 곳.
계산을 이어 가던 장지혁 검사는 뭔가 허망함을 느꼈나 보다.
담배를 입에 물고 씁쓸한 한숨을 내뱉었다.
서진은 곧 끌려 나올 김현봉 대표를 기다리며 시선을 출입구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도 복잡한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깡패, 엄선주 그리고 작은어머니와 김영준 총장.
그 일그러진 관계 속에서 서진이 받을 이득과 피해.
단순 계산으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앞으로의 미래.
생각을 이어 가던 서진은 품에서 진동을 느꼈다.
발신 번호는 장석민.
서진은 장지혁 검사의 곁에서 조금 떨어지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잘 숨어 있지?”
장석민은 이 건물에 없다.
서진의 지시를 받고 다른 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놈의 목소리가 긴박하다.
-거, 검사님. 저도 지금 연락받았는데요.
내용은 김현봉이 사전에 정보를 듣고 튀었다는 말.
서진의 얼굴이 구겨질 때, 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마, 진용식한테 갔을 거예요! 청부 살인하는 새끼요! 메시지로 주소 찍어 드릴게요! 놓치면 해외로 튈 거예요!
장석민도 다급하다.
만약 한 번에 김현봉의 조직을 뿌리 뽑지 않으면, 그 불똥이 장석민에게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가나 했더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김현봉 대표는 매춘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얻었고 그 돈으로 권력을 매수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주요 장부도 가져갔을 게 분명하다.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장지혁 검사를 향해 다가섰다.
“튀었다네요.”
“응? 누가?”
그때 무전이 그 소식을 알려 왔다.
-김현봉은 없습니다. 책상이 어지러운 것을 보면 이미 도주한 것 같습니다. 스물네 명 체포했고 상황 종료하겠습니다.
서진이 입술을 씹으며 건물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김현봉은 엄선주를 향해 타고 오를 수 있는 동아줄.
사실, 엄선주의 혐의는 차고 넘친다.
지금 당장 체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
곧바로 엄선주를 치게 되면 김영준 총장에게 지금껏 얻은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김현봉을 잡으며 정말 우연인 것처럼 엄선주를 엮으려 하는 중이다.
그런데 놈이 도주했다.
지이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장석민에게 온 메시지.
내용은 진용식의 가요 주점, 그 위치, 그곳은 김현봉이 도주한 곳.
***
그 시각, 한 가요 주점.
그곳은 손님 없이 한산했다.
웨이터가 걸레를 들고 복도를 닦는 게 전부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는 방.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남자는 FLF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현봉과 마주했던 자.
그러니까, 서진은 노리는 놈.
이름은 진용식. 놈이 자신의 부하와 짜장면을 먹으며 말했다.
“돈 급한 뉴 페이스 중에서 골라.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놈으로.”
“그래도 좀 알아야 하지 않아요?”
“야, 잘 아는 놈이면 김서진이란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켜. 이놈이 저후안하고 안나 루 잡은 거 몰라?”
“그런데, 입금은 됐습니까?”
“됐으니까, 지금 지시하지 않겠냐?”
“요즘 먹고 튀는 새끼가 많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걱정할 필요 없어. 금전 거래는 확실한 사람이야.”
진용식이 휴지로 입술을 닦은 후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던져 뒀다.
마주 앉은 부하가 종이를 손에 들고 확인한다. 종이에는 서진의 얼굴과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진용식이 담배를 입에 물며 추가 설명을 이어 갔다.
“며칠 쫓아다니면서 이동 경로 파악하고 배우를 대기시켰다가 바로 작업해.”
“네.”
진용식은 부하의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들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열린 문틈을 통해 텅 빈 복도로 시선을 옮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 장사 더럽게 안 되네. 어떻게 파리 새끼 한 마리 안 보여? 오늘 개시 아직 안 했지?”
“이 근처 아저씨들한테 우리 가게가 비싸다고 소문났나 봐요.”
순간, 문이 요란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들어왔다는 신호.
진용식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문 닫아. 짜장면 냄새 퍼지겠다. 적당히 벗겨 먹으라고 지시하고.”
“네!”
부하도 오랜만에 보는 손님 소리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문고리를 잡을 때였다.
“잠깐만.”
진용식의 목소리가 부하의 행동을 막아섰다.
부하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진용식을 향했다.
진용식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
떨떠름하니 복도의 끝을 보다가 중얼거린다.
“……저 새끼가 여길 왜 와?”
가게로 들어온 것은 FLF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현봉.
놈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어서 거칠게 룸으로 들어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배, 배 좀 빌리자!”
“……뭐?”
“배 좀 빌리자고!”
진용식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무슨 말 하는 거야?”
“돈 준다고, 이 새끼야! 너 돈 좋아하잖아! 돈!”
김현봉의 목소리는 처절했지만 진용식의 입가에는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
콰앙!
거칠게 문이 열렸다.
서진이 가요 주점으로 들어온 거다.
하지만 조용하다.
한창 영업을 해야 할 시간인데, 목소리는커녕 옷깃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서진의 시선이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 틀어졌다.
그곳은 다른 방과 달리 문이 열려있다.
서진이 뚜벅뚜벅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
남은 것은 짜장면 빈 그릇, 재떨이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담배 냄새, 사람은 없다.
