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81화 (181/250)

<동아줄 (1)>

***

“검사든 양아치든 상관있나? 똑같은 사람이잖아? 2배 줄게. 어때?”

며칠 후, FLF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이 걸린 작은 사무실.

겉으로는 연예인 기획사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해외 매춘 알선.

대표 김현봉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앞을 바라봤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불법체류자를 통해 살인 청부를 일삼는 자.

사람을 죽이고 밀항하면 끝.

대한민국에서 놈들은 유령과 같다.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에 해외로 도주하면 절대 잡아낼 수 없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놈은 망설이고 있다. 청부의 대상이 검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서진이라며?”

놈도 서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진은 저후안을 잡은 검사, 검찰총장의 조카.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 나가면 모든 탈출구는 순식간에 막혀 버릴 거다.

살인범이 무사히 도망친다 해도 그 뒤가 문제다.

대한민국 전체에 있는 불법체류자가 싹쓸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게 권력이다.

“……꼭 해야 해? 검사잖아? 그 새끼들, 다른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신경 안 쓰는데, 자기들 일이면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거 몰라?”

남자의 망설임에 김현봉 대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알지. 그래서 안 하고 싶지. 그런데, 우리 쩐주의 부탁이야. 안 하면 투자를 끊는다고 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어.”

“미친 새끼, 투자 때문에 목숨을 걸어?”

“몰라? 이 바닥에선 돈이 목숨이야. 평소보다 3배 더 쳐줄게.”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교통사고로 위장하면?”

“그래도 안 돼. 걸릴 거야.”

“4배.”

“그래도 안 돼.”

“5배.”

평소보다 5배나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말에 남자의 눈에 탐욕이 채워졌다.

하지만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다.

남자는 한참이나 고민을 이어 갔다.

상대는 검사, 그 뒤에 있을 후폭풍.

그리고 결심이 섰나 보다.

남자가 무거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7배. 그리고 추가 옵션.”

“야! 7배면…….”

“그럼 너희가 하든지.”

“씨발!”

“위험수당은 있어야 하잖아? 그 정도는 있어야 나도 애들을 설득할 수 있고.”

지금껏 고민하는 척했던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받아 내기 위한 구실.

대표 김현봉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서, 방법은 어떻게 할 건데?”

“잘나가는 검사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것은 무리야. 잘못하면 우리까지 쑥대밭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취객과 시비 붙은 것으로 할게. 이 나라 법이 우습잖아? 정상참작이 가능한 우발적인 살인, 술에 취한 심신미약이면 5년 이하 받아 낼 수 있을 거야. 그쪽에서 변호사를 붙여 주고 방송국 PD를 섭외해서 불쌍한 놈이었다고 포장해 주는 옵션. 콜?”

대표 김현봉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평소의 7배와 변호사 그리고 방송국 PD를 섭외하는 일.

써야 할 돈이 한가득이다.

“남는 게 없네.”

“할 거야?”

“해야지. 어쩔 수 있나?”

남자가 스산하게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선금으로 50% 넣어. 깔끔하게 처리해 줄게.”

“알겠지만, 걸리면…….”

“걸릴 일도 없겠지만, 걸려도 불똥 안 튀니까 걱정하지 마. 연관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을 거야.”

“믿는다.”

“신용 사회야. 한두 번 장사해?”

두 사람이 악수했다.

서진을 타깃으로 한 살인 청부가 계약된 거다.

악수를 끝으로 남자는 몸을 틀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대표실을 떠났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깡패 세 명이 우르르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는 장석민도 있었다.

김현봉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물 때, 가장 앞에 선 장석민이 질문을 던졌다.

“거래는 잘되셨습니까?”

“잘되기는……. 생돈 나가게 생겼어.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뭘?”

“검사 배에 구멍 내는 거요.”

“그게 왜?”

“궁금하잖아요, 일반 사람도 아니고 검사를 어떻게 청소할지.”

장석민은 천연덕스럽게 물었고 김현봉 대표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남자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해 줬다.

취객과의 싸움 그리고 우발적인 살인.

불법체류자는 상대가 검사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게 분명하다.

“저놈들은 사람 죽이는 데 프로잖아. 소주병을 깨서 허벅지의 동맥을 노릴 거래. 술김에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다고 죽일 마음은 없었다고 주장하겠다네. 실력 좋은 변호사하고 불법체류자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줄 PD나 섭외해 달라고 하더라. 그럼 5년 안에 나올 수 있다고. 미친 새끼들.”

김현봉 대표가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진을 어떻게 죽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장석민도 대표를 따라 똑같이 웃었다.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은 달랐다.

장석민이 아무리 깡패라고 하지만 그 역시 대한민국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검사가 불법체류자의 손에 그 생명이 좌지우지된다는 게 괜히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도 5년이라고? 하…….’

사무실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온 장석민은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상대는 서진이다.

***

“아, 땡큐.”

서진은 장석민의 전화를 받았다.

장석민의 목소리는 심각했지만 서진에게 두려운 감정 따위는 없었다.

놈들의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고 깡패 집단을 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고민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어떻게 해야 김영준 총장과 어긋나지 않을 것인가.

깡패들을 타고 올라가면 엄선주가 있고, 엄선주는 작은어머니의 친동생이며 김영준 총장의 처제다.

엄선주의 머리채를 잡고 검찰로 끌고 오는 순간 김영준 총장이 분노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뒤를 캤다며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아직은 김영준 총장과 대적할 때가 아니다.