뒤이어 들어온 수사관들이 이곳저곳 방을 열어 보고 확인했지만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장지혁 검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이대로 김현봉이 해외로 도주하면, 놈은 어린아이들을 꼬드겨 성매매를 시킨 돈을 갖고 계속해서 떵떵거리고 잘 살 거다.
장지혁 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잡아 온 놈들 털어서 김현봉 도주할 만한 곳을 물어봐. 입을 열지 않으면 찢어서라고 토해 내게 만들어!”
서진은 계속해서 방을 확인했다.
놈들이 마지막으로 있던 곳,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모른다.
1초가 아쉬운 시간이지만, 이럴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
그때였다.
또다시 쾅,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온 것은 깡패, 숫자는 아홉.
“어떤 미친 새끼들이 우리를 습격…… 어?”
김현봉에게 연락을 받고 온 놈들이다.
놈들은 이곳에 있는 게 검찰인 줄 모르고 들어왔다.
눈을 말똥말똥 뜨며 공손히 묻는다.
“……경찰이세요?”
검찰이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알아낸 김현봉이 시간을 끌기 위해 놈들을 투입시킨 것.
게다가 저놈들을 체포하고 또 검찰로 보내면, 이곳에 있는 수사관의 숫자는 현저히 적어진다.
즉, 지금당장 놈을 쫓는 수사망이 헐거워지는 거다.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끌끌 웃었다.
‘머리를 쓰네…….’
하지만 그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서진이 방에서 나와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수사관들을 스치며 놈들의 앞에 선 서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현봉한테 전화받은 놈 누구야?”
깡패들은 서진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저후안을 잡고 사채시장을 초토화시켰으며 심지어 경찰서장과 같은 검사까지 교도소에 처넣은 악마.
놈들의 행동은 빨랐다.
빠르게 휴대폰을 넘기며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다.
“땡큐. 넌 특별히 설렁탕 특으로 시켜 줄게.”
서진이 받은 휴대폰을 장지혁 검사에게 넘기며 말했다.
“통신망을 확인하면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김현봉이 사용한 휴대폰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놈의 휴대폰이 있는 곳은 외곽 순환 고속도로 시흥하늘휴게소.
그런데 그곳으로 향하는 서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김현봉은 연예인 지망생을 꼬드겨 해외 성매매를 알선하는 놈.
“들어 본 적 있지? 연예인 스폰. 성공한 연예인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쳤어. 아, 꼭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너 때문에 다른 팀원들이 피해는 보겠지만……. 그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어.”
헛소리를 지껄이며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쓰레기.
깡패보다는 사기꾼에 가깝다.
그런 놈이 사용한 휴대폰을 그대로 들고 있다는 게, 휴게소에 가까워질수록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서진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저, 저는 몰라요. 손님이 놓고 간 것 같은데…….”
휴대폰이 있는 곳은 택시였다.
택시 기사는 주변을 포위한 수사관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고 자신은 범인과 어떤 연관도 없다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진은 김현봉이 두고 간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다행히 비밀번호를 걸려있지 않아 통화 목록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그런데 놈으로 인해 뺑뺑이를 돌고 나니, 이것조차 의심된다.
일부러 비밀번호를 걸어 두지 않았는지, 놈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깡패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해외로 튀었으면 어떻게 하지?”
장지혁 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물었고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 도망치는 것은 어려워요. 여권도 만들어야 하고 배도 섭외해야 하고. 가진 돈도 바꿔야 하고. 이렇게 수사에 혼선을 주는 것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한 발악이겠죠.”
“일단 도주로 확보하고 공개수사로 바꾸려고 하는데…….”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놈의 휴대폰을 만지던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고 있었다.
***
영종도의 한 작은 호텔.
새벽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
“개새끼들…….”
김현봉은 그곳에 있었다.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것은 과자 몇 봉지와 소주 한 병.
청부업자 진용식은 말했다.
“이곳에 박혀 있다가 내일 새벽에 인천에서 필리핀으로 밀항할 거야. 가짜 신분증은 그 뒤에 만들어 주지, 그 뒤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있어.”
“좆같은 나라.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열심히 산 게 죄야?”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흐르고 있다.
김현봉은 계속해서 뉴스를 확인했지만 본인에 대한 소식은 없다.
김현봉이 소주를 마시며 낄낄 웃었다.
“공개수사라도 해야 내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이 병신들아!”
김현봉은 검찰이나 경찰이 자신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공무원.
따박따박 던져지는 월급에 익숙해진 자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자신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겼다.
김현봉이 담배를 입에 물기 위해 품을 뒤적거리다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빈 담뱃갑을 방바닥에 툭 던진 후 호텔의 1층에 편의점이 있는 것을 기억하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 후, 편의점에서 나온 김현봉이 담배를 입에 물고 건물의 벽에 기댔다.
놈의 시선은 이 땅을 떠나는 비행기를 향해 있었다.
김현봉도 곧 이 땅을 떠난다.
약속한 시각까지 고작 5시간.
‘필리핀?’
적어도 2년은 그곳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그곳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 지금보다 더 큰 돈을 만질지도 모른다.
그 돈으로 권력자를 매수하면 다시 이 땅에 돌아올 수 있다.
김현봉이 쓰게 웃으며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었다.
그의 앞으로 낯선 라이터가 쑥 내밀렸다.
김현봉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틀었다.
“……어?”
“피워. 마지막 담배가 될 거니까.”
서진이 서 있었다.
김현봉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