철저히 감정을 숨긴 채 같은 편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적대적인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서진이 조금의 힘을 갖췄을 때다.

잠시 고민하던 서진은 책상을 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의 방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커피 한잔 드실래요?”

서류에 파묻혀 있던 장지혁 검사가 서진의 목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업무가 과했는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다.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피곤함을 숨기며 슬쩍 웃는다.

“커피? 네가 사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로 사 드릴게요.”

“좋네.”

몸을 일으킨 장지혁 검사가 서진을 따라 복도로 나섰다.

그런데 서진이 엘리베이터로 향하지 않는다.

그대로 복도를 걸어 직진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는 거 아니었어? 커피 산다며?”

“네, 커피요.”

서진이 향하는 곳은 복도 끝의 휴게실.

장지혁 검사는 ‘에이,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했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서진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서진이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건네자 장지혁 검사가 픽 웃으며 농담을 내뱉었다.

“캔 커피? 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라고?”

“후배가 사 주는 커피가 최고 아닌가요? 전 항상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응, 아니야. 그리고 네가 평범한 후배냐? 이것저것 선배 시켜 먹는 놈을 평범하고 귀여운 후배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죄송합니다.”

“됐어.”

장지혁 검사가 의자에 앉아 캔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서진이 이런 식으로 찾아왔을 때는 항상 뭔가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며 물었는데.

“그때 그 깡패 놈들요. 슬슬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왜?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네.”

서진의 대답을 들으며 장지혁 검사가 히죽 웃었다.

어린 학생들을 속여 해외 매춘으로 돌리는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거다.

장지혁 검사가 커피를 입에 대며 말했다.

“제일 맛있는 커피 맞네.”

장지혁 검사가 기분 좋게 웃으며 캔 커피를 우그러뜨렸다. 그리고 툭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을 이었다.

“깡패 새끼들한테는 지옥 같은 밤이 되겠지만, 쓰레기는 쓰레기통이 어울리는 법이지.”

***

그날 저녁.

엄선주는 김현봉 대표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때 지시하셨던 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진에 대한 테러 계획, 김현봉 대표는 엄선주를 향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어필했다.

상대가 검사이기 때문에 청소부를 고용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는 것.

하지만 엄선주의 지시였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투자를 부탁한다는 것.

“고생했어요.”

엄선주는 빙긋이 웃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꺼진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잘생긴 총각…… 미안하네.”

김현봉 대표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들으면 예상할 수 있다.

이제 서진은 사망할 거다.

엄선주는 조의금을 듬뿍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깔깔 웃었다.

그때 엄선주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엄선주가 느릿한 손길로 휴대폰을 손에 쥔다.

“어, 말해.”

-실장님, 알아봤습니다. 이소희라는 검사…….

이소희의 개인사가 들려오는 순간.

엄선주의 정보력으로 이소희의 아버지가 백기호 의원이라는 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라기는 했습니다만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생활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둘이서?”

-네.

엄선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화장실에서 지껄이던 여자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잘 알아본 거야? 아버지가 증권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에 대한 흔적은 지운 것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하나죠. 미혼모라고 생각됩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대학은 졸업했고?”

-고졸입니다.

“직업은?”

-직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엄선주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점점 더 짙어졌다.

“고졸에 무직인 사람, 그것도 미혼모가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살았다? 집안이 부자였나 봐?”

-그것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냄새가 난다.

고소한 냄새.

언니에게는 엿 같겠지만 엄선주에게는 깨소금이다.

엄선주가 통화를 종료하며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박 기사, 차 대기시켜.”

엄선주는 언니를 만나 볼 생각이다.

축하하는 늦게 전해도 괜찮지만 나쁜 일은 하루빨리 소식을 전하고 슬픔을 나눠야 한다.

그게 예의이며 자매라고 생각했다.

기사가 차를 빼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고 엄선주는 다시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찾는 번호는 당연히 그녀의 언니, 서진의 작은어머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서진의 작은어머니가 “여보세요?”라고 했을 때, 엄선주는 평소보다 살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니, 바빠?”

-기분 좋은 일 있나 봐? 땅값 올랐니?

“좋은 소식이 있고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전해 주고 싶은데, 시간 어때?”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

“어.”

좋은 소식은 서진을 향한 테러.

안 좋은 소식은 당연히 이소희에 대한 것.

엄선주는 대답을 기다렸고 작은어머니는 잠시 망설였다.

작은어머니는 엄선주의 성격을 알고 있다.

안 좋은 소식이 더 충격적일 게 분명하다.

잠시 후, 한참을 고민하던 작은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 어디서 볼까?

엄선주의 입가에 정말 환한 미소가 걸렸다.

***

그 시각, 중앙지검.

주차장에는 검찰의 승합 차량이 가득했다.

수사관들은 빠루와 망치 등 각종 쇠뭉치를 들고 차량에 오르는 중이다.

수사관들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 위험을 예상했는지 살벌한 눈빛이다.

목표는 FLF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장지혁 검사는 놈들에게 지옥을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경찰에는 협조 요청하셨어요?”

서진의 질문에 장지혁 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깡패 새끼들을 잡을 때는 아는 사람이 많으면 안 돼. 어디서 소식을 듣고 튈 수도 있잖아? 급습하면서 요청할 거야. 한 놈도 안 남기고 쓸어버려야지.”

“그래야죠. 쓸어버려야죠.”

서진을 테러하려 한 놈들.

엄선주 그리고 그 깡패.

같잖은 돈을 믿고 설치는 자들.

오늘 밤, 놈들은 사라질 거다.

0